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58)
제 158화
158화
대련의 결과는 처참했다. 일검을 받아내지 못하고 검을 놓치고 말았다. 한 번이 아니었다. 두 손으로 세지 못할 정도로 많은 횟수의 결과가 나타나자 유한의 표정은 구겨진 종이처럼 변했다.
그런 유한에게 제론이 검을 들라고 말했다.
“다시.”
“……!”
유한은 이를 악물고 검을 주워들었다. 독기가 찬 표정으로 다시 덤벼든다. 하지만 이번에도 일검조차 받아내지 못하고 검을 놓치자 상처 입은 짐승처럼 낮게 으르렁거리듯 묻는다.
“……왜지?”
“…….”
“왜 나는 이런 거지? 노력하고 노력했는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기까지 내려왔는데! 왜 안 되는 거냐?! 말해 다오. 내가 정말로 틀린 거냐? 내가 틀렸다면 틀렸다고 말해 다오!”
제론은 침묵을 지켰다. 유한의 불타오르는 좌절과 절망이 느껴졌다. 어떤 대답을 해주더라도 그의 좌절과 절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는 제론의 대답을 바라며 분노를 토하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었다.
인정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확신이 무너진 지금 그에게 남은 건 오직 자존심과 고집뿐이었으니까.
제론은 착잡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유한이 다시 일어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이다. 그 예상은 훌륭하게 빗나갔다.
분노와 절망을 토하던 유한은 어느 순간 한참 동안 바보처럼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더니 돌연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하아…….”
광기마저 섞인 웃음소리는 서서히 잦아들더니 한숨으로 이어졌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맴돌았다. 하지만 나쁜 의미로 맴도는 분노가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다시 대련을 부탁해도 되겠니?”
“물론이죠.”
제론은 형처럼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유한의 변화는 월드컵 결승전의 역전승처럼 극적이었다.
쌓였던 감정을 한순간에 전부 토해냈다. 적어도 눈앞에서 지켜본 바로는 그 변화는 진짜였다. 하지만 진실은 모르는 법이다. 지금부터 진짜인지 확인을 해볼 생각이었다.
“제가 갈까요?”
“아니.”
유한은 두 눈을 흉흉하게 일렁거리며 검을 들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고무줄을 잡아당겼다가 놓은 것처럼 순식간에 튕겨서 달려든다.
유한의 무기는 대검이었다.
로반테인 공작의 대검처럼 길이가 2m 정도였으며 검신의 폭은 더 넓었다. 무려 50cm에 달했다. 그의 거구를 생각하면 무척이나 어울렸다. 그런 이유로 사자처럼 사납게 몰아치는 검술을 구사할 때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검로가 투박해지고 소극적으로 공격에 임하며 검술이 형편없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천당과 지옥의 차이라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였다.
또한 유한은 거구였지만 근육이 오우거처럼 단단하고 질겼다. 육체의 단련만큼은 제론이 본 그 어떤 오러 마스터들과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아니. 더욱 뛰어났다. 그런 유한이 고무줄을 잡아당기고 놓은 것처럼 달려드니 마치 투포환이나 대포가 쏘아져 날아오는 것 같았다.
콰아아아-!
대검이 대기를 가르며 무식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지레 겁부터 먹을 정도로 살벌했다. 하지만 제론은 대검의 경로를 예측하며 피했다. 검신을 손가락으로 밀고 유한의 발목을 걷어찼다.
“크읍-!”
유한이 신음을 삼키며 땅에 붙은 발을 차올려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밀려난 대검을 바닥에 꽂아 넣으며 서커스처럼 곡예를 펼쳤다. 그가 대검의 손잡이를 중심으로 빙글- 돌며 팔꿈치로 제론의 안면을 강타했다.
쾅-!
오러가 깃들어서 엄청난 소리가 났다. 제론의 손바닥이 유한의 팔꿈치를 막고 있었다. 하지만 오러가 깃든 팔꿈치와 다르게 손바닥에는 아무런 기운도 깃들지 않았다.
경악할 만도 하지만 유한은 침착하게 반응했다. 땅에 착지해서 대검을 뽑고 그대로 제론을 반으로 쪼갤 것처럼 내려쳤다. 대검의 면적만큼 크고 두꺼운 오러 소드가 선명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냥 막지는 못하겠는데?’
내공을 살짝 끌어올려서 손바닥으로 막았다. 이번에는 유한도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눈빛이 살짝 일렁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같은 맹수와 상대하는 것처럼 거칠게 대검을 휘둘렀다.
쾅-! 쾅-! 쾅-!
오러 소드가 깃든 대검이 연달아 내리쳐졌다. 제론의 손바닥이 살짝 얼얼해졌다. 그때 유한의 볼을 타고 흐르는 땀 줄기가 보였다.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슬쩍 입꼬리를 올린 제론은 드디어 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유한이 침을 꿀꺽 삼킨다. 이제부터 진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챙그랑-!
제론이 검을 휘두르자 오러 소드가 유리창 깨지듯 박살 났다. 하지만 유한은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극적인 변화가 억지로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숨긴 것이 아니라는 것처럼 대검을 더욱 맹렬하게 휘둘렀다.
‘좋아졌어.’
짧은 감상.
자존심과 고집을 내려놓은 유한의 변화가 반가웠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설령 또다시 좌절하고 절망하더라도 조금 더 그를 한계까지 몰아치기로 결심했다.
“이제부터 조금 세게 갈 거예요.”
“그렇게 해준다면 고맙지.”
잠시 대화를 하는 사이 유한이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는다.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이 거추장스러웠는지 벗는다. 내의에 가까운 짧은 반바지만 남았다. 흉터가 잔뜩 새겨진 상반신이 드러난다.
제론이 휘파람을 불었다.
저게 바로 남자지!
“갈게요?”
“와라.”
제론은 신법이나 보법을 펼치지 않았다. 살짝 끌어올렸던 내공. 딱 그 정도면 충분했다. 어느 정도 지친 유한은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복부에 주먹을 꽂자 그의 허리가 꺾였다. 하지만 완전히 꺾이지는 않았다. 동시에 목을 노리는 예기가 느껴졌다.
‘그 찰나에 대검으로 목을 노린다고?’
거리가 짧았다. 피해야 한다.
유한과 비슷한 상대였다면 그랬을 터.
제론은 도리어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대검이 허공을 베며 지나갔다. 뒤통수로 유한의 턱을 올려 때리고, 발로 그의 발등을 밟아 몸이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반응하기 전 허리를 뒤로 젖히고 앞머리로 코를 박았다.
“큭!”
여전히 발등이 밟혀 있어서 몸을 움직이지 못했지만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제론이 씨익 웃었다. 유한은 그의 미소를 보지는 못했지만 내심 아차! 했다. 고개가 뒤로 젖혀진 순간 어떤 공격을 당할지 머릿속으로 예상이 스쳐 지나간 것이다. 이윽고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복부를 강타하는 주먹!
유한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충격에 ‘꺼어억-’ 하고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본능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놓칠 뻔했던 대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폼멜로 제론의 등을 찍었다.
타격은 미미했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한 상태로 낸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제론은 그 사실을 알고 막지 않았다. 막을 가치가 없을 정도로 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예상이 맞았을 뿐이다. 유한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발악인가?’
그것 역시 좋다.
지금 유한에게 필요한 것은 필사적인 각오와 독기였으니까.
* * *
아이오닉 교국에는 두 명의 성녀가 있다.
한 명의 성녀만 존재해도 신의 축복이 이 땅에 내려졌다며 신의 이름을 칭송할 일이다. 그런데 두 명의 성녀가 동시에 나타났다는 건 무척이나 이례적이다 못해 파격적인 일이었다.
신의 뜻이 어떠하건 두 명의 성녀 중 한 명을 공식적으로 교국을 대표하는 성녀로 정해야 했다.
그로 인해 제1 성녀와 제2 성녀는 정치적인 대립-본래는 정치적으로 움직이지 않지만 이례적인 일로 인해 예외였다-을 이루었다.
모시는 신이 달랐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제1 성녀는 달과 어둠의 신 ‘루나Lunar’를 모셨다.
제2 성녀는 태양과 인간의 신 ‘솔라Soral’를 모셨다.
아이오닉 교국이 ‘태양의 교단’을 주축으로 세워진 국가라는 것을 감안하면 ‘솔라’를 모시는 제2 성녀가 교국을 대표하는 성녀로 정해지리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성녀는 오롯이 신의 뜻을 대리하는 자였다.
신화시대가 종막을 고한 이후로 신과 일직선으로 통하는 몇 안 되는 존재 중 하나였다. 커넥션-계약의 관계는 아니었다. 신의 힘을 부여받기는 하지만 신화시대에 비하면 정말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 그래서 교국을 대표하는 성녀가 되기 위해서는 신과 얼마나 많이 통하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최종 결과는 제1 성녀였다.
제2 성녀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솔라’의 사랑을 받고 ‘솔라’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제1 성녀는 ‘루나’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신을 부르는 것만으로 도움을 받는다.
교국을 대표하는 성녀로서 제격이었다. 그로 인해 제2 성녀는 추기경으로 밀려났고 ‘비운의 성녀’라 불리게 되었다.
‘비운의 성녀’가 천천히 찻잔을 들었다. 시트러스의 새콤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코로 향을 음미하고 한 모금을 입속에 머금는다. 목을 타고 넘어갈 때 특별한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글쎄요.”
“흐응. 재미없어.”
‘비운의 성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쳐다본다. 가녀린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시니컬한 미소였다. 그녀의 진짜 모습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당황했겠지만 제1 성녀-제론이 만났던 성녀-는 아주 많이 봐왔던 모습이었다.
조용히 차를 마시며 ‘비운의 성녀’가 본론을 꺼내길 기다렸다.
“성녀가 된 소감은 어때?”
“소감이요?”
제1 성녀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평소의 생활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신께 기도를 하고 신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전부였다.
소감이라고 말할 게 있을까?
그런 제1 성녀의 표정을 본 ‘비운의 성녀’가 고운 눈썹을 찡그렸다.
“너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건 당신이에요.”
제1 성녀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자신이 아니었다. ‘비운의 성녀’가 무슨 짓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다. 그것을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로 인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을 거야.’
대륙에 커다란 혼란이 닥쳐올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하던 일을 멈추세요.”
‘비운의 성녀’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하지만 끝내 멈추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미 늦었으니까.’
* * *
유한은 탈진해서 쓰러졌다. 눈을 뜬 것은 이튿날 아침이었다. 일어난 그는 제론을 찾아갔다. 그리곤 물었다.
“대련할까?”
“……이것만 먹고요.”
제론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과일 잼이 발라진 식빵을 입속에 구겨 넣었다. 유한의 변화는 기꺼웠으나 저러다가 몸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게다가 밥 먹을 시간은 주라고.’
마음속으로 투덜거린 제론은 식빵을 삼키고 밖으로 나갔다.
곧 코를 움켜쥐며 말했다.
“안 씻으셨어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