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04)
제104화
104화
“흑마법사?”
제론이 용병 길드에서 사 온 정보를 쭉 읽다가 중얼거렸다.
“마왕이나 마족과 계약한 그런 건가?”
[하찮고 어리석고 멍청한 인간아. 그건 악마술사다.]네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태클을 걸었다.
웬만해서 먼저 말하지 않는 녀석이 이러는 걸 보니 엄청 한심해 보였나 보다.
“알아. 안다고. 아카데미 수업에서 배웠잖아. 그냥 흑마법사라고 하니까 떠오르는 이미지였어.”
제론이 투덜거리며 다시 정보를 쭉 훑어봤다.
흑마법사라고 하면 보통 마왕이나 마족과 계약해서 대륙을 혼란으로 물들이거나 지배하려고 하는 악당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이쪽 세상에서는 개념 자체가 달랐다.
사용하는 마나의 색깔이 흑색이라서 흑마법사라고 부른다.
그런 흑마법사들이 모여 만든 단체가 바로 흑색 마탑이었다.
여기서 알아차렸겠지만 적색 마탑 마법사들이 다루는 마나의 색깔은 적색이다. 그래서 적색 마탑의 마법사들을 적마법사라고 부른다.
그런 이유로 마법사의 마나 색깔에 따라 소속된 마탑을 알아볼 수 있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흑색 마탑은 아주 오래전에 사라진 마탑 중 하나였다.
흑색 마탑이 사라진 이유는 2가지였다.
첫 번째는 소속된 흑마법사의 숫자가 적기 때문이었다.
흑색 마탑의 주된 마법은 정신과 물질 변환이다.
정신 마법은 대상에게 끔찍한 환영을 보게 만들어 괴롭히거나 착란을 일으키는 등 보편적으로 사용하기 힘들었고, 물질 변환 마법은 이름과 다르게 물체-신체를 다른 형태로 변환-만드는 괴상한 계열이었다.
몬스터의 신체를 마법으로 개조한다던가 이어붙이는 등 말이다.
또한 흑색 마나로 다른 마탑의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정신과 물질 변환 계열의 마법에 특화되어 있어서 위력이 3분의 2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2가지 계열의 마법사를 배우러 오는 마법사는 극히 드물었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의 연장선이었다.
배우는 마법 계열이 그렇다 보니 흑마법사들도 하는 일이 비슷해져 성격이 자연스레 음침하고 잔혹해졌다. 그래서 악한 짓을 저지르는 자들이 나타났고 인식이 나빠졌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흑마법사가 악마술사와 비슷한 대접을 받는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진짜로 악마술사와 똑같이 발견하면 즉시 처단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었다.
소위 말해 비주류다.
“흑색 마탑이 무너진 뒤로 흑마법사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대륙 어딘가에서 자신들만의 마법을 계속 연구하며 이어가고 있다. …라는 거네.”
몬스터를 조종했다는 건 정신 계열의 마법으로 보였다.
강력한 개체 몇 마리만 수족으로 만든다면 약한 몬스터들을 움직여 토벌대를 공격하게 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다.
“바후르 도적단의 규모가 갑자기 커진 것도 흑마법사와 관련됐을 확률이 높겠어.”
오러 마스터의 존재 유무도 크겠지만 혼자서 폴른 제국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강력한 흑마법사의 도움을 받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최악의 경우 흑색 마법-정신과 물질 변환 계열의 마법-으로 정신과 신체를 개조해 강력한 군단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골치 아픈 녀석들이 되겠어.”
물론 지금 당장 놈들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에버로스터 산맥으로 숨어 들어간 녀석들을 찾으려면 몇 년으로도 부족하다.
운이 없으면 폴른 제국과 마찰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음 토벌대가 결정되기 전까지 기다리려고 하는 것이다.
“제……!”
“어디선가 에르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제론이 바후르 도적단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 에르딘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 착각이라고 넘어가며 다시 고심에 잠겼다.
“야, 이……!”
퓻-!
“어이쿠. 깜짝이야.”
제론은 갑자기 날아온 화살을 낚아채며 고개를 돌렸다.
에르딘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간 떨어질 뻔했네.”
“아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그래요?”
“쟤도 한국인 다 됐구나.”
한국인 특징이 말할 때마다 ‘아니’를 꼭 앞에 붙인다.
같이 다니다 보니 에르딘도 전염된 것이다.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인 제론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에르딘을 격렬하게 맞이했다.
“야 인마!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잖아!”
“아니. 제가 몇 번이나 소리쳤는데요? 적어도 3번은 말했어요. 그런데 제론 님이 듣지도 않고 멍하니 뭐라고 중얼거리고 계시드만요!”
“이놈 보소. 뭐가 그렇게 당당해? 고작 고블린 부락 쳐들어가서 싸우는데 몇 마리 질질 흘리기나 하고. 이거 안 되겠네. 차근차근 1 대 1부터 다시 시작해? 어!”
“진지하게 생각해보니까 제 잘못이 맞는 것 같습니다.”
에르딘이 빠르게 사과했다.
제론과의 대련은 고블린 부락에 쳐들어가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맨날 ‘한계를 뛰어넘어야 해.’, ‘한계를 아는 건 중요해.’라고 어찌나 강조하던지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오냐. 앞으로도 그 마음과 자세를 쭉 유지하도록 하여라.”
“예이. 예이.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에르딘이 내시처럼 간드러지게 목소리를 냈다.
제론은 만족의 미소를 띠고 녀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줬다.
“이제 확인해볼까?”
“얼마든지요.”
제론이 고블린 부락을 쭉 돌아다녔다. 죽은 고블린의 상처를 확인하자 에드린의 창을 다루는 솜씨가 한결 깔끔해진 것을 알았다.
하몬이 만들어준 새로운 창에 완전히 적응한 것이다.
무공이나 창술의 숙련도는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무기가 좋아졌으니 전체적인 전력은 상승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마무리가 조금 어설펐지만 고블린 부락을 혼자서 상대한 것치고는 충분히 잘했어.’
고블린들의 특징이 교활한 간계를 펼쳐도 절대로 이기지 못할 만큼 강한 적이 나타나면 일단 도망치고 본다는 것이다.
에르딘이 새로운 창에 적응하기 위해 본 실력을 펼치지 않아 고블린들은 뒤늦게 알아차렸고, 몇 놈이 도망치려고 했지만 전부 추살되었다.
마지막 한 마리가 부락 밖에서 대기 중이던 제론을 발견하고 도망칠 길을 열기 위해 활-장난감에 가까운 조잡한 활이다-을 쐈던 것이다.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하네. 잘했어.”
“그거 진짜로 하는 말 맞아요?”
“칭찬을 해줘도 뭐라고 하네.”
“아니. 제론 님 맨날 말만 그러고…가 아니라 제가 너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제론 님은 항상 옳으시죠. 예이. 예이. 언제나 옳으십시다.”
마지막에는 잔뜩 비꼬는 말이었지만 제론에게는 칭송으로 들렸나 보다.
“…라고 좋아할 줄 알았냐?”
“칫. 안 통하네. 너무 자주 썼나. 아니면 눈치가 아예 없었는데 조금이나마 생긴 건가?”
“다 들린다. 인마.”
제론이 에르딘에게 꿀밤을 먹이고 고블린 부족장의 집으로 들어가 놈들이 모아둔 재물을 모조리 챙기기로 했다.
어차피 전부 약탈하거나 훔친 물건들이었다.
주인이 없는 물건을 가져간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이야. 잘 챙기시네요.”
아니.
한 명 있었다.
“너 맛있는 꿀…….”
“저도 한 손 돕겠습니다.”
에르딘이 후다닥 달려가 아공간 주머니에 물건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모아둔 재물이 많았다.
“황금 고블린이 따로 없네.”
“에이. 황금 고블린은 이 정도랑 차원이 달라요.”
“얼마나 많이 갖고 있길래 그래?”
“뭐 소문으로는 아티팩트 수십 개는 기본이고 마도 시대나 신화시대의 유물도 갖고 있다는 말이 있어요.”
결론만 말하자면 직접 본 적은 없다는 뜻이다.
제론은 에르딘의 말을 상큼하게 무시하며 챙긴 재물들을 정산했다.
“대략 20골드 37실버 78쿠퍼인가? 무기나 갑옷 같은 건 팔아야 가격을 아니까 제외하고… 이런 보석들이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네.”
“마정석은 왜 빼세요?”
놀랍게도 고블린 부락에는 마정석이 있었다.
새끼손톱만 한 것도 아니었다.
무려 엄지손톱 정도의 크기였다!
“이건 너무 비싸서 뺐어. 솔직히 얼마나 할지 감이 안 잡혀서 말이야. 너는 알겠냐?”
“대충 8,901골드 정도? 시가 생각하면 8,500골드에서 9,100골드 사이로 왔다 갔다 할 거예요.”
“…….”
제론은 잠시 당황했지만 담담하게 말했다.
“상당히 금액이 구체적이네.”
“어렸을 때 집에서 몇 개 굴러다니고 있길래 갖고 놀다가 혼난 적이 있거든요. 그때 들었어요.”
“어, 음. 훌륭하신 아버지시구나.”
이 녀석 집안이 왕실에 소속된 가문이라는 사실을 종종 까먹는다. 게다가 제이워크 가문은 웬만한 귀족들을 코웃음 칠 정도로 엄청나게 돈이 많다.
물론 왕실에서 주는 봉급으로는 턱도 없었다. 제이워크 가문이 사업을 벌여서 성공한 게 많아서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넌 왜 그러냐?”
“제가 뭘요?”
“아니야. 아니야. 그런 게 있어.”
호부 밑에 견자 없다는데 너무 차이가 난다.
‘그래도 골든 리트리버면 괜찮지 않을까?’
요즘은 천사견보다는 악마견 같지만 사람의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만악의 근원인 스트레스로 성격이 잠시 이렇게 변한 거다.
“하여간 제론 님은 맨날 말하다 만다니까. 그래 가지고 나중에 나한테 쫑알쫑알…….”
그래.
스트레스 때문이 맞을 것이다.
‘아니면 화가 날 거 같거든.’
맛있는 꿀밤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 * *
오르펜 공화국은 생각보다 크고 넓었다.
정확한 크기는 알지 못하지만 오른 왕국 못지않다는 건 확실했다.
“지도가 엄청 크네.”
바로 지도 덕분에 알게 되었다.
각 영지별로 한 장씩 샀는데 합쳐보니 오른 왕국 지도만 했다.
“우리가 어디까지 가야 했더라?”
“벌써부터 기억력 감퇴가…… 아얏!”
에르딘은 맛있는 꿀밤을 먹었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인상을 꾸깃꾸깃 구길 정도였다.
“아스트랑령까지 가야 해요.”
“아스트랑령이면… 대충 4일만 열심히 뛰면 되겠다.”
“이 거리를 4일 만에요?”
제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예를 들자면 백두산에서 여수까지 4일 만에 도착하겠다는 뜻이다.
“오! 신이시여.”
“부지런히 잘 따라와라.”
“설마 버린다는 건 아니죠? 이렇게 귀엽고 깜찍한 저를?”
“응. 버릴 거야.”
에르딘은 냅다 달리기 시작한 제론의 꽁무니를 허겁지겁 쫓아갔다.
이윽고 4일 뒤 정말로 아스트랑령에 도착했다.
물론.
“허어억! 허어어어억!”
곧 숨이 끊어질 것처럼 힘겨워하는 에르딘이 있었지만 말이다.
“이야. 여기는 좀 도시가 크네.”
제론은 여유롭게 용병패를 내밀며 도시를 통과했다. 에르딘이 흐느적거리며 가다가 좀비로 오해받아 경비병에게 제지당했다.
“거, 일행은 괜찮은 거요?”
“우리 애가 좀 허약해서 그렇지 평소에는 힘이 펄펄 넘칩니다.”
“평소에는 힘이 펄펄 넘치는데 허약하다고?”
“저게 무슨 말이야?”
경비병들이 어리둥절해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뭔가 앞뒤 말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성문을 통과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더는 캐묻지 않고 들여보냈다.
“사, 살려 줘어어어.”
“너 살아 있어.”
제론이 흐느적거리다 못해 녹아내리기 직전인 에르딘을 질질 끌고 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