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21)
제121화
121화
던전은 남자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로망이 존재하는 곳이다.
‘보물과 에고 소드! 용사와 마왕! 진한 사나이의 눈물!’
마지막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하지만 이곳은 너무 재미가 없었다. 말콤의 TMI가 아니었다면 지루해서 뛰쳐나갔거나 ‘망령’이 있다는 곳으로 직진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무림에도 이런 곳이 있었지, 아마?’
지금처럼 지루하고 재미없는 던전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죽음의 공포까지는 아니더라도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온갖 위협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그곳은 바로 진시황릉이었다.
중국 최초의 황제이자 최악의 폭군으로 불리는 진시황제는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불로불사에 집착해 사기꾼들에게 속아 잡초를 사들이거나 당시에는 귀금속이었던 수은을 사는 둥 국고를 낭비했다.
죽기 직전까지도 불로불사를 놓치지 못했던 진시황제는 사후세계에서도 자신을 지키라며 병마용을 만들기까지 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며 병마용에 영성이 깃들어 침입자를 공격하는 현대에서는 말도 안 된다며 손을 내저을 만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제론-유민현도 그 소문을 듣고 혹시나 거기에는 현대로 돌아갈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갔다. 여기서부터 이미 예상했겠지만 진시황릉에도 그런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자극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것에는 성공했었다.
진시황릉에는 부숴도 끊임없이 재생하는 병마용과 수천 년 동안 발견되지 않은 고대의 주술과 사술, 온갖 재주를 부리는 이매망량이 들끓었다.
‘그런데 여기는 뭐 별거 없네.’
다른 방을 돌아다녀도 비슷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곳을 다 뒤로 제쳐두고 ‘망령’이 있다는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아론 형씨!”
제론은 말콤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기분 나쁜 무언가가 몸속을 통과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보지 못했는데?’
머리카락이 쭈뼛 서서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 전 느낀 감각은 거짓이 아니었다.
“아론 형씨! 뒤로! 뒤로 물러나라고!”
말콤이 재촉하자 제론은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정확하게 두 걸음을 물러나자 조금 전의 감각이 사라졌다.
“이게 ‘망령’이라는 건가?”
“맞아!”
말콤은 새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목이 부러질 듯 끄덕였다.
맨 뒤에서 따라오던 에르딘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당황했으나 제론과 말콤의 반응이 심상치 않자 더는 앞으로 가지 않았다.
“거기서부터 ‘망령’의 영역이야!”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제론이 묻자 말콤은 잠시 횡설수설하더니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눈에 보이는 녀석들은 안쪽까지 깊숙하게 가야 한다고 들었어! 나도 이 이상은 들어간 적이 없어서 잘 몰라!”
“흐응.”
제론은 눈썹을 찡그린 채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냥은 못 들어가겠네.’
무림에서는 무공의 경지가 높아지면 주술이나 사술의 공격에 저항하기 쉽다고 말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무공의 경지가 낮을 때보다 높을 때가 더 강하게 저항이 가능하다는 것이지 절대로 쉽다는 말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무공과 주술, 사술은 애당초 수련하는 시작점부터가 다르다. 무공은 육체로, 주술과 사술은 정신으로 시작한다. 무공이 정신을 등한시하고 주술과 사술이 육체를 수련하지 않는다는 말도 아니다.
어느 쪽을 더욱 우선시하며, 어느 쪽으로 더욱 치중되어 있냐의 차이였다.
말은 즉, 제론이 웬만한 오러 마스터를 찜 쪄 먹을 실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술과 사술의 공격에서 완전한 저항은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무림인들은 저항하는 방법을 찾아냈지.’
제론은 두 눈으로 내공을 돌렸다.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났다.
투시안透視眼이었다.
글자로만 해석하면 ‘막힌 물체를 꿰뚫어 보는 눈’이지만 실제 효과는 볼 수 없는 존재를 보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안靈眼이 정확한 표현이었지만.
‘무림인들은 고집을 부려서 투시안으로 불렀지. 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곧 제론의 눈에 마나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마나의 선들.
바로 눈앞에는 일렁거리는 벽이 보였다.
정확하게 두 발자국 앞이었다.
‘진식陣式?’
아니.
무림의 진식과는 다르다. 결과물은 같지만 과정이 다르다.
‘이게 바로 고대의 마법진인가.’
던전은 마나의 잔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마법진의 안으로 들어가는 경계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살짝 의아한 것은 마법진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냐는 거다. 안으로 들어간 순간 환영을 봤다면 차라리 이해한다. 하지만 조금 전에 느낀 감각은 정신이 아니라 육체에 영향을 미쳤다.
‘내공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는 막지 못하는 건가?’
역혈마공의 구결을 따라 운기했다. 모세혈관까지 내공이 퍼진다. 다시 한번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기분 나쁜 무언가가 몸속을 통과하고 지나가며 또다시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아론 형씨!”
말콤이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귀를 닫고 내공의 흐름에 변화를 줬다. 하단전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중단전까지 움직였고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한 무언가에 저항했다.
-끼아아아악-!
머릿속에서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중단전으로는 저항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윽고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팠다.
‘저항을 하니까 오히려 정신공격이 심해진다고?’
마법진을 누군가 조종해서 집중적으로 제론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체적으로 가진 방어체계라고 할 수 있다. 강하게 저항할수록 더욱 강하게 공격한다. 정론에 버금가는 방어체계다.
이대로 무시하고 앞으로 가는 것도 가능했지만.
‘지금처럼 안전하게 정신공격을 막아내는 방법을 알아낼 기회가 드물지.’
제론은 한 발자국씩 전진했다.
앞으로 발을 내디딜 때마다 귀곡성이 점점 더 커져 갔다.
-왜 죽였어!
-왜 죽였냐고!
귀곡성은 곧 누군가의 원망으로 변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왜 죽였냐고 묻잖아! 귀랑鬼狼!
귀랑鬼狼!
오랜만에 듣는 옛 별호였다. 언제쯤이냐면 마선이라고 불리기 이전의 별호였다. 시기상 무림으로 넘어온 지 10년이 지났을 때쯤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다.
제론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기억해냈다.
‘남호상.’
한때 동료라고 생각했던 무리 중 한 명이었다.
말콤이 말하길 ‘망령’은 괴로웠던 기억을 재현시키거나 악몽을 꾸게 만드는 정신공격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틀렸다.
괴로웠던 기억을 ‘재현’시키는 게 아니다.
깊숙한 곳에 감춰뒀던, 잊고 있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정신력이 약하다면 기억에 잡아먹혀 오감을 통해 보고 느끼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니, 그렇게 된다면 ‘재현’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귀랑! 왜 우리를 배신한 거냐!
계속해서 들려오는, 아니 떠오르는 기억에 제론은 쓴웃음을 지었다.
무림에 대한 기억 중 90프로 이상이 나쁜 기억밖에 없다.
나머지 10프로는 좋은 것도 평범한 것도 있었다.
‘우리?’
제론은 쓴웃음을 지웠다.
그래.
제론 역시 ‘우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남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직하고 바보 같았던 그 녀석은 비정한 무림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 녀석과 자신을 제외한 ‘우리’가 문제였다.
‘지금은 아무렴 상관없는 일이지.’
내공을 상단전으로 흘려보냈다. 열려 있는 백회혈을 통해 개안開眼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던 기억이 사라졌다.
마법진의 효과가 더 이상 제론에게 통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역시 뇌를 통해 정신공격을 펼치는 거였나?’
깊게 숨을 마시고 뱉자 머리가 맑아졌다. 뒤를 돌아보자 말콤과 에르딘이 몸을 움찔 떨었다.
“아, 아론 형씨? 괜찮은 거야?”
“아론 님……?”
두 사람이 살짝 불안한 눈빛으로 제론을 쳐다본다.
“괜찮아. 하지만 너희 둘은 아무래도 이 안으로 들어오는 건 무리일 것 같은데…. 잠시만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봐. 안으로 좀 들어갔다 금방 돌아올게.”
“어, 어어?”
“조심하셔야 해요!”
에르딘은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말콤과 다르게 걱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제론을 붙잡지 않고 보내줬다.
“걱정하지 말고 쉬고 있어.”
제론이 가볍게 손을 흔들며 앞으로 걸었다.
* * *
얼굴에 가로로 새겨진 흉터가 있는 남자-바후르가 음침하게 웃으며 부하에게 물었다.
“흐흐! 저기가 바로 그 아론이라는 녀석이 들어간 던전이냐?”
“예. 맞습니다. 알아보니 몇 시간 전에 도착했다고 하더군요.”
“병사들이 좀 많군. 용병들의 숫자도 제법 되고.”
바후르는 혓바닥으로 윗입술을 쓸었다.
던전 입구에는 50명의 병사가 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주둔하는 교대 인원까지 생각하면 150명에서 200명 사이다.
병사들의 숫자가 제법 많다고 하지만 그래 봐야 전부 잔챙이들이다.
칼질 몇 번만 하면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칠 놈들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적은 편이다.
정말로 중요한 던전이었다면 지금보다 몇 배 이상의 병사가 배치된다.
지금처럼 벌건 대낮에 근처까지 오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자신이 누구인가.
폴른 제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도적단의 두목이 아닌가.
‘퓨리온 공작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나를 막을 존재는 없지.’
유일하게 마음속에 걸리는 존재가 흑마법사가 말한 ‘아론 다이트’라는 용병이다.
그놈은 ‘안개 속의 사냥꾼’을 죽였을지도 모르는 실력자다. 부하들이 알아본 소문에 의하면 가면을 쓴 누군가가 나타나서 살아 돌아왔다고 하는데, 바후르는 그 소문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막말로 ‘아론 다이트’라는 용병이 정체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확실한 건 확인된 오러 마스터는 아니라는 거지.’
오러 마스터는 각국에서 수시로 동향을 확인하고 있다.
도시 하나를 전멸시킬 만한 힘을 가진 전략병기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 중앙대륙에서 서부대륙으로 넘어온 녀석이 오러 마스터라면 폴른 제국에서도 이미 알아차리고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몇 시간 동안 던전 주위를 확인해본 결과 감시의 눈길은 전혀 없었다.
새롭게 용병계의 신성으로 떠오르는 루키.
딱 그 정도로 평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가면을 쓴 놈이 트롤 새끼를 처리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 용병 녀석이 실력을 감추고 있다는 거겠지.’
어쩌면 어느 세력이 새롭게 키운 병기일지도 모른다고, 바후르는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의 악당들이라면 방심하거나 상대를 얕보겠지만 그는 그런 부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륙에 이름을 떨친 오러 마스터나 마법사보다 더욱 위험한 존재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을 알지 못했다면 보통의 악당들처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했을 것이다.
바로 ‘악몽의 집행자’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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