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51)
제 151화
151화
제론이 피식 웃었다.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질문이었지만 저 여자-메이란이 아직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평소였다면 저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뭐…… 어떻게 알고 있긴. 원래부터 아는 사이니까 알고 있지.”
“그 아이는 밖으로 나간 적이 없을 텐데?”
“우연히 만났을지도 모르지. 가령 메이엔 선배가 왜 밖으로 나갔다고 생각해? 내가 그곳으로 갔을지도 모르는데.”
“숲으로?”
메이란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크게 웃었다.
‘급하긴 많이 급했나 보네.’
메이란은 여유를 가장한 채 웃으며 등 뒤로 숨긴 아티팩트를 한 손으로 조작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질질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검을 들었다.
메이란이 웃음을 멈추고 당황한 표정으로 외친다.
“자, 잠깐!”
“응? 왜?”
제론은 반문하며 메이란을 죽일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놀랍게도 검이 몸에 닿지 못하고 옆으로 궤도를 꺾어 빗나간다.
“……!”
힘 같은 것으로 밀어낸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 궤도로 움직여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검이 꺾였다.
갑자기 공격을 당한 탓일까?
메이란이 분노에 찬 욕설을 뱉어냈다.
“이런 미친 새X가!”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제론은 신기해하며 묻는다. 동시에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검이 본래 움직였어야 할 궤적을 벗어나 빈 허공을 베어낸다.
“쿨럭!”
메이란이 거칠게 기침을 토하자 가느다란 핏줄기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내린다. 무슨 방법을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능력이 발동하면 몸에 큰 무리가 따르는 것으로 보였다.
‘하긴. 좀 사기적인 능력이긴 해. 다행인 건 많이 사용하지는 못한다는 건가?’
제론은 생각하면서도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낸다. 공간을 왜곡시킨 것도 아니다.
‘원래’ 그렇게 돼야 한다는 듯 움직이게 만든다.
‘약점이 분명한 능력이야.’
다만 흑마법사나 마수인처럼 잘려나간 신체가 생길 정도로 뛰어난 재생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몸을 회복할 시간을 줘선 안 된다.
메이란은 궁지로 몰렸다.
제론은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끝내야 한다. 하지만 두 차례의 경험 덕분인지 그녀는 순순히 당해주지 않았다. 이번에도 검이 허공을 갈랐다. 정체 모를 능력이 또다시 발동한 것이다.
“쿨럭! 쿨럭!”
메이란은 연속으로 기침하며 아티팩트를 들고 있지 않던 손으로 마법을 캐스팅했다.
아니. 마법이 아니었다. 허공에서 보라색 포자가 생겨나며 터졌다. 제론이 반사적으로 숨을 참았다. 그런데 피부가 간지럽고 따가웠다. 평범한 독이 아니었다.
‘무형지독에 버금갈 정도인가!’
찰나의 틈이 생기며 메이란은 아티팩트의 조작을 마쳤다.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녀가 사라졌다.
“나중에 두고 보자!”
“나중에 두고 보자는 사람 치고 무서운 사람 없어.”
제론은 주변으로 퍼진 독을 삼매진화로 불태워서 없애고 말했다.
* * *
“커헉-!”
메이란은 공간을 뛰어넘어 아지트에 도착하자 참아왔던 토악질을 했다. 겨우 삼켰던 핏물이 목구멍에서 왈칵- 역류했다. 거칠게 숨을 내쉰 그녀가 입 주변에 묻은 핏물을 닦아내고 빈 의자에 앉아 쓰러지듯 무너져 내렸다.
‘죽을 뻔했어.’
제론의 검을 비껴낸 힘은 절단한 신체를 재생시킬 뛰어난 재생력으로도 쉽게 회복시키지 못하는 능력의 종류였다.
그러한 능력을 1번도 아니고 3번이나 사용했다. 몸속이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멀쩡한 내장 조각이 1개라도 있다면 기적이다.
‘그 녀석 누구지?’
흑마법사-데카론이 죽으면서 폴른 제국의 정보망이 마비되었다. 점조직의 유일한 단점이었다. 하지만 예상되는 존재가 있었다.
‘데카론이 기록한 자료에 아론 다이트라는 용병이 마지막으로…….’
메이란은 흐려지는 정신을 겨우 붙잡았다. 거칠게 숨을 내쉬며 자신의 뺨을 쳤다. 짜악- 뺨이 얼얼해지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신 고통도 뚜렷해졌지만 정신을 잃어서 제론의 정체를 알아낼지도 모르는 단서를 잊어버릴 수는 없었다.
‘원래부터 아는 사이, 라고 했지.’
100프로 진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안면이 있는 사이는 맞다. 메이엔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만난 적이 없다면 얼굴을 보고 비슷하다고 말하지도 못한다.
‘그 아이가 숲을 벗어난 적이 언제였지?’
자신이 숲에 있을 때는 그런 일이 없었다.
적어도 숲을 떠난 이후라는 것이다.
‘그리고 선배라고 했어.’
호칭은 무척이나 중요한 단서였다.
메이엔, 그 아이의 행적만 조사하면 금방 정체를 추려낼 수 있다.
“크윽.”
“몸이 많이 나빠 보이는군.”
“……!”
어느새 나타난 ‘그’가 로브 아래를 향해 말했다.
* * *
“어떻게 됐어요?”
“놓쳤어.”
“진짜로요?”
제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짜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에르딘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대충 말해주자 녀석의 눈이 2배로 커진다.
“그런 능력은 처음 들어보는데…….”
“나도 처음이야. 그러니까 놓쳤지. 확실한 건 정령술이나 마법이 아니었어.”
에르딘이 표정으로 착각한 건 아니냐고 묻는다.
조용히 주먹을 들어 올리자 ‘헤헤.’ 하고 웃으며 넘어간다.
“이거 가지고 가서 성의 내부를 조사 좀 해봐.”
제론은 투박한 단검을 꺼내서 에르딘에게 던졌다.
단검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 녀석의 머리카락 몇 올을 자르고 벽에 박혔다. 동공에 지진을 일으킨 녀석이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혹시나 위험한 일이 생기거나 뭐 발견하면 소리쳐.”
제론은 말하고 슬렁슬렁 움직였다.
두 사람이 나뉘어서 움직이는 이유는 고성이 컸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위험한 일은 생기지 않겠지.’
에르딘이 도착하기 전에 기감을 퍼트려 생명체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만 아까 나타났던 골렘 같은 종류는 생명체가 아니라서 기감으로는 감지가 되지 않아 소리를 치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렇게 고성 내부를 돌아다녔다.
“어디~ 보자~ 뭐가~ 뭐가~ 있을까~?”
제론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방방곡곡 돌아다녀 숨겨진 공간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했다. 이윽고 3시간 뒤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10분 뒤 에르딘도 되돌아왔는데 표정을 보니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뭐가 있긴 하더라고요”
“어? 진짜? 뭐가 있었는데?”
“종이가 타고 남은 잿가루 정도?”
에르딘은 검지에 묻은 검댕을 보여줬다. 제론이 주먹을 들려고 하자 후다닥 도망쳤지만 금방 붙잡혀서 꿀밤을 맞았다. 이마가 부어오르며 뾰족해졌다. 슬슬 꿀밤에 익숙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따끔거리기만 한다.
‘이마가 강화되었나?’
무공 중에서 철두공鐵頭功이라는 외공이 있다고 들었다. 아마도 머리를 단련시켜서 쇠처럼 단단하게 만든다고 했던 것 같았다. 꿀밤을 하도 맞다 보니까 머리가 외공을 수련한 것처럼 단련된 모양이었다.
“조금 서글픈데…….”
에르딘이 쭈글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곧 밤이 깊어졌다. 두 사람은 고성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떠났다. 메이란이 도망친 이후 일부 지역에 안개가 걷히며 길을 찾는 게 어렵지 않았다. 몬스터들이 곳곳에서 돌아다니는 게 느껴졌지만 킹밤처럼 강력한 개체는 없었다.
머지않아 모험가나 탐험가, 고고학자에 의해 ‘침묵의 안개 숲’의 비밀이 밝혀질 것이다.
‘허탈해하겠네.’
이 안개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대충 상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조차도 위대한 업적과 발견이 될 것이다.
반면 제론은 이곳에서 얻은 이득이 없었다. 메이란이 사용한 기이한 능력을 알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메이엔 선배를 찾아가긴 해야겠네.”
메이엔 선배라면 메이란의 기이한 능력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월계수가 새겨진 별 모양의 배지라는 떡밥까지 남겨놓은 그녀였으니까 알려줄 것이다.
문제는 메이엔 선배가 사는 곳이 서대륙이 아니라 북대륙이라는 점이다.
정반대 편인 동대륙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감사해야 할지 중앙대륙이 아니냐며 투덜거려야 할지 살짝 고민이 된 순간이었다.
생각을 끝낸 순간 에르딘이 묻는다.
“이제 어디로 가실 거예요?”
“집으로.”
에르딘의 얼굴이 크게 화색을 띤다.
제론은 잠시 집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갈까 고민했지만 엄마라는 큰 후환이 두려워서 고민에서 끝냈다.
* * *
바후르 도적단의 토벌 소식이 전 대륙으로 퍼졌다. 흑마법사에 관련된 이야기는 포함되지 않았다. 퓨리온 공작이 정보를 제한한 것이다.
중앙대륙으로 넘어가던 제론은 그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다.
‘혼란을 줄 필요는 없으니까.’
정체불명의 적에 대한 정보를 밝히면 혼란이 야기된다. 또한 폴른 제국 내부에 존재하는 적들이 더욱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 것이다. 바후르 도적단이 토벌된 시점에서 이미 경각심을 가졌겠지만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놈들을 잡아내기 위해서라도 제한하는 게 맞다.
“신분이 확인되었습니다.”
때마침 경비초소 병사가 신분증 확인을 마치고 건네준다. 올 때는 용병패였지만 갈 때는 기사명패로 신분을 증명했다. 그래서인지 병사의 말투가 정중했다. 앞으로 또 볼일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에 고개를 까닥여주고 경비초소를 통과했다.
메이란과 흑마법사의 조직이 정체를 알아차리면 어떡하냐고 에르딘이 한차례 유난을 떨긴 했지만, 오히려 용병패로 계속 통과하는 것이 들키기 더욱 쉽다는 설명을 듣고 납득했다.
‘어차피 정체는 들키게 되어 있어.’
‘아론 다이트’가 마지막에 나타났던 위치부터 처음 나타났던 위치까지 역순서로 추적하면 된다. 그럼 어느 대륙 출신인지 알아낼 수 있다.
서대륙을 나갈 때 마지막으로 사용한 신분증이 기사명패였다면 정체를 단번에 알아차리겠지만, 제론은 지금 에르딘과 함께 길을 멀리 돌아와 경비초소로 서대륙으로 ‘기사 제론 페리안’으로 먼저 들어와서 며칠 뒤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기록상 ‘아론 다이트’라는 용병은 며칠 전에 중앙대륙으로 간 뒤라는 뜻이다. 물론 다른 곳의 경비초소를 통해서 갔기 때문에 제론과 에르딘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정보의 혼선을 줄 수 있어.’
‘아론 다이트’가 갑자기 신기루처럼 사라졌다던가, 라는 식으로 말이다. 비밀스러운 조직일수록 조직원이 붙잡히면 정보를 불지 못하게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말하자면 경로의 혼선을 준다면 제대로 된 정보가 전달되지 못한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도 내 정체가 금방 밝혀진다면 퓨리온 공작과 말콤이 그 조직의 일원이라는 거겠지.’
혹은 엄청 입이 가벼운 사람들이거나 말이다.
제론은 히죽 웃으며 중앙대륙의 공기를 맛봤다.
오랜만인데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