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16)
제116화
116화
“페리안 가문이라면 오른 왕국의 봉신가로군.”
“……?”
제론은 슬슬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오른 왕국에서는 그러려니 했다.
아빠가 아이언하트 공작, 그리고 국왕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고 해도 살짝 의아해하며 무언가 숨겨진 비밀이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대단한 비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비밀을 숨기고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 티가 안 났으니까.
‘비밀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만.’
몇 가지 의미심장하게 들린 말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페리안 가문이 사실 알고 보니까 오른 왕국의 수호자였다거나 특별한 힘을 갖고 있다는 종류의 느낌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주 어렸을 적에 저택 곳곳을 수색하고 다닌 적이 있었다.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판타지 소설을 보면 영주성이 포위당하면 귀족들이 비밀통로로 은밀하게 탈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제론도 페리안 남작 저택에도 외부로 나가는 비밀통로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궁금해한 것이다.
결론만 말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비밀통로는 고사하고 숨겨진 공간도 없었다. 하지만 퓨리온 공작이 풀 네임을 듣자 바로 저 말부터 하는 것을 보니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으음. 착각이겠지.’
분명히 착각일 것이다.
“내가 그대의 가문을 알고 있는 게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퓨리온 공작이 제론의 표정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제론은 잠시 머뭇거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솔직히 말하면 뭐.”
“그대는 참 솔직하군.”
“제가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긴 하죠.”
“뻔뻔하기까지 하니 금상첨화로군.”
“칭찬 감사합니다.”
퓨리온 공작은 눈살을 찌푸린 채 혀를 찼다. 뻔뻔한 데다가 뒤끝까지 엄청 심한 녀석이다. 하지만 페리안 가문이라는 말은 거짓말 같지 않았다. 그는 오러 마스터가 되면서 사람의 몸 주위로 흐르는 기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기운의 정체는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생명력이다.
다른 오러 마스터들은 갖지 못한 퓨리온 공작만의 전유물이었다.
타인의 생명력이 보이는 이유는 당사자인 퓨리온 공작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었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제론의 몸 주위로 흐르는 생명력은 말을 하는 내내 흔들리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면 조금이라도 동요하거나 흐름이 변하기 마련인데 바람 한 점 없이 고여 있는 웅덩이처럼 잠잠하다.
‘참 신기하군.’
오늘만 신기하다는 말과 생각을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제론이라는 존재가 퓨리온 공작에게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유형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저 기운이 너무 신경 쓰여.’
퓨리온 공작이 제론의 정체를 자꾸만 확인하고 싶었던 이유는 그의 눈에 보이는 생명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또 다른 기운이 보이고 느껴진다. 정확하게 꿰뚫어 보지는 못했지만 무척이나 파괴적이고 흉악한 회색의 기운이었다.
아마도 제론만이 사용하는 특별한 기운이리라.
‘저런 기운을 가진 존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군.’
퓨리온 공작은 다시 한번 기억을 상기시켰으나 역시나 찾지 못했다. 더욱 위험한 점은 제론의 강함이 예측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크고 강한 적이 되기 전에 제거하려고 생각한 것이기도 했다. 만약 적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약할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거해야 한다.
‘설령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실패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이런 강력한 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전 대륙에 알려진다.
모든 국가에서 경계하고 대비할 것이다.
‘아까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
여전히 위험의 요소는 맞지만 아주 살짝 생각이 변했다. 제론의 정체가 오른 왕국 페리안 가문의 차남이란다. 지금은 비록 가세家勢가 쇠하여 변방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지만 사실 페리안 가문은 단순한 봉신가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대는 자신의 가문에 대한 비밀을 알지 못하는 모양이로군.”
“맞아요. 다들 뭔가 있다는 것처럼 말하는데 알려주지는 않더라고요.”
“그렇다면 외인外人인 내가 함부로 말하는 건 곤란하겠어.”
“전혀 곤란하지 않…지만 말해줄 생각이 없어 보이시네요.”
제론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영감도 어지간히 뒤끝이 심하다.
“오해는 풀린 것 같으니 이만 일어나는 게 어떤가?”
“바후르 도적단과 흑마법사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요.”
“그건 곤란하네만.”
“저에 대한 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놓고서 이제 와서 곤란하시다고요?”
“아아. 아무래도 오해를 한 모양이군. 내 말실수를 인정하네.”
퓨리온 공작은 인상을 찌푸린 채 쳐다보는 제론을 진정시켰다.
제론이 무슨 오해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바후르 도적단과 흑마법사에 대한 정보는 세상에 알려진 것이 전부라네. 그 이하는 있어도 그 이상은 없지. 그러하니 더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수가 없다네.”
“하아. 시간만 낭비했네.”
퓨리온 공작이 헛웃음을 들이켰다. 매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공작령을 방문한다. 먼발치에서라도 보면 다행이라며 돌아가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이렇게 독대를 갖는데도 시간이 아깝다고 하는 사람은 난생처음이었다.
“허허…….”
제론은 허탈하게 웃는 퓨리온 공작을 보며 생각했다.
‘영감이 실성했나?’
* * *
천막으로 돌아오자 에르딘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얘기 했어요?”
“쓸데없는 얘기만 잔뜩 했지.”
“역시 그렇군요.”
“역시라고?”
“제론 님 표정이 꼭 똥이라도 밟은 사람 같은 걸요.”
제론이 손으로 얼굴을 만졌다. 이곳저곳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설마 퓨리온 공작 앞에서도 이런 표정을 지었나 싶었지만 아무렴 상관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차피 또 볼 사람도 아닌데.’
그때 에르딘이 말했다.
“설마 퓨리온 공작님 앞에서도 그런 표정으로 있었던 건 아니죠?”
“…….”
“나중에 다시 만나면 어떡하려고요?”
“만날 일이 또 있나?”
“바후르 도적단이랑 싸울 때 다시 만날 거 아니에요!”
에르딘이 답답했는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말했다.
제론은 그제야 그 사실을 떠올리고는 잠시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아.”
“‘아’? 역시 생각 못 했구나. 하긴 그럼 그렇지. 제론 님이 그럼 그렇지. 뒤끝은 심하지만 뒷일은 생각 안 하시지.”
“거. 미안하게 됐수다.”
“미안하긴 하지만 나중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시지. 그럼 그렇지.”
주변 인물들은 왜 하나같이 다 뒤끝이 심한지 모르겠다.
정작 스스로에 대해서는 1도 생각하지 않은 제론이었다.
* * *
마차와 짐꾼들이 도착해서 몬스터의 사체를 전부 챙기고 돌아가자 ‘폭주하는 검은 바람’의 퇴치 의뢰가 완전히 끝났다.
도시로 복귀하자 말콤이 아쉬운 소리를 했다.
“아론 형씨 따라다니고 싶은데 안 되겠지?”
“살고 싶으면 안 따라오는 게 좋을 거야.”
“하긴. 형씨들 실력이라면 위험하거나 네임드 몬스터 퇴치 의뢰를 받아서 다닐 테니까. 내가 꼈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게 뻔해. 나중에 또 만나게 되면 술이라도 한잔하자고.”
말콤은 손을 흔들어 인사하며 떠났다. 그렇게 주변이 조용해지자 묘한 적막이 흘렀고 제론의 옆에서 걷던 에르딘이 볼을 긁적이며 그것을 힘겹게 깨트렸다.
“뭔가 좀 어색하세요.”
“야, 너두? 야, 나두!”
제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멈춰서며 받아쳤다.
함께 의뢰를 하며 몇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떠들던 말콤이었다. 존재감 하나는 누구와도 비교하지 못할 만큼 컸다.
솔직히 말해서 폴른 제국의 오러 마스터 퓨리온 공작보다 말콤이 기억에 많이 남을 정도였다. 막상 그가 떠나고 나니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유를 생각해보면 오죽하나 싶었다. 그렇게 조용히 좀 하라고 말해도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떠들어댔던 녀석이니만큼 빈자리가 클 수밖에 없던 것이다.
“거기에서는 행복하게 지내라.”
“안 죽었거든요?”
에르딘은 말콤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하는 제론에게 툭 쏘아붙였다.
그렇게 며칠 뒤.
“어?”
“어어?”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말콤과 마주쳤다.
“아론 형씨! 에르딘 형씨도 있잖아?”
“의뢰 취소할까?”
“던전 탐험하자고 한 게 누구인데요?”
제론과 에르딘이 작게 쑥덕거렸다.
* * *
“…그러니까 이 던전은 말이야. 고대시대에서도 가장 황금기를 맞이했던 아먀르 제국의 궁중 마법사가 말년에 여생을 보내기 위해 살았던 실험실인데 코어Core가 폭주하면서…….”
말콤은 던전으로 가는 동안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에르딘이 잠시 그의 말을 멈췄다.
“잠깐! 잠깐만요. 말콤 씨는 그런 사실들을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그야 다 주워들었지. 주점이나 여관, 용병 길드에서 있다 보면 들려오더라고.”
“가짜 소문은 아니고요?”
“내가 그 정도도 구분 못 할까.”
말콤이 피식 웃으며 말하는데 엄청난 자신감이 느껴졌다.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용병이 아니라 정보기관에 들어갔어야 했던 거 아냐?’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제론과 에르딘이 눈빛으로 짧게 대화를 나눴다. 게다가 말콤은 정보수집능력만 뛰어난 게 아니라 박식하기까지 했다. 용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만났다면 역사학자라고 정체를 밝혀도 믿었을 것이다.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코어가 폭주했다고 얘기했어요.”
“아아. 고마워. 형씨. 아무튼, 코어가 폭주하면서 마나가 불규칙하게 되었고 물질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
“그, 글쎄요?”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거야. 사람… 아니 동식물까지 마나 중독을 넘어서 침식시켰지. 그래서 막 변이를 시킨 거야. 평범한 토끼가 갑자기 2m의 설인처럼 커다랗게 변한 거지.”
말콤은 흉내라도 내는 것처럼 양손을 번쩍 들며 크왕- 하고 소리를 냈다. 역사학자에 이어 마법사, 아카데미 교사라고 해도 믿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마나 중독이 뭐예요?”
“마나 중독은 정제시키지 않은 마나에 오랜 시간 유출이 되면 천천히 몸속으로 스며드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게 말로만 들으면 오러 유저나 마법사처럼 오러 홀 혹은 써클이 생기지 않냐 하지만 실제로는 독에 중독된 것처럼 악영향을 미쳐. 조금의 양이라면 자연스럽게 배출이 되지만 밀도가 높을수록 점점 변이를 일으키게 되는 거지.”
에르딘 학생의 질문에 말콤 선생은 친절하게 대답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제론은 질색을 하며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이 새끼나 저 새끼나.’
제론이 보기에는 에르딘이나 말콤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뭐가 그렇게 궁금하다고 질문을 하고 답변까지 한단 말인가.
‘잠깐만.’
제론은 다른 시각으로 말콤을 바라봤다. 저 정도 능력이면 페리안 가문으로 끌어들여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부감이 들었다.
‘왜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제론은 몇 시간 동안 고민에 잠겨야만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