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26)
제126화
126화
“에르딘의 상태는 어때?”
“아주 좋아!”
말콤이 엄지를 척! 들며 말했다.
사실 말콤의 말과 다르게 에르딘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제론이 바로 응급처치를 하고 뒤틀린 내부와 기혈을 잡지 않았다면 숨이 멎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콤이 아주 좋다며 말한 이유는 에르딘의 회복 속도가 눈에 띌 정도로 빨랐기 때문이다.
그런 기색을 느끼지 못할 제론이 아니었기에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곧 주변을 둘러본다. 던전 주위는 개판 5분 전이었다.
바후르와 놈의 부하들이 기습을 하며 많은 병사들과 용병들이 다치거나 죽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끝이다. 바후르가 없는 도적단은 오합지졸이다. 아직 두목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안에서 날뛰고 있지만 곧 병사들에게 제압될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의 상황이다.
이런 난리가 벌어졌는데 던전의 출입을 통제하지 않을 리가 없다.
“잠시 다녀올게.”
“응? 어디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는 말콤에게 제론이 대답하며 달렸다.
“던전 안에! 아직 처리하지 못한 게 있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오랜 시간은 아닐 거야. 짧으면 몇 시간, 아무리 길어봐야 하루 정도! 혹시나 내가 조금 늦을 거 같으면 에르딘과 함께 도시의 여관에 있어 줘. 내가 알아서 찾아갈게. 아 참. 섭섭하지 않게 사례를 할 테니까 부탁해!”
“아론 형씨? 이봐! 아론 형씨!”
제론은 곧장 던전으로 들어갔다.
* * *
던전 안에서는 격렬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폴른 제국의 병사들과 용병들이 동료의 복수를 하기 위해 독기를 품고 몰아붙였고, 바후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도적단은 필사적으로 항전했다.
그러나 바후르가 데려온 도적단 부하들의 숫자는 50명밖에 되지 않았다. 은밀하게 움직이기 위해 소수만 데려온 것이다.
그들은 금세 궁지에 몰렸고 던전 깊숙한 곳까지 도망쳤다.
“젠장! 두목께서는 어디에 계ㅅ……?”
바후르를 찾던 도적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졌다. 목의 단면에서 피가 콸콸 쏟아져 흘러내리는 끔찍한 광경에 모두가 할 말을 잃고 쳐다봤다. 병사들과 용병들을 피해 도망치고 있던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무것도 못 봤…… 어? 너 목에 그거 뭐야?”
“응? 목에 뭐가 있는데?”
“만지지 마! 절대로 만지지 마! 그 손 내려!”
목으로 손을 가져가던 도적이 동료의 말에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멈칫했다. 동료가 침을 꿀꺽 삼키며 천천히 물러난다.
도적의 목에는 붉은 선이 있었다. 조금 전에 목격했던 끔찍한 광경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의 목에도 붉은 선이 새겨져 있었고 발을 움직이는 동안 그 색이 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너……!”
도적들의 머리가 하나둘씩 땅으로 떨어졌다.
* * *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제론은 던전의 길을 따라 달리며 마주치는 도적의 목을 전부 베어냈다. 아직 증원 병력이 도착하지 않아서 그대로 내버려 뒀다면 병사들과 용병들의 피해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에르딘이 바후르를 상대로 도망치지 않았던 이유가 병사들과 용병들의 피해를 줄여보고자 필사적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그 생각이 제론을 그냥 지나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나중에 깨어나면 두고 보자.”
에르딘을 혼낼 이유가 한 가지, 두 가지가 아니었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도망치지 않은 것.
구명절초를 제 목숨을 구할 때 사용한 게 아니라 공격하려고 쓴 것.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
위의 3가지 외에도 이유는 많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제론을 화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
제론은 입술을 깨물었고 살갗이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다. 핏방울이 턱에 대롱대롱 매달릴 때가 돼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손등으로 훔쳐냈다.
냉정하게 평가를 해서 바후르를 ‘생각보다’ 쉽게 쓰러트린 것은 에르딘의 구명절초 때문이었다. 아니, 덕분이었다.
바후르는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지만 비뢰수는 그저 땅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벼락을 흉내 낸 무공이 아니다.
뇌기雷氣로 펼치는 무공이다.
뇌기는 흉악하고 불안정하다.
마공의 기운과 어느 정도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엄연히 따지자면 정제된 흉악하고 불안정한 기운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었다.
두 가지 기운이 모두 흉악하고 불안정하기에 다루기가 까다롭고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잘못 다룬다면 적의 숨통을 끊는 비수가 아니라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
특히나 뇌기는 몸속으로 침투한 순간부터 흉악함을 드러내 내부를 빠르게 갉아먹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가 막심해진다.
에르딘의 뇌기는 아직 발톱의 때처럼 미약했지만 그러기에 더더욱 바후르가 알아차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서 그의 장기가 조금씩 상해 갔고 오러의 운용이 매끄러워지지 못했다.
“몇 대를 때릴지 모르겠지만 한 대는 덜 때려주마.”
제론은 극적으로 타협했다.
물론 혼자서 결정한 것이지만 에르딘의 의견은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다.
-어? 다시 왔네. 잘 왔어!
-그냥 가는 줄 알고 섭섭했다고!
‘망령’들의 구역에 도착하자 ‘망령’들이 몰려들었다. 표정은 확인이 안 됐지만 말을 들어보면 대충 반가워하는 것 같았다.
“후우.”
제론은 살짝 가빠진 숨을 고르며 ‘망령’들에게 짧게 대꾸해주며 거대한 ‘망령’이 어디 있냐고 물었다. ‘망령’들은 모른다고 대답하며 시간을 끌었지만 곧 안쪽에서 거대한 ‘망령’이 튀어나와서 ‘망령’들에게 흩어지라고 명령했다.
-쳇. 치사하게 굴기는.
-아까도 제대로 대화를 못 나눴는데 또?
‘망령’들은 투덜거렸지만 명령을 어기지 못하는지 빠르게 흩어졌다.
-이쪽으로 와라.
“그 전에 궁금한 게 있어요.”
-말해라.
“던전의 코어를 제거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단순히 ‘망령’들의 속박이 풀리는 걸 묻는 게 아니었다.
그 이후의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유를 얻는다.
“혹시 막 육체를 갖거나 언데드로 부활해서 대륙을 지배하겠다고 그러는 건 아니죠?”
-요즘 애들은 소설이나 연극을 많이 본 모양이군.
거대한 ‘망령’의 얼굴이 기괴하게 변했다.
제론이 추측하기로는 인상을 찌푸린 것으로 보였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아니. 똑바로 말하자면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같이 넋만 남은 존재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지.
“무슨 차이예요?”
-요즘 것들은…….
“전 마법사가 아니에요. 옛날과 많이 바뀌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꼰대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그냥 대답이나 해요.”
-꼬, 꼰대?
거대한 ‘망령’이 말을 더듬었다.
주변에서 멍하니 돌아다니던 ‘망령’들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꼰대도 그냥 꼰대가 아니지. 몇천 년 묵은 진성 꼰대지.
-근데 우리도 꼰대 아니냐?
-저 양반에 비하면 우리는 샤벨 타이거 새끼야.
거대한 ‘망령’이 몸을 푸들푸들 떨더니 ‘망령’들에게 달려들어 흠씬 두들겨 팼다. 물리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같은 ‘망령’들에게는 터치가 가능한 모양이었다.
-리치Lich나 죽음의 기사는 흑마법이나 악마와의 계약으로 탄생하지만 육체가 남아 있지 않으면 혼은 소멸한다. 넋과 혼의 차이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예. 그 정도 차이는 알아요.”
넋과 혼의 뜻은 같지만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혼이 영체靈體라면 넋은 잔존 사념이다. 본래라면 ‘망령’들은 승천해야 했지만 던전의 코어가 그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며 ‘망령’들의 영체는 소멸되었고 넋-잔존 사념만 남아 던전을 떠돌아다녔다.
‘생전의 기억만 남은 존재라는 거지.’
영체가 없어도 기억이 존재했기에 그들은 속박이 풀리길 원했다. 그래서 이곳으로 들어와 던전의 코어를 제거해줄 존재를 기다렸다.
‘판타지 소설처럼 사실 알고 보니 악당이었고 부활해서 대륙을 지배하려 든다는 클리셰 같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이지.’
사실 이해가 되지 않은 점이 있었다.
잔존 사념만 남았는데 어떻게 서로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냐는 것과 던전의 코어를 조작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래서 제론이 바로 던전의 코어를 제거하기 전에 묻는 것이기도 했다.
‘일단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진실은 모르는 일이다.
“계속 말하세요.”
-육체가 없으면 혼이 소멸하는 이유는 간단하게 말해서 돌아갈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영과 육은 하나이다. 컵에 물을 담는 것처럼 영을 담는 육의 그릇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위대한 신께서 정하신 세계의 규칙이시니…….
“잠깐만요.”
제론이 잠시 거대한 ‘망령’의 말을 끊었다.
-묻고 싶은 게 있나?
“혹시 컵에 술 안 따라보셨어요?”
-…….
“아차차.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그만. 아무튼,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설명하기 힘들어 보이시는데 그만 말하셔도 돼요. 그쪽도 마법사가 아니라서 제대로 설명을 못 하나 보네요.”
거대한 ‘망령’이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아까의 복수를 이렇게 할 줄 몰랐던 것이다.
그런 거대한 ‘망령’을 보며 제론이 씨익 웃고선 엄지와 검지를 비비고 말했다.
“그럼 이제 거래를 할 때가 되었네요.”
-거래?
“설마 공짜로 풀어달라는 이야기는 아니죠?”
-…….
“제시요.”
* * *
제론의 요구는 합당했다.
던전의 코어를 제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거대한 ‘망령’이 말했던 것처럼 코어는 던전의 존재를 유지해주는 마력 덩어리가 아니라 권능의 집결체였다. 제거하는 방법이 쉬웠다면 코어를 조작 가능한 거대한 ‘망령’이 이미 했을 것이다.
“님? 제시요.”
-지, 지식과 보물을 주겠다.
“지식? 보물?”
-그랜드 마스터의 오러 연공법과 검술을 전수해주겠다. 그리고, 고대시대의 아티팩트도 주마.
“제가 부탁을 받는 입장인데 말투가 좀 그러네요.”
제론이 투덜거리자 거대한 ‘망령’이 주먹을 꽉 쥐었다.
마음 같아서는 후려치고 싶었지만 잔존 사념에 불과한 거대한 ‘망령’으로서는 생명체에게 물리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게다가 아티팩트가 아직까지도 멀쩡하긴 해요? 녹이나 안 슬었다면 다행이겠는데.”
-……!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좀 진정해요. 까딱하면 치겠네?”
제론이 어깨를 으쓱했다. 거대한 ‘망령’으로서는 억울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지금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중이었다.
물리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점과 던전의 코어를 제거해줄 존재가 제론밖에 없기 때문에 소위 말해서 갑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뭐 구차하게 변명을 덧붙이자면 유도신문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제론은 거대한 ‘망령’이 진정하자 잠시 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왕이면 먹고 마실 것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아공간 주머니에서 육포와 물주머니를 꺼내서 간단하게 먹고 운기조식으로 내공을 채웠다.
“그래서, 이름이 뭐예요?”
-……?
“그쪽 말이에요. 그쪽.”
제론과 거대한 ‘망령’은 지금까지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이제야 생각났다.
-내 이름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