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01)
제101화
101화
“…….”
노인이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제론을 바라봤다.
제론도 노인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때 깨달았다.
노인이 아직까지도 왜 이곳에 남아 있는지!
“복수를 해드리겠습니다.”
“복…수?”
눈 속에서 고요히 타오르고 있던 거대한 불꽃이 일렁였다.
복수라는 말이 노인의 마음을 동요시킨 것이다.
사실 제론은 정공법으로 승부하려고 생각했다. 노인을 데려갈 명분이 없으니 정중하게 요청하며 회유하려고 했다. 거절하면 아쉽지만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노인의 눈동자 속에 분노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마음을 바꿨다.
“예. 제가 명장을 대신해서 복수해드리겠습니다.”
“누구인지는 아시오?”
“모릅니다. 그러니까 알려주십시오. 복수의 대상이 누구인지.”
“바후르 도적단.”
“……!”
에르딘은 흠칫 놀란다.
노인이 복수하고 싶은 대상이 단순한 도적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가 대륙에서 흔적도 남지 않게 지우겠습니다.”
“정말이오?”
“예.”
제론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대단한 도적떼인지 몰라도 시무르 칸 같은 오러 마스터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물론 이 생각은 제론이 바후르 도적단을 잘 몰라서 하는 것이기도 했다.
바후르 도적단은 서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도적단이었다.
폴른 제국을 가로 짓는 에버로스트 산맥 외각의 곳곳에 근거지를 만들어 근처를 지나가는 귀족의 마차와 상단, 상인을 습격해 돈을 받고 풀어주는 골칫덩어리기도 했다.
13년 전에 나타나 5년이 지난 뒤에는 규모가 너무 커져서 폴른 제국에서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세력이 되었다.
하지만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도적떼가 아무리 규모가 크고 강해 봐야 결국 도적에 불과하다.
제대로 훈련받은 병사들도 아니고 뛰어난 실력을 가진 용병도 아니다.
그런데 왜 폴른 제국이 아직까지도 놈들을 방치하고 있을까?
“제론 님. 잠시만요.”
에르딘이 제론의 팔을 잡고 뒤로 끌었다. 대화를 방해하는 행동이었지만 제론은 순순히 끌려갔다. 그리고 바후르 도적단에 대해 설명했다.
“…….”
제론은 노인의 복수가 생각보다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러 마스터가 왜 도적질을 하고 있는 거지?’
바후르 도적단이 서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이유.
오러 마스터의 존재 때문이다.
‘바후르’는 도적단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도적단의 두목인 오러 마스터 ‘질주하는 흑마’ 바후르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혹시 바후르라는 녀석이 동대륙 출신이야?”
“어떻게 아셨어요?”
“시무르 칸이랑 이름이 비슷하잖아.”
제론은 감탄하는 에르딘을 내버려 두고 고심에 잠겼다.
오러 마스터의 존재는 확실히 예상외였다.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놈이 무슨 이유로 도적질을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에버로스트 산맥을 돌아다니며 잡아 족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도망치기라도 하면 정말로 일이 귀찮고 복잡해진다.
‘하는 꼴이 딱 녹림도인데.’
녹림은 쉽게 말해 산적이다. 하지만 무림에서는 무림 세력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세력이 거대하고 고수가 많았다.
바후르 도적단이 녹림처럼 대단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에버로스트 산맥 외각의 곳곳에 근거지를 만들어 활동하고 오러 마스터의 존재로 인해 쉽게 토벌을 하지 못하는 골칫덩어리 정도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에버로스트 산맥으로 가야 할 일도 있으니까 겸사겸사 처리하고 잘됐네.”
“아이고.”
에르딘은 제론이 그럴 줄 알았다며 끙끙거렸다.
다시 노인에게 돌아간 제론이 말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
노인은 한참 제론을 쳐다보다가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럼 바로 짐을 싸도록 하겠소.”
“……?”
“어디로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오?”
노인의 행동력은 엄청났다!
* * *
“하몬이라고 불러주시오.”
노인-하몬은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그런데 하몬의 이름을 듣고 에르딘이 엄청나게 놀라며 어버버하는 것이 아닌가.
“30년 전까지 왕실에 납품을 하시던 분이세요!”
“그 사실을 어떻게 아셨소?”
“아. 그게…….”
에르딘이 머뭇거리며 제론을 쳐다봤다. 아직 정체를 밝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제론은 잠시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페리안 자작가로 갈 하몬이었다. 지금 정체를 밝힌다고 해서 문제 될 게 없다.
“사실 제 성이 제이워커예요.”
“제이워커라면…… 코르멧은 잘 지내고 있소?”
“제, 제 아버지를 아세요?”
얼마나 당황했는지 에르딘이 말을 더듬었다.
하몬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지금은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지만 친구이오.”
“편하게 말씀 놓아주세요.”
“이게 더 편하오.”
에르딘은 불안하고 초조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했다.
제론이 슬쩍 녀석을 뒤로 잡아당겨서 말했다.
“너 집에는 말 안 했지?”
“네, 네?”
“여행한다는 거 말했냐고 묻는 거야.”
“마, 말했죠. 당연히 했죠.”
주어가 쏙 빠졌다.
이 녀석, 집에는 여행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자신의 아버지와 친구라는 하몬의 등장에 엄청 당황한 거다.
“난 모르는 일이다.”
“저도 모르는 일이에요.”
“……?”
에르딘은 제론의 시선을 피하며 하몬의 손에서 짐을 반쯤 빼앗다시피 넘겨받았다.
문제는 하몬을 어떻게 페리안 자작령까지 보내냐는 것이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던 순간 하몬이 말했다.
“용병을 고용하면 되지 않소?”
“어. 어어?”
에르딘이 어버버했다.
하몬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재차 말했다.
“옮길 짐이 많아서 상단에 의뢰를 맡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소.”
“아. 아아?”
에르딘이 아바바했다.
하몬은 미간을 좁히더니 물었다.
“혹시 생각하지 못한 것이오?”
“아닙니다. 단지… 저희가 함께 가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어떻게 해야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상관없소.”
복수만 해준다면 된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렇다면 좋지.’
제론은 상단에 의뢰를 하러 밖으로 나가다가 하몬을 찾아온 대장장이들과 마주쳤다. 갑자기 몇 시간도 안 돼서 떠날 것처럼 짐을 싸고 있는 것을 발견해서 많이 당황한 모습이다.
“스승님!”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제론과 에르딘은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 * *
밤이긴 하지만 상단의 예약을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상단 측에서 말하길 도시가 어수선해서 이틀 뒤에나 출발이 가능하다고 한다.
‘시간이 대충 맞네.’
하몬도 대장간의 짐을 모두 챙기려면 이틀 정도 걸린다고 했다. 문제는 대장간으로 돌아온 뒤였다. 하몬이 떠난다는 사실을 안 그의 제자들이 모두 함께 가겠다고 짐을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미안하게 되었소.”
“아닙니다.”
제론은 미소가 지어지려는 것을 애써 참아냈다.
‘명장의 제자라면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겠지.’
페리안 자작가가 커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인재영입은 대성공이었다.
* * *
이틀 뒤 하몬이 상단과 함께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상세히 알려줬다.
물론 제론이 정체를 밝힌 건 당연한 순서였다.
하몬의 반응은 담담했지만 살짝 의아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 형만큼이나 표정 변화가 없는 사람은 처음이네.’
형은 워낙 오래 봐서 알아볼 수 있었지만 하몬은 아니었다. 솔직히 긴가민가했다. 상단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자 도시를 떠났다.
아 참.
의로운 도적 로빈 호두 사건은 롬멜 후작과 1공자가 돌아온 후 조용하게 묻혔다. 예상외의 일이었다. 보통 귀족 가문이라면 수치로 여기며 어떻게든 범인을 잡겠다고 난리 친다.
심한 경우에는 도시를 봉쇄시켜서 출입하는 사람을 전부 검사하기도 한다.
제론은 몬스터-2공자를 가볍게 손봐주고 돌아왔다. 훔친 물건도 없으니 그냥 사소한 해프닝으로 넘긴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콘드래 때문인가?’
이유가 어쨌건 잘된 일이다.
도시가 멀어지자 다시 여행 기분이 나기 시작했다.
물론 지도를 볼 줄 모르는 에르딘만 빼고 말이다.
“국경이 어느 쪽이었더라…….”
녀석이 지도를 거꾸로 들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제론이 녀석의 손에서 지도를 뺏었다.
잠시 주변 지형을 둘러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으로 가면 돼.”
“지도가 개떡같이 그려져 있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지도 보고 안 거 아니야. 방향으로 추측한 거지.”
지도는 정말로 개떡같이 그려져 있었다. 제론도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방향을 알아냈다.
서쪽 국경을 지키고 있는 롬멜 후작령이니까 계속 서쪽으로 가면 된다.
“……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이상하네요?”
지도에도 없던 산이 나타났다. 지도가 아무리 개떡같이 그려졌다고 해도 산 정도는 알아볼 수 있는 그림체였다.
“이쪽이 서쪽 아니었나?”
제론이 볼을 긁적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쪽이 맞다.
방향치가 아니라서 확실했다.
“제론 님 설마 방향ㅊ……?”
“응. 미안하지만 아니야.”
“칫.”
에르딘은 깔 건더기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많이 아쉬워했다.
“지도 어디서 샀냐?”
“몰라요.”
제론은 삼매진화로 지도를 불태웠다.
재가 하늘 높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사랑했다. 이것아.”
“혹시 지도랑 사귀셨어요?”
“헛소리하지 말고 가기나 해. 이쪽이 서쪽은 맞으니까 가다 보면 어떻게든 될 거야.”
“조금 불안한데…….”
“난 그런 지도를 가져온 네가 더 불안해.”
“그거 제론 님 집에서 가져온 거예요.”
제론이 입을 쏙 다물었다.
* * *
쥬페토와 아이리가 오랜만에 티타임을 가졌다.
“막내한테서 편지가 왔소.”
“두 달 만에 왔네요.”
“그렇소.”
쥬페토가 슬쩍 아이리의 눈치를 살폈다.
살짝 화가 난 표정이다.
이럴 때는 괜히 건드리면 안 된다.
‘불똥 튈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편지를 건네자 아이리의 표정이 변했다.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읽는다.
‘아름다운 나의 부인.’
쥬페토는 아이리를 쳐다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곧 아이리가 입술을 열자 미소가 싹 사라졌다.
“이 녀석 나중에 가둬버릴까요?”
“왜, 왜 그러시오?”
“읽어보세요.”
쥬페토가 편지를 받아서 쭉 읽었다.
달랑 5줄만 적혀 있었다.
아빠, 엄마. 저 제론이에요. 잘 지내고 계시죠?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해요.
왕실에 무구를 납품하던 명장을 영입했어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그럼 이만 줄일게요.
사랑하는 제론이 사랑하는 아빠와 엄마에게.
“음. 일주일 정도 구금시키는 건 어떻소?”
“한 달로 하죠.”
“알겠소.”
제론의 미래가 결정된 순간이었다.
* * *
“에취!”
제론이 콧물을 슥 닦아냈다.
에르딘이 옆에서 귀신을 본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론 님도 감기에 걸리시네요.”
“이상하네. 로브도 입고 있는데 왜 갑자기 오한이 들지?”
“누가 제론 님 욕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내가 평소에 얼마나 잘하는데.”
제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에르딘은 인상을 찌푸리며 나뭇가지를 쳐냈다.
“서쪽이라고 해서 왔더니 산속에서 헤매고 있는 건 얼마나 잘한 거예요?”
“너 뒤끝 엄청 심하다.”
“제론 님보다는 안 심해요.”
“그건 인정.”
국경을 넘기도 전에 산속에서 헤매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