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95
@95. 그저 그녀가 보고 싶었다
이아페가 희망과 절망의 기로에서 다급히 물음을 던졌다.
“찾았나?”
라온이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아페의 표정에 스쳤던 기대가 급격히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그 결과로 보이는 감정은 실망이나 노여움이 아니었다.
너무도 냉담하고 차가워서, 자칫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 음성이 입술 새로 빠져나갔다.
“단서는?”
“…없습니다.”
“찾을 때까진 내 눈에 띄지 마.”
소름이 끼칠 만큼 낮은 목소리. 이아페에게서 흘러나오는 냉기에 라온이 몸을 움찔했다.
하지만 라온은 이아페의 보좌관이었다. 눈앞의 노여움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한 상황의 위태로움을 더 크게 받아들여야 했다.
‘이아페 님은 벌써 거의 이틀을 꼬박 새웠어.’
다른 이들은 조금씩 눈이라도 붙였지만 이아페는 아니었다.
그는 일분일초가 아까워서 잠을 자지도, 밥을 먹지도 않은 채 그저 시샤를 찾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더구나 마력까지 전부 쏟아 버릴 기세로 사용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몸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쓰러지고 말 것이다.
“조금 쉬셔야 합니다.”
이아페가 라온의 말을 무시한 채 돌아서서 걸었다. 라온이 그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만하십시오. 이렇게 계속 찾는 건 무리예요. 그러니 잠깐이라도… 윽.”
파앗. 이아페가 쏟아 낸 마력에 라온이 뒤로 밀려나 넘어졌다.
고통스럽게 미간을 찌푸린 라온을 이아페가 내려다보았다.
“내 말이 우스운가?”
“…이아페 님.”
지금 그는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맹렬한 좌절감과 자괴감, 분노가 뭉쳐서 차갑게 타오르는 불 같았다.
“그분과 관계된 것이 아니면 어떠한 용건도 받지 않는다 했을 텐데.”
단호한 음성은 위압감이 느껴지다 못해 음산하기까지 했다.
이아페가 돌아섰다.
라온은 염려 어린 눈으로 이아페의 뒷모습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어.’
이아페는 시샤가 갈 만한 곳이 어디인지를 다시 생각했다.
적어도 이 수도에서는 더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그렇다면….
「순간 이동.」
이아페가 망설임 없이 어딘가로 향했다.
비틀대며 발을 내디딘 동시에 아찔한 통증이 올라 왔다. 이아페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 주저앉은 채 손으로 땅을 짚었다.
“헉… 허억….”
가쁜 숨을 내쉬었다. 한도 이상의 마력을 쓴 몸이 마구 비명을 질러 댔다.
숨을 고른 이아페는 힘겹게 일어서며 주변을 살폈다.
어둠 속이지만 익숙한 숙소 건물의 외벽, 그리고 수도와는 확연히 다른 차가운 공기.
아무래도 맞게 온 것 같았다.
휙, 시린 바람이 몸을 관통했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거, 거기 누구시오?”
건물 뒤편에 있는 것은 이아페 혼자가 아니었다. 숄을 걸친 중년의 여자가 램프를 들고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아! 낯이 익더라니. 지난번 폐하와 함께 오신 분이군.”
여자가 눈에 띄게 살가워진 목소리로 이아페를 반겼다.
‘저 여인은 분명… 이곳의 원로.’
마법을 처음 공개적으로 사용했던, 꽃이 피지 않던 데슬로 지역. 그곳의 대표로서 황제를 맞이했던 원로였다.
“여름 끝나가는 와중에 휴가라도 오신 겁니까?”
“그날 폐하와 함께 왔던 이들 중에 오늘 여기에 온 이가 또 있는가?”
자신을 알아본다면 다른 단원들, 그리고 시샤도 기억하고 있을 터다. 이아페는 미약한 희망을 안고 물었다.
그러나 여인은 음, 하고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참, 그보다 이미 보셨겠지만….”
원로가 어딘가로 걸어가며 손짓했다. 하지만 시샤의 행방을 모른다면 더는 볼일이 없었다.
이아페가 몸을 돌렸다.
“이보십시오!”
원로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아페는 자리를 떴다.
이아페는 그때의 광장을, 그녀와 갔던 숲을 돌아보았다. 그녀를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다.
“시샤 님!”
밤의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렇기에 기척이 더욱 잘 느껴져서, 주변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하나하나에 이아페는 반응했다.
그때, 저 멀리 걸어가는 여인이 보였다. 분명 시샤였다.
“시샤 님…?”
드디어. 드디어 그녀를 찾은 것이다.
이아페는 쓰러질 듯 그녀에게로 뛰어갔다.
“시샤 님.”
하지만 발을 내디딜 때마다 저릿한 통증이 찾아오는 몸으로 그녀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았다.
“시샤 님, 제발.”
이아페가 애원하듯 말했다. 하지만 시샤는 멈추지 않았다.
드디어 당신을 만났는데.
왜 나를 피하는 거지?
이아페가 짙은 시선으로 시샤를 옭아매듯 바라보았다.
「죽어도 못 보내.」
포박 마법에 시샤가 걸음을 멈추었다.
이아페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결국 시샤에게 마법을 사용했다.
언젠가 이 주문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때도 그녀에게 이 주문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는데.
자신을 미워할까 봐.
잡으면 빠져나가려 몸부림칠까 봐.
그러다 그녀가 다칠까 봐.
“시샤 님.”
이아페가 천천히 시샤에게로 걸어갔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런데 다른 쪽에서 한 남자가 시샤에게로 뛰어왔다. 그는 이아페보다 먼저 시샤에게로 당도했다.
“델리아, 왜 그래? 괜찮아?”
델리아? 미간을 찌푸린 이아페가 발걸음을 멈췄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어지러움을 떨쳐 내듯 이아페가 고개를 저었다.
그가 다시 시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건….
‘시샤가 아냐.’
시샤라고 착각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만큼 다른 여자였다. 얼굴도, 키도, 머리 색깔마저도.
이아페가 멍하니 눈앞의 여자와 남자를 바라봤다. 여전히 굳어 있는 여자와 걱정과 당혹이 가득한 표정으로 여자를 끌어안는 남자.
“…….”
이아페가 몸을 돌렸다.
시샤가 아니라면 상관없었다.
강도를 약하게 사용했다. 풀어 주지 않아도 머지않아 마법은 풀릴 것이고,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어서 시샤가 갔을 만한 다른 곳을 생각….
〈웬만한 일이 아니면 사람을 상대로 절대 마법을 쓰지 않는 걸로 해요! 우리는 그런 책임감을 가져야 해요. 알았죠?〉
문득 시샤의 말이 머릿속을 울렸다.
이아페가 발걸음을 멈췄다.
어느새 시샤는 그의 아주 깊은 무의식까지 침투해, 자신을 조종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아페는 그것을 거부할 수 없다. 그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만다.
「보내.」
이아페가 나직하게 말하자 여인이 움직였다. 다시 한번 사용한 마법의 반동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미안합니다. 사람을… 착각했습니다.”
이아페가 사과를 뱉었다. 그들은 이상한 사람을 보듯 이아페를 힐끗 보고는 다시 갈 길을 갔다.
아마 마법 때문에 움직이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도 못 하는 것 같았다.
“시샤….”
이아페의 목소리가 절망으로 물들었다. 아무리 부르고, 부르고, 또 불러도 시샤는 대답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가 어떤 일을 겪고 있을지 모르는데.’
밤이 너무나도 차가웠다. 무지에서 온 공포는 괴물의 형상을 하고 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어, 광장에 계셨네. 이걸 보고 계셨구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원로였다.
귀찮게 하는군. 화가 치밀었다.
이아페가 짜증이 가득 담긴 눈초리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
원로는 광장 중앙의 나무에 램프를 가져가 비추고 있었다.
그날, 꽃을 피웠던 나무.
밝은 달 아래라 얼핏 보이는 색이 붉었다. 그제야 이곳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흙밖에 없었던 곳은 잔디가 가득했고, 중앙의 커다란 나무 앞에는 더 이상 하얀 손수건이 없었다.
그리고 중앙의 나무에는 단풍이 들어 있었다.
여름 끝자락, 이른 단풍이었다.
“꽃은… 떨어졌군.”
만개했던 하얀 꽃은 없다.
꽃을 피워 달라 했던 마을인데, 꽃은 이미 끝난 지 오래인 것 같아 보인다.
“하하, 당연히 떨어졌지요. 자연스러운 이치잖습니까.”
다소 심각하게 나무를 바라보는 이아페를 향해 원로가 푸근한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은가? 꽃이 떨어졌는데도.”
“피었던 꽃은 떨어지고, 푸르러졌다가, 이제는 붉은 단풍으로 물들어 가고 있지요. 그리고 내년에도 필 겁니다. 그런 예감이 들어요. 나무에 전에 없던 생기가 돌거든요.”
이아페는 말없이 나무를 응시했다.
‘내년에도 필지는 모른다. 이 나무의 주기 자체가 정상적으로 돌아갈지는 확신할 수 없어.’
어쩌면 그럼 다시 이 지역은 그때처럼 하얀 손수건을 무덤처럼 쌓을지 모르겠다.
그럼 시샤는… 슬퍼하려나.
“설령 피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원로의 목소리가 이아페의 상념을 깨웠다. 이아페가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원로가 반짝이는 눈으로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보여 주셨던 꽃의 기억을 꺼내 보고 또 꺼내 보며 몇 번의 봄을 더 보낼 수 있을 테니.”
“…….”
“고맙습니다. 그때 제대로 인사를 못 한 것 같아서… 다른 분들한테도 전해 주세요. 특히 보라색 머리를 한 아가씨. 아직도 기억나요. 자기 일처럼 기뻐하던 모습이.”
원로가 허허, 하고 웃었다.
“그럼 편히 쉬다 가십시오.”
원로가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이아페는 발이 땅에 못 박힌 듯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상했다.
이아페에게 있어, 데슬로에 꽃을 피운 것은 그저 과정에 불과했다.
마법의 인정을 공표하기 전 밟아야 할 하나의 계단. 그뿐이었다.
이곳에 꽃이 피든 말든, 그의 알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저 나무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미소 짓는 원로를 본 순간, 자신이 한 일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시샤가 건 마법은 비단 이 나무에만 꽃을 피운 것이 아니었다. 저들의 마음에까지 확실하고 착실하게 영향을 미쳤다.
그런 생각이 들자, 지금 시샤가 없다는 사실이 더욱 강렬하고 적나라하게 실감이 났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길을 잃은 것 같았다. 방향조차 알 수 없는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듯 외로웠다. 숨이 막혔다. 그리고….
무서웠다.
“시샤 님….”
이아페가 나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녀가 돌아온다면 절대로 혼자 두지 않으리라. 이러한 위험에 다시는 노출되게 하지 않으리라.
“그러니까 제발 돌아와, 시샤….”
이아페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한 그였으나, 지금은 참을 수가 없었다.
우수수,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두려움이 무너지듯 터졌다. 그는 아이처럼 시샤의 이름을 불렀다.
“시샤, 시샤….”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