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97
@97. 오늘은 같이 있어요
“정말 괜찮은 것 맞습니까? 상처는 없어 보이는데. 몸은, 등이나 다리는 어떤지 봐요.”
“예? 여기서요?”
시샤가 잘못 들었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이아페는 시샤가 제 말을 오해했다는 걸 알고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당신이 확인해 보라는 뜻입니다. 멍이나 작은 상처 같은 건 없는지.”
“아, 네. 당연히 저도 그렇게 알아들었죠, 하하하.”
아무래도 오해한 게 분명한 시샤가 괜히 크게 웃었다. 그 웃음을 들으니 정말로 그녀가 돌아온 게 실감이 나서, 이아페는 안도로 온몸이 축 늘어질 것 같았다.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시샤.”
이아페의 숨이 조금 떨렸다.
다행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시샤가 사라졌을 때 이미 그의 세상은 한 번 무너졌다.
그리고 돌아온 그녀는 절망과 어둠으로 가득 찬 그의 세상을 너무도 쉽게 재건하고 있었다.
그의 손이 시샤의 뺨을 다시 머금었다.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이아페의 입에서, 미처 막을 새도 없이 한 마디가 새어 나갔다.
“보고 싶었어요. 버티기 힘들 만큼.”
시샤의 눈동자가 커졌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자신을 피하지 말라고, 예전처럼 대하라고 했지만 여기까지 허락한 건 아니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말을 시샤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미처 표현할 수조차 없는 이 커다란 마음을 시샤가 밀어낸다 해도.
이아페는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당신이 없는 세상은 너무 어둡고 추웠습니다. 혼자 남겨진 듯 막막하고 두려웠어요. 당신이 사라진 순간, 제 시간도 끝나버린 것 같았습니다.”
“…….”
“내겐 당신이 전부예요, 시샤.”
“이아페, 그게 무슨….”
그때였다. 밖에서 쿵쾅대는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이쪽으로 가까워지자 시샤가 그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닫혀라, 참깨.」
이아페는 본인에게만 들릴 만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달칵, 달칵.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문이 열리지 않았기에, 달칵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뭐야, 왜 안 열리는 거지? 시샤? 너 여기 있니?”
“비알로?”
이아페가 시샤의 얼굴을 부드럽게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가지 마요, 시샤.”
그녀가 저 문을 나서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손에 닿은 시샤의 온기가 거짓말 같아서, 이아페는 여전히 외줄을 타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같이 있어요.”
이아페의 눈이 절박하게 떨렸다. 시샤가 자신을 거절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헌신짝처럼 내버린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를 미친놈이라 욕해도 괜찮았다.
시샤가 위험하지만 않다면, 그녀에게 미움을 받아도 좋았다.
“이아페….”
시샤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이아페를 바라봤다.
그는 많이 지쳐 보였다. 설마 어젯밤부터 계속 자신을 찾아다닌 걸까.
“나 괜찮아요. 안 그래도 돼요.”
“허락해 주세요, 시샤 님.”
“지쳤을 텐데 잠은 집에서 자야죠.”
“너무 지쳐서 집에 못 돌아가겠어요.”
“그렇게 말해도….”
다시 한번 거절을 뱉으려던 시샤가 말을 멈추었다. 이아페의 표정이 어쩐지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시샤가 이아페의 양손을 끌어와 감싼 채 그의 얼굴을 살폈다.
“나 여기에 있어요, 이아페.”
“모르겠습니다. 어제도, 내가 그렇게 근처에 있었는데 당신이 사라져서….”
이아페가 일그러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지금도 꿈일까 봐,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당신이 사라져버릴까 봐. 그러니 제발요, 시샤.”
이아페가 애원하듯 말했다.
밖에서는 쿵쿵대는 소리와 함께 비알로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었다.
결국 시샤는 허락을 뱉었다.
“알았어요. 같이 있을게요.”
“정말입니까?”
그의 눈이 희망으로 부풀었다. 시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들한테 들키면 분명히 쫓겨날 거예요. 그러니까 일단.”
그녀가 이아페를 드레스룸으로 데려갔다.
“잠깐 여기 있어요. 저 돌아왔다고 가족들한테 말하고 올 테니까.”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려던 시샤가 멈칫했다. 그녀의 옷자락을 이아페가 잡고 있었기에.
“아….”
이아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이번에는 저도 모르게 그녀를 잡고 말았다.
7살 아이 같다고 생각할까. 오늘 이곳에 있는 것을 허락했다고 해서 너무 질척인다고 싫어할까.
그의 손이 불에 덴 듯 시샤의 치맛자락을 놓았다.
하지만 그것이 허공에 뜬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내 다른 안식처를 찾았기에.
시샤가 그의 손을 잡았다.
“걱정 마요. 괜찮아요. 어떤 멍청이가 저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납치를 하겠어요?”
시샤가 코를 찡긋하더니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것에 마음이 녹아내려서, 이아페도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녀올게요.”
시샤가 방을 나갔다.
그제야 이아페의 눈에 주변이 들어왔다. 그가 지금 시샤의 방 안, 드레스룸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옷들.
좋아하는 것인지 몇 번이고 하고 왔던 귀걸이.
손가방 대신 드레스에 매달아 들고 다니는 각양각색의 주머니.
그중 웬 누런 기가 도는 머리 끈을 볼 때는 어쩐지 기분이 나빠졌다.
‘이것만큼은 시샤 님과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시샤에게 안 어울리는 것이 있을 리가 없는데 왜 그렇게 느낀 것인지 모를 일이다.
어찌 됐든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금 이 방에 있다는 것.
이아페가 눈을 감았다.
‘시샤 님의 냄새.’
그녀에게서는 6월의 여름 햇살 같은 향기가 났다. 달콤하면서도 은은한 바람을 품은 듯한 향.
그 향기가 이 방에도 배어 있다.
어쩐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아페가 주머니에 접어서 넣어 둔 작은 메모지를 꺼냈다.
시샤가 적어 둔 것. 이것으로 그녀를 다시 데려올 수 있었다.
그가 그것을 소중히 감싼 양손을 얼굴 앞에 기도하듯 모았다.
안도 가득한 숨소리가 방을 채웠다.
* * *
“아버지, 이제 그만 놓아주세요.”
“흑, 나는 지금 수혈 중이란 말이다. 내 피를 말려 죽일 셈이냐!”
“그러니까 절 이불에 돌돌 싸서 안고 차를 먹여 주시는 게 왜 수혈인지 모르겠어요….”
아버지의 방. 마치 병자를 대하듯 따뜻하게 데운 차를 스푼으로 떠먹여 주던 아버지가 손을 멈췄다.
그는 정말 모르냐는 듯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애 쪄 죽겠다. 이리 와, 테드릭.”
“티오라!”
“어서.”
“힝.”
아버지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사이 나는 꼼지락꼼지락, 드디어 이불에서 탈출했다.
“후우.”
“시샤.”
탈출에 성공해 한숨을 돌리는데 어머니가 한 발짝 다가왔다. 그녀가 침대맡에 앉아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씁쓸한 미소를 띤 어머니가 내 한쪽 손을 가져가 제 손 위에 올리고 쓰다듬었다.
“정말 다친 데는 없지?”
걱정이 가득한 눈동자.
평소 냉철한 성격의 어머니였기에 낯선 모습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가슴속에서부터 짠한 고통이 전신으로 퍼졌다.
“정말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나는 공연히 크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행이구나. 아, 카일라인 공자에게도 널 찾은 걸 전해 줘야겠지. 비알로, 아까 정원에서 보았다고 했던가?”
“그랬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답니다, 어머니. 너무나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시더라고요.”
아니, 걔는 지금 내 방에 있는데? 뒷골이 뜨끔해서 잠시 표정 관리를 못 할 뻔했다.
“그럼 공작저로 연통을 넣어야겠군. 시샤 너도 나중에 감사 인사를 전하거라.”
“이아페… 둘째 공자님이 그렇게 열심히 저를 찾았어요?”
“그래. 온종일 쉬지 않고 찾았을 거다. 나타날 때마다 얼굴이 허여멀겋게 되어서는. 이러다 죽는 것 아닌가 싶었다.”
문득 아까 날 향해 달려오던 이아페의 핏기 없는 얼굴이 떠올랐다.
‘많이 걱정했구나….’
밤을 새우고, 다시 밤이 올 때까지 나를 찾은 이아페.
아직도 내가 걱정되어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이아페.
그런 그가 빨리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겐 당신이 전부예요, 시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물어봐야겠어.
“이제 방으로 돌아갈게요.”
“아, 참. 시샤. 좋은 생각이 있어.”
비알로가 웬일로 손을 뻗어 나를 침대에서 일으켜 주었다. 그러면서 다소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네 방은 폐쇄하는 게 좋겠어. 옮긴 방 안에는 코너마다 호위를 두자. 기사단의 우락부락한 이들을 뽑아서….”
“미쳤어? 방 안에 우락부락 기사님들을 들이라고?”
“그것은 안 될 일이다!”
다행히도 아버지가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시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긴 하니… 방 밖을 지키는 호위는 둬야겠군. 안에서는 리나와 함께 있거라.”
“네? 안 돼요!”
다소 과장된 사양에 비알로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이아페를 돌려보내야 하잖아! 뭐라고 핑계를 대야…’
그때 비알로의 눈 아래로 짙게 드리운 다크서클이 보였다. 다행이다! 저걸 보니 핑곗거리가 생각난다.
“잘 때 인기척이 느껴지면 잠을 못 자겠거든요.”
“잘 수 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란다.”
핑계 대기에 실패했다.
“저는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아버지! 아, 참! 일단 옷을 좀 가져와야겠네!”
“어어, 시샤!”
나는 서둘러 방으로 달려갔다. 이아페에게 방이 바뀔 거라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안 돼. 리나, 어서 따라가거라!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은 징조라도 보이면 바로 날 부르거라.”
하지만 아버지의 불호령에 결국 리나도 나를 쪼르르 따라오고 말았다.
“헉헉… 아가씨, 왜 뛰세요… 그보다 정말… 정말 괜찮으신 거죠? 진짜 제가 아가씨 때문에 제 명에 못 살겠어요….”
“에이, 미안해, 리나아.”
“한겨울에 물놀이까지는 이해했는데, 갑자기 뛰다가 쓰러지시지를 않나, 갑자기 마법사라고 하시지를 않나! 이번엔 없어지시기까지 하시다뇨.”
역시 내 업적을 읊어 주는 리나의 능력은 아주 탁월했다. 그녀는 평소 해야 할 말만 하는 편이었으나, 감정이 격해지면 이렇게 말이 많아지곤 했다.
“그럼… 잠옷을 꺼내 올게요, 아가씨.”
리나가 드레스룸 쪽으로 걸어갔다.
잠깐만, 거기는 이아페가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