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29)
제129화
129화
던전의 코어를 제거하자 ‘망령’들은 촛불이 꺼지듯 사라졌다. 본래부터가 ‘망령’의 존재가 잔존 사념에 불과했다. 영화처럼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승천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맨입으로 간 건 아니네.”
거대한 ‘망령’의 말처럼 아먀르 제국의 그랜드 마스터가 익힌 오러 연공법과 검술의 지식이 든 영상기록 장치를 비롯해 3개의 아티팩트가 나타났다.
수천 년이 지났지만 겉모습은 녹슨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제론도 살짝 놀란 부분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잔존 마나를 흡수해야지.”
사실 도박에 가까웠다. 목숨이 위험하다는 뜻은 아니다. 잔존 마나를 흡수하더라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냐의 문제였다.
마공이 사특한 기운을 다루는 데 특화된 무공이라고 하지만 ‘모든’ 사특한 기운을 소화하는 게 가능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일례로 신체접촉을 통해 기를 빨아들여 단전에 저장하는 흡정마공吸精魔功이 있다.
설명만 들으면 엄청나고 금방 강해질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잘못하면 몸이 터질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마공이었다.
MSG가 들어간 과장이 아니었다.
마구잡이로 내공을 늘려서 빠르게 강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여러 종류의 내공들이 조화를 이루어지지 못해 언제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게 될지 모른다.
그 말은 항시 주화입마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뜻이다.
제론이 무림을 주유할 때 흡정마공을 익힌 마인이 나타난 적이 있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흡정을 하며 극마-화경의 경지까지 오른 고수였다.
이에 무림은 그를 공적으로 공표하고 천라지망을 펼쳐 궁지까지 몰아갔으나 참으로 허망하게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폭주한 내공을 다스리지 못해 몸이 폭발해 죽었다.
제론이 잔존 마나를 흡수하는 행위가 흡정마공처럼 위험한 건 아니었지만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면 몸속에 작은 폭탄을 넣고 다니는 것과 다름없었다.
“으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할 것 같지가 않네.”
에르딘이 옆에 있었다면 재수 없다며 인상을 찌푸릴 테지만 사실이었다.
“어쨌건 빨리 끝내고 후딱 돌아가야지.”
시간이 꽤나 많이 지났다.
폴른 제국의 병사들이 바후르 도적단의 잔당을 찾기 위해 던전을 수색하다가 근처에 접근하면 바로 이상을 알아차릴 것이다. 코어를 제거하기 전이면 던전 방어체계로 접근을 제한할 수 있지만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제론은 가부좌를 틀고 백회혈을 통해 잔존 마나를 흡수했다. 이윽고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단전으로 인도했다. 잔존 마나를 단전에 쌓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역혈마공으로 바로 순환시키지는 못했다.
잔존 마나의 양이 예상보다 더 많았기 때문이다.
‘잘못했으면 배탈 났겠어.’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남은 음식이 아깝다고 꾸역꾸역 먹다가 체하는 것처럼 내공 역시 단전의 크기에 따라 쌓을 수 있는 한계가 있다. 물론 제론의 단전은 하단전과 중단전, 상단전으로 총 3개라서 전부 흡수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위에 말한 것처럼 순환시키지는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쌓아두기만 하고 던전을 벗어났다.
‘꽤나 난장판이네.’
정체불명의 적들이 던전을 습격한 것도 큰일인데 그들의 정체가 바후르 도적단이었다. 심지어 두목인 바후르가 시체로 발견되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을 것이다. 잠행술을 익혀두지 않았다면 빠져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통제와 감시가 완벽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어쨌건 제론은 던전을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고 곧장 도시로 향했다.
* * *
빠각-!
“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머리가 뒤로 튕겨져 나갔다. 오러 마스터를 상대로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던 에르딘이지만 이번만큼은 항거할 수 없었다.
강력했다.
너무나도 강력하고 무자비한 공격이었다. 다리의 힘이 풀려 그대로 무너질 뻔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이윽고 또다시 엄습해오는 공격!
‘빨라!’
에르딘이 전보다 예민해진 감각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오감까지 총동원해서 피하려고 했지만 그를 공격하는 상대의 실력은 그 이상이었다.
빠가악-!
“……!”
이번에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고 다시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온 순간 자신이 무릎을 꿇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에르딘이 그런 생각을 할 때 눈앞으로 제론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으악!”
“……내가 귀신이냐?”
“귀신이면 차라리 안 무섭죠!”
‘적어도 저를 때리지는 못하니까요!’라는 뒷말을 꿀꺽 삼킨 에르딘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뿔처럼 솟아난 이마의 혹 2개 위로 손을 올렸다.
“윽!”
손바닥이 닿기 무섭게 아릿한 통증이 올라온다. 조심히 만지면서 내공으로 살짝살짝 마사지를 했다. 아픈 건 둘째 치고 이마가 괜찮은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뼈가 금 간 것 같지는 않은데.’
묘하게 몸이 가벼워진 기분까지 든다. 사지를 꿈틀꿈틀 움직여보니 확실하다. 욱신거리던 통증도 많이 줄어들었다.
“타혈打穴했어.”
“아, 전에 말씀하셨던 혈도를 때려서…가 아니라! 그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에르딘이 다급하게 몸 상태를 다시 점검하며 묻는다.
제론이 혀를 차며 말했다.
“세게 때리면 위험하지. 그래. 잘못하면 죽기도 하고. 그런데 세게 때려서 안 위험한 곳이 어디 있냐? 뒷목을 툭툭 두드리면 시원하고 개운해지지만 세게 때리면 부러지잖아. 그런 거랑 같은 거야.”
“……?”
“뭐?”
“비유가 좀 극단적이라서요.”
그래. 이 귀족아.
살살 주무르거나 두드리면 시원하지.
세게 때리면 부러지겠고.
그건 당연하지. 그런데 내가 그걸 몰라서 물어봤겠냐?
에르딘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속마음도 꾹꾹 삼켰다.
아무튼,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맛있었냐?”
“더럽게 맛없어요.”
주어가 빠졌지만 에르딘은 바로 알아듣고 대답했다.
그런 에르딘을 빤히 쳐다보던 제론이 물었다.
“너 양파가 사과로 변하는 마술 아냐?”
“마술이 아니라 연금술 아니에요?”
“…….”
“알아요. 알아요. 농담한 거니까 그 손 내려요.”
제론은 어깨까지 올린 손을 내리며 계속 말했다.
“그 마술의 비법은 간단해. 양파를 먹여. 계속 먹여. 그럼 사과가 돼.”
“……?”
에르딘이 미간을 팔八 자로 좁힌 채 갸우뚱한다. 마술이 뭔지는 알지만 양파를 계속 먹이면 왜 사과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에르딘을 위해 제론이 흐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덧붙였다.
“사과가 아니라고 하면 계속 양파를 처먹이거든. 사과라고 할 때까지 말이야.”
“아……!”
에르딘이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꿀밤은 맛없지?”
“맛없는 게 아니라 아파요. 정말 엄청 아프다구요.”
“아, 맛없는 게 아니라 아파? 그럼 맛있어질 때까지 계속 먹자.”
“……!”
에르딘이 벌떡 일어나 도망치려고 했지만 제론에게 뒷덜미가 붙잡혔다.
“자, 잠깐만요! 아직 안 먹었지만 알 것 같아요! 엄청 맛있을 거예요! 그 꿀밤 세상에서 제일 맛있을 것 같아요!”
“거예요? 것 같아?”
“방금 그 말 취소! 꿀밤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어요!”
에르딘이 재빨리 말을 정정했다.
제론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맛있으면 더 먹어야지.”
빠각-!
“아악!”
목이 떨어져 날아갈 것처럼 꺾였다.
끼익.
“내가 아무래도 방을 잘못 들어왔나 보군.”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왔던 말콤은 동공 지진을 일으키더니 다시 뒷걸음치고 문을 닫았다.
* * *
한 시간 뒤에 다시 찾아온 말콤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그거 제 대사인데요?”
에르딘이 이마의 뿔 3개를 문지르며 떨떠름하게 말했다.
곧 제론의 시선을 느끼고 입을 쏙 다물었다.
“며칠은 쉬고 움직이려고.”
“그러는 게 낫긴 해.”
말콤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용병들의 로테이션이 어떻게 돼?”
“보통은… 음, 의뢰가 하나 끝나면 며칠 쉬었다가 다시 슬금슬금 움직이지. 한 3, 4일 뒤쯤? 나도 원래대로라면 던전 탐험 의뢰는 관광에 가까운 소일거리였어야 했지만……. 사건이 워낙 커져서 고민 중이야. 생각보다 피로도가 어마어마하게 쌓였거든.”
던전 탐험 의뢰는 공략판정에 따라 급이 나뉜다. 이번 의뢰는 원래 D등급이지만 바후르와 놈의 부하들이 나타나며 S등급으로 격상한 특이한 케이스였다. 의뢰 보수라도 받았다면 모를까 의뢰서 조건에도 달려 있지 않은 일이 벌어져서 오히려 손해만 입었다.
그래서 말콤도 고민하는 것이었다.
“그럼 당분간 쉬자고.”
“응? 왠지 같이 움직이자는 말로 들리는데?”
“맞아.”
제론이 수긍하자 말콤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건 생각하지 못한 상황인데.”
“서대륙의 상황을 잘 아는 것 같아서 당분간 옆에 끼고 다니려고. 우리는 네 덕분에 서대륙 정세를 파악하고, 너는 등급 높은 의뢰를 받아서 돈 좀 더 먹고, 서로 윈윈win-win하면 좋잖아.”
“나야 좋지. 혼자 다니면 좀 심심하니까.”
“주로 혼자 다녀요?”
“뭐……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의뢰가 끝나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들 학을 떼면서 도망치더라고.”
네가 말이 너무 많아서 그래.
제론과 에르딘이 동시에 생각했다.
* * *
당분간 쉬자고 말했지만 축 늘어져서 뒹굴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제론은 던전에서 흡수한 잔존 마나를 역혈마공으로 순환시키는 데 집중하고, 에르딘은 바후르와 싸우며 얻은 깨달음을 소화시키느라 바빴다.
말콤은 그런 두 사람의 눈치를 보다가 혼자서 밖에 나가 검을 휘두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에르딘이 물었다.
“말콤 씨.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어, 진짜? 뭔데? 어서 말해봐.”
말콤은 검을 휘두르다 말고 크게 반색하며 쪼르르 달려왔다. 대답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다는 표정이다.
‘이 사람은 이야기꾼을 하면 딱인데.’
전에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었다. 말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데 이야기꾼이나 음유시인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 말이다.
그때 말콤이 한 대답은 ‘취미가 일이 되면 재미가 없다.’와 ‘악기를 다룰 줄 모르고 노래는 더럽게 못 부른다.’였다.
잠시 생각이 딴 길로 샜지만 진지하게 물었다.
“말콤 씨는 왜 검을 써요?”
“멋있잖아.”
말콤은 씨익 웃으며 엄지를 척! 세웠다. 괴상한 생명체를 본 것 같은 시선으로 쳐다보던 에르딘이 심해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제가 누군가한테 훈수를 둘 실력은 아니지만…… 말콤 씨는 롱 소드보다는 펄션Falchion같이 한쪽 날만 있는 무기가 더 손에 맞는 것 같아요.”
“에르딘 형씨의 말은 방패도 같이 쓰라는 거지?”
“그렇죠.”
“흐음.”
말콤이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고심에 잠겼다. 자신도 몇 번씩 고민해본 문제였다. 롱 소드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이제 와서 바꾼다고 의미가 있을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