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13)
제113화
113화
“어.”
제론은 대답하며 앞에 있는 켄타우로스의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콰득- 머리가 180도 돌아가며 쓰러진다.
주변에서 깜짝 놀라 쳐다봤지만 아주 잠시에 불과했다. 외각에서 들이닥친 또 다른 켄타우로스 무리의 공격에 맞서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론은 켄타우로스를 공격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지상으로 시선을 두지 않았다는 말이 맞았다.
“제론 님?”
에르딘은 창으로 켄타우로스의 목을 꿰뚫은 뒤 다가왔다. 제론이 살짝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주위에서 켄타우로스 무리와 용병들의 접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위.”
들려오는 제론의 목소리에 에르딘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날파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날파리가 점차 커져 갔다. 머지않아 날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하피! 제론 님! 하피예요!”
하피Harpy는 여자의 머리에 독수리의 몸을 가진 몬스터였다. 켄타우로스처럼 언어를 구사할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본능에 충실한 녀석들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철저한 육식이라는 것이다.
몬스터가 주식이지만 인간 남자를 발견하면 납치해서 잔인하게 괴롭히며 내장까지 파먹어버린다. 그래서 하피에게 잡혀간 남자는 뼈도 못 추린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하, 하피다!”
용병들이 한발 늦게 하피를 발견하고 외쳤다.
켄타우로스와 싸우던 용병들은 당황하며 ‘강철의 메이스’를 바라봤지만 그는 ‘폭주하는 검은 바람’과 싸우고 있어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상황이 못 됐다. 함께 놈을 상대하고 있던 ‘달빛 아래의 은빛 섬광’ 용병단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사실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켄타우로스를 상대하기 위해 훈련을 받은 용병단원들이었지만 ‘폭주하는 검은 바람’이 휘두르는 전투 도끼를 단 한 번도 피하지도, 막지도 못했다.
머리가 반으로 쪼개지며 뇌수가 뿌려졌다. 허리가 절단되어 내장이 흘러나왔다. 죽지째 잘려나간 사지는 뜨거운 피를 토해내며 펄떡펄떡 튀었다.
‘달빛 아래의 은빛 섬광’ 용병단은 다른 누군가에게 명령이나 지시를 내릴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기도 바쁜 상황이었던 것이다.
“으아아아! 살려줘!”
하피의 공중공습에 첫 피해자가 나타났다.
B등급의 이름 모를 용병이었다.
용병은 하피의 발톱에 낚아채어 높게 떠올랐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발톱이 어깨 깊게 박혀 있어서 소용없었다.
바로 그때 에르딘이 켄타우로스의 어깨를 밟고 뛰었다.
“하압-!”
창이 하피의 날갯죽지를 꿰뚫었다.
“캬아악-!”
하피는 고통스러워하며 발톱에 힘이 풀렸고 용병이 땅으로 떨어졌다.
쿵-!
제법 높은 곳에서 떨어졌지만 용병은 가까스로 낙법을 펼쳐 최대한 충격을 없앴다. 엉거주춤 일어나 에르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려는 순간 켄타우로스의 앞발이 용병의 머리를 박살 냈다.
에르딘이 입술을 깨물고 용병의 머리를 박살 낸 켄타우로스의 가슴에 창을 박아 넣었다. 심장에 확실하게 찔러 숨을 멎게 만들었다. 그리곤 재빨리 주변을 확인했다.
‘제론 님?’
제론이 보이지 않았다. 좀 더 주변을 살펴보려고 했지만 켄타우로스 4마리가 합공해 왔다. 빠르게 창을 회수하며 신법과 보법을 섞어 놈들을 상대했다.
에르딘의 창이 켄타우로스 한 마리의 복부를 꿰뚫은 순간 하늘에서 하피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캬아악-!”
“캬악-!”
깜짝 놀란 에르딘이 고개를 들자 제론이 하피 6마리를 순식간에 찢어 죽이는 모습이 보였다. 공중에서 용병들을 공습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던 하피들이 제론을 피해 달아나려고 했다. 하지만 회색빛 섬광과 함께 전부 땅으로 떨어져 처박혔다.
곧 제론이 에르딘의 앞에 착지하며 주먹으로 켄타우로스 한 마리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왜 멍 때리고 있어?”
“방금 그거 뭡니까?”
“뭐긴 뭐야. 무공이지.”
“……?”
에르딘은 방금 전에 본 광경이 자신이 알고 있는 무공이 맞는지 의심되었다. 하지만 고개를 흔들어 의심을 떨쳐냈다. 이런 생각을 할 시간에 켄타우로스를 한 마리라도 더 없애야 했다.
“무슨 방법 없어요?”
“지금의 나로서는 불가능해.”
제론이 두루뭉술한 대답을 했다. 하지만 에르딘은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지금의 경지로는 피해가 없이 이 상황을 종결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이게 전부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에르딘은 제론의 표정이 아까부터 계속 살짝 굳어진 채 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시선을 옮겼다.
그 순간 흑마법사의 존재가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바후르 도적단과 흑마법사의 관계를 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상된 것이었다.
“폴른 제국으로 넘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큰 사건에 휘말렸는지 원.”
제론이 골치 아프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거 완전 코X이나 김X일이잖아?”
농담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생존자는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일일이 쫓아가 구해주기도 힘들다.
‘그래도 최대한…….’
제론은 생각을 멈추고 어딘가로 시선을 옮겼다. 또다시 땅을 흔드는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새로운 적이 나타난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금방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햇볕에 전투마의 갑옷이 반짝거렸다.
기병騎兵이었다.
퓨리온 공작이 선두에서 기병들과 함께 달려오고 있었다.
* * *
“모두 쓸어버려라!”
퓨리온 공작이 명령을 내리자 기병들은 켄타우로스 무리를 공격했다. 자욱한 먼지구름은 용병들에게 엄청난 위압감을 줬지만 적인 켄타우로스 무리만큼은 아니었다.
“푸르릉-!”
‘폭주하는 검은 바람’이 콧김을 뿜어내며 전장을 둘러봤다.
퓨리온 공작과 기병들이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켄타우로스 무리가 벌써 절반이나 쓰러졌다. 용병들과 싸운 피해를 제외한 것이다. 그것까지 포함시킨다면 70프로의 전력이 손실되었다. 하지만 ‘폭주하는 검은 바람’은 물러나지 못했다. 몬스터의 본능 때문이 아니었다. 용병들을 전멸시키라고 한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퓨리온 공작님께서 오셨다!”
“폴른 제국의 기병이다!”
용병들이 사방에서 고함을 질렀다. 사기진작을 위해서였다. 그 효과는 대단했다. 켄타우로스 무리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용병들이 서서히 역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의 기습이 오히려 함정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1천여 명의 용병 중 100명 정도가 한순간에 켄타우로스 무리의 돌진에 죽거나 다쳤다.
그 뒤로 이어진 접전에서 100명의 사상자가 생겼고 퓨리온 공작과 기병이 도착하기 전까지 2배의 피해를 입었다.
반대로 켄타우로스 무리의 피해도 엄청났다.
용병들이 어떻게든 살아 돌아가기 위해 악에 받쳐 싸웠고 1마리 2마리 쓰러지다 보니 어느새 무리-다른 무리까지 포함한 것이다-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마저도 하피가 공중에서 공습을 해 피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
제론이 하피를 처리하며 줄어들었지만 말이다.
지풍을 날려 하피를 한 마리씩 격추시키며 퓨리온 공작의 표정을 확인했다. 켄타우로스 무리와 하피의 존재에도 의아해하거나 놀란 기색이 없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있었거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퓨리온 공작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네.’
제론은 후자에 무게를 더 올렸다. 바후르 도적단과 흑마법사의 관계를 누구보다 먼저 알게 된 퓨리온 공작이었다. 폴른 제국의 정보력을 총동원했다면 미리 정보를 알아냈어도 이해가 되었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충-!”
퓨리온 공작의 오러가 담긴 목소리가 전장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폭주하는 검은 바람’을 상대해서 끝내 목까지 베어낸 퓨리온 공작이 마지막으로 시선을 둔 곳을 놀랍게도 제론이었다.
‘어?’
제론은 내심 당황했지만 담담한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쳤다. 곧 알아차렸다. 퓨리온 공작의 머리카락 뿌리가 전보다 더 갈색이 많아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는 조금만 자세히 봐도 눈에 확 띨 정도로 길어진 것이다.
‘깨달음을 거의 다 흡수한 건가?’
정체 모를 힘을 사용하던 아브람도 오러 마스터 시무르 칸을 상회할 정도로 강자였지만 퓨리온 공작은 그 이상이었다. 오러 마스터보다 높은 단계인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들어서는 중이리라.
퓨리온 공작은 제론이 여태까지 본 강자 중에서는 최강이었다.
‘쓰읍.’
제론은 호승심이 생기는 것을 꾹 억눌렀다.
바로 그때 퓨리온 공작이 고삐를 돌려 이쪽으로 왔다.
다각. 다각.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폭주하는 검은 바람’의 목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켄타우로스 무리와 하피가 남아 있었으니까.
그러나 누구도 퓨리온 공작과 제론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거대한 벽에 둘러싸인 것처럼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퓨리온 공작의 짓이다.
‘오러 컨트롤이 생각보다 더 뛰어나네?’
그런데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제론의 앞까지 온 퓨리온 공작이 조용히 말했다.
“그때 종탑에 있던 게 그대인가?”
“종탑?”
제론은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했다. 에르딘이 보았다면 ‘사기꾼!’이라고 외치며 손가락질할 정도로 뻔뻔한 연기였다. 하지만 퓨리온 공작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지금 느껴지는 그대의 기운은 종탑 위에서 날 지켜보던 존재의 기운과 똑같군.”
“……!”
제론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역시 떠보는 게 아니었다.
내공의 옅은 흔적을 느끼고 확신한 것이다.
“역시 그대가 맞군.”
“휴우. 어떻게 알았어요?”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종탑으로 올라가서 확인했지. 그런데 누군가 서 있던 흔적이 남아 있더군. 자세히 살펴보니 오러와는 다르지만 비슷한 기운이 은은하게 남아 있는 것을 느꼈고. 그런데 하피를 격추시키는 신기한 기술을 펼치는 용병이 있기에 보다 보니 종탑에 남았던 기운과 똑같을 것을 알게 되고 확신했다네.”
퓨리온 공작은 놀랍게도 호의적인 미소를 보냈다. 제론처럼 호승심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강자에 대한 순수한 호의를 내비치는 것이었다.
이는 제론의 강함을 정확하게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풍을 쏴 하피를 격추시킬 때 내공의 기운을 느꼈지만 제론의 단전에 똬리를 틀고 있는 거대한 내공 덩어리까지는 꿰뚫어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신기한 기술을 익혔다고만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문득 퓨리온 공작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대는 내가 두렵지 않은가?”
“왜 두려워해야 하는데요?”
“…….”
역으로 질문이 되돌아오자 퓨리온 공작은 침묵으로 당황했다는 사실을 대신했다. 동시에 깨달았다.
‘진심이로군.’
저 젊은 용병은 정말로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