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23)
제123화
123화
“끙.”
그래.
바로 코앞에서 지켜봤으니까 안다.
던전의 코어를 조작해서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하지만 질문의 전제부터가 틀렸다. 던전의 코어를 조작했냐고 묻는 게 아니라 그 이후를 묻는 것이다.
그런 제론의 불만을 알아차렸는지 거대한 ‘망령’이 사과했다.
-아. 미안하군. 살아 있는 인간과 마지막으로 대화한 것이 워낙 오래전이라 실수했다.
그러고 보니 10년 만에 이곳까지 온 ‘녀석’은 반쯤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했다. 제정신인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반쯤 제정신이 아니라면 이미 말 다 한 셈이었다.
“그래서 뭘 한 겁니까?”
제론의 말투가 살짝 딱딱해졌다. 이곳에 에르딘이 있었다면 지금 제론이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거대한 ‘망령’은 제론을 잘 아는 인물이 아니었다. 오늘 처음 본 생면부지의 ‘망령’이었다.
그냥 확 들이받아야 하나 생각한 순간 거대한 ‘망령’이 말했다.
-던전의 방어체계를 바꿨다.
“……?”
그게 되는 거였어?
제론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지우며 말했다.
“그게 되면 왜 여태까지 안 한 거예요?”
실수했다.
머릿속에서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정말 큰일이네.’
가끔씩 말이 필터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튀어 나갈 때가 있다.
다시금 골치가 아파 온 순간 거대한 ‘망령’이 대답했다.
-바꿀 필요가 없었으니까.
“무슨 뜻인가요?
-으음.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생각하면 된다. 던전의 코어를 제거해서 우리의 속박을 풀어주려면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직접적으로 그 능력을 시험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던전의 방어체계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 말은 곧 ‘망령’은 생명체에게 물리적 접촉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특별한 위협은 되지 않는다는 건데.’
대신 옆에서 쫑알쫑알 대던 정신공격은 꽤나 위협적이었다. 제론은 그런 종류의 공격이 제일 싫었다. 차라리 주먹을 맞대고 피가 튀기는 육체의 대화가 더 마음에 편했다.
-그런데 괜찮은 건가?
“무슨……?”
반문하던 제론이 흠칫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도 누군가 던전 내부에서 기운을 바깥으로 흘렸다. 이 던전에 대해 잘 모르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었다.
‘설마 공격인가?’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이곳은 폴른 제국에서 관리하는 던전이다. 폴른 제국을 적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면 절대로 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언제부터 세상이 상식으로만 흘러가던가.
‘공격해야 할 만한 이유가 있으면 그러겠지.’
제론은 절대로 자신이 목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흑마법사의 존재가 살짝 마음에 걸렸지만 합리적인 의심이 끝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놈의 상식은 무슨!’
제론은 바로 뒤돌아서 달렸다.
-……!
거대한 ‘망령’이 뭐라고 지껄였지만 듣지 않았다.
길목을 지나자 ‘망령’들이 재잘재잘 떠들었지만 신경을 끊었다.
‘만약.’
흑마법사가 자신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아차렸다면 평범한 놈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오러 마스터급의 적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준하는 자를 보냈으리라.
이건 가정이 아니라 확신이다.
머릿속에 든 것이 우동 사리가 아닌 뇌라면 반드시 그렇게 했을 것이다.
또한 그런 자를 상대할 만한 실력자가 던전 내에는 없다.
에르딘의 창술이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아직 오러 마스터를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
‘조금만 버텨라!’
제론은 에르딘이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 *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말콤은 살짝 초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옆에서 에르딘이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지만 내심 초조하고 불안했다.
‘기운을 외부로 흘려보내면 마법 트랩이 발동해서 던전이 무너진다고 하지 않았나?’
그 말이 사실이라면 방금 전의 진동은 누군가가 던전 안에서 오러나 마나를 배출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던전에 대해 아는 인물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적이야.’
그래.
정체불명의 적이 던전으로 들어온 것이다. 목표가 무엇인지 몰라도 최악의 경우에는 던전을 통째로 무너트릴 각오도 한 자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가장 먼저 제론이 떠올랐다. 저 안쪽으로 들어간 지 한참이나 됐다. 하지만 아직 돌아올 기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전의 진동을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아냐.’
에르딘이 고개를 저었다.
언제까지 제론만 믿고서 가만히 앉아 엄지만 쭙쭙 빨고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의 이런 생각을 제론이 알았다면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쓸모없는 것만큼 비참한 처지도 없었다.
‘제론 님께서 말씀하셨지.’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 * *
바후르는 보이는 족족 전부 베며 나아갔다.
오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마스터의 경지로 오르기 위해 평생을 수련한 검술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같은 오러 마스터끼리의 싸움이라면 모를까 고작 용병 따위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손맛은 있군.”
오러를 사용하지 않으니 이런 장점도 있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살을 베는 감촉이 아주 찰지다.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내서 벴다면 절대로 느끼지 못할 감각이다.
히죽 웃으며 중얼거리자 팔 한 짝이 떨어져 나간 용병이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하지만 단숨에 쫓아가 등에 칼침을 놓으니 펄떡펄떡 발버둥을 치다가 곧 숨이 멎었다.
“너, 너무 위험한 거 아닙니까?”
“위험하지.”
“그럼 어째서…….”
“샤벨 타이거를 잡으려면 샤벨 타이거 굴로 들어가라는 말이 있다. 놈이 언제 나올 줄 알고 계속 기다려? 제국 놈들이 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더 골치 아파져. 얼른 후딱 해치우고 돌아가야 해.”
부하는 바후르가 논리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무식을 드러낼 기회는 많아도 유식을 드러낼 기회는 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시 오러 마스터는 그냥 되는 게 아니구나!’
부하가 혼자 착각해서 감탄하는 사이 바후르는 저 앞까지 가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5명의 용병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졌다.
부하는 대충 시체를 옆으로 치우며 뒤따랐다.
던전 내부는 금세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길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자 바후르는 부하들을 마음껏 날뛰라고 풀었고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바후르 도적단과 용병들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었다.
바후르는 검을 휘두르는 내내 아쉽다고 생각했다.
‘부하들을 좀 더 데려왔어야 했어.’
던전이 생각보다 훨씬 더 컸다. 오러의 사용이 가능했다면 휙휙 돌아다니며 모조리 쓸어버렸겠지만 던전이 폭삭 무너질까 봐 주저됐다.
‘그냥 무너트리고 빠르게 도망치는 게 더 나았으려나?’
바후르 도적단은 이미 폴른 제국과는 완전히 척을 졌다.
병사를 죽이나 던전을 무너트리나 거기서 거기다.
얼마나 더 빨리 적극적으로 나서냐의 차이다.
그 손해의 차이가 애매해서 똑바로 판단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판단하기는 힘들지.’
바후르는 오러 마스터였지 예언가가 아니었다.
결과는 미래다.
최선의 미래가 올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었다.
“그래도 심심하군.”
닭을 잡기 위해 소 칼을 쓰고 있다. 오러를 사용하지 않아서 손맛은 있지만 영 심심하다. 그의 일검을 한 번이라도 받아낸 녀석이 없다.
“아니. 쓸데없는 감상이지.”
그런 실력자가 없는 편이 낫다. 일은 막힘없이 잘 풀리는 게 좋다. 도적단 짓거리를 하다 보니 잠시 감성에 젖어 들었다.
‘이제는 일개 도적단의 두목인 것을.’
바후르는 자신의 처지를 잊지 않았다.
바로 그때.
“으악-!”
한 줄기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용병이 아니었다. 먼저 앞으로 보낸 부하들 중 한 명이다. 바후르는 그 사실을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난전이 펼쳐지고 있으니 부하들 중에서도 사상자가 나타나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저 비명은 단순한 사상자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 번에 당했다.’
바후르는 사나운 미소를 머금고 비명이 들려온 곳으로 달려갔다.
* * *
에르딘은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전력으로 달려오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숨을 고를 시간이 없었다. 눈앞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용병이 보였다.
제론이라면 아마도 죽은 사람이라며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에르딘은 그러지 못했다.
칼에 찔렸지만 아직 살아 있는 용병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머리와 가슴이 다르게 말하고 있다.
‘이럴 때 제론 님은 말씀하셨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면,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단전에서 내공이 솟구쳐 올라 두 다리로 흘러갔다.
운룡대구식이 펼쳐지며 에르딘의 몸이 구름 위를 밟는 것처럼 움직였다. 하지만 내공이 체외로 새어 나가면 안 된다. 던전의 방어체계가 발동하면 던전이 무너져 내려 몽땅 파묻힌다.
거대한 ‘망령’이 코어를 조작해서 던전의 방어체계를 바꾼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내린 판단이었다. 그래서 에르딘은 여느 때보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집중하자!’
숨을 내쉬는 것도 힘든데 뒷목까지 뻐근했다. 두 눈에 피가 쏠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은 가벼웠다.
‘우선 한 놈.’
창을 내질렀다.
“으악-!”
적이 비명을 질렀다.
목을 공격했어야 했나 뒤늦게 후회가 됐지만 저 비명을 듣고 적들이 이쪽으로 몰려온다면 용병들 중에서 생존자가 더 늘어날 테니 그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론 님이 아시면 화내시겠지?’
분명히 화낼 거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싸웠어야지 하면서 타박할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지.”
어차피 후회할 거면 하고 후회하라고 말한 사람이 누군데?
에르딘은 해맑게 웃고선 적들 앞으로 달려갔다.
“강한 녀석이다!”
“맞상대하지 말고 포위해서……!”
에르딘이 창을 분리해서 양손으로 들었다. 창날이 있는 걸로 적의 심장을 찌르고, 창대만 있는 걸로는 대가리를 내려찍었다. 놈들이 뭐라고 지껄였지만 솔직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귀담아듣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적이 얼마나 될지 몰라서 내공도 조절해야 했다.
“와! 이래서 제론 님이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한 거구나.”
이렇게 말을 하는 것도 체력소모다. 하지만 푸념처럼 늘어놓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 같았다. 바깥의 상황은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알았다. 던전 입구를 지키고 있는 병사들과 이곳까지 오면서 마주친 용병들은 전부 죽었다.
게다가.
“시X. 저건 또 뭐야?”
에르딘은 스산한 미소를 머금고 다가오는 흉터의 남자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언뜻 느껴지는 기세가 절대로 자신과 비등하거나 아래가 아니었다.
“X됐네.”
제론 님은 말씀하셨다.
자기보다 강한 적이 나타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라고.
‘그런데 쫓아오는 속도가 더 빠를 거 같은데?’
왜냐고?
흉터의 남자가 눈 깜짝할 새 코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