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33)
제133화
133화
제론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에르딘의 수련이 순조로웠기 때문이다. 녀석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겨도 묻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묻는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구결은 다 외웠지?”
“예. 그런데 이 부분 있잖아요. 여기서 보면 내공을 위중혈에서…….”
“그만. 그만. 오늘은 더 이상 질문 안 받아. 아까 말콤이 오늘 바로 수행이 가능한 의뢰를 받아오기로 했어. 그러니까 짐부터 싸. 바로 출발할 수도 있어.”
“아…… 그래요?”
에르딘이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지만 곧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제론을 바라보며 묻는다.
“준비 다 하면 물어봐도 돼요?”
“아니.”
단호하게 거절하자 녀석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제론은 피식 웃고 검을 꺼내 손질했다.
“이번에 형씨랑 에르딘 씨가 관심 있어 할 만한 의뢰가 있더라고. 그래서 잽싸게 들고 왔어. 한 번 읽어 봐봐.”
잠시 후 말콤이 의뢰서를 갖고 돌아왔다. 제론과 에르딘은 옹기종기 모여서 의뢰서를 쭉 훑어보며 대화를 나눴다.
“에버로스트 산맥 주변의 몬스터 퇴치?”
“몬스터의 종류에 따라 보수가 달라지네요. 고블린의 왼쪽 귀 4개가 1실버, 코볼트의 오른쪽 송곳니 6개가 1실버니까 보수도 제법 괜찮아요.”
사체를 그대로 가져가면 훼손 상태에 따라서 가격이 측정된다. 또한 몬스터의 위험도가 올라갈수록 보수 역시 높아진다.
트롤과 네임드는 예외였는데, 트롤의 피는 포션의 필수재료로 사용돼서 불순물이 없다는 가정하에 1리터당 10골드로 쳐주고, 네임드는 감정을 해서 마나의 응집도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고 한다.
“근데 너무 허술한 거 아냐? 막말로 아무 데나 가서 몬스터를 잡아 와 가지고 에버로스트 산맥에서 잡았습니다, 하면 그만이잖아.”
폴른 제국에 상주하고 있는 몬스터의 대부분은 에버로스트 산맥에서 내려온 것들이다. 지닌 세력이 작거나 개체적으로 약체로 태어나 험난한 산맥에서 쫓겨나거나 도망친 녀석들이었다. 그래서 겉모습이나 특징이 비슷해서 대충 보이는 아무 놈이나 잡아 와도 차이를 알아보기 쉽지 않다.
그때 에르딘이 말했다.
“어? 잠시만요. 보수를 지급받는 위치가 정해져 있어요. 전부 에버로스트 산맥 인근에 위치한 도시나 마을인데요?”
“으음. 아무래도 꼭 에버로스트 산맥에서 몬스터를 퇴치하는 게 아니더라도 상관없다는 것 같네. 하긴. 몬스터는 어디서든 문제니까 당연하려나. 보수를 지급하는 장소를 에버로스트 산맥 주변 마을과 도시로 지정한 건 최대한 이쪽으로 와서 사냥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비친 거고 말이야.”
에버로스트 산맥 부근 도시와 마을은 일종의 방어책이라서 각자 거리가 멀어서 다른 곳을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 번 보수를 지급받는다면 다른 곳으로 오가는 시간보다 에버로스트 산맥에서 몬스터를 퇴치하는 것이 용병들에게도 훨씬 이득이다.
“이거 아무래도 1차 토벌에서 몬스터를 부렸다는 흑마법사 때문에 의뢰로 내놓은 거 맞죠?”
“맞을 거야. 제법 머리를 잘 썼어. 용병들도 어느 정도 눈치는 챘겠지만 혹하지 않을 수가 없지. 에버로스트 산맥 근처에서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어도 몬스터가 나타날 테니까.”
“그럼 어떻게 하실래요?”
“당연히 해야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결정을 내렸다.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말콤이 반응이 좋자 씨익 웃었다.
“좋다니까 다행이네. 혹시나 별로면 어쩌나 걱정했어.”
“아니야. 에르딘 이 녀석한테는 실전이 절실하게 필요해. 최대한 많이 싸우면 싸울수록 좋지. 그러니까 정말 좋은 의뢰야.”
“무척이나 좋은 피드백이었어.”
“말콤 씨. 나중에 술 한잔 살게요.”
“그 말도 세상에서 제일 좋은 피드백이야.”
말콤이 찡긋 윙크했다.
* * *
실전이 필요한 것은 에르딘뿐만이 아니었다. 새로운 방패를 장만한 말콤 역시 방패술로 적을 상대해봐야 했다.
한 번은 에르딘이 물어본 적이 있었다.
“말콤 씨, 방패술 아세요?”
“대충은 알아. 예전에 어깨 너머로 많이 봤거든. 내가 말 안 했나? 나 ‘라이언 하츠’ 용병단 소속이었거든.”
“‘라이언 하츠’ 용병단이면 서대륙에서 최고의 용병단 아니에요?”
에르딘이 깜짝 놀라며 묻는다.
“몇 년 전까지는 최고였지. 지금은 이런저런 일이 있는지 아니지만 말이야. 뭐 그래도 여전히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것 같더라고.”
“우와. 옛날에 잘 나가셨네요?”
“에잉. 힘들어서 관둔 놈한테 잘 나가기는 무슨! 제대로 훈련도 안 받고 나왔어. 그나저나 마차가 온 모양인데?”
세 사람은 지금 에버로스트 산맥 인근의 마을로 가는 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시로 가면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마을로 가는 것이다. 마을이라고 하지만 성벽만 세워져 있지 않을 뿐이지 있을 건 다 있다고 한다.
‘없는 건 없겠네.’
제론은 무심코 생각했다. 무림 시절 ‘서역에는 없는 게 없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이 ‘없는 건 정말로 없다.’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이후로는 말을 최대한 오해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한마디로 그 마을에는 있는 것만 있다는 거지.’
놀러 가는 건 아니니까 상관없었다.
마을에 잠을 잘 방과 사람이 먹을 음식만 있으면 된다.
‘그래도 에버로스트 산맥에서 내려오는 몬스터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마을이니까 호텔까지는 아니더라도 고급 여관은 있겠지.’
나뭇잎을 덮고 잘지언정 곰팡이 핀 이불 덮고는 못 자겠다.
제론과 그의 일행은 바로 마차에 올라탔다. 자리는 한산했다. 일찍이 의뢰서를 발견한 용병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도시로 향했기 때문이다.
“언제 출발합니까?”
말콤이 묻자 마부가 10분 뒤에 출발할 거라고 대답했다. 10분이 지나자 한 파티로 보이는 용병 3명이 올라탔다. 곧 마차가 출발했다.
“……이름이 어떻게 돼? 나는 ‘하얀 섬광’ 머딧이라고 하는데.”
3명의 용병들 중에서 대머리가 말했다.
적막이 내리깔린 마차 안이었다.
나름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먼저 말을 꺼낸 듯했다.
말콤이 제론의 눈치를 살짝 살펴보고는 대답했다.
“나는 말콤이라고 해.”
“어? ‘수다쟁이’ 말콤이 당신이라고?”
대머리 용병 머딧이 깜짝 놀라 말했다가 다급하게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같은 파티의 용병들이 머딧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미안하게 됐어.”
말콤은 어색하게 웃더니 괜찮다고 말했다.
“수다쟁이까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많은 건 사실이니까.”
“저는 로랑이라고 해요. 아직 별명은 없어요.”
“나는 로라. 따로 별명은 없어.”
머딧의 파티원이 차례대로 자기소개를 했다.
로랑은 아직 20살을 넘지 않아 보이는 어린 용병이었다.
용병계에 몸을 담은 지 얼마 안 됐는지, 원래 성격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자기소개를 할 때 엄청 쑥스러워했다.
반면 로라는 시크한 여자 용병이었다. 냉막하게 느껴지는 외모가 큰 몫을 했다. 하지만 머딧이 실수했을 때 옆구리를 쿡쿡 찌른 모습을 생각하면 속마음까지 냉막한 건 아닌 듯했다.
에르딘이 순박하게 웃으며 자기소개를 하고 제론을 쳐다봤다.
“뭐?”
“빨리요. 자기소개해야죠.”
“제…… 아니, 아론.”
제론은 귀찮아서 이름만 밝혔는데 머딧과 그의 파티원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제론을 빤히 쳐다보더니 자기들끼리 눈빛을 교환했다. 곧 로라가 살짝 홍조를 띤 얼굴로 물었다.
“그쪽이 정말로 그…… 소문의 슈퍼 루키 아론 다이트예요?”
‘시크’는 사라지고 아이돌을 바라보는 소녀 팬이 나타났다.
“소문의 슈퍼 루키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론 다이트라는 용병은 맞아.”
“호, 혹시 로브를 잠깐 걷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로라가 존댓말로 부탁하자 머딧과 로랑이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본래 로라는 냉막하고 시크하지 않았다. 용병계에서 몇 년 구르면서 가는 말이 고와도 오는 말이 곱지 않고 개무시를 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 그렇게 변한 것이었다.
“설마 그거 때문에 그런 건 아니겠지?”
“아마 맞을 거예요. 로라 누나 그거잖아요.”
“시끄러!”
두 사람이 속닥거리자 로라가 버럭 소리쳤다. 다시 제론을 쳐다본 그녀가 로브를 잠깐 걷어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제론은 인상을 썼지만 로라의 눈빛이 너무나도 간절했고, 에르딘마저 옆구리를 쿡쿡 찌르자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가리고 있던 로브를 걷어냈다.
그 순간 돌고래 울음소리가 마차 안을 가득 채웠다.
“꺄아아악-!”
“……!”
5명의 남자들이 다급하게 귀를 막았다. 마차를 몰던 마부도 화들짝 놀라서 실수로 채찍질했고 말이 질주했다.
“무슨 일입니까?!”
흥분한 말을 달랜 마부가 마부석 창문을 열며 물었다.
“죄, 죄송해요!”
로라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사과했다.
* * *
마을에 도착했다.
작은 해프닝(?) 덕분에 이동하는 내내 마차 안은 조용했다.
로라는 마차가 멈추자 후다닥 내려서.
“호, 혹시 다음에도 만나게 되면 인사해주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머딧과 로랑은 다음에 또 보자며 말하고 그녀를 쫓아갔다.
“재밌는 일행이네요.”
“재밌었냐?”
에르딘이 히죽 웃으며 말하자 제론이 까칠하게 대응했다.
말콤은 킬킬 웃으며 말했다.
“괜히 시비를 거는 놈들도 많아. 저 정도면 귀엽지.”
“말콤 씨가 그렇다고 하잖아요.”
“하아.”
제론은 짙은 한숨을 내쉬고 여관을 찾아 나섰다.
‘도대체 소문이 어떻게 퍼진 거지?’
로라가 자신의 가명을 듣고 로브를 걷어달라고 한 이유는 놀랍게도 얼굴 때문이다.
머딧이라는 용병이 말하기를 ‘뛰어난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슈퍼 루키’가 나타나서 유명한 용병단에서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로라에게는 ‘외모’가 더 중요한 것처럼 보였지만……. 아무튼, 분위기가 급어색해져서 자세히 묻지는 못했지만 이쪽 업계에 자신의 소문이 많이 퍼진 모양이었다.
‘바후르가 날 찾아왔을 정도면 이미 말 다 한 셈이긴 하지.’
던전에 있던 용병들은 갑작스러운 횡액을 당한 꼴이었다.
그런 생각에 잠긴 채 여관을 찾아다니고 있는데 뒤에서 에르딘이 불렀다.
“아론 님.”
“왜?”
“저쪽 좀 보세요.”
제론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그곳에는 정규군으로 보이는 병사 500명이 완전무장을 한 채 오와 열을 맞춰 이동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지금 당장 적이 쳐들어와도 응전이 가능할 정도로 사기가 높고 기세등등했다. 그러나 에르딘이 가리킨 것은 병사들이 아니라 뒤에서 끌고 오는 장거리 저격 무기 스콜피오Scorpio였다.
“오우거라도 나타난 건가?”
“아무래도 마을을 전초 기지화 시키는 것 같은데?”
바후르 도적단에는 몬스터를 부리는 흑마법사가 존재했다. 놈이 마음만 먹는다면 주변 도시나 마을을 공습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몬스터의 공격에 대한 방비를 하는 건 당연했다.
‘발리스타에서 파생된 무기라고 들었는데.’
제론도 스콜피오를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그때 에르딘이 눈을 살짝 크게 뜨며 중얼거렸다.
“어? 저 사람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