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0)
제10화
10화
일단락의 소동이 마무리되었다.
쥬페토는 제론이 서고에서 어느 책을 보고 낙서를 하다가 정령이 소환되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사실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4살짜리 아이가 우연히 책을 보다가 낙서를 했고, 운이 좋게 정령이 소환되었다고?’
말도 안 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소문으로 접했다면 헛소리로 치부했겠지만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하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재? 아니, 이걸 고작 천재라고 표현할 수 있는 걸까?’
어린아이가 혼자서 마나를 느껴 마탑의 초빙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실제로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이 되지 않아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보니 잔뜩 부풀려진 것이 아닐까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했다.
쥬페토는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제론의 시선을 눈치채고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시 한번 보여주겠니?”
“아, 음. 네로 말하는 거죠?”
제론이 살짝 난처하게 웃으며 어둠의 정령-네로를 쳐다봤다.
어깨 위에 올라간 뒤로 녀석은 한 발자국도 내려오지 않았다.
녀석은 고양이를 닮아서 그런지 행동도 똑같았다.
제 몸을 그루밍하다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발견하면 앞발로 툭툭 치기도 하고, 식빵 자세로 앉아 눈동자만 좌우로 돌리며 제론의 가족을 쳐다보기도 했다.
지금은 눈을 감고 까끌까끌해 보이는 혀로 제 발을 핥짝이다가 네로라는 호칭에 고양이(?)처럼 눈을 뜨고 꼬리로 제론의 뒤통수를 탁- 탁- 쳤다.
정령과 계약을 하면 계약자 한정으로 물리적인 접촉이 가능하다고 책에 써져 있었는데, 반대의 경우도 가능한 모양이었다.
[위대한 어둠의 정령인 이 몸에게 감히 네로라고?]‘시꺼, 인마.’
제론은 뒤통수를 치는 네로의 꼬리를 확 잡아채고 목덜미를 제압했다. 고양이의 특성을 그대로 가진 녀석은 눈만 동그랗게 뜬 채 행동을 멈췄고, 순순히 제론의 무릎 위로 옮겨졌다.
네로를 실체화시키자 정령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도 녀석이 보이게 되었다. 네로는 관심을 받자 불쾌한 듯 꼬리로 제론의 무릎을 탁탁- 쳤지만 몸은 솔직했는지 골골송을 부른다.
“으음. 귀엽군.”
[하찮은 인간이, 감히 뭐라고?]쥬페토가 네로의 모습을 보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네로는 발끈해서 뭐라고 했지만 제론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였다.
‘그 책의 저자가 아주 허세만 떨던 것은 아니었나 보네.’
제론은 네로의 목덜미를 살살 만졌다.
녀석이 금세 골골송을 불렀다.
저자를 알지 못하는 책에는 정령과 관계된 내용 외에도 몇 가지 지식이 더 적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세상이 여러 개의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제론이 살아가는 이 땅을 현실계라고 말했고, 정령이 살아가는 공간을 정령계라고 지칭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차원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정확한 명칭이나 설명을 언급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령과의 계약 방법을 써넣으려다 보니 일부러 뺀 모양이었다.
아무튼, 정령계가 아닌 현실계에서 살아가는 정령은 여러 가지 제약을 갖게 되는데, 정령의 축복을 받은 존재가 아니라면 그들을 보거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 그 꼬마 유령 모습을 한 정령들이 놀랐던 거였고.’
제론은 정령의 축복을 받은 인간이 아니었다.
이 부분은 네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자신을 소환했냐는 질문에 모른다고밖에 대답하지 못했는데, 사실 제론은 한 가지 추측되는 것이 있기는 했다.
바로 백회혈이었다.
무림에서 백회혈이란 상단전을 열기 위해 뚫어야 하는 혈도이자, 대자연과 하나로 이어지기 위해 사용되는 통로였다.
무림에도 이매망량-요괴나 괴물, 귀신에 가까운 존재-이라 불리는 것들이 존재했는데, 아주 오래전 술법가라는 족속들이 백회혈을 통해 기운을 받아들여 술법을 펼치고 퇴마 혹은 호신의 부적을 만든다고 들었다.
시간이 흘러 술법이 퇴화하고 무공이 주를 이루며 백회혈을 여는 방법이 유실되었지만 그들 나름대로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서 이매망량과 싸웠다고 하니, 백회혈이 인외의 존재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고 추측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다.
‘4대 원소라던가 다른 정령들이 아닌 이 녀석과 만난 건 역혈마공 때문인 것 같고.’
아직 네로가 어떤 능력을 지닌 정령인지 모른다. 자칭 위대한 어둠의 정령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어둠과 관련된 능력을 가졌다고 짐작했다.
역혈마공이 사마외도의 방법을 사용해서 익히는 마공은 아니지만, 그 기운은 마공과 어느 정도 유사한 성질을 띠고 있었다.
‘음. 고양이가 파괴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상상해보니 나름 귀엽긴 하네.’
물론 귀여움과는 다르게 전투 시에서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리라.
정확한 능력 파악은 뒤로 미뤄야 할 문제였다.
우선 쥬페토-아빠에게 해명을 하는 게 우선이었다.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묻고 싶구나.”
“우움.”
제론은 아빠의 질문에 손가락을 입에 물고 고민하는 척 고개를 갸웃했다.
‘거참, 어린아이인 척하기 힘드네.’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건 고민이 아니라 지친 삶(?)에 대한 애환이었다.
“음. 미안하구나.”
“우웅? 뭐가요?”
“네게 의중을 물어봐도 특별한 해답이 나올 리가 없는데, 마치 내가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구나.”
쥬페토는 잠깐이지만 네로를 향해 손을 뻗는 것 같더니 멈칫했다.
네로가 하악질을 했기 때문이다.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실체화를 해서 모습이 보이니 알 수 있었다. 곧 그가 손의 방향을 돌려 제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흠흠. 미안하구나.”
제론이 빤히 쳐다보자 쥬페토가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여전히 네로를 향해 힐끔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티가 나잖아.’
네로가 귀엽게 생기긴 했지.
잘 보면 은근히 빻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귀엽게 느껴진다.
‘이게 바로 빻은미라는 건가?’
제론은 새로운 것을 깨닫고 말았다.
* * *
쥬페토와 제론이 네로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을 무렵, 남작 저택 내부에서는 오늘 일어난 사건과 관련된 소문이 야금야금 퍼지고 있었다.
“제론 도련님께서 정령을 소환하셨다던데?”
“정령을 소환하기만 하셨겠어? 바로 계약까지 마치셨다고!”
“제론 도련님께서 4살이셨지, 아마?”
“헐! 대박. 그럼 최연소 정령사가 되신 거네?”
하필이면 해가 저물어가고 있던 도중이었다.
하늘이 어둠으로 물들어가는데 서고의 창문으로 엄청난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남작 저택을 중심으로 수백 미터 밖에서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근처를 거닐던 영지민들이 깜짝 놀라 웅성거리며 저택 앞에 모여들어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걱정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금방 수습해서 돌려보내긴 했지만 내부의 입단속까지는 시키지 못했다.
“듣기로는 샤벨타이거를 닮은 우람하고 위엄 넘치는 정령이라고 하더군.”
“이보게, 혹시 들었는가? 아까 페리안 남작님 저택에서…….”
“설마, 남작 저택에서 뿜어져 나온 빛줄기가…….”
소문은 천천히 외부까지 퍼져 갔고.
이튿날 오후가 되자 도시 내에서 제론이 정령을 소환해서 계약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퍼졌다.
그리고.
페리안 남작령으로 상행을 나온 상단이 이 소문을 듣고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다.
* * *
페리안 남작령의 바로 옆에 위치한 베론드 남작령의 한 저택에서 우아한 콧수염을 기른 중년 사내가 티타임을 즐기며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중년 사내의 정체는 바로 베론드 남작.
지금은 비록 일개 남작에 불과했지만 누구보다도 큰 야망을 가진 사내였다.
“언제까지 이런 변방에 머물러야 하는 거지? 하아. 중앙으로 진출할 날만 기다려야 하는 신세라니. 참으로 비참하구나.”
베론드 남작은 습관처럼 중얼거리며 찻잔을 내려놨다.
그의 야망은 변방을 벗어나 중앙으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남작이 아닌, 자작, 백작을 뛰어넘어 후작으로서 중앙에서 목소리를 높여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왕실과 가족이 된다면 공작위를 노려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자식이라고 있는 놈이 20살을 넘은 장정에다가 평소 행실이 난봉꾼으로 유명했다.
이미 베론드 남작령에서 아름답다고 소문난 처녀 여럿을 건드리는 범죄를 저질러 평판이 밑바닥으로 떨어져 있기까지 하다.
나이와 평판을 떠나 현 국왕의 딸들이 이제 막 젖을 뗀 갓난아이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어린아이였으니 사실상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다른 것을 떠나 평판만 생각해도 왕실의 화를 사기 충분했으니.
“내 목이 먼저 날아가겠지.”
베론드 남작은 야망이 높은 만큼 현실도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베론드 남작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작님! 베론드 남작님!”
“총관, 무슨 일인가? 내가 분명히 티타임 중에는 방해하지 말라고…….”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끙. 무슨 소식?”
베론드 남작은 총관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질책하려던 것을 멈추고 물었다.
“페리안 남작가에서 엄청난 천재 정령사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뭐? 자세히 말해봐!”
“페리안 남작의 아들이 정령을 소환해서 계약했다고 합니다!”
“정령이 뭐라는데?”
“그, 그건 잘…….”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와서 뭐? 페리안 남작의 아들이 엄청난 천재 정령사인 게 뭐?!”
베론드 남작은 확실하지도 않은 이유로 티타임을 방해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빈 찻잔을 들어 총관에게 던졌다.
찻잔이 총관의 이마에 맞고 떨어져 와장창 깨져나갔다.
“크윽!”
총관은 쓰러져서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야망이 높은 만큼 현실도 자각하고 있는 베론드 남작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 존재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평판도 그의 아들만큼이나 좋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베론드 남작은 아랫사람들에게 무자비하며 베풂을 모르는 인물이었다. 세율도 페리안 남작령과 비교해서 2배나 된다.
정확하게 말해 페리안 남작령의 세율은 보통의 영지에 비해 조금 낮은 편이었다.
대략 일반적인 세율의 0.8배!
페리안 남작이 영지에 인구가 적고 변방이라는 이유로 낮춘 것이다.
그걸 고려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폭리였다.
베론드 남작령 역시 변방에 위치했으니까.
세금을 많이 얻어가는 대신 복지라도 좋았다면 불만이 생기지 않겠지만 그 역시 최소한의 기준에 겨우 턱걸이를 할 정도다.
“제… 제대로 알아 오도록 하겠습니다.”
총관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나가자 베론드 남작은 하녀에게 깨진 찻잔을 치우도록 명령했다.
잠시 후 혼자 남은 베론드 남작이 중얼거렸다.
“페리안 남작의 아들이 정령을 소환해서 계약했다고?”
소문은 과장이 될지언정 이유 없이 생겨나지 않는다.
베론드 남작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없는 소문은 아닐 거란 말이야.”
페리안 남작의 아들이 정령사가 되었다고 해도 아직은 나이가 어리다. 위협이 될 소재는 빠르게 제거하는 것이 좋다. 더욱 크게 성장하기 전에 말이다.
“혹시 모르니 ‘그분’과 먼저 이야기를 해봐야겠지.”
베론드 남작은 집무실로 향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