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20)
제120화
120화
[저건 마법 생명체가 아니다.]“마법 생명체가 아니라고? 그럼 뭔데?”
[융합 생명체라는 것이다.]제론이 잠시 마법 생명체-융합 생명체를 바라봤다. 흡사 윌 스X스 주연의 ‘아이, 로X’이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로봇과 비슷하게 생겼다.
세세하게 다른 점을 꼽자면 엄청 많겠지만 언뜻 보자면 그렇게 생겼다는 뜻이다. 굳이 다른 점을 꼬집자면 눈동자가 있어야 할 공간이 텅 비어 있었고 석상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말콤이 왜 위험하지 않다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보는 순간 ‘이것’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직감했다.
신체에서 마나가 느껴지지만 인간이나 몬스터처럼 이성이나 본능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명령이 없다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깡통 로봇이다.
‘그런데.’
제론은 네로의 목소리에서 분노를 느꼈다. 녀석의 그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슬쩍 에르딘을 쳐다보며 눈짓으로 말콤과 함께 다른 곳으로 잠시 빠져 있으라고 말했다.
“말콤 씨. 저건 뭐예요?”
“아, 저거? 저건 말이지…….”
에르딘이 고개를 끄덕인 뒤 말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제론은 두 사람이 멀어지자 네로에게 물었다.
“융합 생명체가 뭐냐?”
[말 그대로 여러 생명체를 융합시켜 만든 존재다.]네로가 짐승처럼 낮은 울음소리를 흘리듯 말했다. 녀석은 평소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심드렁하거나 무관심하다. 어떤 의미로 보면 자신과 많은 부분이 닮았다.
‘물론 까칠하다는 부분은 빼고.’
네로가 괜히 고양이의 모습을 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제론은 지금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다시 말하지만 네로가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는 굉장히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제론이 녀석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시대가 왜 종막을 고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지. 그 이유를 말해주마. 바로 인간들이 신이 되기 위해 참혹한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참혹한 행위를 해서 멸망 당했다고?”
[신화시대에는 수많은 종족이 신과 함께 어울려 살아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만하고 추악했던 존재가 있었다. 그래. 바로 인간이었다. 그들은 힘이 센 것도 아니었고 몸놀림이 빠른 것도 아니었다. 수명도 짧고 금방 노쇠해졌지.]신화시대의 인간은 근심하고 생각했다.
신은 어찌하여 우리를 이렇게 창조하였을까.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인간은 신과 가장 비슷한 형상으로 태어났다. 그러기에 가장 존귀한 존재이며, 동시에 신에 가까워질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라고.
[오만한 인간들은 스스로 신이 되려고 했다. 수많은 존재를 붙잡아 끔찍하고 참혹한 실험을 했다. 그 실험으로 태어난 존재가 바로 저 융합 생명체다.]사실상 흑마법의 시초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위의 이유가 신화시대의 종막을 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설마.’
네로의 말을 듣던 제론은 한 가지 가정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들은 것만 해도 신화시대의 인류는 지탄받아 마땅했다.
희생당한 종족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싹을 모조리 뽑아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저런 만행을 저질러도 신은 분노하지 않았다. 그럼 무슨 이유로 신은 분노한 것일까. 무엇 때문에 분노해서 신화시대를 종막 시켰을까.
그 가정은 네로의 입을 통해서 확신으로 변했다.
[끔찍하고, 참혹했던 실험은 계속됐지만 신에 가까워지기는커녕 발자국조차 밟지 못하자, 인간들은 오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금기를 어기기로.]인간들은 어리고 약한 신을 골라 납치했다. 존재를 해부하고 신성을 분석했다. 신들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찾아냈을 땐 어리고 약한 신은 이미 소멸하고 없었다.
[모든 신들이 분노했다. 신 가운데 신인 ‘그’를 찾아가 모든 일을 고했다. ‘그’는 노하였고 그 자리에서 신화시대의 종막을 선고했다.]신들의 분노가 온 땅을 뒤덮었다. 이윽고 신혈을 이은 존재들은 하나둘 중간계를 떠나 새로운 세계로 이주했다.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던 신화시대가 그렇게 종막을 맞이했다.
“그렇게 된 거구나.”
제론은 중얼거리며 융합 생명체를 바라봤다. 단순한 깡통 로봇으로만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다르게 보였다.
“이거는 어떻게 못 하냐?”
[이제는 불가능하다. 융합이 된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다.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 불쌍한 존재가 되었지. 그들의 속박을 푸는 방법은 영원한 안식을 주어 인도하는 것. 하지만 현시대의 마도 기술로는 불가능하다.]네로의 분노는 어느새 가라앉았고, 대신하여 융합 생명체를 향한 연민으로 변해 있었다.
“그럼 왜 얘네들은 던전을 나가면 고장 난 것처럼 작동을 멈추는 거야? 음. 그런 방법은 영원한 안식이나 속박을 푸는 것과 관련이 없는 건가?”
[그렇다. 이건 융합 생명체이기도 하지만 던전의 가디언이기도 하다. 던전은 단순히 몬스터의 소굴이나 지하에 위치한 감옥이 아니다. 특별한 힘으로 존재를 유지하는 특수한 공간, 비유컨대 신역神域을 모방해서 만든 곳이지.]“신역은 또 뭐냐?”
제론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단어의 뜻은 알지만 실제로 쓰이는 의미가 다르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냐하앙.]네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양이가 한숨을 내쉬는 모습은 굉장히 기묘하게 느껴졌지만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제론에게는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진짜 고양이처럼 행동하면 더 어색할 것 같다.
[신역은 신의 기적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쉽게 설명해서 자신의 신역 안에서는 전지전능해진다는 거지. 던전은 신역을 따라 해서 만들었지만 신격을 이루지 못한 존재에게 신성이 있을 리가 없었고 결국 모조품으로 끝났지. 그래도 얕봐서는 안 된다. 비록 모조품에 불과하다지만 그 힘이 평범한 것은 아니니까.]네로는 이 말을 끝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제론은 궁금한 것이 아직 많았지만 묻지 않았다. 어차피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가 아니면 입을 열지 않는 녀석이다.
이 정도만 해도 몇 달 어치의 말을 하루 동안 한 것이다.
‘그래도 궁금했던 것을 제법 많이 해소시켰으니 됐지.’
나중에 또 기회가 생길 것이다.
제론은 에르딘에게 대화가 끝났다는 신호를 보냈다.
* * *
잠시 시간을 돌려 한 달 전. 에버로스트 산맥의 어딘지 모를 깊은 곳에 검은 로브를 깊게 눌러쓴 남자가 방문했다.
“또 실패했더군.”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는 얼굴에 가로로 새겨진 흉터를 꿈틀거리다가 피식 웃었다.
얼굴의 흉터는 이제 막 아문 것처럼 붉은 기운이 선명했다.
“설마 내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탓을 한다면 나한테 있겠지. 게다가 네 녀석은 폴른 제국의 눈치만 살피느라 숨쉬기도 힘든데 네 탓으로 어떻게 돌려?”
“좀 짜증이 나긴 하지만 사실이라서 반박도 못 하겠군.”
흉터의 남자는 검은 로브의 경박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거슬렸지만 고개를 젓고선 물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
“최근에 거슬리는 녀석이 나타나서 말이야.”
“제거해달라고?”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네 녀석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거야.”
“호오.”
흉터의 남자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검은 로브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저렇게 말을 한다는 건 확신을 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뭐 하는 녀석이지?”
“‘안개 속의 사냥꾼’. 알지?”
흉터의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물었다.
“그 트롤 새끼 말하는 건가?”
“맞아. 그 녀석한테 상단을 습격하라고 지시했는데 상단은 무사히 복귀했고, 녀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공명의 연결도 끊긴 것으로 봐서는 완전히 소멸한 모양이야.”
“……!”
흉터의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트롤 새끼’라고 비하했지만 ‘안개 속의 사냥꾼’은 트롤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인 트롤 샤먼이었다. 트롤의 주술은 무척이나 괴이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싸운다고 해도 자신 역시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런 네임드 트롤 샤먼을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폴른 제국에서도 몇 없다.
“설마 퓨리온 공작이 나타났나?”
흉터의 남자는 얼굴의 상처가 욱신거리며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질문으로 했지만 내심 퓨리온 공작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검은 로브의 대답은 전혀 예상외의 것이었다.
“아니. 내가 말한 녀석은 A등급 용병 아론 다이트라는 놈이야.”
“A등급 용병이 그 트롤 새끼를 족쳤다고?”
“아마도. ‘안개 속의 사냥꾼’과 마지막으로 접촉한 게 녀석이거든.”
“눈에 거슬릴 만도 하겠어.”
남자는 욱신거리는 흉터를 만지며 사납게 대꾸했다.
검은 로브가 마지막으로 말하고 사라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하는 건데 아론 다이트라는 용병을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상처가 어쩌다가 생긴 건지 잊지 말라고. 바후르.”
까득!
흉터의 남자, 바후르는 검은 로브가 있었던 자리를 오랫동안 노려봤다.
* * *
“정말로 갈 거야?”
말콤이 꺼림칙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제론과 에르딘은 대답하지 않았다. 저 질문만 벌써 32번째였다. 슬슬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았다.
아무도 반응을 하지 않자 말콤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아 진짜 싫은데…….”
“그렇게 싫으면 따라오지 않아도 돼요.”
“그건 더 싫다고!”
에르딘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고 하니 이럴 때는 그냥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는 게 최고였다.
그리고 어차피.
“‘망령’은 조심해야 해. 농담이 아니라 진짜야. 아론 형씨랑 에르딘 형씨가 강하다는 건 알지만 정신공격은 진짜로 싸우는 거랑 다르거든.”
이렇게 열심히 TMI를 할 테니까.
에르딘은 말콤의 말을 새겨들으며 간간이 질문도 던졌다.
“정신공격을 방어할 방법이 있나요?”
“아티팩트나 보조 마법, 신관 혹은 사제의 신성 마법이 있으면 되겠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네요?”
“어, 음. 그렇다고 보면 되겠지.”
“그런데 잠깐 생각해봤는데, 정신공격을 막아줄 아티팩트를 미리 소지하고 들어오거나 보조 마법을 미리 걸고 들어오면 큰 문제가 없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왜 아직까지도 공략이 안 된 거예요? 솔직히 ‘망령’의 정신공격이 대단하다고 해봐야 아티팩트나 보조 마법만 있으면 해결되고, 물리적인 피해는 못 입힌다면서요.”
“던전이 공략됐다고 판정하는 경우는 크게 2가지야. 첫 번째는 던전이 제 기능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 경우지. 쉽게 설명을 하면 던전의 코어가 사라진 거랄까. 자연적으로든 어떠한 일로 인해서든 이유와는 상관없이 말이야. 두 번째는 던전의 목적을 완수했을 때고. 으음. 이 던전은 좀 특이한 경우지만 보통은 어떠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대표적으로 몇 년 전에 공략된 ‘탈로스의 미궁’이 그래. ‘탈로스의 미궁’은 던전 안에 있는 미로를 빠져나가면 엄청난 보물이 보상으로 주어져. 그러면…….”
제론은 두 사람의 대화를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생각했다.
‘생각보다 재미없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