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57)
제 157화
157화
무거운 침묵이 내리깔렸다.
형과 에르딘은 흉내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말을 이해한 것 같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지극히 정상이었다.
무언가라는 그 자체가 되라고 했으면 차라리 이해했을 것이다. 사자처럼 검술을 펼치기 위해 사자가 되라는 것이니까.
그러나 제론이 말하는 것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흉내는 결국 그것에 미치지 못해.”
그 이상으로 도달하라는 뜻이었다.
사람이 제아무리 사자를 똑같이 흉내 낸다고 한들 사자가 되지 못한다. 신체구조와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막말로 사자가 사람처럼 검을 휘두르지는 못하지 않는가?
‘사자 수인이라면 모르겠지만.’
사람의 몸으로 사자를 흉내 내는 건 뚜렷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래서 흉내를 뛰어넘으라는 거야.”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흉내를 뛰어넘는다는 건 자신만의 검을 완성시킨다는 것이다. 이른바 대종사라고 불리는 이들의 영역. 유한이 오러 마스터의 경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해도 이미 닦여 있는 길을 걷는 것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존재인 대종사와는 영역이 다르다.
‘형과 에르딘도 그것은 마찬가지지.’
유한과 다른 점이 있다면 처음부터 제론이 길을 이끌어줬다는 차이가 있다. 유한처럼 길을 헤매거나 엉뚱한 곳으로 샐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았다.
‘특히나 형은 더더욱 안정적으로 계속 발전할 거야.’
형과 에르딘의 차이가 점점 줄어드는 이유는 형이 익힌 내공심법의 특성 때문이다. 바로 심룡연단신공尋龍鍊丹神功 말이다.
본래 심룡연단신공은 1년에 0.3년 어치의 내공이 늘어나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형은 1년에 1.5년 어치의 내공이 늘어나고 있었다.
대략 20년이 지난 지금은 30년의 내공이 내단으로 형성되어 있다. 단순히 내공의 양만 비교하자면 에르딘의 것이 더 많지만 순도와 질은 형이 뛰어나다.
쉽게 비유를 하자면 HDD와 SSD의 차이였다.
에르딘이 HDD라면 형은 SSD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저 정도로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내공의 양이 같아지면 비유가 아니게 된다.
‘지금도 내공의 양이 10년 어치 이상 차이가 나는데 출력이 비슷하니까.’
형의 내공응용력이 에르딘보다 뛰어나서 그런 것도 있었다. 어찌 되었건 형은 20년 동안 무공을 수련했다. 에르딘처럼 속성코스로 수련한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한 계단씩 올라갔다.
지금 당장은 비슷한 수준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에르딘이 더 강해질 테고,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면 형이 다시 역전을 하게 된다.
‘게다가 검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경지만 된다면 내공의 차이가 몇 배로 나지 않는 이상 다른 요소로 커버하는 것도 가능해지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부수 요소가 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는 없었다.
“형이랑 에르딘은 시간이 날 때마다 대련을 계속해.”
“그거면 되는 거니?”
“응. 사실 형한테는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건 다 가르쳐줬어. 자기 자신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면 형을 믿는 나를 믿어.”
“알겠다.”
형이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옆에서 에르딘이 헤헤 웃으며 슬쩍 묻는다.
“저는요?”
“너는 아직 많이 모자라. 사실 대련이 아니라 죽기 살기로 싸우는 거였으면 형한테 그냥 썰렸어. ……그래도 기죽지는 마. 여행을 하면서 틈틈이 알려주면 되니까.”
제론은 에르딘의 표정이 시무룩해지자 얼른 뒷말을 붙였다.
* * *
대주교는 사제의 보고를 듣고 중얼거렸다.
“페리안 자작령에서 나타났다고?”
변경백의 영지와 먼 영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주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도망치던 방향이 갑자기 바뀌었다. 도망친 사제-루틴은 오른 왕국의 국경을 넘기 위해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자신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치려고 한 것이다.
대주교는 거기까지 예측을 했고 루틴을 붙잡을 기회를 만들었지만 예상치도 못한 방해꾼이 나타나며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왜?”
루틴이 그대로 국경을 넘어서 도망쳤다면 자신은 속수무책으로 부패를 고발당했을 것이다. 대주교라고 하지만 타국의 신전까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니까.
게다가 부패한 대주교라는 타이틀은 누구라도 탐낼 맛깔난 음식이다. 다른 대주교들에게는 차기 추기경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정적政敵을 제거할 기회였다.
“아니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무슨 이유로 페리안 자작령에서 모습을 드러냈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놈을 제거할 기회가 될지도 몰라.”
“저…… 정말로 루틴을 제거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냥 회유를 하시는 건 어떻…….”
“야, 이 새X야!”
대주교가 사제에게 책상 위의 물건을 집어 던졌다.
날아간 물건이 사제의 머리를 때렸다.
퍽- 쿵-!
사제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곧 비틀거리며 일어서는데 대주교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선명한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회유가 될 거 같아? 회유가 될 거 같냐고! 그게 될 거 같았으면 도망치지도 않았어! 입을 막지 못하면 너나 나나 끝이라고! 반드시 기억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의 입을 막아. 그렇지 않으면 너랑 나랑은 이단 심문관의 방문을 받게 될지도 몰라.”
“……!”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사제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나가! 나가서 놈의 입을 막을 방법을 강구해!”
“…….”
사제는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대주교의 방을 나갔다.
대주교는 거칠어진 숨결을 진정시키고 주변을 살펴봤다.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책상 서랍에서 통신 구슬을 꺼냈다. 위급한 순간 사용하라고 ‘그들’이 준 통신 구슬이었다.
조작을 하자 신호가 보내지며 곧 ‘그들’이 받는다.
[무슨 일인가요?]“……!”
통신 구슬에서 가녀린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흠칫 놀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많이 들어본 익숙한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대주교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라는 건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
아는 사람.
그중에서도.
‘성녀님의 목소리와 똑같은데?’
제1 성녀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녀에게 밀려나 추기경이 된 비운의 제2 성녀를 말하는 것이었다. 교단에서 정기모임을 가질 때마다 멀리서 들었던 그 목소리가 통신 구슬을 통해 들려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주교는 많이 당황했지만 금방 침착해진 채 말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 * *
대주교의 음모가 점점 커져 갈 무렵 제론은 유한과 대련을 하고 있었다. 그와 대련을 한 지도 벌써 3일째가 되었다. 하지만 유한은 크게 달라진 바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씩 퇴보하고 있었다.
‘곤란하네.’
제론은 유한의 검을 쳐냈다. 유한이 검을 놓쳤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작게 한숨을 내쉰 제론이 사제에게 그의 상처를 치료해달라고 부탁했다.
‘일주일 뒤에 떠나려고 했는데 그때까지 고쳐지려나?’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고쳐질 것 같지 않았다. 마음가짐부터가 큰 문제였다. 유한은 자신의 검에 확신을 잃었다.
실제로도 검로가 투박해지며 소심해지고 있었다. ‘사자검’이라는 별명이 무의미할 정도로 초식동물을 연상케 만들었다. 이대로는 심마에 빠질 확률이 높았다.
‘이미 심마에 빠졌을지도 모르지.’
심마란 꼭 광증을 동반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잃어 서서히 퇴보하는 것 역시 심마의 일종이라는 말이다. 문제는 심마를 극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꼭 특별한 계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루를 푹 쉬었는데 심마에서 벗어난 케이스가 있다. 반대로 온갖 수단을 다 써 봐도 벗어나지 못하는 케이스도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했다.”
유한이 축 처진 어깨로 돌아선다.
형과 에르딘이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사라지자 제론에게 다가와 말한다.
“조금 심각해 보이구나.”
“저러다가 무슨 나쁜 일 생기는 거 아니에요?”
두 사람은 유한을 많이 걱정했다.
처음에는 잘 풀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그의 상태가 나빠지자 걱정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제론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실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라고요?”
에르딘이 인상을 찌푸린다.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엄청 심각해 보이는데 제론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니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 자신의 검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면 돼. 인정하고 다시 돌아가서 새로 시작하면 돼. 아직은 새로 시작해도 늦지 않았거든. 하지만 문제는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거지.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고집이 세져. 게다가 자신의 검에 확신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더더욱 인정하기 힘든 거고.”
검사에게 있어서 검이 부정당했다는 건 인생을 부정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면 왜 인정하는 게 힘드냐고 이상해할 수도 있지만 정작 본인이 그런 일을 당하면 정말로 인정하기 힘들어진다.
“시간이 정답이려나요?”
“그건 나도 장담하지 못해.”
제론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다시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었다. 그를 페리안 자작 가문으로 데려온 것이 자신이었으니까 말이다.
몸을 씻기 위해 목욕탕으로 가던 도중 엄마와 마주쳤다.
“씻고 와서 밥 먹어라. 아들.”
“엄마, 요즘 너무 털털해지신 거 아니에요?”
“내 나이가 몇인데?”
엄마는 눈을 슬쩍 흘겼다. 하지만 무공을 익히면서 40대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군살이 없어졌고, 주안술로 어려진 동안은 여전히 20대라고 우겨도 마지못해(?) 인정할 정도였다.
“아빠랑 너무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보여서 같이 다니기 힘드시죠?”
“…….”
제론이 묻자 엄마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상하게도 뿌듯해 보였다.
문득 아빠의 눈 밑에 자리 잡은 다크서클이 떠올랐다.
‘아빠도 신경 써드려야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목욕탕에 가는 동안 유모가 어떻게 알아차리고 따라왔다.
“내가 애도 아니고…… 목욕시중까지 할 필요 없어.”
“호호. 제 눈에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으신 걸요?”
유모는 엄마랑 느낌이 달랐다.
옛날에는 제2의 엄마처럼 생각했는데 지금은 할머니 같았다.
목욕탕에 도착해서 유모에게 몸을 맡겼다.
“어흐! 시원하다.”
“어쩜 옛날이랑 변하질 않으세요?”
“흐흐.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잖아. 나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닌 거지.”
“나쁜 말은 하는 거 아니랬죠!”
유모가 쌍심지를 켜며 말하자 제론이 헤헤 웃었다.
목욕을 마치자 식당으로 갔다.
에르딘이 제론의 뒤에 서서 시중을 들었다. 같이 앉아서 먹자는 말에도 고개를 젓고 꿋꿋이 ‘저는 제론 님의 집사입니다.’라고 말하며 고집했다.
식사를 마칠 때쯤 해가 저물었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로 뛰어들었다.
몸이 나른해지며 축 늘어졌다.
“집이 좋긴 해.”
멍하니 천장을 보며 중얼거리던 제론은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일어났다.
창문 밖을 내다보자 유한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제론은 검을 챙기고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유한 경. 대련할래요?”
“……물론.”
유한은 거절하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