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36)
제136화
136화
흑마법사의 경박한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신중하게 물들어 있었다.
퓨리온 공작은 현 대륙에서 한 손에 꼽히는 절대강자였다. 물론 공식적으로 알려진 존재 중에서였다. 하지만 그의 강함은 진짜였다. ‘악몽의 집행자’들이 직접 집행을 나서지 않는 이상 그를 상대할 존재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퓨리온 공작과 제론을 똑같이 위험하다고 상정하려고 한다.
“일단 보고를…….”
‘악몽의 집행자’ 전용 통신 구슬로 손을 뻗으려던 흑마법사가 멈칫했다. 제론이 바후르를 쓰러트렸다는 사실은 단순한 추측에 불과했다.
‘그’는 확실한 것만 원한다.
단순한 추측을 확신처럼 보고한다면 불쾌해할 것이다.
흑마법사의 갈등은 짧았다.
“이번까지만 지켜보는 걸로 해야겠어.”
멀지 않은 미래에 큰 후회를 불러올 선택이었지만 흑마법사는 예언자가 아니었기에 알지 못했다. 곧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새로운 도적단의 두목이 된 남자를 찾아갔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남자가 의아해했다.
“무슨 일로……?!”
흑마법사가 남자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가만히 있어.”
남자는 피하려고 했지만 흑마법사의 몸에서 나온 검은 쇠사슬이 그의 사지를 결박했다. 이윽고 흑마법사의 손이 남자의 얼굴을 덮었다. 손바닥에서 검은색의 기운이 흘러나와 남자의 눈과 귀, 코,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끄아아악-!”
남자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 * *
제론은 쿵- 쿵- 뛰어오는 오우거를 바라봤다. 눈짐작으로 ‘에단의 은신처’에서 봤던 녀석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이제 막 성체가 된 개체가 아니라 완전한 성체 오우거였다.
“빠르게 처리해야겠네.”
검을 빙글- 돌리며 앞으로 달려간다.
4마리의 트롤 워리어가 전부 네임드라면 에르딘이 혼자서 상대하지 못한다. 내공을 사용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버티는 것은 가능했다.
문제는 말콤이었다.
리자드 맨 무리는 언뜻 세어도 10여 마리였다. 네임드가 아니더라도 말콤의 실력으로는 몇 마리가 한계다. 1분 1초가 아깝다.
“크롸-!”
오우거가 트롤 워리어들처럼 흑색의 기운을 주먹에 두르고 휘둘렀다.
제론이 오우거의 주먹을 피하며 생각했다.
‘정령력도 아니야.’
그것이었다면 네로가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네로야. 저거 뭔지 아냐?”
-마기의 찌꺼기다.
웬일인지 녀석이 대답을 해준다.
제론은 검을 내질렀다.
“마기의 찌꺼기?”
-마족…… 그러니까 중간계에서는 악마라고 부르는 종족의 힘에서 뽑아낸 불순물이다.
녀석은 대답을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동시에 검이 오우거의 미간을 관통했다. 내공을 터트려 머릿속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오우거가 쓰러지자 바로 말콤에게 갔다.
“흐얏-!”
“생각보다 잘 싸우고 있네.”
제론은 리자드 맨 한 마리를 절반으로 잘라버리며 말했다.
말콤이 방패로 공격을 막으며 머쓱하게 웃었다.
“방패술이 생각보다 더 잘 맞던 것 같더라고. 형씨 말을 듣길 잘했지. 안 그랬으면 이미 당했을 거야.”
“흠. 나중에 오러 연공법 알려줄게.”
“뭐?!”
제론의 말에 깜짝 놀란 말콤이 리자드 맨의 공격을 허용했다. 옆구리가 길게 갈라지며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갑옷을 착용하지 않았다면 내장이 흘러내렸을지 모를 정도로 상처가 깊었을 것이다.
“그,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자고!”
“상처나 지혈하고 있어.”
멍하니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는 말콤을 뒤로 한 채 제론이 리자드 맨들을 단숨에 쓸어버렸다. 검광이 번쩍일 때마다 리자드 맨이 2마리씩 쓰러졌다. 1분도 흐르지 않아 전부 처리했다.
“…….”
여전히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말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준 제론이 이번에는 에르딘을 지원했다. 내공을 사용해서 맞서 싸우고 있지만 체력을 많이 소모해서 그런지 상당히 버거워하고 있었다. 빠르게 트롤 워리어 한 마리의 등 뒤로 접근한 제론이 몸을 세로로 갈라냈다. 녹색의 핏물과 장기가 후드득- 땅으로 떨어졌다. 나머지 3마리가 깜짝 놀라며 물러났다.
“도망치게?”
제론이 히죽 웃으며 검에 묻은 녹색 핏물을 털어냈다.
트롤 워리어들이 사색이 되며 서로를 쳐다봤다.
“몬스터도 무서우면 안색이 파랗게 변하는구나. 신기하네.”
“크륵-!”
트롤 워리어들은 다시 한번 서로를 바라봤고 세 방향으로 동시에 도망쳤다.
“트롤이 도망치는 모습은 처음이네요.”
“안색이 파랗게 변하는 것도 처음인데 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한 마리만 쫓아가서 족쳐.”
“나머지 두 마리는요?”
“한 마리는…….”
제론의 검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도망치는 한 녀석의 목을 벴다.
“지금 처리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에르딘이 쓴웃음을 짓고서 한 마리를 추격했다.
제론도 설렁설렁 나머지 한 마리를 쫓아갔다.
* * *
“인마. 한 방울 흘렸잖아.”
“하아. 저 부상자예요.”
에르딘이 투덜거리며 트롤의 피를 짜내 주머니에 담았다.
무려 1리터에 10골드다.
땅에 떨어져 스며든 저 한 방울도 몇 실버나 한다는 것이다.
한 마리는 몸이 절반으로 갈라져 얼마 못 쥐어짜 내지만 나머지 3마리는 상태가 멀쩡했다. 적어도 10리터 이상씩은 뽑아낼 정도였다.
“쩝.”
옆구리를 겨우 지혈하고 있던 말콤도 아까웠는지 입맛을 다셨다. 에르딘이 또다시 흘리자 그가 나서며 말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생기면 내가 할게.”
“그…… 미안해요. 상처는 괜찮아요?”
에르딘이 걱정했지만 말콤은 괜찮다며 빈 주머니를 꺼내 트롤의 피를 쥐어짰다. 어설픈 손놀림으로 피를 흘리던 에르딘과 다르게 무척이나 능숙하게 쭉쭉 채워버린다.
제론은 그 모습을 보다가 네로의 말을 상기시켰다.
‘아까 그 기운이 마기의 찌꺼기라고 했지?’
마기는 악마-마족의 힘이다. 그 힘에서 뽑아낸 불순물이 바로 마기의 찌꺼기다. 몬스터가 마기의 찌꺼기를 힘으로 사용한다는 건 악마술사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저쪽에 악마술사가 있다는 거네.’
흑마법사와 악마술사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개념이다. 하지만 제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흑마법사가 마지막에 이르러서 악마술사로 변한다고 생각했다. 쉽게 설명하자면 직업을 바꾸는 것이다. 어차피 핍박받는 흑마법을 사용하는데 마족과 계약한다고 무슨 차이가 있겠냐는 게 제론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아무도 모르면 장땡이지.’
현시대에는 악마술사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다. 악마술사가 지난 수백여 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론은 지금 그 사실을 오랜 시간이 지나며 유실되었다기보다는 누군가가 없앤 것이라고 유추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공들여 천천히 없앴다고 볼 수 있지.’
문득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다던 신화시대가 떠올랐다.
그때의 인간들은 스스로가 신이 되고자 했다. 공략한 던전의 주인이었던 궁중 마법사 역시 신이 되려고 온갖 끔찍한 짓을 저질렀고, 조직-커넥션이 있었다.
‘만약 그 조직이 아직까지도 이어져…….’
제론이 고개를 흔들었다.
신화시대는 신의 단죄를 받아 종막을 고했다. 그 시대의 명맥이 아직까지도 이어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망상에 가까웠다.
‘던전을 공략해서 신화시대의 유산을 얻어 과거의 문명을 다시 이룩하기 위해 모인 자들이 암약하고 있다는 가능성이 더 크겠어.’
과거 무림에도 그런 자들이 있었다고 들은 기억이 났다. 그가 무림으로 넘어가기 전의 일이라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수백 명에 달하는 무림인의 희생으로 어찌 해결했다고 한다.
제론이 생각을 막 정리하고 있을 무렵 말콤이 다가와 말했다.
“아론 형씨. 다 끝났어.”
“아.”
트롤의 피가 가득 찬 주머니가 가방 안에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돌아가자.”
제론은 어딘가를 힐끔 쳐다본 뒤 말했다.
마을로 돌아온 제론과 그의 일행은 용병 길드로 가서 트롤의 힘줄과 피가 담긴 주머니, 리자드 맨의 꼬리, 오우거의 가죽을 퇴치증거로 제출했다.
“버, 벌써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용병 길드 데스크에 서 있던 안내인이 당황하며 지부장을 불러오겠다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허겁지겁 자신의 사무실에서 나온 지부장이 감정사를 호출했다고 말하며 잠시만 대기해달라고 부탁했다.
“엄청나군요.”
호출을 받고 온 감정사가 도착해서 퇴치증거들을 감정했고 전부 진짜인 것을 확인하자 바로 보수가 지급되었다.
지부장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혹시 계속 이 마을에서 활동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말콤이 말끝을 흐리자 지부장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용병 길드 차원에서 최대한 지원해드리겠습니다.”
“하하.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하죠.”
“일행들이 피곤한 것 같아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필요하신 게 있으면 꼭 말씀해주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말콤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제론과 에르딘의 소매를 잡아끌고서 용병 길드를 벗어났다. 용병 길드를 나서자 입구로 침을 뱉은 그가 말했다.
“하여간 찰거머리 녀석들 같으니라고. 자기 실적을 올릴 기회랍시고 달라붙는 꼴이 역겹다니까.”
“원래 다들 저래요?”
“어. 그러니까 웬만하면 믿지 마. 실력 좋은 용병들만 나타났다 하면 다 저러니까. 에휴. 사실 쟤네들이 무슨 잘못이겠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 그리고 길드 차원에서 지원해준다고 하긴 했지만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아. 왜냐면…….”
투덜거리던 말콤은 곧 어딘가를 바라보며 낯빛을 굳혔다.
에르딘이 말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사자의 머리가 그려진 깃발이 휘날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라이언 하츠……!”
말콤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라이언 하츠면 말콤 씨가 몸을 담았던 용병단 아니에요?”
“아아. 그랬지.”
에르딘은 말콤의 표정이 좋지 않자 슬쩍 눈치를 살피고 입을 다물었다. 힘들어서 관뒀다고 했었는데 탈퇴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척이나 기분 나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제론이 ‘라이언 하츠’ 용병단의 누군가를 보며 피식 웃고선 말했다.
“재밌는 녀석이 있네.”
* * *
‘라이언 하츠’ 용병단의 등장에 용병들의 분위기가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저 녀석들은 왜 이쪽으로 온 거야?”
“나도 모르지. 그런데 최근에 들은 바로는 ‘라이언 하츠’ 용병단이 신입 단원을 모집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아마도 다시 최고의 자리를 노리는 게 아닐까 싶긴 한데 몇 년 전의 일 때문에…… 이크!”
‘라이언 하츠’ 용병단을 보며 수군거리던 용병들이 다급하게 흩어졌다. 용병단의 수뇌부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하찮은 것들이 말만 많아서.”
‘라이언 하츠’ 용병단장 레온 프라츠가 흩어지는 용병들을 멸시하는 시선으로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몇 년 전의 일로 ‘라이언 하츠’가 서대륙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온 것은 사실이지만 지닌 위명만 줄어들었을 뿐 전력은 예전보다 강화되었다.
“이번 의뢰만 잘 마무리된다면 다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지.”
레온 프라츠는 소리 없이 웃다가 사나운 적의가 느껴지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의외의 인물이 서 있었다.
“호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