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06)
제106화
106화
“한 잔 따르겠습니다.”
“어이쿠. 잠시만.”
부책임자가 술병을 들고 말하자 제론은 능글맞게 웃으며 얼른 잔을 비웠다.
크으- 아저씨 같은 소리를 낸 제론이 빈 잔을 내밀었다.
곧 빈 잔이 천천히 채워졌다.
쪼르르-.
“……?”
“……!”
알싸하게 올라온 술기운에 용병들이 시끌벅적 떠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제론과 부책임자를 중심으로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바로 옆에 있던 에르딘은 특히나 그런 느낌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 긴장감은 뭐야?’
제론과 함께 다니다 보니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던 에르딘이지만 지금은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이유가 제론과 부책임자 때문이었으니까.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까?’
잠깐 생각했지만 용병들과는 아직 데면데면한 사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넘어 가드리먼령까지 온 시간만 한 달이 지났는데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용병이 없다.
자리를 옮기면 다른 의미로 고요한 적막이 흐를 것이다.
‘어색해 죽느니 그냥 여기 있는 게 나을지도.’
에르딘은 귀를 닫고 다른 생각으로 삼매경에 빠지기로 했다.
한편 부책임자는 생각했다.
‘십수 년은 굴러먹은 것 같다더니 진짜로군.’
어려 보이는 외모와 달리 배 속에 10년 묵은 귀족이 들어 있는 것 같다. 동시에 이유 모를 부조화를 느꼈다. 거친 행동과 말투가 다른 용병들과 큰 차이는 없지만 껍질로 몸을 둘러싼 것처럼 가식적으로 보였다.
대화를 나눌수록 생각이 조금씩 변했다.
‘아니. 가식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달라.’
십수 년을 굴러먹은 용병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그 사실을 깨닫자 부책임자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설마 라이벌 상단에서 보낸 자인가?’
용병 길드 지부장의 조언을 듣고 열연을 펼친 제론의 노력이 무색해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제론이었다.
물론 다른 의미로 착각했다는 뜻이었다.
제론은 부책임자의 눈빛이 변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내가 연기를 그렇게 못하나?’
무림에서는 낭인인 척 돌아다녀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위장극을 펼친 지 많은 시간이 지나서인지 연기력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내심 아쉬움의 입맛을 다시며 부책임자와 술잔을 부딪쳤다.
“그럼 편안한 밤 되십시오.”
부책임자가 마지막으로 빈 잔을 채우고 돌아갔다.
그리곤 총책임자에게 말했다.
“라이벌 상단에서 보낸 것이 확실합니다.”
“진짜로?”
“대화를 나눠보면 아실 겁니다. 억양이나 말투가 평범한 용병들과 다릅니다.”
“기사단 훈련생 출신의 용병은 아니고?”
“어…… 그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만.”
“내가 이런 놈을 데리고 상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얼른 알아 오지 않고 뭐 해!”
“지금 밤입니다?”
“밤낮이 중요해? 이번 상행이 실패하면 다 네 탓이야!”
“죄, 죄송합니다!”
부책임자는 먹던 음식을 내려놓고 후다닥 여관을 나갔다.
그런 부책임자의 등을 한참이나 한심하게 쳐다보던 총책임자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는 순간 눈빛이 변했다.
“처리해야 할 놈이 늘었군.”
* * *
하루의 휴식이 끝나자 상행이 계속되었다.
오르펜 공화국의 국경을 넘자 용병들이 풀었던 긴장감을 꽉 조였다.
“분위기 왜 이래요?”
“바후르 도적단 때문에 그래.”
그놈들의 주 활동지는 폴른 제국이다.
토벌로 인해 에버로스트 산맥으로 숨어들었다고 하지만 언제 어디서 갑자기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다. 놈들이 작정하고 나선다면 이 정도 규모의 상단을 털어버리는 건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쉽다.
“용병 일도 참 피곤하네요.”
“대신 그만큼 보수를 많이 받잖아.”
상단 호위는 B+등급의 의뢰였지만 A등급보다 보수를 많이 쳐준다. 장기의뢰라는 점 때문이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다.
영지전이나 국가적 규모의 큰 전쟁이었다.
정확한 기간이 고지되지 않은 전쟁 의뢰는 한 달에 한 번씩 계약을 갱신하고 실적에 따라서 +@로 추가 보수를 지급받는다.
그런데 왜 예외적인 경우냐고?
전쟁이 벌어진다고 모든 곳에서 다 전투가 벌어지는 게 아니니까 그런 거다. 어떤 곳에서는 매일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겠지만 다른 곳에서는 ‘언제 싸우나….’ 하면서 세월아 네월아 기다려야 한다.
한마디로 운이 없으면 시간 대비 적은 보수를 챙기지만 운이 좋으면 몇 년 동안 먹고 놀 거금을 챙겨 돌아가는 것이다.
뭐, 그것도 살아서 돌아가야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어떻게 될 거 같아요?”
“뭐가?”
“이번 의뢰 무사히 잘 끝날 거 같아요?”
“내 손으로 사망 플래그를 꽂으라고? 어림도 없지.”
제론이 대답과 동시에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에르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불안한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했다. 미신 따위는 잘 믿지 않던 제론조차 괜스레 불안해질 정도였다.
“다리 좀 그만 떨어라. 복 달아난다.”
“다리를 떨면 건강하다고 그러던데요?”
“……미신 따위에 휘둘려서 미안하다.”
뭔가 위의 말과 맞지 않았지만 순순히 사과한 제론이었다.
에르딘도 일단 반박부터 했지만 복 달아난다는 말을 듣고 나서 다리 떨던 것을 멈췄다.
해가 저물고 갑자기 주변이 짙은 안개로 둘러싸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용병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아따. 음산하구먼.”
“몬스터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야.”
“이상한 게 아니라 튀어나와야 정상이지.”
“그건 무슨 말이야?”
“이쪽 주변에서 전해지는 전설 같은 게 있는데…….”
안개 속에서 사냥꾼이 나타나 먹잇감을 사냥하리라.
그 무엇도 사냥꾼을 피하지 못하고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니.
날카로운 송곳니의 사냥꾼은 공포에 질린 먹잇감을 바라보며 웃으리라.
“…라는 전설이야.”
“내용이 좀 으스스하군. 그런데 날카로운 송곳니의 사냥꾼은 뭐야?”
“트롤Troll이야. 트롤.”
듣고 있던 용병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트롤은 몬스터지만 뛰어난 사냥꾼으로도 유명했다.
한 번 노린 사냥감은 절대로 놓치지 않아서 사냥꾼들 사이에서 ‘트롤의 절반이라도 해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근데 그런 이야기가 왜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와?”
“그건…….”
사삭.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모르게 말은 멈춘 용병이 무기를 뽑아 들며 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용병들도 긴장하며 경계했다. 곧 안개 속에서 빠르게 움직인 무언가가 나타났다.
뀨?
하얀 털의 토끼였다.
토끼가 용병들을 바라보며 커다란 2개의 귀를 쫑긋거렸다.
“에이 씨! 깜짝 놀랐잖아!”
뀨?!
용병이 소리치자 토끼가 깜짝 놀라 후다닥 도망쳤다.
“아무튼, 이야기나 계속하라고.”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그그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유.”
“아아. 그건 말이ㅇ…….”
“엎드려!”
제론이 외쳤다.
안개 속에서 울려 퍼진 거친 목소리에 용병들이 반사적으로 엎드렸다.
푹-!
무언가가 날아와 엎드린 용병의 머리카락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런데 스쳤다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풍압이 일어나며 용병의 가운데 머리카락이 고속도로처럼 반듯하게 밀렸다. 아깝거나 창피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살았다!’라는 안도감으로 엉거주춤 일어났다. 곧 뭐가 날아왔는지 확인한 용병이 중얼거렸다.
“창?”
그냥 창이 아니었다.
하야면서도 누리끼리한 기묘한 느낌의 창이었다.
“‘놈’이다!”
“설마 그 ‘놈’이 나타났다고?”
용병들은 호위대상인 마차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모두 표정이 좋지 못했다. 제론이 가까이 있는 용병에게 조용히 물었다.
“‘놈’이 누구야?”
“안개 속의 사냥꾼!”
대답한 용병의 이가 딱딱딱- 부딪쳤다.
* * *
폴른 제국의 동부지역에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어느 용병이 언급한 ‘안개 속의 사냥꾼’이었다.
‘안개 속의 사냥꾼’은 트롤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트롤이 아니었다. 무려 네임드Named였다.
모든 네임드 몬스터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도시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 만한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안개 속의 사냥꾼’은 지난 20년 동안 폴른 제국에서 가장 골칫덩어리인 바후르 도적단과 함께 악명으로 양대 산맥을 쌓고 있는 놈이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며 짙은 안개로 일대가 뒤덮인다.
그곳에서 무자비한 사냥이 시작된다.
짙은 안개로 뒤덮인 곳에서 살아 돌아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누구도 녀석의 실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 * *
‘어디냐?’
제론은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안개 속으로 퍼진 내공이 얼마 되지 않아 흩어졌다. 멀리 가지 못한다. 고작 20m 정도가 한계. 이건 평범한 안개가 아니라는 뜻이다.
아까 어떤 용병도 다행히 제론이 눈치채고 바로 외쳤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다면 머리가 통째로 사라졌을 것이다.
“트, 트롤의 주술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주술이라니!”
“이 안개가 트롤의 주술로 만들어진 거라고요!”
용병들이 술렁거렸다.
10m 앞의 물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였다.
그런데 트롤의 주술로 인한 것이라고?
둥-!
누군가 의문을 가진 순간 웅장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 진짜로 ‘놈’이야! 네임드 ‘안개 속의 사냥꾼’이라고!”
“그래 봐야 놈은 혼자야! 모두 사주 경계하며 빠르게 이동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 같아요!”
둥-! 둥-! 둥-! 둥-!
웅장한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주기가 점점 짧아져 간다.
에르딘이 제론의 옆으로 와서 소곤소곤 물었다.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니에요?”
“많이 위험해.”
에르딘은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제론을 쳐다봤다. 오러 마스터를 상대로도 코웃음을 치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제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에르딘이 기억하는 제론은 이런 심각한 표정을 지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저절로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안개도 문제지만 이 북소리가 제일 문제야.”
“북소리가 왜요?”
“내공을 퍼트려봐.”
“……!”
에르딘이 내공을 퍼트리자 깨달았다.
안개 속에서 천천히 흩어지던 내공이 북소리가 울릴 때마다 공진하며 산화한다.
안개처럼 평범한 북소리가 아닌 것이다.
“이거 진짜 주술이야.”
제론의 심각했던 표정이 천천히 변한다.
입꼬리가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그건 미소였다.
* * *
제론은 미소를 지었다.
이유?
즐거웠으니까. 무림과 달랐으니까.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힘!’
미증유의 적과 싸운다.
제론은 그 사실만으로도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디냐?’
내공은 안개와 북소리에 멀리 가지 못하고 흩어진다.
시각 역시 안개를 뚫지 못한다.
후각도 안개의 습하고 텁텁한 공기만 맡아진다. 은은한 누린내가 풍겨져 오지만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도대체 어디냐?’
제론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