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61)
제 161화
161화
한 달 뒤, 제론 일행은 아이언하트 공작령에 도착했다.
미리 연락을 받은 로한이 성문 안에서 제론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가 말을 타고 오는 것을 발견하고 버선발로 마중 나왔다.
“제론! 야, 인마!”
“허허. 짜식 보소. 안 춥냐?”
제론이 로브를 벗어 로한의 얇은 옷 위로 걸쳤다. 코끝이 빨개진 채 훌쩍거리다가 달려 나오는 녀석을 보니 가슴 한편이 찡해진다.
‘몸도 허약한 놈이…….’
홀몸도 아닌데 왜 무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 정도는 거뜬하지!”
앙상한 팔뚝에 힘을 주며 자랑을 하니까 설득력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운동을 꾸준히 해왔는지 안색은 괜찮았다.
‘양기가 살짝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말이야.’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집안의 내력이라는 걸 무시하지 못하니까. 그래도 어렸을 때 제론이 양기를 채워줘서 지금까지 괜찮은 것이다. 앞으로도 특별한 일만 없다면 갑자기 아프거나 끙끙 앓지는 않을 것이다.
“누나는?”
“헤샤는 집에서 쉬고 있어.”
“……?”
제론은 로한의 대답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녀석이 담담하게 말했지만 깊숙하게 숨겨진 무언가가 있었다.
“아마 깜짝 놀랄 거다.”
“나쁜 일은 아니지?”
“으음.”
로한이 고민을 한다.
곧 아마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쁜 일만 아니면 됐지.”
“하하!”
제론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로한이 크게 웃었다.
작게 ‘깜짝 놀랄 거야.’라고 중얼거린다.
“그런데 사제님과는 어쩌다가 동행을 하게 된 거야?”
“아.”
로한의 질문에 그제야 얼떨떨한 표정으로 따라오는 사제를 발견한 제론이었다. 대충 사정을 설명해주자 로한이 미간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꽤 골치가 아픈 일이네.”
“응. 어차피 북대륙으로 여행을 갈 예정이라서 그때까지는 동행하려고.”
“위험하지는 않겠…… 아니다. 내가 누구한테 그런 걱정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로한은 걱정스럽게 제론을 쳐다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저 녀석을 걱정하느니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개가 마른하늘에 떨어지는 날벼락에 맞아 죽지 않을까 걱정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너 키가 더 큰 거 같다?”
“지금 아마…… 195 정도는 될걸?”
“그러다가 2m 넘는 거 아냐?”
“에이. 설마. 얼마 전부터 성장이 멈췄어. 더 크면 위험해.”
에르딘의 키도 작지 않다. 대충 180 정도는 되었다.
그런 녀석보다 15cm가 더 컸다.
아카데미 학생일 때 자신의 몸속에 거인족의 피가 흐른다는 소문이 떠돈 게, 마냥 근거가 없던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마저 스스로 할 정도였다.
“너도 좀 큰 거 같은데?”
“얼마 전에 재보니까 183이더라.”
로한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잡담을 잠시 멈췄다.
타고 온 말을 맡기고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가 공작성을 향해 움직인다. 아직 해가 저물지도 않았는데 겨울바람이 차서 그런지 거리가 한산했다.
로한이 창문을 살짝 열고 밖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말한다.
“선물은?”
“없어.”
“염병?”
“염병에 걸리면 죽어, 인마.”
“제…… 제가 치료해드리겠습니다.”
마차에 등을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던 사제가 입가의 침을 닦으며 허겁지겁 말한다.
로한이 그를 쳐다보다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곧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사제님께서는 왜 동료의 부패를 고발하시려는 겁니까?”
“신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고 도우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기 바빴고 제 지갑을 배부르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이들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저는 그것이 옳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그게 전부였습니다.”
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충분한 대답이 되었습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적극적으로 돕고 싶습니다. 물론 제론의 얼굴을 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친구와의 우정도 소중하지만 이런 일에는 저의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가서는 안 되니까요.”
“…….”
“지금 하는 말은 순전히 방금 전에 사제님께서 하신 대답을 듣고 솟아난 순수한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입니다. 아무튼…… 저희 입장은 그러하지만 아이오닉 교국과의 협정으로 인해, 국가에 반하는 중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저희 쪽에서는 신전의 일에 관여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제님께서 무사히 교국에 도착하셔서 대주교의 부패를 고발하시고, 부패의 조사가 시작될 때 저희는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제님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로한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사제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마십시오. 또한 절대로 실패하지 마십시오.”
“물론입니다.”
로한은 믿겠다며 말하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아이언하트 공작성에 도착했다.
제론은 에르딘과 사제를 쉬게끔 먼저 올려보냈다.
두 사람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로한에게 물었다.
“너, 뭔가 알고 있지?”
“어.”
로한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딱히 말하고 싶어 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쓴다면 친구가 아니었다.
“네가 대답할 수 있는 거냐?”
“그거부터 물어봐 줘서 고맙다.”
“천만에.”
뻔뻔한 친구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로한이었지만 왕국법보다 바로 눈앞에 있는 주먹이 제일 무서운 법이었다. 그래서 인내심을 발휘해서 상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이기는 해.”
“그럼 네가 아는 게 뭔데?”
“……아직 말 다 안 끝났다.”
로한은 저 낯짝에 침을 뱉을까 진심으로 고민했다. 적어도 아이언하트 공작성에서는 자신을 때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방 포기했다.
혹시나 폭력을 휘두르면 굴복해야 했으니까. 제론이 진심으로 때리지는 않을 테지만 자신은 엄연한 평화주의자(?)였다.
“내가 아는 걸 말해주면 뭐 해줄래?”
“안 때릴게.”
제론이 당당하게 말하자 로한이 피식 웃었다.
“미친놈인가?”
“들켰네. 쑥스럽게시리.”
“뭐…… 어디 가서 네가 말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해줄게.”
로한은 말하기에 앞서 가볍게 손을 까딱였다. 술이라도 한잔하자며 대화하자는 제스처였다.
제론은 그 전에 누나를 보고 싶다며 말했다.
* * *
“어?”
“오랜만이야.”
누나가 침대에 누워서 손을 흔든다. 하지만 제론이 주시한 것은 누나의 얼굴과 손이 아니라 남산처럼 커진 배였다.
동생의 시선을 알아차린 누나가 말한다.
“아빠랑 엄마가 말 안 해줬어?”
“누나, 왜 이렇게 살쪘어?”
“…….”
누나는 광대를 씰룩거렸다. 살짝 화가 난 것처럼 보였지만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만다. 곧 손으로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사랑의 결실이야.”
“세상에.”
제론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믿기지 않았지만 믿어야만 했다. 증거가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까. 현실을 외면하기에는 누나의 배가 살이 쪘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크게 부풀어 올랐다.
“누나가 엄마가 된다고?”
“맞아. 한 달 정도 남았어.”
“이렇게 가만히 있을 일이 아니었네.”
넋을 놓은 채 누나의 남산처럼 부푼 배를 쳐다보던 제론이 벌떡 일어섰다. 그런 동생의 모습에서 극심한 불안감을 느낀 누나가 다급하게 붙잡았다.
“잠깐! 어디를 가려고?”
“로한, 그 녀석이 누나를 지킬 수 있게 운동시키려고.”
“지금 그게…… 아얏!”
“……!”
비명을 들은 제론의 발걸음이 덜컥 멈췄다.
눈 깜짝할 사이에 누나한테 다가가 맥문을 잡고 내공을 불어넣었다. 배 속에 아이가 있다고 하니까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다행히도 누나의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누나가 말했다.
“우리 애가 외삼촌이 와서 반가웠나 봐. 인사를 하네.”
“인사를 했다고?”
“응. 지금 내 배 보이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얼른 쳐다보자 누나의 부풀어 오른 배에 조그만 무언가가 튀어나와 있었다. 저게 뭔가 하고 쳐다보는 사이 튀어나왔던 무언가가 쏙 들어가 사라졌다.
“발이야.”
“……발?”
“응. 우리 애가 외삼촌이 왔다고 안녕~ 하고 인사한 거야.”
“허. 세상에.”
제론은 심경이 복잡했다.
현대에서는 가족의 존재가 없었기에 무관심했다. 무림에서는 부하들이나 부하들의 아내가 아이를 낳아도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결국에는 자신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남의 일이 아니게 되니까 말로는 설명하지 못할 감정의 회오리가 가슴을 가득 채웠다.
“세상에.”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없니?”
“……축하해.”
제론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겨우 말하곤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실감이 없었다. 믿냐 마냐의 사실을 떠나 그냥 심정이 미묘했다.
“하아. 세상에.”
“너는 어째 하는 말이 그거밖에 없니?”
그렇게 말하는 누나의 얼굴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던 누나의 모습이었다.
“세상에.”
“너도 언젠간 알게 될 거야.”
누나는 엄마처럼 웃으며 배를 조심조심 쓰다듬었다.
* * *
제론 일행이 마차를 타고 아이언하트 공작성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시선이 있었다. 사제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대주교가 보낸 자들이었다. 그들은 제론 일행이 탄 마차를 끝까지 지켜보고 말했다.
“계속 공작성에서 머무르지는 않을 거다. 그때까지 잠시 기다린다.”
아이언하트 공작 가문을 끌어들이면 안 된다. 일이 더욱 커진다. 자칫하면 꼬리가 밟혀 아무것도 못 하고 실패한다. 나중에 기회를 노리는 게 낫다.
추격자들은 빠르게 흩어져 도시로 스며들었다.
* * *
“많이 놀랐지?”
“진짜 놀랐다. 입에서 세상에…… 라는 말 밖에 안 나오더라.”
“너도 그런데 나는 오죽하겠냐?”
로한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피식 웃었다.
아직도 그날이 잊히지 않는다.
헤샤의 배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사제를 불러 묻자 그가 축복을 내리며 말하길 임신이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하루 종일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실실 웃고, 또다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웃기를 반복했다. 무척이나 신비로웠다. 아이를 갖게 되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설마 아까 사제님께 그런 말을 했던 것도……?”
“맞아. 원래대로라면 신전이나 교단 혹은 아이오닉 교국의 일에는 절대로 끼어들지 않아. 이번에는 네가 관련되어 있으니 조금 고민을 하긴 했겠지만…… 결국 이득이 따르지 않는다면 개입하지 않았겠지. 그런데 헤샤의 배 속에 아이가 생기니까 생각이 달라지더군. 적어도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는 나아졌으면 하고 말이지.”
“아빠라는 거구나.”
로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론은 그런 친구의 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