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05)
제105화
105화
“흐어. 살겠다.”
에르딘이 뜨거운 목욕탕에 몸을 푹 담근 채 중얼거렸다.
맞은편에서 몸을 담그고 있던 제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방금 할아버지 같았어.”
“지금의 에르딘은 할아버지보다 허약한 상태예요.”
“……?”
갑작스러운 3인칭 화법에 제론이 벙쪄 있는 사이 에르딘이 에헴- 하며 턱 밑까지 몸을 깊게 담갔다. 잠시 후 녀석이 불에 구운 황금빛 마시멜로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제론은 얼른 녀석을 건졌다.
“야! 정신 차려.”
“어, 어어? 무슨 일 있었어요?”
에르딘이 반쯤 풀린 눈으로 묻는다.
잠깐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다.
제론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어렸을 때 고생하는 거지.’
아직 팔팔한 20대니까 괜찮다.
에르딘이 알았다면 펄쩍 뛰며 분개할 제론의 속마음이었다.
“밥 먹자.”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돼요?”
“너 더 있다가는 녹아내려.”
“농담도 참.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갔다고 어떻게 녹아내려요?”
키득거리며 웃는 에르딘을 보며 제론이 생각했다.
‘너 방금 녹아내렸어.’
아주 마시멜로 같았어.
긴장이 쭉 풀리며 정신까지 놓아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튼 밥이나 먹자. 배고프다.”
“네. 네. 그보다 상단 호위 의뢰가 언제였죠?”
“이틀 뒤. 그러니까 푹 쉬어 좀.”
“저 아주 쌩쌩해요.”
너 지금 45도 각도로 서서 말하고 있어.
제론은 몇 번이나 하고 싶은 말을 꾹 삼켰다.
정신을 놓아도 제대로 놓아버렸다. 자기 몸 상태가 어떤지 모를 정도면 말 다 했다. 이틀 동안은 아무것도 시키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힘들었나?’
천라지망에 갇혔을 때는 일주일 동안 못 자고 싸운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역시 에르딘이 허약한 게 맞는 것 같다. 녀석의 체력을 좀 더 길러줘야겠다.
“에취이! 누가 내 이야기 하고 있나? 갑자기 코가 간지럽네.”
“평소에 좀 잘하고 다니지.”
“그건 제론 님 이야기 아니에요?”
“사람들 있다. 호칭 바꿔.”
“야.”
“……그거 말고 용병 이름… 잠깐. 너 일부러 그런 거지?”
“데헷.”
“이노무 자식이 뒤질라고!”
에르딘은 언제 골골거렸냐는 듯 후다닥 도망쳤다.
* * *
상단 호위 의뢰라고 하면 거창할 거 같지만.
“우와! 용병들이 엄청 많네요?”
“그래. 거창하네.”
“……? 많다고 했는데 왜 거창하다고 대답해요?”
“아니. 그런 게 있어.”
네가 모르는 신비로운 비밀이 말이야.
제론이 주변을 쭉 둘러봤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용병들 특유의 거친 행동이나 욕설이 오가지만 이상하게도 정감이 갔다. 무림에서 낭인 생활을 할 때 딱 저랬다.
“이 미친 새끼가!”
“X발! 뒤지고 싶냐?”
“훈훈하네.”
코를 슥 훔친 제론이 용병들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주먹질을 하려던 용병들이 눈을 끔뻑이며 잘생긴 청년을 쳐다봤다.
“너는 뭐냐?”
“용병이지 뭐겠냐, 새끼들아.”
뒤에서 멀뚱멀뚱 지켜보던 에르딘이 소리 없는 경악을 내질렀다.
‘제론 님이 저런 경박한 욕설을 입에 담으시다니!’
‘인마! 인마!’ 이러는 건 알고 있었지만 차원이 다른 수준의 욕설이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곱상한 얼ㄱ…….”
“너는 얼굴이 곱등이처럼 생겼네. 곱등이가 혹시 형님 하고 넙죽 엎드리는 거 아니야? 꼬우면 덤비던가. 아주 X펄 뒤질 각오도 하고.”
“……?”
제론이 곱상한 얼굴로 신박한 욕설을 하자 당혹스러웠는지 용병들은 서로 눈만 끔뻑거리며 쳐다봤다. 금세 정신을 부여잡고 인상을 일그러트렸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사방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어이 형씨 이름이 뭐야?”
“아론.”
“기억할게. 재치가 아주 뛰어났어.”
“맞아. 순간 반할 뻔했다고?”
“이따 밤에 찾아와. 엎드려서 벌…… 으읍!”
에르딘이 재빨리 달려와 제론의 입을 막았다.
“아씨! 뭐 하는 거예요?”
“으 퉤퉤. 용병들은 원래 이래.”
“그럼 그럼. 원래 이렇지.”
“동료 형씨는 순진하구만. 얼굴이 시뻘게져서 저러는 거 보니까 아직 애송이야.”
“그래도 실력은 괜찮아 보이는데?”
용병들은 킬킬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험악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풀어졌다. 하지만 에르딘은 차라리 아까의 험악한 분위기가 그리웠다.
‘쪽팔림은 왜 나의 몫인 걸까?’
잠시 후 상행의 총책임자가 나타났다.
계속 껄렁하던 용병들도 의뢰주 앞에서까지 같은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다. 아, 그렇다고 껄렁이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라는 말이다. 아까까지 짝다리를 짚고 달달 떨고 있었다면 지금은 짝다리를 짚고 하품하고 있었다.
총책임자는 모든 확인을 마치고 용병들에게 다시 한번 주의사항을 말한 뒤 출발했다.
이번 상단 호위 의뢰를 받은 용병의 숫자는 53명.
A+등급 용병 3명과 A등급 용병 15명, B등급 용병 34명, 마지막으로 C등급 용병 1명이었다. C등급 용병의 정체는 이미 짐작했겠지만 에르딘이었다. 녀석이 C등급이라는 말에 모두가 놀랐다.
“B등급은 되는 거 같은데?”
“그런 저 녀… 저분은 얼마나 센 거야?”
타깃이 제론에게 돌려졌다.
에르딘은 은연중에 기운을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해서 실력 있는 용병들이 감지했지만 제론은 완벽하게 갈무리해서 평범한 사람으로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B등급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에르딘처럼 어렴풋이 느껴지기라도 하면 알 텐데 그게 아니니까 더더욱 헷갈리는 것이다.
“뭐 나중에 몬스터가 습격하거나 도ㅈ…….”
“이 새끼 입 막아!”
“그런 부정 타는 말은 하는 거 아니라고 안 배웠냐?”
대수롭지 않게 말하던 용병이 다른 용병들에게 몰매를 맞았다. 하지만 모두가 내심 기대하며 제론을 바라봤다.
* * *
이번 상단 호위는 B+등급의 의뢰였다.
등급은 B+였지만 위험도는 낮았다.
사실상 5달의 장기 의뢰라서 높게 책정됐다고 보면 된다.
물론 혹시 모를 잠재적 위험도 있었다.
기간이 길수록 갑작스러운 사건 사고가 발생하기 쉬우니까.
“……라고 하지만 몬스터가 징글징글하게 많네요.”
“에버로스트 산맥이 가깝잖아.”
에르딘이 창에 묻은 몬스터의 피를 털어내며 투덜거렸다.
제론은 가볍게 대꾸하며 자이언트 랫의 머리를 박살 냈다.
주먹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마리씩 머리가 사라진다.
열심히 싸우던 용병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곧 전투가 끝나자 한곳에 모여서 쑥덕거린다.
“내 말이 맞지?”
“저 정도면 거의 기사급 아니냐?”
“말 돌리지 말고 빨리 내놔.”
“쳇.”
무슨 내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제론이 돈을 딴 용병에게 다가갔다. 용병은 반사적으로 긴장하며 주춤 물러섰다.
“내 몫은 없나?”
“무슨 소리야? 네 몫이라니?”
“알 거 아는 선수들끼리 왜 이러실까.”
제론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돈을 딴 용병이 칫- 하더니 절반을 똑 떼서 넘겼다.
“3실버? 아이고. 고객님. 감사합니다.”
“형씨 덕분에 번 돈인데 뭘.”
용병은 아쉬운 티를 팍팍 내며 말했다.
“인마! 돈 벌어 왔다!”
“ㅈ… 아론 님. 창피하게 왜 그러세요.”
에르딘이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옹알거렸다.
제론은 당당하게 말했다.
“이게 바로 가장의 무게라는 거다!”
“아. 진짜 수치사할 거 같아.”
에르딘이 눈물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제론은 뭐가 그렇게 당당한지 용병에게 받아온 3실버를 보여주며 킬킬-! 웃었다.
한편 그런 제론을 주시하고 있는 시선이 있었다.
바로 이번 의뢰의 총책임자였다.
“저 용병 이름이 뭐라고?”
“아론이라고 합니다.”
총책임자가 부책임자에게 묻자 그가 대답했다.
“요즘 B등급 용병은 다 저렇게 강한가?”
“아닙니다. 저 용병이 B등급치고 강한 겁니다. 특이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일부러 등급을 올리지 않았나? 그런데 왜 특이해?”
“으음. 물어보니 용병계에 몸을 담은 지 얼마 안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는 행동이 꼭 십수 년은 굴러먹은 것 같다고 해서…….”
“뒷조사는?”
“깨끗합니다. 물론 나쁜 의미로요.”
제론과 에르딘에 대해 알아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깨끗했다.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다. 다른 대륙에서 왔거나 어느 세력에서 보낸 첩자다. 더군다나 폴른 제국이 바후르 도적단의 토벌에 실패해서 모든 상단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번 상행은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라서 방해를 할 이유가 없었다.
“흐음. 혹시 모르니까 잘 지켜보고 있어.”
“알겠습니다.”
* * *
상행의 최종 목적지는 폴른 제국의 동쪽에 위치한 바하무트 변경백의 영지였다.
변경백은 타국과 맞닿은 영지의 영주를 일컫는데 단순히 위치 때문이 아니라 외침에 대비한 군사권과 자치권이 크게 인정되어야 내려지는 특별한 작위였다.
그 위치는 백작보다 위계가 높고 후작보다는 낮았다.
하지만 영지 내에서 갖고 있는 권세는 왕에 못지않았다.
변경백이니까!
이번 상행도 바하무트 변경백의 요청으로 가는 것이었다.
바후르 도적단의 토벌에 실패하며 폴른 제국 내부적으로도 많은 피해를 입어 물자를 제때 조달하지 못하기에 오르펜 공화국에까지 손을 내밀게 되었다. 텔레포트 게이트라는 비싼 이동수단을 이용하게 된 것도 변경백의 지원이 있어서 가능했다.
용병들이 텔레포트 게이트를 넘어온 뒤 멀미를 호소했다.
“어우. 어지러워.”
“우욱!”
“텔레포트 게이트 처음 타봤어?”
“아니…… 이번이 3번째인데도 여전히 적응이 안 돼.”
멀미로 괴로운 건 에르딘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용병들보다는 덜 심했지만 눈앞이 살짝 어지러웠다.
“으. 현기증 나”
머리를 흔들던 에르딘이 유독 멀쩡해 보이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바로 제론이었다. 제론은 신기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냐면.
‘우화등선이랑 비슷한 느낌이네.’
라는 것이었다.
우화등선과 어떻게 비슷하냐고 물어봐도 대답하기 힘들었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비슷하긴 한데 뭐라고 설명하기는 힘든 느낌.
지금 제론이 느끼고 있는 것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자자. 오늘은 여관에서 푹 쉬십시오.”
상행의 부책임자가 술과 음식도 준비하겠다며 용병들을 격려했다.
용병들은 킬킬 웃으며 정신을 차린 뒤 움직였다.
제론과 에르딘도 여관으로 갔다.
상단에서 여관을 통째로 하루 빌려서 여관주인과 직원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텔레포트 게이트 재밌네.”
“재밌어요? 전 이제 좀 살 것 같은데.”
“몸이 분자 단위로 분해되었다가 다시 합쳐진 느낌이야.”
“그건 무슨 말이에요?”
“어… 그러니까 몸이 가루처럼 빻아졌는데 다시 반죽해서 만든 거랄까.”
“표현이 너무 끔찍한데요.”
“나중에 직접 느껴보면 알겠지만 딱 이거라고 설명하기는 어려워. 그보다 여기가 어디라고?”
“오르펜 공화국의 최서단에 위치한 가드리먼령입니다.”
에르딘에게 질문했는데 대답은 다른 곳에서 튀어나왔다.
고개를 돌려니 상행의 부책임자가 술병을 들고 있었다.
용병들에게 한 잔씩 술을 따라주다가 여기까지 온 모양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