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6)
제16화
16화
“어때, 형?”
“천자문 정도면 며칠 안에는 뗄 것 같다.”
“뭐?”
“단순히 외우는 거니까. 암기는 자신 있다.”
제론은 ‘오우!’ 하고 감탄했다.
천자문을 며칠 만에?
무림인들이 알았다면 어린아이의 허세라고 비웃고 말 것이다.
천자문은 단어 뜻 그대로 천 개의 글자였다. 며칠 안에 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른을 5년간 봐온 제론의 입장에서는 허세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조금의 과장은 섞였겠지만. 아, 그게 허세인가?’
두루뭉술하게 며칠이라고 말한 것도 9일 안에 외우겠다는 게 아니라 수십 일을 예상하고 말했을 것이다. 곧 천자문이 적힌 책을 보는 척하며 동공이 열려 있는 헤샤의 얼굴 앞에 손을 흔들었다.
“깜짝아!”
“누나, 눈 풀렸어.”
“이그으으윽!”
헤샤가 원망하는 눈빛으로 제론을 노려본다.
그런 시선 따위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지만 헤샤는 여자가 아니라 누나였다.
‘가족이 여자는 무슨.’
콧물을 질질 흘리는 4살 때부터 9살까지 살을 부대끼며 살아왔다. 염색체만 XX인 머리카락이 긴 남자나 다름없다. 한을 품는다고 해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흥! 이까짓 거 하나도 안 어렵거든?”
짜증 난다며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던 헤샤가 이내 무언가를 떠올린 표정을 짓더니 코웃음 치며 자신만만해 한다.
제론은 헤샤가 왜 저렇게 자신만만해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다가 얼마 전에 손님이 왔다 간 기억을 떠올렸다.
오른 왕국은 왕국법에 의해 모든 귀족 가문의 자식들이 9살이 될 때 왕국 아카데미에 7년간 입학해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헤샤의 나이는 올해로 9살.
1년 중 6개월을 아카데미에서 생활해야 한다.
형인 가른은 제론이 3살이 되었을 때 9살이 되어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지금은 방학이라서 영지에 돌아와 있는 것이다.
“몇 달 뒤에 아카데미 가는 것 때문에 그러는 거구나?”
움찔.
헤샤가 몸을 떨더니 코웃음을 치던 표정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어디 보자. 한 달 뒤에 가네? 걱정 마. 그 전에 천자문 정도는 떼게 해줄게.”
“어, 어떻게?”
제론이 히죽 웃으며 말하자 헤샤의 목소리가 가냘프게 떨린다.
헤샤는 아이리를 판박이처럼 닮아서 벌써부터 미래가 기대되는 새싹의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아앗! 내가 지켜줘야 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 정도로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하지만 제론에게는 가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비열하게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상체를 앞으로 슥 내밀었다.
헤샤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가 조용히 속삭였다.
“잘.”
“……!
제론은 무림에서도 빡대가리로 소문난 녀석들을 훌륭한 인격체로 완성시킨 경험이 많았다.
그런데 아직 머리가 굳지도 않은 어린아이 한 명쯤이야.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쉽지.’
모든 건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 * *
한 달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제론은 기적적으로 헤샤가 천자문을 떼게 만들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빡대가리로 정평이 났던 녀석들을 훌륭한 인격체로 완성시켰던 경험조차 어린아이의 생떼에는 무용지물이었다.
“헤샤는 하기 싫단 말이얏!”
“응. 그래도 해.”
“이런 건 절대로 못 외워! 안 해! 아니, 못 해!”
“응. 해. 못 해도 해.”
생떼를 쓰는 건 무시했지만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펑펑 울며 바닥을 뒹굴 때는 제론도 헤샤에게 천자문을 외우라고 강요하지 못했다.
‘나중에 육아를 할 때 도움이 되겠어.’
마음속으로 참을 인忍 자를 몇 개나 썼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제론 본인에게 아무런 소득이 없던 건 또 아니었다.
두 형제에게 천자문을 가르친 뒤에 어떤 무공을 알려줄지 되새기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내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거네. 아직 한참 멀었어.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정진해야겠네.’
‘붉은 달’ 길드의 오른 왕국 변방 지부장은 방심을 하고 있어서 순식간에 쓰러트리는 것이 가능했지만, 보통의 경우라면 일격으로 무력화시키는 건 불가능했으리라.
‘의외로 형의 오성과 암기력이 뛰어나.’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형-가른의 말에 조금도 과장이 섞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가른은 정확하게 8일째 되던 날 천자문을 뗐다. 제론이 천자문 중 하나를 써서 이게 뭐냐고 물어보면 잠깐도 고민하는 시간 없이 척척 대답했다.
그러면서 묻지도 않은 부연설명까지 하는데.
예를 들어 같을 여如가 계집 녀女에 입 구口자를 덧붙여서 만들어진 것이며, 삼종지도三從之道-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라야 한다-를 뜻한다고 풀이까지 했다.
‘이 세상에는 삼종지도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라서 다르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법 정확하게 본질을 파악할 줄 안단 말이야.’
지금 제론이 생각하는 게 바로 오성-사물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이었다.
무림에서도 보기 드문 천재가 바로 자신의 형이었다.
‘아카데미가 방학할 때마다 최대한 많은 것을 알려줘야겠어.’
형은 지금 아카데미 3학년이다.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 이왕이면 최고 성적으로 졸업시키고 싶었다.
‘내 가족이니까 그 정도는 해야지.’
상승의 무공까지 배우고 간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모자랐다.
다음 방학 때 손수 지도해주며 제대로 알려줘야 할 것 같았다.
‘무공서를 아카데미로 가져가게 하는 건 아무래도 불안하고.’
분실을 하더라도 누군가가 한자를 읽을 줄 알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페리안 남작가로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우려된다.
‘아직 나에게는 가족을 지킬 힘이 부족하니까.’
아빠나 엄마, 형은 몰라도 누나-헤샤가 유독 조금 더 걱정되었다. 한 달 동안 천자문을 뗀 것도 대단하지만 외압(?)에 굴복하여 머릿속에 강제로 쑤셔 박혀진 것에 불과했다.
자의와 타의의 차이는 분명하다. 계속 되뇌지 않는다면 금방 까먹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나이의 꼬마 애들 중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애가 얼마나 될까?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도 재능이 없는 건 아니니까 방학 때마다 열심히 굴려봐야지.’
만약 헤샤가 제론의 머릿속에 든 생각을 알았다면 치를 떨며 악마라고 손가락질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론은 가족을 위해서라도 봐줄 생각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형이 간단한 무공이라도 하나 배워서 간다는 건가?’
몇 가지 초식으로 이루어진 권각술이다.
적어도 위험한 순간을 한 번은 모면할 수단은 될 것이다.
“제론 도련님.”
제론이 깊은 생각에 잠길 무렵 유모가 찾아왔다.
가른과 헤샤가 아카데미로 갈 준비를 마쳤다는 것이었다.
“배웅은 해줘야겠죠.”
“그럼요. 가른 도련님과 헤샤 아가씨께서 분명히 좋아하실 거예요.”
“음. 형은 몰라도 누나가 그럴까요?”
“예?”
유모는 제론의 의문 어린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형과 누나가 천자문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은 같은 가족을 제외하고 아무도 모른다. 가족처럼 가까운 유모에게도 숨겼다. 그녀가 알아서 좋을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비밀은 최대한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 나중에 유모에게도 몇 가지 무공을 가르쳐 줄 생각이긴 하지만 그전까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헤샤가 한 달 사이에 제론을 얼마나 증오-그냥 억지로 공부시키는 선생님을 미워하는 것에 가깝다-하게 되었는지 유모가 모를 수밖에 없다.
“일단 가죠.”
제론은 유모의 손을 잡고 저택 밖으로 나갔다. 형과 누나가 마차 앞에 서서 아빠와 엄마와 포옹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따뜻하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게 분명했다.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무슨 일 있으면 무조건 선생님부터 찾고. 도착하면 꼭 편지하는 거 잊지 말고. 헤샤는 입학하면 1학년이니까…….”
“알겠으니까 잔소리 좀 그만 해요.”
따뜻하고 다정한 대화가 오가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뭐, 누나가 지겹다는 표정만 짓고 있지 않았다면 분위기는 나름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빠와 주변 가신들, 병사들의 얼굴을 보니까 저런 말을 꽤나 오래 했는지 살짝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 누나!”
제론은 키득거리며 웃고 가족에게 다가갔다.
* * *
“……꼭 명심해야 한다. 모르는 것 있으면 오빠한테 물어보고.”
“제발 좀…….”
아이리의 잔소리를 듣는 헤샤의 표정이 거무죽죽해져 간다. 같은 말만 몇 번째 듣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다섯 번은 넘은 거로 기억한다. 그 뒤로는 세는 것을 포기했다.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아파 왔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
“형! 누나!”
아이리가 제론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덕분에 잔소리가 끊겨 한숨을 돌릴 여유를 갖게 된 헤샤가 제론과 시선을 마주치더니 다른 의미로 질색을 했다.
“너, 너……!”
“조심히 다녀와야 해애!”
제론이 유모의 손을 잡고 있지 않은 손을 높이 들고 흔들었다. 그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범위는 저택 앞이 끝이다. 쥬페토가 내린 벌이 아직 유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택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서 배웅하는 것이다.
“메롱! 당분간 안녕이다!”
헤샤가 곧 히죽히죽 웃으며 혀를 쏙 내밀었다.
천자문을 외우는 한 달 동안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던지, 그렇게 가기 싫었던 아카데미 입학식이 다 기다려졌다.
남작령을 떠나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을 전부 가진 기분이었다.
“돌아오면 가르쳐준 거 안 까먹었는지 확인할 거야아.”
“까먹으면 어쩔 건데? 어쩔 거냐고!”
까불거리는 헤샤에게 제론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시 특훈하는 거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잘!”
“으아앙! 엄마! 아빠! 쟤 혼내줘요!”
끝내 헤샤를 울리고 만 제론이었지만 쥬페토와 아이리는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방관했다.
천자문을 비롯해 제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체불명의 지식들을 가른과 헤샤에게 먼저 전수하겠노라며 말했을 때 교육방법에 대해 절대로 간섭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폭력을 동반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았겠지만 제론이 한 건 헤샤를 붙잡고 1 대 1의 교육을 한 것이 전부였다.
바빠서 교육장면을 보지는 못했지만 헤샤에게 듣기로는 옆에서 계속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했다나?
그날 가르쳐준 천자문을 외울 때까지 따라다녔다고 하니, 짜증 나고 지겨워서라도 외워야만 했다고 한다.
결국 억지로 머릿속에 쑤셔 넣듯 외우는 데 성공했지만 제론만 보면 치가 떨리는 부작용까지 얻었지만 말이다.
“그럼 이만 가보거라. 자칫 입학식에 늦겠구나.”
아이리가 한참 동안 엉엉 우는 헤샤를 달래고 나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제론은 마차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채 메롱 하는 헤샤에게 히죽 웃어 보였다.
“히익-!”
헤샤가 사색이 되며 쏙 들어간다. 곧 제론이 시원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누나까지 없으니 허전하겠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