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43)
제143화
143화
“크륵. 뭐라고?”
마수인이 양손에서 손톱을 뽑아내며 되묻는다. 제론은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녀석의 눈을 바라보며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
마수인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가르고 간 것을 느꼈다. 하지만 변화가 없자 눈살을 찌푸리며 말한다.
“무슨 짓을 한…….”
말이 끝나기 전에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녹색이 아닌 선홍빛의 핏물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제론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이윽고 마수인의 갈라진 몸이 되감기를 한 것처럼 다시 하나로 합쳐지며 빠져나간 핏물도 빨려 들어가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손바닥을 펼쳐 뻗었다.
무형의 기운이 장심에서 뿜어져 나와 마수인의 몸을 감쌌다.
“……!”
마수인이 뭐라 외치려 했지만 폐차를 압착한 것처럼 찌그러졌다. 제론의 손바닥이 움켜쥔 순간 축구공 크기의 살덩어리로 뭉쳐졌다.
뚝- 뚝-.
살덩어리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는지 회색빛의 불꽃이 피어오르며 살덩어리를 재로 만들었다. 바람과 함께 재가 흩날렸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제론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곳에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있었다.
“안 그래?”
“…….”
검은 로브의 남자-흑마법사는 침묵했다.
방금 본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마수인이 약하지 않다는 사실을 세상 누구보다도 제일 잘 알기 때문에 더욱 경악스러웠다.
‘적어도 퓨리온 공작의 발목을 잡고 함께 지옥으로 떨어질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는데 손쉽게 소멸시켰다고?’
마음을 추스른 흑마법사가 물었다.
“너는 누구지?”
“내가 누구인지 알면 달라질 게 있나?”
제론이 히죽 웃으며 되묻자 흑마법사의 몸이 한차례 떨렸다. 당사자가 아니어서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분노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좋아. 제안을 하겠다.”
“오! 제안 좋지. 말해봐.”
흑마법사는 제론이 순순히 호응하자 로브 후드 아래에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눈앞의 녀석이 강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자신이 패배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단지 손해가 너무 막심해질 것 같아서 최대한 싸움을 피하고 싶었다.
‘폴른 제국을 몰락시키는 대계를 이대로 망칠 수 없다.’
10년을 넘게 공들인 탑이 무너지면 그 역시 속이 쓰리다. 어떤 제안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곧 결론이 내려졌다.
“……폴른 제국 황실의 보물을 전부 주겠다.”
“그걸 네가 어떻게 확신하는 거지?”
“그건…….”
흑마법사가 말끝을 흐렸다.
제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날 속이고 뒤통수치려고 그러는 걸 모를 것 같아? 이봐. 적어도 그 칙칙한 로브는 벗고 이야기하자고. 서로가 솔직해지면 좋잖아?”
“그건 안 된다.”
“그럼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는 걸로 하겠어.”
“잠깐!”
제론이 손가락을 까딱인 순간 흑마법사가 외쳤다. 잠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고민하던 그가 로브 후드를 뒤로 걷어냈다.
‘살짝 싸가지 없게 생긴 것을 빼면 평범한 30대 초반의 남자잖아?’
제론은 흑마법사의 외모에 대해서 그렇게 평가했다.
유일한 특징은 눈동자였다. 만화 ‘나X토’의 사X케처럼 눈동자에 육망성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제론의 지식으로는 눈동자로 흑마법사의 정체를 알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좀 더 떠보기로 했다.
“그래서 제안이 뭐지?”
“내 제안은 퓨리온 공작을 비롯해 에버로스트 산맥으로 들어온 모든 인간을 죽이는 것이다.”
“고작 그것만 해주면 폴른 제국 황실의 보물을 전부 주겠다고?”
“그렇다.”
제론이 코웃음을 쳤다.
“막말로 제안을 받는다고 치자고. 그런데 네가 어떻게 폴른 제국 황실의 보물을 나한테 줄 수 있다는 거지?”
“날 떠보는 것이라면…….”
“아니. 떠보는 게 아니라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잖아. 상식적으로 말이야. 폴른 제국 황실이 개나 소나 다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설마 네가 폴른 제국을 무너트리기 전까지 기다리라는 건 아닐 거잖아. 그런데 내가 어떻게 믿어?”
“으득! 내 존재를 걸고 맹세하지!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폴른 제국 황실의 보물을 전부 주겠다!”
“그걸 어떻게 믿냐고.”
제론이 무겁게 내리깔린 표정과 목소리로 말하자 흑마법사가 말했다.
“나에게는 황실의 보고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이 있……!”
“너, 황실의 일원이구나.”
“……!”
흑마법사는 빠르게 마법을 캐스팅했다. 하지만 제론은 어느새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고 검을 휘둘러 흑마법사의 손목을 잘라냈다. 캐스팅하던 마법이 취소되며 마나가 주변으로 퍼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캐스팅하던 마법은 하나가 아니었다. 반대편 손으로 캐스팅한 마법이 발동하며 흑마법사의 몸이 깜빡거리더니 100m 멀리서 나타났다.
“블링크Blink?”
“크륵!”
“주인님을 지켜라!”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트롤과 트롤 샤먼들이 나타나 제론을 공격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
“이런 전형적인 패턴은 싫은데.”
제론은 도망치는 흑마법사를 잠시 외면한 채 검은 로브의 트롤을 검압으로 짓이겨 쥐포로 만들고, 트롤 샤먼들의 머리통을 채 썰었다.
이윽고 흑마법사를 다시 쳐다보자 작은 점이 되어 있었다.
“하. 너 잡히면 뒤졌어.”
* * *
에르딘은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눈앞이 뿌옜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다른 기사들에 비하면 귀족이었다. 기사들은 갑옷이 넝마가 된 채 넋을 놓고 있었다.
그들을 습격한 트롤은 총 23마리였다.
그중에서 에르딘이 처치한 숫자는 10마리였다.
나머지 13마리는 기사들 20명이 사이좋게 나눠 해치웠다.
“아아. 죽겠다.”
에르딘이 털썩 주저앉고 창으로 트롤의 시체를 툭 건드렸다. 사후경직으로 트롤의 몸이 떨고 있었다. 혹시나 아직 죽지 않은 건 아닐까 싶어서 확인했다.
“후우. 후우. 에르딘 경. 미안하게 되었소.”
기사들 중 한 명이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서 말했다.
에르딘이 무슨 말이냐는 시선으로 쳐다보자 그가 대답했다.
“그대를 얕보지 않았소? 그것을 사과하오.”
“그럴 수도 있죠.”
시시콜콜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럴 생각도 없었다.
에르딘 역시 같은 상황이라면 믿지 않았을 테니까.
이럴 시간에 그냥 기사들처럼 멍하니 넋을 놓고 쉬고 싶었다.
‘기사들이 없었다면 죽을 뻔했어.’
트롤 10마리도 오롯이 혼자서 처치한 것이 아니다.
기사들은 몬스터를 상대한 경험이 많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에르딘이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보조를 해줬다. 덕분에 10마리를 처리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그들이 없이 싸웠다면 당하는 건 자신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한 마리라도 네임드였다면 전부 다 죽었을 거야.’
트롤들은 다행히(?)도 전부 평범한 개체였다.
“아, 정말 안 되겠다.”
에르딘은 기사들에게 잠시 망을 봐달라고 말한 뒤 운기조식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사들도 돌아가며 보초를 서서 오러 연공법으로 오러 홀을 채웠다.
* * *
시간을 잠깐 되돌려 안개가 걷히기 전.
퓨리온 공작은 에르딘과 기사들이 트롤 샤먼을 해치우길 기다렸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출정의 명령을 내렸다.
토벌대가 함성을 지르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흑마법사가 미리 배치해둔 몬스터들이 토벌대를 가로막았지만 퓨리온 공작이 선두에서 맹렬하게 검을 휘두르며 모조리 썰어버렸다.
“캐스팅이 완료되었습니다!”
“모두 물러나라!”
“마법이 발동한다! 모두 물러나라!”
토벌대가 명령을 듣고 빠르게 물러났다.
몬스터들의 머리 위로 황금빛 번개들이 무작위로 떨어졌다.
“끄라라라!”
토벌대를 향해 덤벼들며 살아남은 녀석들도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에 불과했다. 전부 화살로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졌다.
“다시 진격하라!”
“진격! 진격하라!”
다시 진격을 시작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멀리서 몬스터와 싸우는 용병단과 용병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군이다! 저들을 도와라!”
“토벌대가 도착했어! 우리는 살았다고!”
용병들은 용감하게 몰려드는 토벌대의 모습을 발견하고 환호의 함성을 질렀다. 머리를 지배했던 공포가 걷히며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그런데 라이언 하츠 용병단은 어디 있는 거지?’
유일하게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 * *
“이게 무슨 꼴이야?”
레온 프라츠는 도적단의 주둔지에 도착해서 헛웃음을 들이켰다. 도적들의 시체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누군가의 습격을 받아 몽땅 죽은 것이다. 살아남은 녀석들도 있겠지만 멀리 도망쳤는지 적어도 주변에서 보이지 않았다.
“혹시 저희가 온다는 말에 무서워서 도망친 건 아니겠죠?”
어떤 멍청한 용병이 묻자 레온 프라츠는 날카롭게 쏘아보며 말했다.
“놈들은 몬스터를 부릴 줄 안다. 우리가 무서웠다면 죽기 전에 도망쳤겠지. 혹은 이곳에서 함정을 파고 있었거나. 아마도 누군가가 먼저 도착해서 여길 친 거 같다.”
“그,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도적들의 시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자 몬스터의 시체도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레온 프라츠는 머릿속이 차갑게 물들었다. 계획이 어긋났다. 완전히 틀어졌다. 원래대로라면 이곳에서 ‘그’와 만나 용병들을 제물로 바쳤어야 했다. 또한 다른 용병단에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혀야 했다. 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고 도적단 주둔지는 텅 비었다.
바로 그때였다.
콰앙-!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레온 프라츠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자욱한 먼지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쪽으로 간다!”
* * *
“후우. 이거 아주 쥐새끼네.”
제론은 흑마법사를 쫓아갔다. 하지만 녀석은 요리조리 잘 도망쳤다. 잘라낸 팔목을 재생시키고 몬스터를 끊임없이 불러냈다.
“인탱글!”
땅에서 나무뿌리가 자라나 제론의 발목을 묶었다.
몬스터들이 제론을 덮쳤다.
검광이 번뜩이며 몬스터들이 조각났다.
“아이스 애로우! 썬더 볼트!”
얼음과 번개가 날아왔다. 전부 검으로 베어냈다. 발목을 묶은 나무뿌리를 힘으로 뜯어내고 신법을 펼쳐 순식간에 흑마법사에게 접근했다. 흑마법사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 이런 괴물이 어디서 나타났…… 끄악!”
어깨가 통째로 날아갔다. 어깨의 단면에서 콸콸 쏟아진 핏물이 땅을 적시며 떨어진 팔이 활어처럼 펄떡 뛰었다. 하지만 드래X볼의 피X로처럼 재생시키며 또다시 도망친다.
“언제까지 도망치나 보자!”
제론은 검을 던지며 외쳤다.
흑마법사는 제론의 손에서 검이 사라지자 화색을 띠었으나 곧 검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자 다급하게 실드 마법을 펼쳤다.
파캉-!
“크윽!”
실드 마법이 깨지며 내부가 진탕되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낙하하던 검이 다시 날아오르며 가슴을 관통했다는 것이었다.
“……!”
“겨우 잡았네.”
쓰러진 흑마법사의 머리맡으로 제론이 착지했다. 검이 손으로 빨려 들어오며 팔을 휘둘러 흑마법사의 목을 단숨에 쳐냈다.
서걱-!
흑마법사의 목이 떨어졌다. 삼매진화를 일으켜 머리를 불태웠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몰라서 흑마법사의 마나 홀까지 파괴시켰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이렇게까지 했는데 살아나면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