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19)
제119화
119화
“이거 너무 휑한 거 아냐?”
제론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던전이라고 해서 특별히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이건 휑해도 너무 휑했다. 거대한 동굴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건 가히 충격적이었다. 무언가 있었다는 흔적만 곳곳에 남아 있었다.
“아.”
말콤은 그 이유를 알고 있는지 짧게 소리를 내고 말했다.
“원래는 이 안에 이것저것 잔뜩 있었는데 다 치웠어.”
“치웠다고?”
“어. 전부 다 아티팩트라고 하더군. 그래서 연구를 하려고 가져갔는데 특별히 나온 게 없다던가? 영구보존마법이랑 아공간 마법이 인챈트 되었다고 하던데 워낙 오래돼서 까딱 건드렸다가는 분석도 못 하고 부서질 거 같아서 황실의 창고에 짱박아 뒀다고 하더라고.”
제론과 에르딘은 서서히 말콤이 이러한 사실들을 어떻게 아는지 신경 쓰지 않기 시작했다.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론의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도라X몽이었다. 필요한 물건을 그때마다 꺼내주는 게 아니라 지식을 알려주는 점에서 다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말콤은 아주 훌륭한 스피드 웨건이었다.
“그런 이유로 마법 연구는 못 했지만 다른 조사는 대충이라도 했다는데 별거 안 나왔어. 침실이라고 해서 뭔가 숨겨둔 게 잔뜩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는데 헛물만 들이켠 거지.”
“혹시 마법일지가 발견된 곳이 침실이야?”
“어? 내가 그걸 말했었나?”
“아니. 그냥 예상해본 거야.”
말콤은 감탄하며 제론에게 엄지를 세웠다.
“맞아. 마법일지가 발견된 곳이 침실이었어. 으음. 그거 말고는 딱히 해줄 이야기가 없네. 그런고로 이제 탐사를 시작해보자고.”
“탐사 시작!”
에르딘이 하늘로 주먹을 뻗으며 외쳤다.
곧 말콤과 에르딘은 넓게 흩어져서 벽이나 땅을 두드렸다.
툭툭.
“계세요?”
“뭐 하냐?”
제론이 벽을 두드리며 공손하게 여쭙는 에르딘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누가 안에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여기에? 누가?”
“던전의 ‘망령’이라던가 마법 생명체요.”
“아. 그러고 보니 그런 게 있다고 했지.”
제론이 말콤의 말을 상기시키며 돌아섰다. 던전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들었던 말이다. 그런데 침실에 도착하기 전까지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물어보기도 전에 말콤이 말했다.
“‘망령’이나 마법 생명체가 있는 곳은 더 깊숙하게 들어가야 해. 하지만 되도록 가지 않는 걸 추천해. 특히 ‘망령’은 매우 위험하니까.”
“‘망령’은 물리적인 타격으로 처치하지 못해서 그런 거예요?”
“뭐, 그것도 있고. 정신공격을 당하면 후유증이 심하다는 이유가 더 커. 으음. 괴로웠던 기억을 재연시켜준다거나 악몽을 꾸게 만든다던가? 아무튼, 그런 쪽의 정신공격이라고 하더군. 나도 그건 좀 무서워서 ‘망령’이 있는 곳까지는 안 가봤어. 뛰어난 능력을 가진 용병들이나 기사들 혹은 마법사들은 가본 모양이지만 말이야.”
“재밌겠네.”
“어헉?! 나는 절대로 안 갈 테니까 가자고 말도 꺼내지 마. 훠이훠이!”
“싱겁기는.”
제론도 에르딘의 옆에서 떨어져 침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내공을 흘려보낸다면 탐색하기 편하겠지만 던전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일일이 손으로 만지거나 두드려서 확인해야 했다.
‘전부 가공한 건가?’
침실을 둘러보던 제론이 생각했다. 일일이 전부 다듬은 것처럼 벽과 바닥이 매끄럽다. 이 정도나 되는 크기의 공간을 판 것도 대단하다.
고대시대에는 지금보다 마법이나 공학이 훨씬 더 발전해 있었다고 하니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혼자서 이런 공간을 여러 개나 만든 궁중 마법사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지 가늠되지 않았다.
‘역시나 재밌어.’
지금 시대가 아니라 고대시대에서 환생했다면 더 재밌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재미가 있었다.
어딘가에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가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가슴이 거칠게 뛰며 활력이 솟아난다.
‘무림은 생각보다 좁았지.’
땅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구의 숫자를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유민현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갑자기 무림으로 뚝 떨어져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살았다.
오직 생존이라는 목적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니, 다른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지 않아서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가족의 존재가 커.’
유민현은 외로웠다.
무림에서 뿐만이 아니라 현대에서도 홀로 살았다.
하지만 제론은 달랐다.
아빠가, 엄마가, 형과 누나가 있다.
“어?”
제론은 문득 최근에 편지를 쓴 기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억을 되짚어봤지만 적어도 6개월 동안은 없다.
“젠장.”
* * *
쥬페토는 아이리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찻잔을 기울였다. 최근에 바빠서 티타임을 갖지 못했다. 이번 티타임만 해도 2달 만에 겨우 만들어진 자리였다. 그런데 아이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니.’
나빴다는 말이 맞다.
이유?
막내아들한테서 6달 동안 편지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추적할 수 있죠?”
“……!”
쥬페토는 아이리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깜짝 놀라 마시던 차를 뿜을 뻔했다. 나오려는 기침도 억지로 막고 겨우 말했다.
“추…적은 사실상…… 힘들긴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소.”
쥬페토가 아이리와 시선이 마주치자 빠르게 말을 바꿨다.
어디로 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추적하라는 말인가?
“힘들다고요?”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면 좀… 아니 살짝 힘들긴 하지만 돈만 있으면 금방이오.”
쥬페토는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 막내아들이 서부대륙으로 넘어간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용병패가 사용되면 추적하는 건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하지만 오른 왕국, 더 넓게는 중앙대륙에서만 통용되는 말이었다.
“한 달.”
“한 달 안에 알아 오라는 말이오?”
“네.”
쥬페토는 ‘그건 불가능하오!’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아이리의 표정을 보니 그런 말을 꺼냈다가는 오늘 밤 침대 위에서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낼 것 같아서 꾹 참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또 끄덕이며 반드시 알아내겠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후우. 제론아. 도대체 후환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는 거냐.’
쥬페토는 마음속으로 막내아들을 원망했다. 여행을 갔으면 꼬박꼬박 편지라도 잘 보내지, 왜 자신한테까지 피해를 주는지 모르겠다.
* * *
“에르딘아.”
“예, 아론 님.”
제론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에르딘을 불렀다.
“에르딘아아아.”
“예에에, 아론 니이이임.”
“…….”
아무런 말도 돌아오지 않자 에르딘이 고개를 돌려 제론을 쳐다봤다. 곧 어깨를 으쓱인 뒤 침실 탐색을 계속했다. 제론의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아무렴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흘렀다.
“역시 아무것도 없는 모양인데?”
말콤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던전을 몇 번 와본 그는 이번만큼은 특별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그런 불상사를 저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에르딘은 처음과 다르게 살짝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던전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했는데…….”
“역시 ‘망령’이나 마법 생명체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하나?”
“어허! 나는 안 간다니까?”
에르딘의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말콤이 기겁했다.
“말콤 씨는 안 가셔도 돼요. 저랑 아론 님만 가면 되니까요.”
“그건 좀 섭섭한 말인데?”
“어쩌라고요?”
에르딘이 인상을 찌푸린 채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말콤은 쭈글해졌다.
한편 제론은 여전히 바닥에 손가락으로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어떡하지? 분명히 엄청 화나셨을 텐데. 그럴싸한 아티팩트라도 하나 건져가야 좀 화를 푸시려나? 아니야. 편지만 꼬박꼬박 썼으면 될 문제였는데 내가 왜 잊고 있었지? 미치겠네.”
“아론 님?”
“이대로는 안 돼. 아무리 의뢰를 받아서 떠돌아다니느라 편지를 쓸 상황이 안 됐다고 하지만 분명히 엄마라면 핑계라면서 등짝을…….”
“아론 님!”
“아이, 깜짝이야!”
궁상을 떨던 제론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도리어 놀란 것은 에르딘이었다.
‘뭐 하고 계셨기에 그러지?’
평소에는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알아차리고 먼저 고개를 돌리던 제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유령이라도 마주친 사람처럼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으니 괜스레 미안해졌다.
“기척 좀 내고 다녀라!”
“두 번이나 불렀는데요?”
“아… 아…?”
제론은 머쓱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표정을 보니 듣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아니 뭐… 별거 아니야.”
“흐응. 뭐 그건 그렇고 다른 곳으로 가는 건 어때요?”
“어디로 가자고?”
“실험실도 좋고 창고도 좋고 수련장도 좋은데… 아무래도 ‘망령’이 나온다는 곳이나 마법 생명체가 있는 곳으로 가면 뭔가 있지 않을까요?”
“으음. ‘망령’은 패스하자. 지금 가면 좀 그래.”
“……? 그래요. 그럼 마법 생명체가 있는 곳으로 가죠.”
“거기는 나도 갈 수 있어.”
쭈글해졌던 말콤이 말끔해진 상태로 끼어들었다.
* * *
침실로 들어온 길의 반대편에는 또 다른 통로가 있었다.
제론 일행은 그 통로를 따라 던전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앞서 던전에 들어온 용병들과 마주치자 가벼운 인사치레를 나누고 헤어졌다.
던전을 탐사하는 용병들은 거기서 거기였다. 어느 정도 안면식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일일이 찾아가 인사를 하고 그러지는 않는다. 처음 본 제론과 에르딘이 있어서 살짝 호기심을 드러내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마법 생명체라고 했지만 딱히 위험한 건 아니야.”
말콤은 여느 때처럼 스피드 웨건이 되었다.
“자아를 갖고 있거나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거든. 그래서 제국에서 가만히 내버려 뒀지. 아, 또 한 가지 이유가 있긴 해. 던전을 벗어나면 작동을 멈춰. 고장 난 것처럼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머리 위에서 김이 푸쉬쉬- 피어오르면서 멈추는데 다시 던전 안으로 가지고 오면 멀쩡해진다던가? 아무튼 그래.”
“던전에 종속된 건가 보네요?”
“내가 마법사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게다가 가지고 나가서 알아낼 만한 게 있었으면 진작 가지고 나갔겠지. 뭐… 이미 몇 개는 가지고 나가서 실험해봤을지도 모르고.”
말콤은 마법 생명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나중에 직접 보라면서 사소한 재미를 남겨줬다. 그때까지도 제론은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근심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갈림길이 나왔고 표지판을 확인하며 이동했다. 마법 생명체가 있는 장소에 도착한 순간 어둠의 정령 네로가 오랜만에 먼저 입을 열었다.
[하찮은 인간아.]“응?”
제론이 근심에서 잠깐 빠져나와 네로를 쳐다봤다. 귀찮게 말을 걸지 않는 이상 먼저 입을 여는 일이 잘 없던 네로였기에 놀라웠다. 하지만 녀석의 뒷말을 듣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