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93
@93. 사라진 시샤
비알로는 살짝 열린 문을 세게 밀었다. 문이 활짝 열리고 시샤의 방이 온전히 드러났다.
“시샤…?”
텅 빈 방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분명 말소리를 들었는데. 문틈 새로 시샤와 어느 빛을 보았는데.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방 안에 있던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지다니.
5살짜리 아이가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이동이 아니라는 것쯤은.
‘마법? 신성력? 아… 아니면 뭐지?’
비알로는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는 단 1명뿐이었다.
정체 모를 특별한 힘에 대해 알고 있을 사람. 그리고 시샤가 어디로 갔든 끝까지 쫓아가서 찾아낼 것 같은 남자.
비알로는 급하게 말을 몰아 아르비나 저택을 빠져나왔다. 카일라인 저로 가서 둘째 공자를 만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둘째 공자는 아르비나 저 앞에 떡하니 서 있었으니.
“저… 저기!”
이아페가 비알로를 향해 몸을 돌렸다.
“…무슨 일이지?”
그가 무언가를 직감한 듯 살벌한 오라를 내뿜었다.
비알로는 순간 위축되었지만, 지금은 이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시, 시샤가 없어져서.”
“뭐?”
“분명 방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만. 어디선가 나타난 빛과 대화하더니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어요. 니니안이라는 자를 찾으러 간다고… 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아페가 뭐라 중얼거리더니 눈앞에서 사라졌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 속, 비알로의 떨림만이 일관되게 멎지 않고 계속되었다.
* * *
시샤를 아르비나 저택까지 바래다준 후에도 이아페는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그는 가만히 멀리 보이는 시샤의 방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괜찮다고 했지만, 오늘 밤은 이렇게 여기서 지새울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그녀에게 갈 수 있도록.
그가 건조한 시선으로 조용한 저택을 응시했다.
니니안 켈린, 그 여자가 시샤를 대신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경악으로 일그러진, 죄책감으로 파리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도.
그래도. 그래도 사라진 게 그녀는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단 걸 안다면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분명 실망으로 가득 채워진 시선을 보낼 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경멸을 쏟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럼에도 이아페에게 있어서는 지금 시샤가 안전하다는 사실이 너무도 중요했다.
만약 시샤가 사라진다면 어떤 기분일지… 그런 건 상상조차 하기 싫으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곧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 건 그저 기우일 뿐인가.
이아페는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떨쳐 보려 해도 낯선 불안은 안개처럼 마음속을 메웠다.
그때였다.
“저… 저기!”
익숙한 목소리에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시선 끝에 닿은 사람은 본 적이 있는 남자였다.
비알로 아르비나.
시샤와는 한구석도 닮지 않은 그녀의 양오빠.
지난번 겁을 먹고 달아나는 모습이 볼만했는데….
어째서일까.
지금 그의 눈동자는 그때보다 더욱 두려움에 가득 차 있다.
날카롭고 서늘한 감각이 목덜미를 찌르듯 스쳤다.
“…무슨 일이지?”
서슬 퍼런 안광과 함께 이아페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시, 시샤가 없어져서.”
비알로의 말을 듣자마자 이아페는 더 생각하지 않고 순간 이동으로 시샤의 방으로 들어왔다. 전에 한 번 와 본 적이 있기에 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시샤 님.”
다급한 목소리에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시샤!”
그녀는 없다.
이곳 어디에도.
이아페의 미간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바람이 지나가며 부딪히는 소리가 위잉, 작게 창을 울렸다. 젠장. 그 가느다란 소리가 그렇게 거슬릴 수 없었다.
이아페의 눈에 날카로운 안광이 맴돌았다. 그가 세게 쥔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치자 바람이 멈추었다.
이아페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비알로의 말에 의하면 시샤는 순간 이동 혹은 그에 준하는 힘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어느 한 자리 강하게 마력이 느껴지는 곳이 있었다.
방금 사용한 듯한 마력의 흔적.
아무래도 시샤의 것인 듯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그녀 스스로 이동한 건가.’
그런 것조차 알 수가 없다니.
파도처럼 밀려오는 무력감에 미칠 것만 같았다. 늘 이성적인 그임에도,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 위치 추적 마법을 쓰면…!’
그가 다급하게 시샤의 서랍을 열었다. 다양한 잡동사니, 그리고 작은 소원 인형 몇 개가 보였다.
손에 집히는 대로 소원 인형 하나를 집어 든 이아페가 주문을 외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갈라진 목소리가 멎음과 동시에 소원 인형이 나비가 되어 날아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력이 느껴졌던 그곳에 가만히 앉더니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하.”
그래, 그녀의 기척이 여기서 끊겼으니 이것으로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불과 오늘 니니안의 사례에서 확인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잊고 있었다.
너무도 급박해서. 되는지 안 되는지를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어서.
‘…안일했다.’
결국 시샤가 사라졌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지킬 수 있었는데. 기회는 충분했는데. 그녀가 거절한대도 오늘만은 끝까지 밀어붙여야 했는데.
가까이에서 지키면 될 거라니.
그따위의 안일하고 멍청한 생각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시샤를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그녀는 한번 결심하면 어떤 위험이 있다 해도, 그것이 불구덩이 속이라도 뛰어들고야 마는 사람이다.
특히 그것이 자신의 사람을 위한 일이라면 더욱.
“시샤 님….”
이아페가 서랍 속 또 다른 소원 인형을 꺼내 들었다.
시샤를 처음 만났을 즈음, 그녀는 이것이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말했지. 거짓말이었단 걸 알면서도 지금은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이아페가 소중한 것을 다루듯 인형을 두 손으로 감쌌다.
부디, 부디 시샤 님이 무사히 돌아오게 해 주세요.
이아페가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는 평생 기적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것이 너무도 절실했다.
* * *
“읍…!”
손목을 묶으며 가해지는 강한 압박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손길이 사라지자마자 뒤를 팩 돌아보았다.
“……!”
내 눈앞에는 검은 로브를 입은 자들 3명이 서 있었다. 그럼 날 납치한 게 검은 로브라는 거야?
“귀하게 다뤄 드리라 했거늘.”
“죄송합니다, 위드 님.”
“이 아이들이 몸을 쓰는 것에는 영 재능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아까 그 빛에서 나온 목소리.
위드라 불린 가운데에 선 로브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자, 양옆에 선 로브들도 고개를 숙였다.
“읍, 으읍!”
“저런.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우선… 아, 그래. 니니안 켈린 님은 무사하시니 안심하십시오.”
정말인가? 그들을 노려보자, 위드가 걱정 말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쪽으로.”
그가 길을 안내하듯 앞장을 섰다. 내가 가만히 선 채 바라보고만 있자, 그가 이쪽을 보며 말했다.
“얌전히 따라오신다면 만나실 수 있습니다.”
“…….”
여기에 서 있어 봤자 다른 길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내 뒤로는 나머지 두 로브가 따라왔다.
이곳이 릴리가 말한 그 지하인가? 창문 하나 없이 어두운 복도는 벽면에 간헐적으로 매달린 등불만이 유일한 빛이 되어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검은 로브가….’
수십 명의 검은 로브들이 크게 원을 그리고 서 있었다.
그들이 둘러싼 커다란 원 가운데에는 협탁이 있었다. 협탁 위에는 투명하게 빛나는 잔이 놓여 있었고.
나는 미간을 좁혔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로브들이 나를 이끌고 협탁으로 나아갔다. 위드가 잔을 들어 올려 내게 건넸다.
“재갈은 풀어 드리겠습니다. 드십시오.”
먹으라고 하면 곱게 받아먹을 줄 아는 건가?
그를 노려보자, 위드가 약간 쓸쓸한 목소리로 손을 내렸다.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당신을 해치고자 데려온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귀하신 분, 당신의 힘으로 세상을 더 좋게 만들려는 겁니다.”
내 힘이라면, 마법을 말하는 건가?
나는 미동 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잠시간 내 행동을 기다리듯 눈을 끔뻑이던 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와.”
그의 말에 다른 로브가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규칙적인 발소리가 들렸다.
“이, 이거 놔요!”
살짝 높으면서도 맑은 목소리. 익숙한 음성의 여자가 이윽고 모습을 드러냈다.
니니안이었다.
“으으!”
“시샤 님…?”
니니안은 로브에게 잡힌 팔을 뿌리치려다 나를 보고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군가 자신을 구하러 왔다는 안도와 희망은 내가 단단히 묶인 채라는 걸 깨달은 순간 두려움과 혼란으로 바뀌었다.
“시, 시샤 님이 왜 여기에… 저도 모자라서 저분까지 잡아 온 거예요? 저분은 풀어 줘요!”
호기롭게 요구했지만 니니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니니안의 입을 막지 않았다는 건…’
필시 과시하기 위함이다.
마법을 써 봤자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니니안이 탈출을 위해 마법을 쓰지 않았을 리 없다.
보통의 상대라면 마법으로 제압할 수 있겠지만, 이자들은 검은 로브들. 정체 모를 힘을 쓰는 자들이니.
유일한 방법은 니니안이 순간 이동을 써서 탈출하는 거겠지만….
‘순간 이동 마법은 익히기가 꽤나 힘들어. 자칫하면 몸의 일부가 잘릴 수도 있어.’
그래서 지금 쓸 수 있는 건 나와 이아페뿐이었고.
“이것을 직접 드시면 평화롭게 집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 여자는 지금 죽습니다.”
위드가 씨익 웃었다.
거짓말이 아니라고 주장하듯, 니니안의 팔을 잡고 있던 이가 다른 쪽 손에 든 칼을 니니안의 목에 가져다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