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84
@84. 마법을 쓰지 못한다고?
“일찍 눈을 감으시더니, 기상도 이르시군요.”
그가 내 쪽을 바라보지 않은 채 말했다.
눈을 감았다니, 묘한 언어 선택이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있지.
“이아페의 선물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계셨네요.”
저 브로치는 지난번 이아페가 남부를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선물한 것.
소설 속에서는 일로제가 브로치를 받자마자 버렸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이아페의 아픔이 더 부각되기도 했고.
하지만 이렇게나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는 건.
“그러고 싶었습니다. 남겨 놓고 싶었어요. 어쩌면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고.”
이런 그린 라이트 비하인드가 있었다니. 게다가 이제는 화해까지. 형제의 아름다운 우애에 마음이 웅장해진다.
“하지만 이제 마지막이 아니게 된 거죠?”
한껏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옆으로 틀어 일로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일로제가 시선만 아래로 내려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가 잠시 말이 없더니, 문득 한마디를 던졌다.
“고맙습니다.”
“네?”
“이아페는 마법사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부터 움츠리는 게 습관이었습니다. 저를 마냥 귀여워해 주던 친척들도 손가락질하는 게 보였으니. 그러다 그 사건 즈음에는, 저희를 적대시하는 이들도 그 아이가 마법사란 걸 알게 돼서 죽이려 들었고.”
일로제가 이아페의 어린 시절을 담담히 늘어놓았다.
“타인에 대한, 세상에 대한 경계심으로 벽을 세우는 게 당연해진 아이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벽이 허물어져 보여요. 그건 아마.”
일로제가 몸을 돌렸다. 그의 보랏빛 눈이 나를 향했다.
“당신 덕분이겠죠.”
나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일로제를 바라보았다. 이아페가 나 때문에 벽을 허물었다고?
확실히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분위기가 많이 유해졌다. 더 많이 순수한 웃음을 짓게 된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뇨. 지금 일로제 경이 보신 이아페의 모습이 그렇다면, 그건 제가 아니라 이아페가 스스로 벽을 부쉈기 때문일 거예요. 미래를 생각하면서도 남들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내 말에 일로제가 진심이냐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겸손입니까?”
“아쉬울 정도로 사실인걸요. 그래도 그건 좋네요.”
나는 환하게 얼굴을 밝혔다.
“미안하다는 말보단, 고맙다는 말. 앞으로는 서로 더 많이 고맙다고 해요.”
일로제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로제의 얼굴에 미소가 물안개처럼 피어올랐다.
나는 다시 한번 벽의 숱한 훈장을 흘끗 바라보았다.
‘와, 화해해서 다행이다. 이건 흑마법 안 쓰고 육탄전만 벌였어도 위험할 수 있었겠어. 그보다… 흑마법은 언제부터 쓰게 된 거지?’
일로제는 검은 로브를 입은 이들과 함께 나타나 이아페를 죽이려 했던 흑마법사.
시기상으로는 지금도 충분히 흑마법을 익혔어야 했을 것 같은데.
하지만 그에게서 별다른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떠보듯 물어보았다.
“일로제 경은… 마법, 아예 안 쓰시는 건가요?”
그가 사용하는 마법과 관련한 특이점이 있다면, 흑마법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들려온 그의 대답에 나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모르셨군요. 저는 마법을 쓰지 못합니다.”
마법사가 아니라고?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럴 리가 없는데.”
“네?”
“그러니까 일로제 경이 마법을 못 쓸 리가 없거든요…?”
내 진심 어린 의문에 일로제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소설 속에서 당신이 흑마법을 썼으니까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동생은 쓰는데 왜 당신은 못 쓰냐고 하는 것도 실례지.
그럼 할 말은….
“그냥?”
가늘게 눈을 뜨고 그를 꿰뚫듯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자 일로제가 흠, 하고 팔짱을 꼈다.
“대단하시군요.”
일로제가 허를 찔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마법사였던 건가?
“저도 모르는 제 능력까지 알고 계시다니. 어떻게 하면 마법을 발현시킬 수 있습니까? 방법을 알려 주시면….”
“진짜 못 쓰나 보네요.”
“그렇습니다.”
일로제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원작에서 흑마법으로 그렇게 큰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사실은 마법사가 아니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일로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면 칸에 남우주연상 후보로 백 번도 넘게 초대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로제에게선 마력의 흔적조차도 느껴지지 않아.’
마법사가 되어 보니 알겠다. 미세한 마력의 흔적은 마치 그 사람의 체취처럼 곁을 맴돈다.
뚜렷하게 풍기진 않지만, 가까이에서 집중하면 느껴지는 것.
하지만 일로제에게선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저를 마법사로 끌어들이고 싶어 해 주시는 건 영광입니다만. 정말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와, 아쉽다!”
“정말 아쉬워하시는 게 맞습니까?”
“네. 아쉽지만 남부 기사단에 인재를 양보해야겠네요.”
나는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고민에 빠졌다.
‘검은 로브에 대해 아냐고 물어볼까.’
아냐. 고개를 저었다.
일로제는 좋은 사람이고 이아페와도 화해한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사실 이아페를 죽이려면 어젯밤만큼 좋은 기회도 없었을 테고.
‘하지만 100% 신뢰할 수는 없어.’
일로제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게는 이아페가 더 소중하다.
이아페의 운명이 달린 이 일을 평소처럼 관대하게 보고 싶진 않다.
일로제가 거짓말을 한다는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검은 로브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정보를 흘리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야.’
원작의 내용을 다시 짚어 보려 했지만, 배가 고파서 그런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나를 너무 얕봤다. 역시 이 빵 한 조각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데.
“저기, 일로제 경.”
“네.”
“일단 아침을 좀 먹읍시다.”
내 비장한 말에 일로제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그러더니 아주 가벼운 투로 무거운 말을 던졌다.
“이아페가 단장님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네? 설, 설마요.”
나는 횡설수설하며 눈을 깜빡였다.
일로제가 보기에도 이아페가 나를 좋, 그렇게 보인단 말야?
“좋아한다는 건 인류애적인 걸 말씀하시는 거죠?”
나는 김칫국을 마시지 않기 위해, 최대한 넓게 잡고 질문했다.
“물론입니다. 다른 의미가 있을 리 없죠.”
그리고 일로제는 지금까지 본 모습 중 가장 즐거워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를 보니 약간 오기가 생겼다.
“하지만 제 생각엔 이아페가 저를 바라보는 감정은 그 정도에 그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뭐야, 알고 계셨습니까.”
일로제가 놀랐다는 듯 눈썹을 끌어 올렸다.
당연하지. 왜냐하면 이아페는… 이아페는….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젓고 단호하게 말했다.
“저를 존경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아… 네. 그럼 저는 토스트 만들러 이만.”
내 대답에 일로제가 돌아서서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그에게 따라붙었다.
“직접 만드는 거였어요? 저 구경해도 돼요?”
“레시피는 공개해 드릴 수 없습니다.”
“에이, 좀 해 주세요.”
“안 됩니다.”
“그럼 저 구체적으로 어떻게 좋은 사람인지 말해 주세요.”
“…….”
일로제는 내 좋은 점을 말하는 대신 틸라 토스트의 레시피를 공개해 주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는 점만 빼면, 나름대로 즐거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 * *
“조만간 다시 올게, 일로제.”
숙소로 돌아가는 마차 앞. 한층 부드러워진 분위기에서 이아페가 인사를 건넸다.
“아니, 오지 마.”
일로제가 고개를 저었다.
‘화해해 놓고 왜 또 오지 말라는 거야?’
속으로 일로제에게 꿀밤 100대를 때리는 찰나.
“이번엔 내가 가도록 하지. 수도로.”
“…그래.”
“그 집에 가는 건 생각해 봐야겠지만 말야.”
장족의 발전이었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이아페와 일로제를 바라보았다.
“일로제, 형이 온다면 그게 어디든 기꺼이 나갈게.”
“그래. 그리고….”
일로제의 시선이 산들바람처럼 나를 부드럽게 스치고, 이아페를 다시 휘감았다.
“고맙다, 이아페. 모진 말들을 겸허히 들어 줘서. 내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꾸준히 날 찾아 준 것도.”
일로제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번졌다. 이아페가 약간 놀란 듯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네. 형 웃는 모습 보는 거.”
“그런가.”
“나도… 고마워.”
그들은 몇 초간 서로를 응시하다, 이내 몸을 돌렸다.
앞에 세워진 마차로 걸어가는 동안 바라본 이아페의 옆얼굴은 약간은 수줍은 행복을 머금고 있었다.
“…….”
세상 훈훈하고 깔끔하고 깨끗한 결말이었다.
너무 훈훈해서, 일로제를 100% 신뢰하지는 못하는 내가 나쁜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때였다. 갑자기 한쪽 팔이 들리더니 무언가가 팔 안쪽으로 끼어들었다.
“……?”
나는 천천히 옆을 돌아보았다.
이아페가… 내 팔에 제 팔을 끼워 넣은 채 걷고 있었다.
마치 연행을 하듯이.
“왜 그래요, 이아페? 걷기 힘들어요?”
“…….”
“아니면… 내가 걷기 힘들어 보여요?”
“친구끼리는 종종 이렇게 팔짱을 끼곤 합니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한데.
보통은 동성의 친구에게만 끼지 않나?
“그게….”
나는 슬며시 팔을 움직였다.
“…저만 친하다고 생각했나 보군요.”
이아페가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런 표정은 반칙이잖아.
게다가 키론에서는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팔짱을 끼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길거리에서 연인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모두 그냥 남사친과 여사친이었을지도 모르지.
이아페가 정말 그런 의미라고 생각해서 팔짱을 낀 거라면, 그건 그거대로 조금 싱숭생숭하지만.
“아니에요, 팔짱 껴요. 친근하고 좋네요.”
그렇게 나는 한쪽 팔을 이아페에게 저당 잡혀 놓은 것 같은 자세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