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55)
제 155화
155화
“내가 언제부터 사악한 짓을 저질렀다고 그러냐?”
“정말 모르세요?”
제론은 너무 억울해서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에르딘이 킥킥 웃더니 입을 다물었다. 막상 무슨 사악한 짓을 저질렀는지 말하려고 하니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왜 없는 거지?’
조금…… 아니, 많이 의아했지만 빠르게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아무튼, 얼른 가시죠. 해가 저물었어요. 하몬 님께서 기다리시다가 잠들지도 몰라요.”
“끙.”
한차례 앓는 소리를 낸 제론은 영주성 안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하몬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들도 전속 대장장이가 되었다. 하지만 일이 없을 때를 대비해 먹고살 돈을 벌어야 했던 그들은, 영주성 밖 도시에서 거주하며 모험가나 용병에게 무기를 파는 부업-본래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쥬페토가 특별히 허락했다-을 겸했다.
대장간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후끈한 열기가 가득 차 있었다.
탕-! 탕-!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들려온다. 그 소리를 따라서 깊숙이 들어가자 땀을 뻘뻘 흘리며 망치로 쇠를 내려치는 하몬이 있었다.
제론이 기척을 흘리자 하몬은 망치질을 멈췄다.
“오셨소?”
“그간 잘 지내……신 것 같네요.”
하몬의 얼굴은 예전보다 보기 좋아졌다. 바후르 도적단의 토벌 소식을 들은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좋았다.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던전에서 챙긴 바후르의 신분을 증명할 물건을 꺼내서 보여줬다.
바후르의 명패였다.
하몬은 그것을 받아서 잠시 동안 빤히 지켜보다가 용광로에 던졌다. 명패가 천천히 녹아내린다. 마음속에 쌓아둔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그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검과 창을 손질해드리겠소.”
“네.”
제론이 검집째 하몬에게 줬다. 에르딘도 허리춤에서 창을 빼서 건넸다.
하몬은 검과 창을 들고 천천히 손질을 시작했다.
검을 손질할 때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론이 잘 사용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내공을 둘러서 보호했기 때문에 날이 상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에르딘의 창은 달랐다. 창날이 많이 상해 있었다. 숫돌로 다시 날을 갈고 사포로 문질렀다. 창대는 특히나 많이 상해서 갈아야 했다.
“내일 다시 오시오.”
“알겠습니다.”
에르딘은 수련할 때 사용하기 위해 예비 창을 하나 들고 갔다.
“표정이 많이 좋아지셨어요.”
“마음속에 품고 계셨던 분노가 사라지셨잖아.”
제론이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누군가는 복수가 헛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복수에 대한 열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혹여는 오랜 시간이 지나 복수의 열망이 식었거나 말이다.
“이만 돌아가. 나는 형을 보러 가야겠어.”
“알겠어요.”
에르딘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다. 걸어가는 방향으로 보아하니 수련장이었다.
“저 녀석도 은근히 열심히 한다니까.”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서대륙 여행으로 많이 깨달았을 것이다.
“서대륙도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한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나중으로 미루고…… 다음은 어디로 가지?”
제론은 형을 만나러 가는 도중 다음 여행을 계획했다.
* * *
“왔니?”
형은 집무실에 있었다. 제론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깃펜을 내려놓는다.
“으이구. 칠칠하지 못하긴.”
형의 손가락에 묻은 잉크를 발견한 제론이 하녀를 불렀다. 깨끗한 마른 천과 물을 가져오자 닦아줬다. 형이 입꼬리를 씰룩거린다. 사소한 것에도 큰 감동을 받는 우리 형이었다.
“그런데 형은 결혼 언제 해?”
“잘 모르겠다.”
형이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다. 결혼에 관련된 이야기가 없던 것은 아니었는지 난처해 보였다. 제론은 형이 이 이야기를 하기 꺼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화제를 돌렸다.
“누나는 잘 지낸대?”
“그렇다고 하더구나.”
“하긴. 로한 녀석이 다른 건 몰라도 누나한테는 잘 하지.”
게다가 누나는 하는 짓이 워낙 애굣덩어리여서 옛날부터 어른들한테 상당히 예쁨을 받았다. 남의 집에서 사고를 칠 정도로 막장도 아니니까 웬만해선 큰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한 번 찾아가긴 해야겠어.’
누나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로한은 덤이었다. 그 뒤에는 카론을 보러 왕실을 갔다가 다시 여행을 갈 예정이었다.
“나 왜 이렇게 바쁘지?”
“아직 젊으니까.”
“형도 아직 젊어.”
형이 입꼬리를 슬쩍 올린다.
“그래서 형수님은 누구야?”
“…….”
형이 입꼬리를 슬쩍 내린다.
여전히 꺼려 하는 기색이었지만 잠시 기다리자 형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하이멜 백작가의 여식이라고 하더구나.”
“아직 만난 적은 없나 보네.”
형의 말투가 그랬다.
“아직 이야기만 오가는 중이라 확실한 결정이 내려지면 그때 자리를 주선하시겠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더구나.”
“형수님 앞에서는 그런 말투로 말하지 마.”
“음?”
“남편이 아니라 집안 어르신을 모시고 사는 걸로 착각할 수도 있잖아.”
“하하하하!”
개그 코드가 맞았던 모양인지 형이 큰 소리로 웃었다.
하녀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형을 쳐다본다. 곧 제론의 시선을 눈치채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그가 괜찮다며 손을 젓자 표정이 풀어졌다.
“누나는 예전과 다르지 않네요. 아니. 더 어려지신 거 같기도 하고…….”
“어맛!”
하녀는 제론이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 어린 하녀로 들어왔다. 그래서 거의 가족처럼 지내온 사이였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였기에 행동거지를 조심히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지금.
젊다는 말보다는 어리다는 말이 듣기 좋을 때다. 그것을 알고 능글맞게 제론이 말하자 하녀는 얼굴을 확 붉어지며 손으로 감쌌다.
“제론 도련님은 몇 년 사이에 참 짓궂어지셨네요.”
“비엔 누나는 몇 년 사이에 많이 예뻐지셨어요. 이제 시집가셔도 되겠는데요? 아이고. 누가 우리 비엔 누나를 데리고 가려나! 부럽다! 부러워!”
“그러지 않아도 요즘 케빈과…… 헙!”
하녀 비엔이 다급하게 입을 막았다.
케빈과 사귀는 사이라는 것은 둘만 아는 비밀이었다.
실수라고 하지만 그 비밀을 다른 사람도 아닌 소영주와 막내 도련님 앞에서 말해버렸으니 사달도 보통 사달이 아니었다.
“어머머. 이걸 어째.”
“어쩌긴요.”
안절부절못하는 비엔에게 제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죠. 그치 형?”
“그렇지. 그 말이 딱 맞구나.”
형도 제론의 의도를 눈치채고 입꼬리를 살짝, 그것도 아주 살짝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하녀와 시종의 결혼식이라고 하지만 페리안 자작가에서 두 사람의 존재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특히나 비엔의 경우에는 15년 이상 하녀로 근무를 해서 차기 하녀장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또한 일반적인 귀족가였다면 하녀와 시종의 위치가 매우 낮았겠지만 페리안 가문에서는 또 하나의 가족처럼 대했다.
아빠와 엄마가 평범한 귀족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비엔. 섭섭하구나.”
“자작 부인……!”
드레스를 차려입은 비엔이 우물쭈물한다. 엄마는 소녀처럼 까르르- 웃으시더니 손을 뻗어 다정하게 비엔을 품에 안으시며 말하셨다.
“축하해.”
“……감사합니다.”
비엔은 엄마의 품속에서 훌쩍이며 말했다.
제론이 슬쩍 엄마의 귓가에 속삭였다.
“엄마, 그러다가 화장 지워져요.”
“어머어머. 내 정신 좀 봐.”
엄마가 다급하게 비엔을 놓아줬다. 다행히도 화장은 지워지지 않았다.
잠시 후 페리안 자작가의 모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비엔과 케빈의 결혼식이 시작됐다. 동행했던 사제가 두 사람에게 축복을 내렸다.
이윽고 결혼식이 끝나자 연회가 열렸다.
다른 귀족가에서 알았다면 일개 시종과 하녀의 결혼식에 이게 무슨 헛짓거리냐며 혀를 찰 정도로 푸짐한 음식과 술이 나왔다.
“그래서 형은 언제 결혼해?”
“…….”
형은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그때 엄마가 말했다.
“우리 제론은 언제쯤 엄마한테 손주를 안겨줄 생각이니?”
“어흠. 커흠.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제론이 일어나 연회장을 나갔다. 뒤에서 형의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회장을 나가 정원으로 갔다. 그곳에는 선객이 있었다.
에르딘이었다.
녀석은 멍하니 의자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하냐?”
“아, 제론 님.”
에르딘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제론을 바라봤다. 찰나에 가까웠지만 녀석의 눈빛이 그리움으로 물들어 있던 것을 보았던 제론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언하트 공작령에 들렀다가 바로 수도로 가자.”
“네?”
무슨 말이냐는 표정.
하지만 두꺼운 얼굴 가죽 아래로 묘한 빛이 일렁였다.
“인마. 너도 가족과 만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세상 흘러가는 이야기도 하고 그래야지.”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편지로만 소식을 전하면 섭섭하잖냐? 네가 굳이 안 가겠다면 강요는 안 하겠지만 어차피 수도로 갈 생각이긴 했으니까 편하게 생각해.”
“네에…….”
제론은 녀석의 표정이 한결 밝아지자 어깨를 두드려주고 홀연히 정원을 나섰다.
이튿날 비엔과 케빈은 한 달의 신혼 휴가를 받고 떠났다.
두 사람이 자리를 비웠지만 저택은 평소와 같았다.
아니,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여행을 갔던 제론과 에르딘이 돌아오며 수련장이 북적거렸다.
“그런 상황에서는 공격이 아니라 방어를 해야 한다니까!”
“막을 수 있어야지 막죠!”
에르딘이 날카롭게 쏘아붙이며 창을 휘둘렀다.
하몬의 손질과 창대를 갈아서 새것처럼 변한 창이었지만 제론의 검과 한 번 부딪칠 때마다 날이 무뎌지고 창대가 반으로 부러질 것처럼 파이기 시작했다.
뚝-!
결국 창대가 반으로 부러졌다. 제론은 휘두르던 검의 궤적을 살짝 비틀어 검의 면으로 에르딘의 머리를 때렸다.
“으갸갸갸!”
“최선의 방어가 공격이라는 말도 있어. 하지만 상대와 내가 비슷한 수준이어야지 가능한 일이야. 바후르와 싸웠을 때는 순전히 요행에 의한 결과였고. 앞으로는 요행을 바라지마. 운은 언제나 네 손을 들어주지 않아.”
머리를 마구 쓰다듬는 에르딘에게 충고한 제론이 땅으로 떨어진 잘려나간 창대를 들어서 건넸다. 녀석은 한 손으로 그것을 받고 훌쩍였다.
“메르몽이 또 다쳤어.”
“메르몽이 누구야?”
“제 창 이름이요.”
“미X놈.”
제론은 헛웃음을 들이켰다. 다음 순서로 형이 앞으로 나왔다.
형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탐색하듯 쭉 훑어보더니 보법을 펼쳐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무공의 경지는 에르딘과 비슷했지만 몸놀림은 훨씬 더 능숙했다. 정파와 사파의 차이였다. 배운 무공의 종류가 아니라 가르치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부족해.”
제론이 검을 휘둘러 형의 검을 비껴 쳐냈다.
예전에는 형의 재능을 무척이나 높게 샀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형은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었다.
‘너무 신중해.’
간단하게 예를 들어 던전에서 에르딘은 바후르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형이었다면 자그마한 상처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신중함이 많다는 수준을 넘어서 지나쳤기 때문이다.
‘그 증거가 바로 이거지.’
제론이 형의 검을 비껴 쳐낸 뒤 바로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