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59)
제 159화
159화
“대련 끝나고 씻으면 된다.”
곧 땀을 뻘뻘 흘릴 텐데 굳이 씻고 올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유한은 얼른 대련을 시작하자며 제론을 보챘다.
“냄새가 장난 아닌데…….”
“전쟁터에서 냄새를 신경 쓸 여유는 없다.”
“맞는 말만 하시네요.”
제론은 ‘처맞는 말이요.’라는 뒷말을 생략하고 검을 들었다. 유한도 대검을 들었다. 그의 눈빛에 광기가 섞였다.
잠깐이지만 그의 변화가 좋은 쪽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심마에 빠진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눈빛에 섞인 광기가 장난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미친놈처럼 눈동자가 번들번들거렸다. 침까지 질질 흘리거나 거품을 물고 있었으면 100프로였다.
대련이 시작되었다. 어젯밤처럼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체술을 섞지 않고 순수하게 검술만 펼쳤다.
10여 합 만에 그의 대검이 땅으로 향하며 목에 제론의 검이 닿았다. 살짝 찢겨진 살갗에서 핏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제론이 검을 거두자 유한은 땅이 꺼지도록 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실망한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이런 결과를 이미 예상하고 온 것이었다.
“많이 좋아지셨어요.”
“그러냐?”
유한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사나운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게 순수했다. 제론이 무심코 웃자 유한은 머쓱했는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제가 드렸던 심득서는 버리셔도 될 거 같아요.”
“……!”
이번에는 놀란 표정이었다.
“이미 길을 찾으신 거 같으니까 더 이상 필요 없어요.”
“아아……!”
유한은 허탈한 듯 웃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허탈해 보였지만 웃음소리에는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그에게 있어서 최고의 찬사를 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론에게 말이다.
“나는 틀리지 않았구나.”
“처음부터 틀리지 않았어요. 어쩌다 보니 잠시 다른 곳에 한눈을 파셨던 거죠.”
“하하하하!”
유한은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속 시원하게 웃었다. 그리곤 변화를 맞이했다. 오랫동안 앞을 막아왔던 벽을 뚫었다.
고오오오오-!
유한의 몸을 중심으로 강대한 기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제론이 손을 저어 주변으로 강기의 막을 펼쳤다.
벌써부터 기의 폭풍을 느끼고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빠와 엄마, 에르딘, 형이었다.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입술 위로 검지를 세웠다.
뚜두둑-!
그사이 유한의 몸이 변하고 있었다. 환골탈태…… 그러니까 이쪽 세상의 말로 바꾸면 바디체인지라는 것이었다.
유한의 사자 갈기 같던 긴 머리카락이 후드득- 떨어졌다. 맨들맨들한 민머리가 드러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곧 윤기가 쫘르르 흐르는 새로운 머리카락이 자라났다.
피부가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고 새살이 돋아났다.
무인으로서는 감탄이 먼저 나왔어야 할 그런 광경이었지만 제론의 머릿속으로는 ‘먼X이 키즈’의 ‘새살’이라는 노래가 자동 재생됐다.
물론 노래의 가사와는 하나도 들어맞지 않는 광경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제론은 유한의 변화를 끝까지 지켜봤다.
잠시 후 눈을 번쩍 뜬 유한이 대검을 들고 천천히 오러를 주입했다.
처음에는 오러 소드가 만들어졌다. 점점 응축이 되더니 선명하고 짙은 오러 블레이드가 완성되었다.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오러 블레이드를 바라보는 유한의 눈빛이 맹수처럼 거칠었다.
곧 제론을 바라보며 묻는다.
“대련할까?”
“괜찮으시다면요.”
제론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유한은 오러 마스터가 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처참한 패배를 경험했다.
* * *
똑똑.
“아빠. 저예요.”
“들어와라.”
아빠가 말하자 제론은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깃펜을 들고 서류정리를 하시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현대의 회사원과 겹쳐 보였다. 맞은편에 앉자 깃펜을 잠시 내려놓으셨다. 그 앞으로 1권의 책을 올려놨다.
“이건 뭐니?”
“군진이랑 진법이에요. 대단한 건 아니지만요.”
무림에서는 군진을 사용하지 않는다. 무림인은 병사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무림인들도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기초적인 진형만 알고 있었다. 쉽게 생각하면 배치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진법도 무림인들로 구성된 형태로 짜지 못해서 병사들의 수준에 맞춰 살짝 개량해서 위력이 많이 약해졌다. 하지만 없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서 집에 돌아온 뒤로 틈틈이 썼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걸 쓰냐 마냐는 아빠가 결정할 문제였다.
‘특히나 군진 같은 경우에는 겹치는 부분도 있겠지.’
제론의 생각은 정확했다.
아빠는 책을 쭉 훑어보더니 군진보다 진법 쪽에 관심을 기울였다.
“진법이 조금 흥미롭구나.”
“오러 연공법을 익히고 있으면 위력이 2배, 3배는 늘어날 거예요.”
“오러 링크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되려나?”
“네. 비슷하다고 생각해도 돼요.”
오러 링크는 동일한 오러 연공법을 익힌 기사들이 강적을 상대할 때 오러의 주파수를 맞춰 더욱 거센 흐름을 일으키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진법은 동일한 오러 연공법을 익히지 않아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평범한 병사들이 펼칠 경우에는 진형을 유지하고 호흡만 맞추면 된다.
“이걸 주는 것으로 봐서는 곧 떠날 생각이구나.”
“헤헤.”
제론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빠가 피식 웃으며 묻는다.
“아빠 친구는 만나봤니?”
“어…… 아니요. 만나고 오기에는 시간이 좀 촉박했어요.”
“그래. 꼭 만나라는 건 아니었으니까 괜찮다. 그나저나 조금 늦긴 했지만 서대륙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구나.”
“아, 엄마도 모셔올까요?”
“그래. 잠시 티타임을 갖는 게 좋겠구나.”
제론은 티타임을 가지며 아빠와 엄마, 형에게 서대륙에서 있었던 일을 쭉 나열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여러 번 놀랐을 사건들의 연속이었지만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긴 가족들은 담담하게 듣기만 했다. 하지만 던전에서 바후르 도적단의 두목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부터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래서…… 에르딘이 죽을 뻔했다고?”
아빠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제론의 뒤에 서 있던 에르딘이 다급하게 손을 저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엄마의 등짝 스매쉬가 제론에게 해일처럼 몰려왔다.
“아야! 아야!”
“안 아픈 거 알아!”
“흠흠. 아무튼, 제가 억지로 에르딘을 밀어 넣은 건 아니에요. 저 녀석한테는 위험할 것 같으면 도망치라고 했었어요. 제 말을 듣지 않아서 그런 거죠. 다 저 녀석이 잘못한…… 게 아니라 제가 잘못했어요.”
엄마의 쌍심지가 켜지자 제론이 다급하게 말을 바꿨다. 퓨리온 공작과 만났다는 것에서는 전혀 놀라지도 않았으면서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에르딘을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자 녀석이 머쓱하게 웃으며 입 모양으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빠른 사과는 인정이었다. 한 번만 봐주기로 했다.
“아무튼, 그 뒤로는 어떻게 됐는데?”
“뭐…….”
그 뒤의 사건까지 쭉 말했다. 곧 아빠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사실 네가 없는 사이에 오른 왕국에서도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단다.”
“무슨 일이요?”
제론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아빠가 답했다.
“몬스터의 대이동.”
“그건 매년 있던 일이잖아요.”
“그래. 매년 있었던 일이지. 우리 쪽이 아니라는 점만 뺀다면 말이야. 그래서 문제가 된 거다.”
페리안 자작령은 매년 몬스터 토벌을 한다. 하지만 재작년과 작년에는 토벌을 하지 않았다. 몬스터의 대이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다른 영지에서 몬스터의 대이동이 있었다. 그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은 영지가 속출했다. 몇 개의 도시와 마을이 쑥대밭으로 변했다. 오른 왕국의 왕실에서 조사한 결과 몬스터들이 누군가에 의해 몰이 당한 것처럼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흑마법사의 짓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신 거죠?”
“그래.”
“가능성이 있네요. 흑마법사가 그 녀석 혼자일 리도 없고요.”
몬스터의 대이동을 바꿀 만한 힘을 가진 존재는 또 다른 흑마법사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제론이 아카데미의 학생일 때 ‘에단의 은신처’에서 나타난 오우거 역시 흑마법사의 소행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갑자기 왜 그런 짓을 저질렀냐는 것이다.
“칼튼 제국은 어때요?”
“칼튼 제국?”
아빠는 제론의 질문에 살짝 의아한 반응을 비쳤다. 잠시 고민을 하고 대답했다.
“4황자가 황태자로 책봉된 이후 내정에 힘을 쏟고 있어서 잠잠하단다. 혹시 황태자 계승권 전쟁이 흑마법사의 조직이 저지른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어느 정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의심은 하고 있어요.”
“으음. 만약 진짜라면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구나.”
헛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아빠는 진지하게 들으셨다.
‘역시 우리 아빠가 짱이야.’
괜히 흐뭇해진 제론이 형에게 말했다.
“형, 오늘이나 내일 하루만 시간을 내줘.”
“왜?”
“내가 없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형이 엄마를 지켜줘야 하니까.”
“알겠다.”
“이 아빠는?”
“엄마도 중요하지만 영지민을 보살펴야죠. 아마 가족부터 챙기면 엄마가 뭐라고 하실 걸요? 안 그래요? 엄마?”
“물론이지.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이 엄마는 섭섭하단다.”
제론은 엄마가 살짝 삐진 듯 흘겨보자 등에 식은땀이 배는 것을 느꼈다.
“유한 경도 있잖아요.”
“유한 경은 너희 아빠를 따라가서 영지민을 지켜야지.”
“사랑해요. 엄마.”
“나도 사랑한단다. 하지만 섭섭한 마음이 사라지질 않는구나.”
“혹시 아티팩트 필요하세요?”
“얼마짜린데?”
엄마는 자본주의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 * *
엄마한테 뜯긴 아티팩트는 2개였다.
3서클 이하의 마법을 2번 막아주는 ‘실드Shield’ 마법이 인챈트된 반지와, 손아귀 안에 잡힌 물체에 가해지는 악력과 비례해서 마법에 의해 압력이 더해지는 실크 장갑이었다.
무공까지 봐주자 엄마가 엄청 좋아하셨다.
‘좀 더 신경 써드릴 걸 그랬나.’
제론은 미안한 마음에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아빠의 무공도 봐주자 밤이 되었다. 유한은 대련을 하자며 찾아오지 않았다. 오러 마스터가 되어 경험한 첫 패배가 뼈아팠는지 망연자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이 무척이나 처량해 보이긴 했다.
그렇게 며칠 뒤 다시 여행을 떠나기 전날이 되었다.
형이 하루 시간을 내서 왔다.
“으아. 진짜 바쁘네.”
쉬려고 왔는데 일만 하는 느낌이었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그냥 쉬는 건 어떠니?”
“아빠처럼 말하지 마. 형. 나중에 형수님이 아저씨 같다고 놀려.”
“그렇게 말하면 상처받는단다.”
형의 표정을 보니 진심이었다.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진짜니까 새겨들어.”
“그래도 전보다는 많이 고쳤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더구나.”
“가족이니까 알아보는 거야…….”
제론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건 형의 무공만 손봐주면 더 이상 할 게 없다.
“그런데 저번에 네가 가르칠 수 있는 건 다 가르쳐줬다고 하지 않았니?”
갑자기 형이 정곡을 찔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