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96
@96. 저 여기에 있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북부에서 순간 이동으로 도서관에 들어온 이아페가 말없이 책을 뒤졌다.
기약 없이 시샤를 찾다가는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다른 단서가 필요하다. 어쩌면 도서관을 뒤지면 다른 유형의 추적 마법 주문이 있을지 모른다.
‘…이것도 아니군.’
몇 권의 주문서를 뒤졌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힘든 상태였으나, 그는 몸이 부서지더라도 시샤를 찾기 전까지는 멈출 수가 없었다.
팔랑.
책장을 넘기던 이아페가 불현듯 손을 멈추었다.
주문서에 끼워진 쪽지 한 장이 떨어졌다.
“이건….”
이아페가 종이를 주워 들었다. 시샤의 필체로 무언가 적혀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이아페의 눈에, 가느다란 희망이 다시 감돌았다.
* * *
달빛 아래, 언덕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내 곁으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밤이 차. 또 그 사람을 기다리는 거야?」〉
어깨 위로 담요가 덮였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밝은 머리의 남자는 지난번 꿈에서 본 남자였다.
히아스. 분명 그렇게 불렀었지.
아이론과 잘 알고 있던 사이의 남자. 그런데 왜 나한테 말을 거는 거지?
〈「네가 보기에도 내가 바보 같지?」〉
내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히아스가 왜 그런 생각을 하냐는 듯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저 네가 상처받지 않길 바랄 뿐이야, 아이론.」〉
아이론? 아무래도 이번 꿈에서 나는 아이론 역할을 맡은 모양이다.
〈「히아스. 내가 왜 라카루스를 좋아하는지 알아?」〉
〈「…글쎄.」〉
히아스가 쓸쓸히 미소 지으며 내 옆에 앉았다.
〈「한참을 떨어져 있다가도 막상 만나면 마치 어제 본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거든. 그 시간이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영원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그를 기다리는 시간은 거짓이고, 함께하는 시간만이 진실인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꿈에 부푼 듯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나왔다. 아, 나는, 아이론은 지금 사랑에 빠져 있구나.
히아스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며 가라앉은 목소리를 뱉었다.
〈「곧 전쟁이 일어날지도 몰라. 그럼….」〉
〈「그만. 이미 알고 있어, 히아스. 하지만… 아닐 수도 있잖아. 다 같이 행복할 수도 있는 거잖아.」〉
가슴에서 설움이 울컥 차올랐다. 나도 모르게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이론.」〉
히아스가 몸을 숙여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아 보였겠지. 나는 손을 내리고 애써 미소 지었다.
〈「미안해. 역시 바보 같지?」〉
〈「아니, 하나도 바보 같지 않아. 마음을 더럽히지 마. 네 마음을 더 소중하게 여겨 줘.」〉
그의 진심이 위로가 되어 마음을 채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되어 줄 것만 같은 친구. 나 또한 어떤 일이 있어도 그의 편이 되리라.
〈「널 위한 주문을 만들어 줄게.」〉
〈「정말?」〉
〈「응. 헤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줘.」〉
환하게 웃는 나를 히아스가 따라 웃었다. 그가 뭐라 더 말을 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눈을 끔뻑끔뻑 감았다 뜨는 동안 별똥별이 느리게 떨어졌다.
그리고….
* * *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주위를 바라보았다.
“여긴… 내 방이네.”
술이라도 마셨었나? 왜 침대에서 안 자고 방바닥에서 자고 있는 거야. 불도 켜 놓고 말이야.
그때였다.
“아, 아아….”
불현듯 뒤에서 쥐어짜 낸 듯한 신음과 함께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딪히고, 무언가를 떨어뜨리면서도 정신없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그런 소리.
“누구…!”
나는 반사적으로 뒤를 확 돌아보았다.
“…이아페?”
한달음에 내게로 달려온 이아페가 내 앞에 거의 쓰러지듯 털썩 꿇어앉았다.
“괜찮습니까? 어디 아프, 아프거나, 아니, 다친 데는 없어요?”
그가 거친 숨을 내쉬며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빠르게 살폈다.
어째서인지 무척이나 놀란 것 같았다. 말까지 더듬을 정도로.
놀라울 정도로 핏기 없는 얼굴에 오직 눈가만이 붉었다. 그의 눈동자는 늘 고요해서 바다 같았으나 오늘만은 달랐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여유 하나 없이 흔들렸다.
“나 괜찮아요, 이아페.”
“정말입니까?”
“네. 봐요, 아무렇지도 않….”
이아페가 내 어깨 뒤로 팔을 뻗었다. 강한 힘으로 몸이 앞으로 쏠렸다.
와락, 이아페가 나를 끌어안았다.
은은한 나무 향이 오늘은 조금 더 강하게 코끝을 간질였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그가 나를 안은 채 혼잣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뿌리치지 못했다.
품에 안기기 전 마주친 그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기에.
“왜 그래요, 이아페?”
그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나를 안은 팔을 더욱 단단하게 조이며, 머리를 내 어깨에 묻었다.
부드러운 검은 머리칼이 뺨을 간질였다. 이상하게도 그가 너무 슬퍼 보여서, 나는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샤 님.”
그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네, 이아페.”
“시샤 님.”
“네, 저 여기 있어요.”
뭐가 불안한 건지 이아페가 계속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불안을 없애 줘야 할 것 같아서 나는 계속 대답했고.
“시샤. 시샤….”
“이아페, 무슨 일이에요?”
“정말 돌아온 겁니까? 대체 어디에 있던 겁니까.”
이아페는 내가 달아나기라도 할 것처럼 단단히 나를 옥죄었다.
“어디 갔었냐니… 여긴 제 방이잖아요?”
이아페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방에 어떻게 돌아왔더라?
어제 로디스 가에 뭔가를 알아보러 갔었는데. 흐음, 왜 갔더라.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갔던가?
그 뒤에는….
뭔가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얌전히 방에 있었던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귓가에 울리는 이아페의 목소리가 서늘했다.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화가 난 것 같았다.
이아페에게서 몸을 떼어 냈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의 눈에 스친 분노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대신 다른 감정이 담긴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것은 얼핏 애틋한 것 같기도, 무언가를 애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왜 그래요? 나 자는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요?”
이아페의 눈에 혼란이 스쳤다. 그가 잠시 대답 없이 날 뚫어지게 응시했다.
“니니안 켈린, 그 여자는 찾으셨습니까?”
니니안? 니니안은 갑자기 왜….
“아! 니니안! 니니안을 찾아야죠.”
그러고 보니 니니안을 찾고 있었잖아.
지금 이렇게 천하태평으로 잠을 자고 있을 때가 아닌데!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갑자기 이아페와 내 구슬이 동시에 울렸다. 가방에 든 구슬을 꺼내 들자 라온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 니니안을 찾았어요! 다친 곳 없이 무사해요.
“정말이에요? 다행이다….”
– 단장님? 역시 단장님도 돌아오셨군요!
– 야, 다행이다! 내가 진짜 얼마나….
– 다행이에요, 니니안, 아르비나 님!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단원들도 이상한 말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먼저.
“니니안도 거기 있어요?”
– 시샤 님!
니니안의 목소리다.
“니니안! 괜찮아요?”
– 네, 멀쩡해요! 눈을 뜨니 집이어서… 라온이 쓰러졌던 게 기억나서 연락을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없어졌었다니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니니안은 본인이 없어졌을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일단은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어디에 있던 건지는 찬찬히 돌이켜 보면 될 테지.
“후, 정말 다행이에요.”
구슬 통신을 끄고 이아페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이아페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니니안은… 자신이 납치된 걸 모르는 눈치였지.’
설마….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이아페에게 질문했다.
“이아페. 혹시 내가 없어졌었어요?”
* * *
“이아페. 혹시 내가 없어졌었어요?”
동그랗게 뜨인 시샤의 눈에는 불안과 의문이 가득했다.
이아페는 흔들리는 시선으로 시샤를 바라보았다. 그가 조심스럽게 시샤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차가운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겁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시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아페의 속에서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그녀가 하루 동안이나 사라져 있었는데. 대체 어디에서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 수가 없다니.
“언제 사라진 거예요?”
“…어젯밤에 집으로 귀가하신 후 바로 사라지셨습니다. 어디에 있다 오신 건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구나. 이상하죠. 나도 떠올리고 싶은데 머리가 띵한 게 생각이 안 나요. 계속 자고 있었나?”
시샤의 목소리는 밝았다. 하지만 시선은 술렁이는 채였다. 불안감을 감추려고 일부러 목소리를 꾸며낸 것을 알아서, 이아페는 마음이 아팠다.
“괜찮습니다. 무리하지 말아요. 곧 기억날 테니.”
물론 이아페도 그녀가 빨리 기억을 떠올렸으면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알 수 없으니 미칠 듯이 불안했다.
하지만 다그친다고 되살아날 기억도 아니었다. 지금은 그녀의 조마조마한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이아페가 다시 한번 시샤의 얼굴을 살폈다.
“아픈 곳은 없습니까?”
“네, 괜찮아요.”
“찬찬히 확인해 봐요, 조금이라도 불편한 곳이 없는지. 혹시 몰라 의원을 미리 불러 두었습니다. 아니면 르디엘을 불러올까요? 제가 직접 살펴 드리고 싶지만 알려 주셨던 치유 마법은 아직 미숙해서….”
“정말 괜찮아요. 음, 굳이 찾자면 입이 조금 뻐근한 것 같기도….”
시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아페가 걱정스레 그녀의 입술을 매만졌다. 조금 벌어졌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이아페가 시선을 들어 올리자 그녀가 황급히 이아페의 눈을 피하며 그의 손을 끌어 내렸다.
“아픕니까?”
“아니에요. 하나도 안 아파요.”
“그럼 왜.”
시샤가 입술을 쭈뼛댔다. 역시 뭔가 불편한 게 있는 걸까. 이아페가 심각한 표정으로 시샤의 얼굴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