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4)
제14화
14화
상황의 전후는 이러했다.
제론은 문밖으로 나가면서 부모님의 대화를 엿듣기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단 말이지. 단순히 윗사람의 말을 어겼다는 이유로 벌을 내릴 수는 있긴 하지만 ‘나’는 5살짜리 어린아이라고? 보통 5살짜리가 그런 어려운 말을 듣는다고 이해할 리가 없어.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게다가 ‘붉은 달’이 자신을 납치해 인신매매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물론 지부장이라고 불렸던 사내를 일권一拳에 쓰러트린 걸 보지 못했다면 믿기 힘든 힘을 선보이긴 했지만 필요 이상의 정보를 알려줬다.
‘왜일까?’
지난 5년간 부모님이 그에게 보여준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단순히 정말로 앞으로는 행동거지를 조심하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숨겨진 뜻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대화를 엿들으려는 것이다.
자신이 방을 나간 뒤에 어떤 ‘진짜’ 대화를 할지 궁금해서!
‘때마침 주위에 아무도 없네.’
제론은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게 살짝 힘을 주고 주위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곧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문에 귀를 가까이 붙였다.
문틈 사이 공간은 실 바늘이 겨우 통과할 정도로 좁았다.
다른 방에서 나누는 대화는 고막에 내공만 불어넣으면 벽을 뚫고 전부 듣는 게 가능했지만 집무실만큼은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것처럼 도청이 불가능했다.
추측하건대 아티팩트나 마법으로 차단시킨 것이 분명하리라.
그 미세한 틈 사이로 부모님의 대화가 들려왔다.
물론 이것조차 제론이 내공으로 청력을 강화시켜서 듣고 있는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부모님이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하여간 미천한 꼬마 인간. 사서 고생을 하는군.]네로의 한심하다는 눈빛은 사뿐히 무시했다. 저런 태도가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그냥 말하는 고양이 한 마리를 애완동물로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그럼. 외출 금지는 좀 심하지.’
엄마가 자신의 편을 들자 제론이 헤벌쭉 웃었다. 하지만 곧바로 들려오는 아빠의 목소리에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당신도 느끼고 있지 않소? 제론이 평범한 어린아이와는 다르다는 것을 말이오.
얼핏 느끼고는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평범한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려고 했다. 가끔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일부러 더 어린아이같이 굴었다.
‘이거야 원.’
아무래도 글러 먹은 모양이었다. 그 뒤로 들려오는 대화도 부모님이 자신을 영특하기만 한 어린아이와 다르다고 말하며 제국의 어쩌고저쩌고하는데 괜히 입맛이 썼다.
속상하거나 슬퍼지는 둥 좋지 못한 감정이 든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을 속이는 것 같다는 미안한 마음이 생겼을 뿐.
그런데 어느 순간 대화가 멎었다.
아니,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가 작아진 것이었다.
제론은 고개를 갸웃하며 문에 귀를 더욱 가까이 댔다.
점점 더 작아지는 목소리.
곧이어 아빠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느꼈다.
‘들켰…….’
등골이 서늘해진 순간 문이 활짝 열렸다.
동시에 제론의 몸이 열리는 문을 따라서 앞으로 기울었다.
휘청거리며 외발 걸음으로 방 안에 들어갔다.
웃음기 하나 없는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그렇지?”
대화를 전부 들었을 것이라고 확신한 표정과 눈빛이다.
제론이 어색하게 웃으며 엄마를 향해 도와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돌아온 말은.
“제론아, 이 엄마는 너의 입을 통해 확실하게 듣고 싶단다.”
“헤, 헤헤……!”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것은 실없는 웃음소리. 5년 동안 몸에 밴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던 습관이 저절로 튀어나온 것이다.
“귀엽게 웃어도 넘어갈 생각 없단다.”
아이리가 싱긋 웃으며 제론을 향해 다가갔다.
그런 엄마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에서 도시를 향해 쳐들어오는 거대괴수와 같이 위압적이고 위협적이었다. 한 발자국씩 바닥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이 쿵- 쿵- 하고 울리는 착각이 들었다.
침을 꿀꺽- 삼킨 제론이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려 부모님께 제발 살려달라며(?) 마음속으로 애원했다. 이윽고 당연하겠지만 부모님은 그를 해코지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어떻게 한 거니?”
“뭐, 뭐를요?”
저도 모르게 말까지 더듬고 말았다.
범죄 현장을 들켜서 쫄아 있는 현행범의 모습 같아 보일 것이다.
이윽고 부모님의 눈빛이 물끄러미 꽂히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양손을 번쩍 들고 ‘항복’이라고 외쳤다.
* * *
“그러니까 머릿속에서 이상한 문자와 지식이 떠오른다는 거니?”
아이리가 제론의 이야기를 전부 듣고 차분하게 물었다.
쥬페토는 한 발 물러나 빈 찻잔만 계속 기울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맞아요. 처음 보는 문자였어요. 으음. 예를 들자면.”
제론이 손가락으로 탁자에 꼼지락거리며 한자를 써 내렸다. 마魔라는 글자였다. 제일 먼저 떠올라서 쓰긴 했지만 좋은 뜻은 아니라서 괜히 멋쩍었다.
아이리-엄마가 그 표정을 보고 침울해한다고 오해했는지 따스하게 안아준다.
‘으음. 왠지 모르게 힐링되는 기분이야.’
진실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당신의 자식은 환생자입니다!
현대에서 27년을 살았고, 무림이라는 곳에 갑자기 뚝 떨어져서 30년을 살다가 현대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지 못해서 우화등선을 하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엄마의 뱃속이었습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진실을 말할까도 생각했지만 제론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환생을 했다고 밝혀봐야 믿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도청한 부모님의 대화 중에서 폴른 제국의 3대 황제 ‘엘리멘탈 엠페러’를 떠올리곤 재치를 발휘해 이상한 문자와 지식이 떠오른다고 얼버무렸다.
사실 이것도 믿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환생보다는 훨씬 더 설득력이 있었다. 한자나 한국어가 이 세상의 어딘가에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5살짜리가 개연성을 따져서 설명하면 그게 더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무엇보다도 형과 누나한테 심룡연단신공을 이미 전수해버린 뒤니까.’
부모님이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는 것에서 조금 놀랐지만, 덕분에 위의 얼버무린 말이 대충이나마 앞뒤가 맞춰졌다.
“그동안 걱정이 많았겠구나.”
“…….”
제론은 엄마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걱정?
하나도 없었다.
그저 환생했다는 사실을 알고 가족이라는 존재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고, 완전히 받아들인 뒤로는 재밌고 행복한 나날들만 계속되었다.
그런데 왜일까?
별것도 아닌 말에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정말로 고생이 많았어.”
등을 천천히 두드리는 손길이 심장박동과 똑같은 속도로 그의 마음을 위안한다. 벅차올랐던 가슴은 미지근하게 식었지만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빈자리를 빠르게 채웠다.
뜨거워진 눈시울에서 또르르-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괜히 눈물을 보였다는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보다는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혼자서 품고 있던, 응어리진 그 걱정과 근심을 털어놔도 된단다. 제론, 너는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이니까. 세상 누구보다도 소중한 아이니까.”
“으, 으응.”
제론은 어린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아이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엄마의 품속에서 응석을 부리며 꼼지락거렸다.
‘이게 바로 가족이라는 소중한 존재의 품속이구나.’
너무 따스해서 행복했다.
이들을 지켜주고 싶다.
* * *
“네 지식은 한동안 숨기는 것이 좋겠구나.”
아이리와 제론이 진정하자 쥬페토가 말했다.
5살짜리 천재 정령사라는 이유만으로 ‘붉은 달’이 인신매매를 하려고 노렸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문자와 지식이 떠오른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제론을 주목할 것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권력자이며, 대륙 전역으로 큰 영향을 끼치고 위세를 떨치는 힘 있는 자들일 것이다.
그 ‘엘리멘탈 엠페러’도 황위에 오르기 전까지 다사다난한 삶을 살았기로 유명했다. 그의 능력을 시기하고 질투한 다른 황자들이 무수한 암살을 시도하고 끊임없이 견제했다.
결국 ‘엘리멘탈 엠페러’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형제를 살해해야만 했고, 자신을 이용하려던 귀족들을 참살하고 피의 황제로 등극해야만 했다.
그가 황제로 등극한 뒤에는 폴른 제국이 유례를 찾지 못할 정도로 큰 부흥을 이루었으나, 이는 ‘엘리멘탈 엠페러’가 살아남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지 최악의 경우에는 꽃도 피우지 못한 채 죽임당했을지도 몰랐다.
“너를 위해서다. 내가 외출을 금지시킨 것도 그런 이유지.”
“그렇군요.”
“물론 완전히 나가지 못하게 막는 건 아니다. 아까 한 말은 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보려고 깔아놓은 함정이었으니까. 하녀와 하인이 없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느냐?”
제론이 머리 위로 느낌표를 띄웠다.
‘당했다!’
어째 뭔가 이상하다 싶었더니 처음부터 끝까지 쥬페토의 미끼였던 것이다.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처럼 완벽하게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부모님이었으니까.
자신을 걱정한 것이니까.
그래서 기분이 나쁘다기보다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홀가분했다.
‘으음. 물론 완전히 솔직하게 말한 건 아닌 게 조금 미안하네.’
일말의 양심이 찔리긴 했다.
그래도 숨기면서 몰래 움직일 필요까지는 없게 되었으니 다행이랄까.
“지금도 이상한 문자와 지식이 떠오르느냐?”
“으음. 네에.”
“흐음. 이걸 어떡해야 할지 고민이구나.”
“음음. 저도 고민이에요.”
그런 부자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리가 손으로 입을 살포시 가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고민에 빠진 표정과 제스처가 판박이처럼 닮았기 때문이다.
역시 피가 어디로 가지는 않은 모양이다.
“혹시 책으로 만들어도 될까요?”
잠깐의 고민 끝에 제론이 슬며시 말했다.
쥬페토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책으로?”
막내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체불명의 문자와 지식.
분명히 범상치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가른과 헤샤의 몸속에 존재하는 기운이 그것을 증명했으니까.
페리안 남작가에서 내려오는 오러 연공법보다 뛰어나고 신묘롭기까지 하다.
다만 문제는 그 문자와 지식이 얼마나 자세히 떠오르느냐는 것이다. 또한 위험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제론의 안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책으로 기록한다고 해도 외부로 유출되지 않게 잘 관리하며 숨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천재 정령사라는 타이틀을 빼고 누구도 제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자와 지식에 대해 알지 못한다.
정체를 알지 못하는 지식이 사실 위험한 것의 종류가 아닐까 걱정하는 것이다.
잠시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네가 책에 쓰면 내가 그것을 검토하겠… 아, 이런.”
쥬페토가 말을 하다 말고 이마로 손을 짚었다.
조금 전에 제론이 탁자 위로 쓴 문자는 난생처음 본 글자였다.
그 말은 곧 제론이 쓴 책을 검토하려면 글자를 익혀야 한다는 뜻이다.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바쁜 마당에…….”
“아앗……!”
제론은 본의 아니게 아빠에게 미안해지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