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02)
제102화
102화
“흠.”
제론은 천막 밖으로 고개를 쏙 내밀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자리를 보니 서쪽으로 가고 있는 건 맞다. 왜 자꾸 산이 나타나는지 모르겠지만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흐음.”
“…….”
“흐으음.”
제론이 뒤를 힐끔 돌아봤다. 몸을 뒤척이고 있는 에르딘이 보였다. 아까부터 몽롱한 눈동자로 반쯤 눈이 감겨 있던 녀석이다. 누구는 여행 일정 때문에 고민에 빠져 있는데 다른 누군가는 마음 편하게 잠들려는 모습을 보니 배알이 꼴렸다.
“흐으으음.”
“후우.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요.”
“아. 방해했나 보네. 미안해.”
제론은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사무적인 말투로 사과했다.
에르딘은 광대를 씰룩거리며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보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는다는 말이 뭐야?”
“여기가 에버로스트 산맥이니까요.”
“응?”
제론이 눈을 끔뻑거렸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에르딘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부연설명을 곁들였다.
“에버로스트 산맥이 대륙을 가로 짓는다는 건 알고 있죠?”
“응. 알고 있지.”
페리안 자작령에서 남서쪽으로 가면 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대륙을 가로 짓는다고 하니 얼마나 클지 상상이 안 됐다. 그런데 지금 천막을 치고 있는 산이 에버로스트 산맥이라고 하니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에르딘의 부연설명을 계속 듣다 보니 이해가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여 년 전에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서 대륙을…….”
“…….”
에르딘의 설명을 간략하자면 지진으로 인한 지각변동이었다.
즉, 천막을 치고 있는 이곳도 에버로스트 산맥의 줄기였다.
“그래서 제대로 가고 있다는 거다, 이 말이잖아?”
“네. 그러니까 이제 좀 자죠?”
“그래. 잘 자라.”
제론이 냉큼 대답하고 입을 다물었다. 제대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녀석을 괴롭힐 이유가 사라졌다. 더 이상 미련 따위는 없었다.
-라고 생각한 순간 의문이 떠올랐다.
“야, 이대로 쭉 가면 바후르 도적단을 만날 수 있냐?”
“아니요.”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잠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왜?”
“에버로스트 산맥이 워낙 크고 넓어서요.”
주둔지도 워낙 많아서 ‘질주하는 흑마’ 바후르가 언제 어디서 머무를지 모른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제론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진짜 자요.”
“잘 자라.”
에르딘은 바로 잠들었는지 잔잔하게 코를 골았다.
제론도 곧 눈을 감았다.
이튿날 아침 해가 떠올랐다.
두 사람은 부지런히 달려 산 넘고 강 건너 초원을 지나 서대륙에 진입했다.
* * *
“아. 힘들다.”
에르딘은 꾀죄죄한 몰골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힘들 만도 했다.
며칠 내내 제대로 잠도 못 잤으니까.
천막으로 막지 못할 만큼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산을 넘고 있었다면 동굴이라도 찾아냈겠지만 하필 초원을 지날 때였다. 강기막을 둘러 비를 튕겨낸 제론은 멀쩡했지만 에르딘은 비 맞은 강아지처럼 홀딱 젖었다. 자칫 감기까지 걸릴 뻔했다.
“곧 도시가 나오니까 이틀 정도 푹 쉬다가 가자고.”
서대륙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나라는 오르펜 공화국이었다.
오르펜 공화국은 수많은 귀족령이 모여 만들어진 국가였다.
각 영지가 독립적인 자치권을 갖고 있어 영주가 왕의 역할을 대신한다. 그래서 영주성이 있는 도시를 소국小國이라고 생각하면 편했다.
하루 뒤 오르펜 공화국의 국경에 도착했다.
국경수비대가 제론과 에르딘을 멈춰 세웠다.
신분을 검사하자 별말 없이 통과했다.
용병들이 일거리를 찾기 위해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는 건 흔한 일이었다.
전쟁이 벌어졌다면 통과가 어렵거나 잠시 조사를 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혹시 ‘검은 고양이’ 콘드래에 대해 소식 같은 건 없습니까?”
“……현상금 헌터셨소?”
병사들이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제론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현상금 헌터가 보기 드문 것은 아니지만 제론이 무척이나 젊었기 때문이다.
“예. 겉으로 보기에는 동안이지만 며칠 전에 30살이 넘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얼굴에 주름이 있긴 하구먼.”
제론이 애써 미소를 유지한 채 ‘검은 고양이’ 콘드래의 정보를 다시 물어봤다. 병사는 수배서를 뒤적거린 뒤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전부 잡범밖에 없단다. 아무래도 ‘검은 고양이’ 콘드래는 서대륙으로 넘어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혹시 일거리가 필요하면 언제든 오쇼.”
병사가 손을 흔들었다.
국경초소를 넘자 저 멀리 작은 도시가 보였다. 에르딘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어서 빨리 호텔이나 여관을 잡아서 빡빡 몸을 씻고 싶었다.
“그러다가 또 소매치기당한다.”
“휴.”
에르딘은 틱틱거릴 시간도 아까웠는지 한숨만 푹 내쉬고 만다.
“이쪽이에요!”
도시가 작아서 호텔은 없었지만 제법 훌륭한 여관이 있었다. 2인실을 잡고 1시간 뒤 음식이 나오게 미리 주문도 해 놨다. 아직 여윳돈이 충분해서 이 정도 사치는 괜찮았다.
40분 뒤 에르딘이 뽀송뽀송해진 얼굴로 돌아왔다.
“후우. 살겠다.”
“너무 깔끔하게 씻은 거 아니냐?”
“어차피 내일부터 또 부지런히 움직일 거잖아요.”
다시 몰골이 꾀죄죄해질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깔끔하게 있고 싶다. 뭐 녀석은 대충 이런 뜻으로 말하는 거다.
“혹시 아냐? 갑자기 무슨 일이 터질지.”
“그거 사망 플래그라고 했나? 그런 거 아니에요?”
제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에르딘이 질겁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에이 설…….”
쾅-!
여관의 식당으로 내려간 순간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 남자가 나타났다.
술과 음식을 먹고 마시던 사람들이 조용해지며 남자를 쳐다봤다.
“폴른 제국이 바후르 도적단의 토벌에 실패했다!”
“으음. 사망 플래그는 아니지만 좋은 소식도 아니네.”
제론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 * *
폴른 제국은 오러 마스터 퓨리온 공작에게 바후르 도적단을 토벌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바후르 도적단은 에버로스트 산맥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토벌대를 전멸시켰다.
여기까지가 사건의 전말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다고?”
“바후르 도적단이 에버로스트 산맥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었대요.”
“사망 플래그까지는 아니지만 골치 아프게 됐네.”
바후르 도적단은 하몬의 복수 대상이다. 그를 완전히 페리안 자작 가문의 사람으로 만들려면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 하지만 에버로스트 산맥 깊숙하게 숨었다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찾아낸다고 확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된다.
“폴른 제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 그게 문제지.”
“그래도 피해를 수습하고 다시 토벌대를 꾸리지 않을까요?”
“용병도 잔뜩 고용하고?”
“그렇죠.”
“너 제법 똑똑하네.”
에르딘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 아카데미 성적이 50위 안에는 항상 들었어요.”
“난 1등인데?”
“재수 없어.”
“다 들린다.”
제론은 에르딘에게 맛있는 꿀밤을 먹여주고 생각에 잠겼다.
에르딘의 말처럼 폴른 제국이 다시 토벌대를 꾸릴 것이다.
폴른 제국의 오러 마스터 퓨리온 공작이 이끄는 토벌대가 전멸을 당했으니 그 규모는 이전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잘 묻어가면 되겠어.’
위장 신분이 B등급과 C등급의 용병이다. 폴른 제국이 새로운 토벌대를 꾸릴 때 의뢰가 있는지 확인하고 잘 꼽사리 끼면 참가도 어렵지 않다. 두 명이서 바후르 도적단을 상대하는 것보다 그게 훨씬 더 낫다.
“전멸한 토벌대 규모는 어느 정도래?”
“대충 3만 명의 정규 병사와 50명의 기사, 30명의 마법사, 그리고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오러 마스터 퓨리온 공작이라고 했던 거 같았어요.”
“좀 많네.”
제론은 살짝 계획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바후르 도적단의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모양이다.
지리적 이점도 압도적인 병력의 차이는 극복하지 못한다.
물론 살수대첩이나 귀주대첩처럼 예외의 상황은 존재했다. 하지만 바후르 도적단과 폴른 제국의 토벌대가 싸운 장소는 에버로스트 산맥이었다.
폴른 제국이 지리적인 이점을 생각하지 못하고 토벌대를 보낸 것이 아니리라.
“바후르 도적단에 대해서 조사를 해 볼 필요가 있겠어.”
“한 번 알아볼까요?”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길드가 있잖아요.”
제론은 눈을 끔뻑거리다가 ‘아!’ 하고 감탄했다. 무림에 돈으로 정보를 사고파는 하오문과 개방이 있다면 이쪽 세상에는 길드가 있었다. 돈을 많이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직접 두 발로 뛰어서 알아내는 것보다는 더욱 자세하고 확실하리라.
곧 제론이 미간을 가운데로 좁혔다.
“돈 달라고?”
“예. 이게 제 일인가요. 제론 님 일이지.”
제론은 반박하지 못했다. 끙- 앓는 소리를 내고 아공간 주머니를 꺼내 힐끔 쳐다봤다. 얼마나 줘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에르딘이 손가락을 10개 펴 보였다.
“10실버?”
“바후르 도적단 정보가 그렇게 쌀 것 같아요?”
“100실버?”
“장난치지 마세요.”
제론은 꿍얼대며 금화 10개를 꺼냈다.
에르딘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10골드 말고 100골드.”
“뭐?!”
“이것도 최대한 적게 잡은 거예요. 바후르 도적단이 폴른 제국의 토벌대를 전멸시켰다니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정보 값이 더 비싸질 거예요.”
“혹시 뻥 치고 삥땅 치려는 건 아니지?”
“그럼 같이 가던지요.”
제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98골드 76실버입니다.”
용병 길드 지부장이 나와서 말했다.
참고로 그가 덧붙이길 쿠퍼 단위는 특별히 서비스라며 뺐단다.
“도적단의 정보 따위가 왜 비싼 겁니까?”
“이쪽으로 오신 지 얼마 안 되신 모양이군요.”
지부장은 짧은 수염을 만지며 말했다.
“바후르 도적단의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크고 대단합니다. 놈들의 주둔지 숫자와 위치도 파악한 것보다 파악하지 못한 것이 더 많지요. 게다가 이번 폴른 제국의 토벌이 실패로 돌아가 앞으로는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더더욱 힘들어질 겁니다.”
지부장이 ‘지금 정보를 사신 걸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더 비싸질 거거든요!’라고 말하며 껄껄 웃었다.
제론은 손을 덜덜 떨며 98골드 76실버를 지불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지부장이 돈을 챙기고 정보를 가지러 들어갔다.
“풉. 손 떠네요?”
에르딘이 뒤에서 제론을 비웃었다.
“너 두고 보자.”
“두고 보자는 사람치고 안 무섭다고 누가 그랬…… 아악!”
맛있는 꿀밤을 먹은 에르딘이 손으로 이마를 부여잡았다.
제론은 차가운 시선으로 에르딘을 노려보며 지부장이 나오길 기다렸다.
잠시 후 지부장은 꽤나 두꺼운 책을 가지고 나왔다.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고객님.”
“혹시 저희가 맡을 만한 의뢰가 있습니까?”
“용병이셨습니까?”
지부장이 제론과 에르딘의 용병패를 받고 확인했다.
“오른 왕국에서 오셨군요.”
지부장이 바로 알아보는 건 당연했다. 용병패에는 패를 발급해준 용병 길드의 위치와 이름, 발행 날짜까지 적혀 있었다. 그래서 제론과 에르딘이 용병으로서는 신입이라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B등급과 C등급의 신입 용병이 맡을 만한 의뢰라…….”
중얼거리던 지부장이 의뢰서를 뒤적거리며 물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