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11)
제111화
111화
“아. 의뢰주가 왔나 보네.”
아쉬웠는지 말콤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았지만 의뢰주가 도착했으니까 멈춰야 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말하려고 했던 거야?’
말콤의 생각을 알아차린 에르딘은 새하얗게 안색이 질리고 말았다. 입에 혀가 아니라 뭘 달았는지 몰라도 2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계속 떠든 말콤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할 말이 많이 남은 것처럼 보였다.
내심 얼른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말콤은 그럴 생각이 없는지 멀뚱멀뚱 서서 의뢰주가 나타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에르딘이 끙- 하고 앓는 소리는 내며 제론을 쳐다봤다.
한편 제론은 S등급 용병 ‘강철의 메이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게 S등급이라고?’
겉으로 드러난 기세와 속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붉은 질풍’이라는 녀석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붉은 질풍’은 A+등급이고 ‘강철의 메이스’는 S등급이다. 하지만 용병계에서 말하는 실력이 무엇인지 떠올려보자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실적이 중요하지.’
아무리 강해 봐야 의뢰를 실패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심지어 대부분의 용병들은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이리저리 사고를 치고 다닌다. 호위대상을 지키라고 했더니 갑자기 돌변해서 약탈자가 되거나, 힘으로 삥 뜯고, 여인을 겁탈하는 등 말이다.
안 그런 녀석들은 웬만한 귀족도 뺨 여러 번 날릴 정도로 교양이 있고 정신머리도 제대로 박혀 있지만 앞의 경우에 비하자면 소수에 불과했다.
‘용병계도 어느 정도 서비스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거지.’
제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에르딘이 옆구리를 콕 찔렀다.
“아론 님?”
“어, 왜?”
“바로 출발한다는데요?”
제론이 고개를 갸웃했다. 본래 예정된 출발일은 내일이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상상 이상의 사정이 제론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폭주하는 검은 바람’을 퇴치하기 위해 출발한 지 3일 뒤의 밤이었다. 말콤이 불쑥 찾아와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을 몇 시간 동안 주절거렸다. 에르딘의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본 그가 억울하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말했다.
“아. 정말이라니까?”
“퓨리온 공작이 네임드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다는 말은 믿겠지만 그다음 차례가 ‘폭주하는 검은 바람’이라는 거랑 의뢰주가 다급하게 움직이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예요?”
“아이고! 답답해라. 아론 형씨는 뭔지 알지?”
“그럼. 그럼. 알고말고.”
제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딘을 놀리기 위해 아는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알고 있어서 대답한 거다.
의뢰 계약서 내용만 봐도 안다.
다른 것을 빼고 마지막 조항인 ‘선금으로 전액을 지불하는 대신 몬스터의 사체는 의뢰주의 소유로 한다.’라는 내용만 봐도 딱 느낌이 온다.
“퓨리온 공작이 ‘폭주하는 검은 바람’을 처리하면 사체에 대한 소유권을 그쪽에서 가져가잖아. 그럼 어떻게 되겠어?”
“음.”
에르딘은 잠깐 생각에 잠긴 뒤 말했다.
“몬스터 사체의 소유권이 없으면 의뢰주들도 손해를 보는 상황인 거군요.”
“그래! 그거야!”
말콤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의 목소리가 제법 커서 주변 시선이 이쪽으로 모였다. 곧 다급하게 주위로 미안하다고 사과한 말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앉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폭주하는 검은 바람’이 여태까지 왜 퇴치되지 않은 거 같아? 사실 몇 년 전까지는 제국 내에 큰 피해를 입히지 않아서 그래. 다른 켄타우로스 무리랑 영역 싸움밖에 안 하니까 건드릴 필요가 없는 거지.”
켄타우로스는 말 수인에 가깝지만 결국 몬스터로 분류됐다.
그 말은 언어를 구사할 지능이 있지만 본능으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소위 말해 고블린이나 트롤과 비슷한 부류라고 보면 된다.
아무튼, 켄타우로스는 초식에 가까운 잡식성이라서 주 먹이가 과일이나 채소였다.
만약 그것들을 구하지 못하면 사냥해서 고기를 섭취한다. 그래서 웬만한 경우가 아니라면 잘 피해 다니기만 해도 공격을 받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여태까지 쭉 방관하고 있었지만 지난 몇 년 사이 보따리 상인이나 상단을 습격하는 빈도수가 늘어나며 엄청난 피해를 입기 시작했고, 결국 의뢰주들이 힘을 합쳐 대대적인 퇴치 의뢰를 넣은 것이다.
그런데 용병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켄타우로스 한 마리도 아니고 100마리의 무리와 싸운다는 의뢰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으니 의뢰보수를 확 높일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의뢰보수로 많은 손해를 보니 그것을 채울 방도가 필요했다. 그래서 넣은 조항이 ‘선금으로 전액을 지불하는 대신 몬스터의 사체는 의뢰주의 소유로 한다.’였다.
몬스터의 사체는 엄청난 돈이 된다.
고블린 같은 돈이 안 되는 놈들도 있지만 정말 소수에 불과했다.
켄타우로스는 가죽의 쓰임새가 여러 방면으로 다양했고 힘줄이 무척이나 질기고 단단해서 활이나 발리스타 같은 무기에 자주 사용된다.
게다가 켄타우로스의 고기는 녹색 피에 흐르는 독만 제거하면 아주 훌륭한 상등품의 보양식이어서 귀족들에게 불티나게 팔린다.
뼈도 공예나 무기의 재료로 사용이 가능하니 유일하게 버려야 하는 부위가 내장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용병들에게 지급한 고액의 의뢰보수를 다시 회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퓨리온 공작이 먼저 토벌을 한다면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게 되고 꼼짝없이 돈만 날리게 된다.
“…해서 의뢰주들의 발등 위에 불똥이 튄 거나 다름없지.”
사실 용병들은 퓨리온 공작이 먼저 토벌하는 게 더 좋았다. 고액의 의뢰보수를 선금으로 전부 받았지만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내심 모두가 마음속으로는 자신들이 도착하기 전에 퓨리온 공작이 토벌을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는 상태였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야 이러든 저러든 상관은 없지만 이왕이면 네임드와 싸우는 게 좋긴 하지.’
제론과 에르딘이 빠르게 눈빛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런 와중에서도 말콤은 쉬지 않고 말을 떠벌떠벌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네임드 몬스터의 몸속에는 마정석이 있다고?”
“뭐?”
“예?”
제론과 에르딘이 눈빛의 대화를 멈추고 동시에 반문했다.
두 명의 시선에 말콤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가, 갑자기 왜 그래?”
“네임드 몬스터의 몸속에 뭐가 있다고?”
“네임드 몬스터의 몸속에 뭐가 있다고요?”
“마, 마정석……?”
에르딘은 제론을 쳐다봤다.
제론이 나라를 잃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삼매진화로 통째로 태워버렸는데?’
‘안개 속의 사냥꾼’은 제론의 손에 죽었다. 혹시나 재생하지 못하도록 삼매진화로 재조차 남지 못하게 완전히 활활 불태웠다.
그 말은 즉 마정석도 함께 불탔다는 뜻이다.
‘아.’
제론은 현기증이 났다.
이 세상에서 환생한 이후 처음으로 눈앞이 어질했다.
‘내 마정석.’
이래서 아는 게 힘이라는 말이 나온 거다.
* * *
말콤은 말이 많지만 눈치는 빠른 친구였다.
분위기가 묘해지자 입을 꾹 다물고 힐끔 살피더니 제론의 표정이 좀 나아지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거, 아론 형씨 괜찮아?”
“괜찮아.”
전혀 안 괜찮았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계속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한차례 심호흡을 해서 잡생각을 떨쳐냈다.
“안 괜찮아 보이지만 괜찮다고 하니 그렇게 생각할게.”
“그래. 그렇게 생각해줘. 안 그러면 좀 내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날 것 같거든.”
“그 말이 더 무서운데.”
말콤은 작게 중얼거리며 힐끔 눈치를 살폈다.
그사이 휴식 시간이 끝났다.
다시 이동하는 내내 말콤은 입을 다물고 눈치만 살폈다. 정말로 제론이 안 괜찮은 것을 안 것이다.
밤이 되자 숙영지를 찾아서 구축하고 식사를 했다.
1천 명의 숫자이다 보니 숙영지를 구축하는 시간만 1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전부 숙련된 용병이라서 짧게 걸린 것이다.
초짜들밖에 없었다면 1시간이 아니라 그 2배는 걸렸다.
이튿날 아침 해가 뜨자 다시 출발했다.
‘폭주하는 검은 바람’의 영역은 꽤나 넓었다. 거대한 초원이 전부 놈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놈의 무리를 찾는 시간도 제법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용병들이 워낙 자유분방하니 사건 사고가 많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S등급 용병 ‘강철의 메이스’가 직접 통제하자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작은 사고까지는 막지 못했다.
그러니까 사소한 시비 같은 것 말이다.
“X발! 그러니까 한판 붙자고!”
“오냐! 오늘 네 눈탱이를 아주 밤탱이로 만들어주마!”
“드루와!”
용병 2명이 ‘내가 더 세다.’, ‘아니다. 내가 더 세다.’로 말다툼을 하다가 주먹질까지 이어졌다. 결론만 말하자면 둘 다 비슷비슷한 실력이라서 2명 전부 눈탱이가 밤탱이가 됐다.
“오늘도 시끌벅적하고 활기차니 좋네요.”
에르딘은 처음 용병들의 저런 모습을 보고 걱정을 많이 했지만 흔한 일이라는 것을 안 뒤로 태연하게 감상평까지 늘어놓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시X! 드루와!”
“오냐! 드루간다!”
또 어떤 용병들이 주먹질을 하려고 하자 제론이 에르딘에게 내기를 제의했다.
“누가 이길지 내기. 콜?”
“제가 불리하니까 거절!”
“에이. 네가 왜 불리해?”
“아론 님한테는 누가 이길지 딱 보이잖아요.”
“아니라니까? 그거 다 우연이야.”
“저한테 벌써 10실버나 뜯어가셨으면서 무슨.”
에르딘이 콧방귀를 뀌었다.
제론은 아쉬움의 입맛을 다시고 말콤을 쳐다봤다. 녀석도 손을 X자로 교차하며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살살 꼬드기면 넘어왔던 에르딘과 달리 말콤은 눈치가 워낙 빨라서 처음부터 내기를 하지 않았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눈에 딱 보인다는 표정이었다.
“하여간 사기꾼.”
“내가 무슨 사기를 쳐? 저 2명만 해도 실력이 도찐개찐이잖아.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 결과가 확확 바뀐다고. 그것까지 내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해.”
사실은 예측 가능했다.
에르딘이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제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곧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기꾼.”
“짜식. 눈치가 많이 늘었네.”
“제가 좀 빨리빨리 늘죠.”
에르딘은 헛기침을 하며 뿌듯해했다.
* * *
퓨리온 공작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곧 ‘폭주하는 검은 바람’의 영역에 들어선다. 놈들의 누린내가 코끝을 아릿하게 찌른다.
“척후조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
기사의 보고에 퓨리온 공작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돌아온 척후조의 보고를 들은 퓨리온 공작의 미소가 짙어졌다.
‘폭주하는 검은 바람’과의 거리는 고작 하루 차이였다.
‘천천히 말려 죽여주마.’
실패는 한 번으로 족했다.
* * *
추적조 용병들이 ‘폭주하는 검은 바람’의 흔적을 발견하고 돌아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지나간 흔적이었다. 이제 곧 놈들과 조우한다.
그 사실이 용병들을 긴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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