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25)
제125화
125화
제론은 땅에 에르딘을 눕히고 빠르게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녀석의 흐릿해진 동공은 허공을 응시한다. 의식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뜻이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이 녀석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뱃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정신 차려.”
제론은 에르딘에게 말을 걸며 상처를 지혈했다. 지혈이 끝나자 포션을 꺼내 콸콸 부었다. 치지직- 살이 빠른 속도로 재생하여 상처가 눈에 띄게 아물어간다. 하지만 투명할 정도로 창백해진 안색이 본래의 색으로 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외부의 상처가 아무는 정도로 부족하다.
“아파도 좀 참아라.”
에르딘은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제론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어떻게든 의식을 붙잡으려고 계속 말을 거는 것이었다. 몸속으로 내공을 흘려보내 뒤틀린 내부를 똑바로 잡았다. 끊어질 듯 가늘어진 숨결을 겨우 이어 붙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흐릿한 동공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론 형씨!”
때마침 말콤이 도착했다. 바후르가 검을 들고 있는 것을 발견한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이내 제론과 에르딘에게서 시선을 떨어트리지 않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슬금슬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 어어! 에르딘 씨는… 어때?”
말콤도 에르딘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제론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쳐내며 일어섰다.
“지금은 괜찮아. 아무튼… 부탁 하나만 할게.”
“얼마든지!”
말콤이 자신만 믿으라며 가슴을 두드렸다.
“이 녀석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줘.”
“알겠어.”
말콤이 에르딘을 들쳐업으려던 그때 녀석의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
까득-!
제론이 어금니를 세게 물었다.
목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지만 뭐라고 말하는지 알았다.
-저 잘했죠?
“잘하긴 뭘 잘해.”
제론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중얼거렸다. 용병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불나방처럼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멍청한 짓이다.
차라리 도망쳤다면 잘했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녀석은 끝끝내 물러나지 않았다. 자신이 조금만 더 늦게 도착했다면 개죽음으로 끝났을 것이다.
-저 잘했죠?
에르딘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또다시 들려왔다.
“그래. 정말 잘했다.”
제론은 얼굴이 일그러진 채 미소를 지었다.
화가 났다.
부글부글 들끓던 뱃속이 뜨겁게 타오른다. 이런 분노를 느낀 적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화를 참기 힘들었다.
“먼저 가볼게!”
무슨 일인지 눈치를 살피던 말콤이 에르딘을 들쳐업고 잽싸게 빠져나갔다.
제론은 목을 좌우로 꺾으며 바후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너, 이름이 뭐냐?”
“바후르.”
제론이 입술을 비틀었다. 놈이 오러 마스터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도착했을 때부터 기세가 식지 않고 풀풀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녀석의 정체는 조금도 예상하지도 못했다.
‘나를 노리고 왔군.’
상황이 여기까지 온 이상 복잡하게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었다. 내 새끼(?)가 얻어맞았으니 갚아주는 게 강호의 도리였다.
제론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미리 말해두지만…….”
“……?”
“나는 지금 매우 화가 난 상태야.”
저벅-!
발을 내딛는 소리가 던전 안을 가득 채웠다.
동시에 제론의 신형이 사라졌다.
“……!”
바후르는 목덜미를 스치는 서늘한 살기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머릿속에서 ‘어디로 갔지?’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기민한 감각은 우측에서 들려오는 파공성에 반응하여 검을 휘둘렀다.
제론의 검이 바후르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콰앙-!
검과 검이 부딪쳤다.
맑은 쇳소리가 아니라 쇳덩이를 땅으로 내던진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의문은 생기지 않았다.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엄청난 충격과 함께 몸이 튕겨져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커억!’
바후르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비명은 입 밖으로 튀어 나가지 못했다. 그만큼 엄청난 충격이었다. 전신이 으깨지고 가루가 될 것처럼 아팠다. 퓨리온 공작과의 싸움으로 더욱 강해지지 않았다면 정신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제법이야.”
“……!”
바후르는 귓가에서 속삭이듯 들려온 목소리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언제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고통이 밀려왔다.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몸속이 뒤틀리며 시야가 흐릿해졌다.
그건 잠시에 불과했다.
고통이 심해지자 시야가 뚜렷해졌다. 그의 의식이 위기를 느끼고 강제로 가속화를 시작하며 세상이 느리게 흘러갔다.
그 가운데 바후르가 냉철하게 판단했다.
제론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자신의 감각을 속일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에르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기습공격을 가했더라면 꼼짝없이 당했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그리고 기운을 사방으로 풀풀 풍기고 있지만 던전은 멀쩡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른다. 무슨 일이 벌어진지도 모른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알 필요도 없었다. 중요한 건 패배를 떠올리게 만드는 존재가 눈앞에 있다는 것이고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순간 눈앞에 제론이 나타났다.
‘……!’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했다. 바후르는 지금 의식을 가속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떠한 전조도 없이 제론이 나타났다. 가속화된 의식보다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는 뜻이다.
쾅-!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제론의 주먹이 가슴을 때렸다.
“커헉-!”
바후르는 의식의 가속화가 끊기며 날아갔다. 피가 입에서 안개처럼 뿜어졌다. 던전의 벽에 몸이 처박히며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겼다.
제론이 이죽거리며 다가갔다.
“아까 기습이라도 하지 그랬어?”
“쿨럭!”
바후르가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하고 비틀비틀 일어섰다.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에르딘을 치료하고 있을 때 기습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알면서도 말이다.
왜 기습을 하지 않았냐고?
‘빈틈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대략 20m에서 25m 사이의 거리였다. 오러를 외부로 발출시키지 못한다고 해도 한 걸음 안에 좁힐 수 있는 짧은 거리였다. 단순히 눈으로 보기에는 허점투성이였다.
상처를 지혈하고 포션을 콸콸 부었다.
그 과정에서 기민해진 감각으로 감지된 허점만 수십 군데였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허점이지만 빈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일부러 허점을 보여주며 먼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바로 그때 깨달았다.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바후르였기에 알 수 있었다.
‘기습을 하려고 시도했다면 죽는 건 나였다.’
이 주변 전체가 제론의 지배하에 놓였다. 자신의 영역까지도 모두 집어삼킬 정도로 강한 지배력이었다. 퓨리온 공작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이라면 퓨리온 공작과 다시 싸운다고 해도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방심한 대가로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얻은 대신 바닥에 딱 달라붙어 있던 걸음이 다시 떨어지며 더 강해졌으니까.
적어도 두 계단 위로 올라섰다. 그런데 그 이상의 적이 나타났다.
흑마법사의 오판이었다.
아니.
그 녀석만 오판한 것이 아니다.
자신 역시 틀렸다.
적어도 한 번이라도 멀리서나마 먼저 지켜봤어야 했다.
‘오만했다는 건가?’
퓨리온 공작은 강하다. 하지만 대륙 최강은 아니다. 대륙에는 퓨리온 공작보다 강한 존재가 수십은 족히 넘는다. 자신들의 일을 방해한 적이 그런 부류일지도 모른다고 한 번쯤은 예상했어야 한다.
“후욱. 후욱.”
얼굴의 흉터가 욱신거리며 아파 왔다. 사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본능이 퓨리온 공작보다 제론이 더 강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가속화된 의식 속에서 제론을 가늠해 봤지만 무엇도 탐색되지 않았다. 무엇도 파악되지 않았다. 불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로 끝나면 곤란한데?”
“크큭!”
바후르는 천천히 다가오는 제론이 괴물처럼 보였다.
아니.
‘처럼’이 아니었다.
잿빛의 아지랑이가 제론의 몸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이 마치 불꽃처럼 형상을 띄었다.
‘잿빛의 불꽃!’
뛰어들었다가는 잿더미가 되어 사라질 것처럼 거대하게 타오른다. 어금니를 까득- 갈았다. 얼마나 세게 갈았던지 어금니의 일부가 깨지며 아릿한 고통이 퍼졌다.
정신이 맑아지자 깨달았다.
환영이 아니었다.
오러와 다른 성질의 힘이다.
“생각을 하고 있을 여유가 있나 보네?”
“……!”
바후르는 소리 없는 포효를 했다. 생각할 여유 따위가 없다.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어서 휘둘렀다. 하지만 잿빛의 불꽃을 꺼트리지 못했다. 또다시 검을 휘둘렀다.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론을 쳐 죽이겠다는 일념밖에 남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테니까!
냉철한 판단?
그딴 건 같은 사람한테만 소용이 있는 것이다. 잿빛의 불꽃이 신화시대에나 나타날 법한 악마처럼 날카로운 손톱과 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바후르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래. 처절하게 발악해.”
악마의 스산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몸 주위를 둘러싼 오러가 갈기갈기 찢겨나가며 잿빛의 불꽃이 피부를 불태운다.
“으아아아아악!”
바후르가 비명을 질렀다.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생소한 감정을 느낀 순간이었다.
제론은 바후르가 순순히 쓰러지게 놔두지 않았다.
처절하게 괴롭히고 유린했다. 끔찍한 고통을 안겨줬다. 그 결과가 눈앞에 나타났다. 바후르의 머리카락이 노인의 것처럼 잿빛으로 변했다. 탄탄하던 살가죽과 근육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글쭈글해졌다. 족히 30년은 늙은 모습이었다.
바후르가 힘없는 목소리로 묻는다.
“너는 누구지?”
“제로니아 페리안.”
“…….”
바후르는 궁금증을 해결했는지 대답을 듣는 순간 숨이 끊어졌다. 폴른 제국을 10여 년 동안 끈질기게 괴롭혔던 바후르 도적단 두목의 최후였다.
제론이 유형화된 내공을 단전으로 거둬들였다. 몸이 살짝 무거웠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나머지 필요 이상의 힘을 사용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바후르가 만만한 상대도 아니었다. 시무르 칸과 비교하는 것이 그에게 모욕적일 정도로 제대로 된 오러 마스터였다.
‘그래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바후르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어도 마찬가지다.
제론은 강자와의 싸움이 익숙했다.
상황이 지금보다 나빴어도 결국 이겼을 것이다. 단지 조금이나마 안타까웠던 건 이곳이 아니었다면 그의 최후가 명예로웠을 것이라는 점이다. 숨이 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바후르에게 다가가 그의 눈을 감겨줬다. 이윽고 그의 신분을 증명할 물건을 찾기 위해 품속을 뒤졌다.
“이거면 되겠지.”
하몬에게 복수를 완수했다고 알려주려면 증거가 필요했다.
* * *
말콤은 던전 밖으로 나오는 제론을 발견하고 손을 들어 흔들었다.
“이쪽이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