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39)
제139화
139화
“방해가 되었나 보군. 미안하게 됐네.”
퓨리온 공작은 말하는 것과 달리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 에르딘과 말콤이 자리를 비켜줘서 고마운 것처럼 웃고 있었다.
제론은 피식하며 묻는다.
“무슨 일로 왔어요?”
“섭섭하군. 우리 사이에 너무 쌀쌀맞은 거 아닌가.”
“언제부터 우리 사이였다고요?”
너구리를 몇 마리나 삶아 먹었는지 능글맞게 구는 퓨리온 공작에게 콧방귀를 뀌어준 제론은,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하자 장소를 옮기자고 말했다.
퓨리온 공작은 좋아하며 제론을 자신의 군막으로 데려갔다.
“앉으시게.”
“생각보다 내부가…….”
그가 가리킨 의자에 앉으며 제론이 군막 내부를 쭉 둘러봤다. 군막 안에는 간이침대와 작은 식탁이 한 개씩, 식탁을 중심으로 의자가 2개, 갑옷을 거는 거치대가 있었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없었다. 군막의 크기에 비해 내부가 조촐했다.
‘조촐한 정도가 아니지.’
제론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퓨리온 공작이 말한다.
“휑하지?”
“필요한 것만 있다고 하죠.”
“포장이 좋군.”
퓨리온 공작이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몇 번의 만남을 통해 그의 성격을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공작성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전쟁터에서 산 시간이 긴 탓인지 밖에서의 그는 허례허식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실속주의였다.
또한 검술도 기사보다는 군인에 가까웠다.
기사의 검은 대부분이 겉으로 보이는 허세로 가득 찼다.
좋게 말하면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발전했고, 아군의 사기 진작을 높이는 시각적인 효과가 크지만, 같은 인간을 상대할 때는 효율이 매우 나쁘다. 하지만 퓨리온 공작의 검술은 전쟁터에서 발전을 거듭한 탓인지 철저한 실전의 검술이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아냐고?
‘들려오는 소문이 있잖아. 싸우는 모습만 봐도 알고.’
‘폭주하는 검은 바람’의 목이 떨어진 순간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퓨리온 공작은 놈의 목숨을 빠르게 끊어내기 위해 불필요한 기교와 경로를 전부 버린 검을 휘둘렀다. 그야말로 살생殺生에 최적화된 검이었다. 반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았다는 소문이 거짓이 아니다.
‘재밌는 자야.’
퓨리온 공작이 군막보초병에게 다과를 내오라고 지시했다. 군막 휘장揮帳이 걷힌 순간 완전무장한 병사들이 분주하게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몬스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산맥에서 내려오지는 않았지만 언제 내려와도 이상하지 않아 보입니다!”
“각 분대는 스콜피오로 가서 대기하라! 유사시 최고 계급자의 지시 아래 발포를 허락한다!”
“척후병은 어디 갔어?!”
“전투준비! 전투준비!”
“각 전초기지로 통신을 보내!”
퓨리온 공작은 다과를 가지러 가려던 군막보초병을 붙잡았다. 곧 제론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티타임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군.”
“시간이 된다면요.”
“거참. 너무 비싸게 굴지 마시게. 누구는 안 바쁜 줄 아나?”
제론이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퓨리온 공작은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 나가기 직전 제론에게 다시금 묻는다.
“혹시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는가?”
“말씀하세요.”
“우리와 함께 움직이지 않겠는가?”
“…….”
제론이 미간을 가운데로 좁혔다. 저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 짐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퓨리온 공작은 오해하지 말라며 손을 내저은 뒤 말했다.
“자네의 힘을 빌리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네.”
“흐음.”
제론은 혼자서도 충분하지 않냐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충분했다면 힘을 빌리고 싶다고 하지 않았겠지.’
단순히 함께 움직이냐 마냐만 고민했다. 어느 쪽이 더욱 이득인지만 생각했다.
결론은 금방 내려졌다.
* * *
“……그래서 저희를 데리고 오신 거군요.”
에르딘이 제론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어서 중요한 포인트만 짚어서 말했다.
‘퓨리온 공작과 함께 움직인다.’와 ‘하지만 그의 지시를 받지는 않는다.’, ‘부탁을 하면 듣고 판단해서 결정한다.’였다.
조건은 나쁘지 않다.
제론으로서는 에르딘과 말콤이 안전해지니까 좋았다.
토벌대가 산맥 아래에서 활만 쏘고 있는 건 아니라서 100프로 안전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용병들 사이에서 싸우는 것보다는 훨씬 더 안전하다.
‘무엇보다도 라이언 하츠 용병단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말이야.’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순수한 육감이었다. 하지만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존재의 육감은 가끔 예측을 뛰어넘어 예언에 가까울 때가 있다.
특히나 불안감과 관계되어 있을 때가 많다.
‘무슨 사고를 칠 거 같은데.’
마음에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증거도 없이 찾아가 조사를 하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제론이 증거를 찾지 못한다는 가정은 둘째 치더라도 놈들의 경각심만 불러일으키는 꼴이다.
퓨리온 공작에게 말해봤지만 폴른 제국의 정보기관에서도 ‘라이언 하츠’의 수상한 동태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아무것도 나온 것이 없었다.
‘이런 건 불편하군.’
제론이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과거의 유민현이었다면 불안감을 느낀 즉시 앞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생존이 최우선이었던 그에게 찝찝한 뒤끝은 남기지 말아야 할 요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난 혼자가 아니지.’
소중한 존재가 많아졌다. 누구도 감히 범접하지 못할 힘을 갖게 되더라도 혼자가 아닌 이상 행동에 어느 정도 제약이 걸리게 된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그 사실이 가끔씩 불편할 때가 있다. 고구마를 잔뜩 먹은 것처럼 답답하다.
‘사이다가 마렵다.’
곧 제론은 머릿속의 생각을 지우고 말콤을 쳐다본다.
‘라이언 하츠’의 전 단원이자 레온 프라츠와 악연으로 맺어진 말콤이라면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말콤이 제론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다. 눈치가 빨랐던 그는 제론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알아차리고 먼저 말을 꺼냈다.
“‘라이언 하츠’에 대해 묻고 싶은 거라도 있어?”
“현 단장인 레온 프라츠는 어떤 녀석이지?”
“으음. 짧게 말하자면 욕심 많은 독사 같은 녀석이야.”
말콤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한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싫었는지 찌푸려진 눈 사이로 선명한 적의가 떠오른다.
“조금 더 자세하게.”
“……놈은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져야만 했어. 미리 말하지만 갖고 싶은 걸 갖는다는 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야. 누구라도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가지려고 할 테니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방식의 문제야.”
잠시 말을 멈춘 말콤이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 그늘이 깔리기 시작했다.
“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지려 했어. 갖고 싶은 게 생기면 한밤중에 몰래 숙소로 숨어 들어가 훔치기도 했고 약한 사람에게는 폭력을 동원해서 빼앗기도 서슴지 않았지. 용병단의 이미지가 있어서 몇몇 단원들이 녀석을 말리면 그제야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그만두곤 했지만 며칠 뒤에 보면 그것을 갖고 있더군. 이미 지나간 일이라서 모두가 녀석을 타박만 하고 끝났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그 횡포가 심해졌어.”
레온 프라츠의 횡포는 나날이 심해져 갔다. 같은 용병단원의 것도 빼앗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를 용병단에서 쫓아내지 못한 이유는 전 용병단장의 제자였기 때문이었다.
“놈의 재능은 진짜였어. 사실 용병들의 검술과 오러 연공법이 대단해봤자 얼마나 대단하겠어? 어쭙잖은 검술과 오러 연공법보다 뛰어날 뿐이지 결국 용병이라는 규격은 넘어서지 못해.”
말콤이 마지막 말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전 용병단장이 했던 말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놈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강해졌어. 그 모습을 본 전 단장은 놈의 재능을 신께서 내려주신 것이라고 생각했고.”
전 용병단장은 레온 프라츠로 인해 ‘라이언 하츠’가 서대륙 최고의 용병단이 아니라 전 대륙을 통틀어 최고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에 이르렀다.
재능만 있다면 다른 어떠한 것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횡포를 묵인했다. 그것은 레온 프라츠의 인성을 전보다 더욱 망가트리는 지름길이 되었다.
“그 녀석은 빠르게 강해지는 만큼 탐욕도 빠르게 커져 갔어.”
시간이 흘러 커질 대로 커진 탐욕은 ‘라이언 하츠’를 손아귀에 넣고 싶기에 이르렀다.
“녀석은 ‘라이언 하츠’를 집어삼키려고 했어.”
용병단의 단장이 되는 방법은 세 가지.
첫 번째 방법은 현 용병단장과 대결을 해서 쓰러트리는 것이다.
레온 프라츠는 분명 강해졌다. 하지만 전 용병단장을 쓰러트릴 정도는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도 비등하거나 한 수 아래였다.
두 번째 방법은 전 용병단장이 노쇠해져 다음 대를 이어갈 사람을 지명하고 은퇴하는 것이다.
이 역시 몇 년 뒤의 일이었다. 레온 프라츠의 커져 버린 탐욕이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단장이 죽었을 때야. 단장이 죽으면 부단장 혹은 단원들 중에서 가장 강한 단원이 예비단장으로 용병단을 이끌며 새로운 단장을 선출하게 돼.”
“설마……?”
“맞아. 레온 프라츠가 전 용병단장과 부단장을 죽였어.”
‘라이언 하츠’가 서대륙 최고의 자리로 우뚝 올라서기까지 전 용병단장과 부단장의 역할이 지대했다.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죽어버리며 ‘라이언 하츠’는 잠시간 흔들렸다. ‘세븐 엠블럼’에게 최고의 자리를 빼앗겼다.
레온 프라츠가 전 용병단장과 부단장을 죽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증거가 있었다면 레온 프라츠가 새로운 단장으로 취임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콤이 그 사실을 확신하는 이유가 있었다.
“사실 나는…….”
그가 우물쭈물 말끝을 흐린 순간 경종이 거세게 울려 퍼졌다.
땡땡땡-!
병사들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비상을 알렸다.
“비상! 비상! 전방에 대량의 몬스터가 출몰!”
“전원 전투 대기! 전투 대기 하라!”
“스콜피오 장전!”
제론은 고개를 돌려 몬스터가 출몰한 방향을 응시했다. 멀리서 자욱한 먼지구름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먼지구름 속에는 코볼트를 비롯해 오우거까지 온갖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있었다. 숫자가 많았지만 신경을 끊었다.
‘저 정도면 문제는 없겠어.’
전초기지의 전력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한 제론이 다시 말콤을 쳐다봤다.
“그런데 뭐라고 말하려 했어?”
“어? 아아……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됐어.”
말콤이 어색하게 웃으며 흐지부지 넘겼다.
* * *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스콜피오가 발사되었다. 화살이 날아가 선두에서 달려오는 몬스터의 몸을 꿰뚫었다.
“재장전!”
지휘관의 지시에 병사들이 복창하며 스콜피오에 화살을 거는 사이, 방패병들은 몬스터들을 향해 천천히 전진했다.
바로 뒤에서 창병들이 창을 눕힌 채 공격 준비를 마쳤다.
퓨리온 공작은 몬스터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길 기다렸다.
이윽고 100m까지 좁혀지자 검을 들며 외쳤다.
“모조리 쓸어버려라-!”
퓨리온 공작의 목소리가 넓게 울려 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