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32)
제132화
132화
에르딘은 무공을 정석으로 배우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했고 빠르게 힘을 갖길 원했기 때문이다. 제론은 그런 에르딘의 부탁을 들어줬다. 빠르게 강해지는 속성 코스를 짜서 수련시켰다. 한 번이라도 낙오하면 일어서지 못하는 극악무도한 난이도였다. 이론과 지식은 필요하지 않았다. 몸으로 체득하면 되니까.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지.’
에르딘은 익스퍼트 상급의 실력을 갖게 되었다.
잘못됐다면 그런 결과가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론이 전혀 없다는 거지.”
“그걸 가르친 사람이 제론 님이죠.”
에르딘은 당당하게 말했다.
제론이 녀석을 슬쩍 흘겨보고 설명을 계속했다.
“……그래서 뇌기는 어린아이의 욕망처럼 순수하고 솔직해. 그리고 흉악하고 불안정하지. 그런 이유로 다루기가 힘들어서 오랜 연습과 고된 수련이 필요해.”
“그러니까 뇌기가 제론 님 같다는 거죠?”
“이게…….”
제론의 이마에서 혈관이 튀어나오자 에르딘은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아니. 정말로 이해가 안 돼서 그래요. 뇌기는 내공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순수하고 솔직하다는 건지 모르겠고, 왜 흉악하고 불안정하다고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뇌기가 진짜로 살아 있는 생명이라면 이해하는데 결국 내공에 불과하잖아요?”
제론은 살짝 골치가 아파 왔지만 에르딘이 쓸데없이 태클을 거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무공을 배우려고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
‘말하는 대로 듣고 시키는 대로 하던 때가 좋았어.’
하지만 한 명의 무인으로서 서서히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맛은 있었다.
“무공 가르치는 건 잠시 제쳐두자.”
“네?”
“너한테 지금 제일 중요한 건 무공을 배우는 게 아닌 것 같아.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일리가 있네요.”
에르딘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제론이 짝- 손뼉을 치고 말했다.
“무공은 마법처럼 철저한 이론으로만 이루어진 공부가 아니야. 이론과 감성을 적절하게 섞은 구체적이지 못한 개념이지.”
“그게 무슨 말인지……?”
“너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 있어?”
에르딘이 눈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론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녀석에게 그런 경험이 있을 줄 정말로 몰랐기 때문이다.
“왜 그 사람을 좋아했어?”
“으음. 예뻐서?”
“미안하다. 그냥 무공 배우는 건 포기해라. 나는 더 이상 너를 이해시킬 자신이 없어졌어.”
“에헤이. 그러지 마시고 다른 예를 들어주시죠.”
에르딘이 재빨리 제론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두통이 점점 심해지는 것을 느낀 제론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래. 외모를 보고 좋아할 수 있지. 예선을 통과해야 본선에 가니까. 그럼 외모만 좋아했어? 그걸로만 좋아하는 건 한계가 있잖아. 음. 물론 나처럼 완벽…….”
“지켜보다 보니까 성격도 털털하고 좋았어요.”
“…….”
슬쩍 눈치를 보는 에르딘.
일부러 말을 자른 게 분명했다. 한 대 쥐어박을까 고민했지만 흐름을 끊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녀석과의 진지한 대화를 이어가는 게 더 중요했다.
“음……. 계속 말해봐.”
“웃을 때 볼에 보조개가 들어갔는데 계속 시선이 갔어요.”
에르딘은 그 뒤로 이름 모를 여자에 대한 말을 늘어놨다. 어느샌가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무척이나 애틋하고 그리워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 여자를 왜 좋아했어?”
“그야 예뻐……?”
에르딘이 아까처럼 대답하려다가 이상함을 느끼고 말끝을 흐렸다. 예뻐서 좋아했다. 처음에는 그게 맞다. 하지만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다른 모습에 점점 빠져들었다.
“예뻐서 좋아할 수 있어. 하지만 그게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는 이유의 전부가 아니잖아? 비유가 이상하긴 하지만 무공이란 그런 거야. 처음에는 구결을 외우고 수련을 하지만 점점 그 속에 담긴 진짜 뜻과 의미를 알아가는 거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알 것 같기도 하네요.”
“무엇보다도 목적성이 있어야 해. 칼은 사람을 해치려고 있어. 하지만 왜 해치려는지가 중요해.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해치기도 하고,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사람을 해치기도 하지. ‘왜’가 중요한 거야.”
뒤죽박죽이고 엉망진창인 대화였다. 하지만 무공을 잘 알지만 가르치는 재주가 없던 제론에게 이것이 한계였다.
‘새삼 형의 오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네.’
1을 말하면 10을 안다는 건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그냥 괴물이다. 내심 혀를 두른 제론이 묻는다.
“위의 말과는 별개로 물어볼게. 너는 왜 강해지려는 거야?”
“…….”
결론은 하나였다.
바로 목적.
목적은 방향이다.
그 방향의 끝에 목표까지 있다면 좋겠지만 이제 막 무인으로 변해가는 에르딘에게 많은 것을 바라기에는 무리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만 정하면 된다.
‘애당초 나랑은 케이스가 다르니까.’
에르딘은 제론과 많은 것이 다르다.
유민현은 현대에서 혼자였다. 가족이 없고 친구도 없었다. 학창시절에는 쓸쓸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오히려 좋았다. 악의에 찬 시선과 말이 등 뒤로 쫓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강해져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무림은 현대와 달랐다.
약육강식의 세상이었다. 현대가 약육강식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약하면 짓밟히고 빼앗긴다. 진짜로 죽는다. 유민현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처럼 죽고 싶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서 강해져야만 했다.
그래서 강해져야 할 이유가 있었다.
‘현대로 돌아가려고 했던 이유도 참 웃기지.’
약하면 죽는다. 하지만 너무 강해져서 고독해졌다.
딜레마였다.
잠시 생각이 다른 곳으로 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에르딘에게는 강해질 이유가 필요했다.
무공을 익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저는…….”
“편하게 말해.”
“저는…….”
제론이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에르딘은 왜 강해지려고 하는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하지만 우물쭈물 망설였다.
잠시 기다리자 녀석이 짙은 한숨과 웅얼거렸다.
“제론 님의…….”
“뭐?”
얼마나 작게 웅얼거렸던지 제론조차 듣지 못할 정도였다.
“아잇! 제론 님의 옆에 있고 싶어서요! 앞으로도 쭉! 그래서 강해지고 싶다고요!”
“음. 네 말은…….”
“잠깐. 무슨 말 할지 알아요. 낯부끄러운 대답인 거 나도 알아요. 예전에도 말한 적 있잖아요. 진짜 어렸을 적의 치기로 말하는 거 아니에요. 그때도 가벼운 마음으로 말했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앞으로 평생 제론 님의 옆에서 있고 싶어요. 이건 진심이에요.”
제론이 천천히 손을 들어 검지로 볼을 긁적였다.
랩처럼 속사포로 쏟아낸 에르딘은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지만 귓불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알아.”
“……네?”
에르딘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희미하게 미소 짓는 제론이 보였다.
“진심인 거 안다고. 음. 나는 지금까지 네가 가벼운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한 적 없는 거 알아. 그래서 좋은 이유라고 생각해. 누군가와 함께 가고 싶다는 마음. 그로 인해서 강해지고 싶다. 목적과 목표가 정확하고 올발라서 좋아.”
“헤…….”
“하지만.”
제론이 표정을 싹 굳히자 에르딘은 긴장감이 들며 마른침을 삼켰다. 무슨 말을 할지 예상되지 않아서 더욱 긴장되었다.
곧 제론은 턱을 괴며 말했다.
“나를 좋아하지는 마.”
“네?”
“난 여자가 좋으니까.”
“……?”
잠시 멍하니 제론을 쳐다보던 에르딘이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얼굴을 붉혔다.
“야, 이 인간아!”
고성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 * *
“바후르가 죽었다고?”
“예. 신원을 확인한 결과 바후르 도적단의 두목이었습니다.”
“허. 그런 곳에서 죽었다니.”
기병대장의 보고를 들은 퓨리온 공작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가 죽어서 안타까운 게 아니다.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못해서 허탈한 것이었다.
“놈의 손에 죽은 부하들의 복수를 해줘야 하는데.”
“…….”
“누가 그를 죽였는지는 확인됐나?”
“그건…….”
“당시 던전에 출입한 모든 인원의 목록을 작성해서 주시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기병대장이 황급하게 밖으로 나가자 퓨리온 공작은 소파에 몸을 깊숙하게 묻었다. 바후르를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지 못한 건 허탈하지만 감정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일 문제는 아니었다.
바후르가 죽었지만 바후르 도적단은 아직 건재했다. 외부로 알려진 것과 다르게 놈들의 전력은 바후르 한 명이 아니다.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또 한 명의 오러 마스터.”
그랬다.
토벌대가 전멸한 이유는 몬스터를 부리는 흑마법사 때문이 아니었다.
몬스터가 몰려들어서 당황한 건 사실이지만 에버로스트 산맥이라는 점을 생각해서 여러 가지 변수까지 계산하여 토벌대를 구성했다. 수백 명의 도적단을 토벌하러 3만 명의 정규군과 50명의 기사, 30명의 마법사가 나섰는데 실패한다는 건 애당초 말이 안 됐다. 하지만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나타났다.
바후르에 이어 또 한 명의 오러 마스터가 도적단에 있던 것이다.
퓨리온 공작은 두 명의 오러 마스터에게 합공을 받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토벌대가 전멸당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균형추가 기울었지.”
해충을 박멸할 때가 되었다.
* * *
“얕보지 말라고 말해줬는데도 당하니,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고.”
흑마법사가 키득거리며 중얼거리자 새로운 도적단 두목의 자리에 오른 남자가 살기를 담은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남자의 정체는 도적단의 부두목이자 바후르와 함께 막중한 임무를 띠고 서대륙으로 넘어온 또 한 명의 오러 마스터였다.
바후르와 그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었지만 서대륙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런 바후르의 죽음을 비웃는 흑마법사의 모습에서 남자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
남자의 시선을 느낀 흑마법사가 입술을 비틀었다.
“내가 그 눈을 찢어버리기 전에 조심하는 게 좋지 않을까?”
“말조심을 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은데?”
남자가 영역을 침범당한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흑마법사는 코웃음을 쳤지만 곧 어깨를 으쓱하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직 남자의 이용가치가 남았기 때문이다.
‘바후르 도적단을 컨트롤 하려면 아직 이 녀석이 필요하지.’
바후르가 죽고 나서 새로운 도적단의 두목이 된 남자였다.
자신이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니만큼 바후르 도적단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 녀석이 필요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 죽여서 몬스터의 먹이로 던져줬을 것이다.
‘그나저나 요즘 변수가 너무 많이 생겨. 그 녀석도 아론 다이트라는 용병한테 당한 건지 확실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어.’
계획이 계속 틀어지면 흐름을 걷잡기 힘들어진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그 전에 잠시 시선을 돌려볼까?’
변수로 인해 자신의 행적이 꼬리가 잡히려 하고 있다.
때마침 ‘야만의 땅’이 떠올랐다.
서대륙으로 집중되는 이목을 돌리려면 큰 건이 필요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