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88
@88. 셋, 둘, 하나, 고우슛
이게 뭐라고 갑자기 긴장감이 차오르네. 내가 팽이에 이렇게나 진지해질 줄이야.
“자, 그럼. 셋, 둘, 하나….”
나는 대를 잡은 손을 최대한 둥글게 꺾어 돌렸다.
“시작!”
손목 스냅을 최대한 살려 풀면서 팽이를 놓았다. 주변에서도 ‘사아…!’ 하는 소리와 함께 곳곳에서 팽이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패… 팽이야…! 네가 이러면 안 되지!”
라온의 팽이는 돌린 지 5초 만에 넘어지고 말았다.
“오케이. 1명 제쳤고.”
“단장님?”
라온의 상처받은 목소리가 울렸다. 속으로만 말한다는 걸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빨간 팽이 이겨라!”
“보라색 팽이 이겨라!”
다행히 주변의 격한 함성에 묻혀 라온의 말을 못 들은 척할 수 있었다.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에게서 격투기 경기를 보는 것 같은 환호와 아우성이 쏟아졌다.
중심을 잘 잡고 빠르게 돌아가는 내 팽이를 응원하는 이들도 적잖게 있고. 후후, 내가 왕년에 ‘고우슛!’ 좀 해 봤다 이거야.
“이럴 리가 없는데!”
“윽….”
어느덧 다른 참가자 3명의 팽이도 멈췄다.
나는 그걸 보며 비릿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남은 팽이는 여섯 개였다. 나, 니니안, 이아페, 르디엘, 카실, 셀라임의 팽이.
과연 승부는 어떻게 될까.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오, 네 거 곧 멈추겠다!”
카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고 그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니니안의 노란 팽이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뭐가 아니야, 멈추고 있잖아!”
“멈췄다….”
니니안이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카실을 째려보았다.
“야! 그렇게 저주를 퍼부으면 어떡해!”
“멈출 것 같은 팽이한테 멈춘다고 말한 것뿐인데?”
“말이 씨가 된다고,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지!”
“괜한 희망 품지 않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도와준 거야.”
카실이 얄밉게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카실의 팽이를 향해 외쳤다.
“네 거 멈춘다!”
“뭐라는 거야, 아직 쌩쌩하거든?”
“나도 말하는 것뿐인데? 멈춘다! 멈춘다!”
“아, 하지 마!”
“멈춘다! 멈춘다! 멈춘다! 멈춘다! 멈춘다!”
“어어…!”
정말로 멈춤의 저주가 내린 것인지 카실의 팽이가 맥을 못 추며 옆으로 쪼르르 이동했다.
“허업….”
그의 팽이가 셀라임의 팽이에 싸움을 걸더니 정말로 멈추었다.
문제는 그 여파로 셀라임의 팽이도 멈추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카실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저기, 이건 상당히 불가항력적인….”
“왜 까분 거죠?”
“시샤가 멈추라고 해서 이렇게 된 거야!”
“제 팽이를 친 것은 당신의 팽이인걸요.”
두 사람은 그렇게 선생님과 혼나는 아이 같은 대화를 이어 갔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이제 남은 건 이아페, 르디엘의 팽이.
그리고 내 팽이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어느새 기존 1등이 기록한 시간을 넘겼다.
‘이제 이아페랑 르디엘만 제치면…!’
나는 기대에 찬 눈으로 내 팽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 팽이는 굉장한 관심종자인지, 잠깐 관심을 안 줬다고 서서히 멈춰 가고 있었다.
“여기까지 잘 왔잖아! 좀만 더 힘내!”
하지만 팽이는 술에 취한 것처럼 갈피를 못 잡고 뒤뚱뒤뚱했다.
그리고 결국….
“안 돼!”
장렬히 전사했다.
“시샤 님…!”
마치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하는 이아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탈락의 고배를 쓰라리게 마시느라 제대로 반응해 줄 수가 없었다.
“제가 1등을 안겨 드리겠습니다.”
결의로 가득 찬 이아페의 목소리에 나는 그의 팽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더욱 실망감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당신 팽이도 곧 쓰러질 것 같은걸요….
그런데 느리게 팽글팽글 돌던 이아페의 팽이가 돌연 속도를 더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이아페의 팽이를 감쌌다.
뭐야? 사람들 사이에서도 열광하는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아페의 팽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지금 설마… 마법 쓴 거야?
믿을 수 없는 그의 선택에 눈을 빠르게 깜빡일 때, 갑자기 르디엘 쪽에서도 웅성임이 커졌다.
나는 르디엘 앞에 놓인 하얀 팽이로 시선을 옮겼다.
르디엘의 팽이는 화려하게 빛을 뿜어내며 모터를 단 것처럼 회전하고 있었다.
뭐야, 저게. 이래도 되는 거야?
팟! 스파크가 튀었다. 이아페와 르디엘의 팽이 사이의 공중에서 뭔가가 부딪혀 튕겨져 나왔다.
“치사하게 이럴 거야?”
르디엘이 왼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뭐가?”
팔짱을 낀 이아페가 고개를 갸웃했다.
르디엘이 팔을 살짝 걷어붙이고 이아페의 팽이를 매섭게 바라보았다.
빛이 공기를 가를 듯 빠르게 이아페의 팽이로 이동했고, 곧 그의 팽이를 태울 듯 피어올랐다.
그 순간 이아페가 뭐라 중얼거렸다.
파지직! 보이지 않는 장벽이 르디엘의 빛을 막았다.
동시에 르디엘의 팽이 근처 공기가 일렁였다.
방어한 것인지 르디엘의 팽이는 아무 이상 없이 돌아갔다. 하지만 팽이를 둘러싸고 원 모양으로 모래가 깊숙이 파였다.
오우… 오…! 판세가 뒤집어질 때마다 사람들의 함성도 파도처럼 간헐적 외침을 반복했다.
“이만 끝내지.”
“나도 휴식 시간이 곧 끝이라.”
일하다가 갑자기 나와서 팽이를 돌리고 있던 두 남자는 농땡이도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노란빛과 푸른빛이 각각의 팽이를 둘러쌌다.
빛이 점멸했다.
그리고 승패의 결과는…!
두 팽이 모두 멈춰 있었다.
이아페의 팽이는 까맣게 탄 채로, 르디엘의 팽이는 꽁꽁 얼어 버린 채로.
뭐야? 무승부야?
수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심판을 바라보았다. 심판은 무심한 얼굴로 약간 고민하는 듯하더니 외쳤다.
“승자는 1명입니다.”
“……!”
“이 대결의 승자는…!”
두구두구두구두구.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시샤 아르비나 님입니다.”
“헙…!”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내가? 대체 왜?
“이안 님과 르디엘 님은 실격입니다.”
“……!”
“두 분은 처음 팽이를 돌릴 때 이외에는 신체, 도구, 능력 일체를 이용해 어떠한 직간접적인 힘을 가해서도 안 된다는 룰을 위반하셨습니다. 신성력 혹은 마법 등의 힘을 사용하신 것이 명백해 보이기에, 게임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위배되어 실격입니다.”
순위판 1등 자리에 내 기록이 적혔다.
“마지막 경기이기 때문에, 최종 1등은 시샤 아르비나 님입니다.”
1등이라니! 나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끄덕였다.
“시샤 님, 축하드립니다.”
이아페가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그의 두 손을 덥석 잡고 크게 흔들었다.
“이아… 이안. 고마워요.”
“제 패배로 시샤 님이 즐거우실 수 있다면….”
“아, 아니, 너무 고생했는데 떨어져서 어떡해요. 아쉬워라.”
“그렇게 웃으시면서 아쉽다고 하시는 겁니까?”
“표정 관리 실패했어요?”
나는 머쓱하게 헤헤 웃었다. 이아페가 사르르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습니다. 당신보다 제가 더 기쁠 테니.”
“그럴 리가요. 저는 지금 발이 땅에서 10cm 떠 있는데요.”
“당신이 웃는 걸 보는 나는 하늘에 떠 있는 기분인데.”
“제 마음은 지금 그 하늘에 있는 구름을 통째로 삼켜 버린 것처럼 부풀었어요.”
이아페가 졌다는 듯 쿡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눈가가 나른하게 접혔다.
“그럼 마음껏 하늘을 떠다니고 오십시오. 내려오고 싶으실 때 언제든 받아 드릴 테니.”
그의 웃음기 띤 표정이 어쩐지 정말로 나보다 더 행복해 보여서, 오히려 나는 말을 잃고 말았다.
저건 설렘 방지법 몇 조에 위배되는 행동이더라. 좋다고도, 싫다고도 대답할 수 없는 미묘한 말을 던지는 거 말야.
“저, 그러니까….”
“1등 상품을 발표하겠습니다.”
다행히도 주최 측에서 중대 발표를 선언한 덕에 대답의 의무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1등 상품은….”
뭔데, 뭔데?
“바로 톤다 거리의 광장 중앙에 있는 가장 오래된 나무의 명명권입니다.”
“……?”
“나무의 공식적인 이름을 지을 수 있는 권한을 시샤 아르비나 님께 드립니다.”
“네?”
내가 뭔가 잘못 들었나 싶어 눈썹을 기울였다. 주최자는 신뢰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만약 나무의 이름을 ‘시샤’로 붙인다면 나무의 앞에 크게 ‘시샤나무’라는 팻말을 놓을 것이며, 그곳을 지나는 모두가 대대손손 ‘시샤’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입니다.”
으음, 그렇게 들으니 나쁘지 않은데? 내 안에 살고 있는 관종이 꿈틀대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눈알을 굴리며 입술을 씰룩댔다.
그래. 생각해 보니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보단 그런 명예를 얻는 것이 나을….
“그런 시시하고 유치한 것에 이분께서 만족할 리가 없다.”
옆에서 이아페의 단호한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저기, 그 정도로 유치하진 않은데….
“맞습니다. 저분은 대가에 값을 매기는 분야에서 전문가시니 차라리 그 나무를 팔아서 돈을 드리는 편이 좋겠죠.”
르디엘도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말로 동조했다.
아니, 나 돈보단 명예 파인데…?
주최자는 두 장정이 제게로 다가오며 심각하게 말한 것에 압박을 느낀 것인지 잠시 망설이다 나를 바라봤다.
“상품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다른 것을….”
“아뇨, 아뇨!”
이아페와 르디엘이 깜짝 놀라 나를 휙 바라보았다.
“맘에 쏙 들어요.”
나는 주최자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주최 측에서는 내게 해당 나무 명명의 권한을 부여한다는 증서를 건넸다. 뿌듯함이 차올라서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증서를 뚫어져라 보는 내게 이아페가 물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좋은 건 아닌데요.”
“좋으신가 보군요.”
말과는 반대로 입술이 미묘하게 올라갔고, 이아페가 그것을 기민하게 캐치했다.
그런데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이아페가 어쩐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무슨 생각 해요?”
“숲을… 만들어야 하나….”
숲? 시시하고 유치한 것이라 말했지만 이아페도 막상 이 나무를 보니 부러운 건가?
그래서 이아페 숲을 만들려는 게 틀림없다.
“만들면 되죠.”
“괜찮습니까? 만들어도.”
이아페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아페 숲을 만드는데 왜 나한테 허락을 구하는 것 같지?
아, 내 상품을 따라 하는 게 티가 나서 그런 건가?
“네. 저도 좋아요. 기쁜 마음으로 방문할게요.”
나는 대인배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아페가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