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27)
제127화
127화
말끝을 흐린 채 한참 동안 고민하던 거대한 ‘망령’이 대답했다.
-모른다.
“모른다고요?”
제론이 인상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잔존 사념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하지만 생전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거대한 ‘망령’이 조금 착잡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하자 무슨 말인지 대충이나마 알 것 같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잔존 사념이다. 기억으로 이루어진 덩어리에 불과하지. 생전과 영혼의 ‘나’가 마지막 순간까지 갖고 있던 기억이 지금의 나다. 그래서 ‘나’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나 역시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생각을 떠올리는 행동이라던가 감정표현 역시 기억에 의거한 자연스러운 현상인 거네요?”
-그렇다.
거대한 ‘망령’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론은 ‘망령’들의 모습이 왜 ‘명탐정 코X’에서 나오는 범인처럼 생겼는지 알았다.
‘시간에 마모되어 스스로를 잊었구나.’
‘망령’들은 오랜 시간 던전 안에 존재했을 것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던전의 코어로 인해 속박되어 자유를 얻지 못했다.
그 시간이 얼마나 끔찍하고 괴로웠을지 감히 짐작되지 않았다.
스스로의 존재를 잊기 충분했다. 영체마저 소멸되어 잔존 사념으로 존재하지만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던전의 코어를 제거해서 자유를 얻고자 하는 것이었다.
제론이 묻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거대한 ‘망령’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거대한 ‘망령’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았으니까.
‘확실하게 하는 게 좋기도 하지.’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부터는 그의 책임이다.
던전의 코어를 제거하는 주체가 제론이었기 때문이다.
행여나 대륙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큰 사건으로 번진다면 페리안 자작령 역시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하고 의심해야 했다.
제론이 기지개를 펴고 일어섰다.
“던전의 코어를 제거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던전의 코어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권능을 해체하면 된다.
“간단해서 좋네요. 보상은요?”
-던전의 코어를 제거하면 눈앞에 나타날 거다.
“마무리까지 깔끔해서 좋네요.”
제론은 눈앞에 나타날 거라는 말이 잘 이해가 안 됐지만 묻지 않았다. 거짓말이라도 상관없다. 그가 다시 돌아온 진짜 이유는 던전의 코어 주변으로 퍼져 있는 기운 때문이었으니까.
‘처음에는 코어가 던전을 유지하려고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던전 내부 곳곳에는 마나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망령’의 구역으로 오자 마나가 확 짙어졌다. 코어의 방어체계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잔존 사념이 던전의 코어에 속박되어 ‘망령’이 된 것처럼 자연으로 산화됐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해 함께 남겨진 잔존 마나였다.
잔존 마나가 오랜 시간 순환이 되지 않아 혼탁해졌다.
아니.
더럽혀졌다는 말이 올바른 표현이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잔존 마나를 사용하지 못해서 자연스럽게 흩어지길 기다리거나 교단의 도움을 받아 정화를 해야 하지만, 제론에게는 마공이라는 사특한 기운을 다루는 데 특화된 무공이 있었다.
역혈마공이 사마외도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지만 근본이 마공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니 한 번쯤 시도해볼 가치가 있었다.
-어서 가지.
거대한 ‘망령’은 던전의 속박에서 풀려나 영원히 해방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해 제론을 재촉했다.
다른 ‘망령’들도 어렴풋이 그 사실을 느끼고 있던 건지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며 하얀 물결이 일어났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음산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망령’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이런 희극이 또 없었다.
-야. 야. 진짜래? 진짜로 코어를 제거할 수 있대?
-내가 그걸 알면 사람이겠냐?
-미친놈아! 그걸 모르니까 ‘망령’이겠지!
-어? 그러네.
이런 대화를 나누는 ‘망령’들도 있었고.
-아. 뜨끈한 스튜 먹고 싶다.
-여기 스튜충 납셨네.
저런 대화를 나누는 ‘망령’들도 있었으며.
-여관주인 딸내미가 그렇게 예뻤는데.
-너 아침에 잘 안 서잖아?
-오늘 한 번 뒤져보자 아주!
-오냐! 백 년 전의 승부를 결착 지을 때가 됐지!
쓸데없이 싸우는 ‘망령’들도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이목구비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 정도로 흐릿하고 하얬지만 어째서인지 들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희망을 가진 건가?’
제론은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만약 자신이 이곳까지 오지 못했다면 ‘망령’들은 앞으로도 계속 던전의 코어에 묶여 잔존 사념으로 살아갈 것이다.
아니.
그들을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망령’들은 혼조차 소멸하고 남겨진 ‘기억의 덩어리’였다. 그런 존재를 살아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저들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웃고 떠들고 괴로워한다.
온갖 신비를 겪어본 제론조차도 이렇다 저렇다 확실하게 말하기 어려웠다.
‘에르딘. 너라면 어떨까?’
제론은 에르딘이 이곳에 있다면 묻고 싶었다.
녀석이라면 자신과는 다른 대답을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 *
에르딘은 꿈을 꿨다.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바후르와 싸우고 있었으니까.
‘여긴 어디지?’
에르딘은 사방을 둘러봤다. 칠흑으로 칠해진 공간이었다. 보이는 건 오직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어둠은 끝이 없었다. 뛰어도 계속 어둠뿐만이 존재했다.
불쾌한 공간이다. 온몸이 어둠으로 잠식되는 것처럼 점점 무거워진다. 이곳에 계속 있으면 안 된다. 다시는 현실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하지?’
전력을 다해 달려도 보았지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안개처럼 은은한 빛이 피어오르며 한 사람의 등이 보였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제론 님?”
익숙한 등이었다.
언제나 항상 뒤에서 바라봤던 제론의 뒷모습이었다.
“제론 님!”
에르딘이 애써 환하게 웃으며 달려갔다.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제론은 그의 외침을 듣지 못한 것처럼 미동조차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당혹스러웠지만 다시 한번 제론을 부르며 달려갔다.
“제론 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묻어나왔다. 이번에도 반응이 없자 입술을 깨물었다. 바로 그때 제론의 등이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그를 부른다.
어디로 가냐고 묻고 가지 말라고 외친다.
“아……!”
제론이 흐릿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손을 뻗어도 제론의 등에 결코 닿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지독한 절망과 고독, 외로움이 몰려왔다.
에르딘의 무릎이 땅에 닿는 순간 제론이 멈춰 섰다.
그리곤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얌마.”
“……!”
“안 따라오고 뭐 하고 있어?”
제론의 말이 끝난 순간 시야가 암전했다.
* * *
“…….”
에르딘은 천천히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 보였다. 등을 받치고 있는 푹신푹신한 침대가 느껴진다. 몸을 덮은 부드러운 이불을 걷어내며 일어섰다. 무의식적으로 깨어났으니 일어선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후폭풍은 무의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윽!”
전신이 욱신거리며 아파 온다. 아니. 욱신거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난도질이라도 당한 것처럼 아팠다. 다리에서 힘이 쭉 풀리며 침대에 걸어앉았다.
천천히 손을 들어 손바닥을 펼쳤다. 덜덜 떨리고 있었다.
바후르의 가슴에 손가락을 박았던 손은 움직이지도 않는다. 고장 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손뿐만이 아니라 몸 자체가 상태가 나빴다. 며칠은 아무것도 안 하고 꼬박 쉬어야겠다.
‘그나저나 용케 살았네.’
마지막 순간 제론을 봤다. 그래서 긴장감이 풀리며 정신을 잃었다.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을 보니 바후르의 최후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나 원 참. 조금만 더 일찍 오시지.”
에르딘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원망이 아니었다. 단순한 투정에 불과했다. 그 상대가 제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끼익.
“어? 에르딘 씨 일어났네?”
문이 열리며 말콤이 들어왔다. 에르딘이 침대에 걸터앉은 모습을 발견하고 화색을 띠며 다가온다. 그의 손에는 스튜가 담긴 그릇이 들려 있었다.
꼬르륵.
스튜의 냄새가 코를 찌른 순간 배가 거칠게 요동을 쳤다.
“먹어. 얼른 먹어. 배 많이 고플 테니까.”
“고, 고마워요!”
에르딘이 얼굴을 붉히며 스튜 그릇을 받아 허겁지겁 먹었다. 양은 제법 많았다. 평범한 성인 남성이 먹는 양의 3배는 됐다. 하지만 부족했다. 허기가 사라지지 않을 정도였다.
“며칠이나 됐어요?”
“며칠?”
말콤은 눈을 끔뻑거렸다. 에르딘이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어… 그럼 몇 주? 한 달?”
“무슨 소리야.”
피식 웃은 말콤이 말했다.
“얼마 안 됐어. 시간으로 치면 대략 3시간? 4시간 정도 지났으려나? 창문 밖 보이지? 지금 밤이야. 에르딘 씨가 엄청 일찍 정신 차린 거야.”
에르딘은 창문 밖을 내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 아니 아론 님은요?”
“나도 몰라.”
말콤은 에르딘이 당황해하자 다시 말했다.
“아니.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몰라. 아론 형씨가 에르딘 씨를 여차저차 응급처치하고 나한테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나가라고 해서 얼른 던전 밖으로 나왔지. 거기에 있어 봐야 방해나 될 거 같았고 말이야. 그러고 나서 잠시 후에 나타나더니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서 에르딘 씨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던전 안으로 다시 들어갔어. 길어도 하루 정도 걸린다고 했으니까 기다리고 있으면 돌아올 거야.”
“음. 뭐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련히 알아서 돌아오신다는 거네요.”
“그렇지! 그거야!”
말콤이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에르딘도 제론에 대해 신경을 끊고 스튜를 더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 * *
“에취!”
제론이 손으로 콧물을 훔쳐냈다.
-감기에 걸린 건가?
“그건 아니고 누가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
“아무튼 그런 게 있어요.”
거대한 ‘망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긴장한 얼굴로 던전의 코어를 바라봤다. 곧 굴레를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되는 순간이 온다. 다른 것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그럼 시작할게요.”
제론이 던전의 코어로 손을 뻗었다.
파지직-!
코어 주위로 펼쳐진 결계가 작동했다. 제론의 접근을 불허하겠다며 자기장을 형성했다. 던전을 만든 궁중 마법사의 권능은 과연 신화와 함께 어우러져 살았던 시대에 걸맞게 대단했던 모양이었다.
강기막을 두르지 않았다면 피부가 그을렸을 정도로 강력했다.
‘수천 년이 지났는데도 이 정도로 강하다니.’
생전에는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녔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제론은 입꼬리를 씰룩거린 것을 끝으로 자기장을 무력화시켰다.
이윽고.
던전 코어의 메인 시스템으로 접속한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