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64)
제 164화
164화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였다.
제론 일행이 탄 배는 소량의 짐만 싣고 빠르게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쾌속선이었다.
화물선이나 여객선과 비교해서 뱃삯이 최소 2배에서 최대 4배가 비싸지만, 목적지까지 빨리 도착한다는 이유로 돈이 많은 사람이나 급하게 물건을 옮겨야 하는 상단이 자주 이용하는 배였다.
사건의 전말이나 말하지 웬 설명을 하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바로 사건이 벌어진 포인트였다. ‘돈이 많은 사람’과 ‘급하게 물건을 옮겨야 하는 상단’이 말이다.
바로 뻔하고 뻔한 클리셰인 약탈이었다.
그랬다.
출항한 지 1시간이 지났을 무렵 강 위에 도적이 나타났다.
“해적?”
“바다가 아니라 강이니까 강적이나 수적이 아닐까요?”
에르딘이 담담하게 제론의 말을 정정했다. 슬슬 이 정도 딴지는 거슬리지도 않았던 제론이기에 녀석의 말을 무시하며 수적의 배를 자세히 살펴봤다.
중국 어선보다는 조금 크고 선체가 날렵하게 생겼다. 그러니까 쾌속선을 따라잡은 것이겠지만 저 정도 크기라면 수용인원도 대략 40명 안팎으로 적다.
“우리나라에 수적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는데?”
“유명하지는 않지만 있긴 해요.”
제론은 그렇구나 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적의 배가 쾌속선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들이받을 것처럼 속도를 더욱 높인다.
그냥 통째로 베어낼까 생각했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흑마법사의 조직을 의식한 것이다.
오른 왕국에서 그들의 시선을 끌 행동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다.
‘그래야 놈들이 방심을 하지.’
흑마법사를 쉽게 쓰러트린 것은 녀석이 방심했기 때문이다. 놈이 제론의 힘을 조금이나마 알아차리기만 했었어도 상황은 복잡하고 어렵게 흘러갔을 것이다. 녀석을 쓰러트린 뒤에 ‘침묵의 안개 숲’에서 메이란을 만났지만 그녀 역시 완벽하게 파악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자신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으니 다음번을 위해 아껴둬야 한다.
“전투준비! 수적이 나타났다!”
“충격에 대비하라!”
“승객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쾌속선의 승무원들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그사이 수적들은 뱃머리에 충차 같은 공성 무기를 세워놓고 대가리를 들이받을 준비를 마쳤다.
제론이 그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와. 이거 제대로 미친놈들이네?”
이건 ‘나 살고 너 죽자.’가 아니라 ‘나도 죽을 테니까 너도 죽자.’였다. 무림에서도 장강수로 연맹이 이런 식으로는 영업하지 않는다.
솔직히 장강수로 연맹의 힘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결국은 도적이었다.
상인들이 작정하고 돈을 모아 낭인을 고용하고 대문파의 힘을 빌린다면 그들도 깨갱! 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심각해지면 국가에서 개입해 대대적인 토벌을 명하니 서로 윈윈win-win하자는 취지로 통과세를 내고, 그쪽은 돈을 받고 통과시키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지금 저놈들이 하려는 짓은 ‘그딴 건 X도 필요 없고, 일단 우리는 너희를 약탈할 거다!’라는 참된 도적의 자세였다.
“무림에서는 사라진 진짜 수적이 이곳에는 있구나.”
잠깐 기억을 되짚어보니 바후르 도적단 역시 그랬다.
아무래도 이쪽 세상의 도적들은 다 그런 모양이었다.
제론이 상념에서 빠져나온 순간 수적의 배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쿵-!
쾌속선이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선체 하단에서 무언가가 뚫리는 소리가 났다. 충차 같은 공성 무기로 구멍을 낸 것이다.
선박에 갈고리가 걸리며 사다리가 설치되었다. 수적들이 사다리를 타고 건너왔다. 선박에서 대기 중이던 전투승무원들과 전투가 벌어졌다.
“어라?”
제론은 몇몇 수적들이 구멍으로 통과하는 기척을 감지했다.
승무원에게 가서 그 사실을 말하자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을 어떻게 믿…….”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게 기사명패였다. 오른 왕국의 왕실과 아카데미에서 보증하는 작위였기 때문에 사실상 준귀족이었다. 승무원의 눈앞에 기사명패를 꺼내서 보여주자 입이 쏙 다물어진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시간도, 간 큰 담력도 없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승무원이 선장에게 달려가서 보고한다.
그사이 제론은 에르딘에게 사제를 지키라고 말한 뒤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공작성에서 여기까지 쫓아왔던 추격자들도 갑판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같은 편이었나?”
조금 무모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곧 바뀌었다. 제론이 잠깐 숨어서 기다리자 추격자들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수적들과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무슨 상황인 거지?”
잠깐 뇌 정지가 왔다.
* * *
추격자들은 당황했지만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 동업자가 아니었지만 이래저래 더러운 일을 하고 있는 비슷한 입장이라서 수적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렸다. 평소였다면 조용히 묻어갔겠지만 지금은 평소가 아니었다.
얼마 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기회가 왔던가?
그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고 아까운 음식마저 엎어버린 분노를 풀 곳-제론한테 풀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했다-이 필요했다.
“분명히 구멍을 뚫은 곳으로 침투했을 거다.”
“거기로 물건을 훔쳐서 싣고 튀겠죠.”
“그래. 녀석들의 수법은 항상 같았으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다.”
“싹 다 죽일까요?”
“음식값과 더러운 기분 값은 받아야지.”
대장이 살기 띤 표정으로 말하자 부하들은 스산하게 웃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에 도착하자 역시나 물건을 약탈하려고 온 수적 놈들이 있었다.
“누구냐!”
“우리가 누구겠냐?”
“전투승무원!”
“뭐, 우리의 정체는 너희가 알아서 판단하고. 지금 우리가 기분이 굉장히 나쁘거든. 그러니까 좀 흠씬 두들겨 맞아줘야겠어.”
“전투승무원이 아니라 미친놈이었군.”
추격자들과 수적들은 바로 싸움에 돌입했다. 잠시 후 도착한 제론이 혼란스러운 시선으로 그들의 싸움을 지켜봤다.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 거지?”
추격자들은 제론 일행의 뒤를 쫓아온 나쁜 놈들이다.
수적들은 배를 약탈하려는 나쁜 놈들이다.
똑같이 나쁜 놈들이니까 둘 다 때려줘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사이 싸움이 끝났다.
추격자들의 승리였다.
수적들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
추격자들이 예상외로 실력이 뛰어난 것이었다.
‘아니. 독기가 잔뜩 올라 있다는 말이 맞겠어.’
수적들은 추격자들의 독기에 기가 팍 죽어버렸다. 그래서 제대로 된 대응도 못 하고 순식간에 당했다. 이런 상황이 제론에게 정말로 기묘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자 승무원들이 내려왔다.
제론을 먼저 발견하고 그다음으로 추격자들을 확인했다.
“누구냐! 정체를 밟혀라!”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분들은 용감한 분들이시더군요. 제가 내려오니 수적들과 싸우고 계셨습니다.”
“아, 자유 기사님이시군요.”
제론이 기사명패를 보여주며 추격자들을 변호하고 나섰다.
뒤늦게 제론의 존재를 알아차린 추격자들이 크게 당황하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제론의 정체가 그들이 쫓고 있는 일행 중 한 명이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제론이 추격자들을 향해 히죽 웃어주자 그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승무원들이 뒷정리를 하는 사이 위로 올라가자 갑판에서도 싸움이 끝나 있었다.
에르딘이 창에 묻은 핏물을 털어내며 활짝 웃었다.
‘아이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지 말랬더니.’
또 사고를 치셨다.
그래도 저 정도는 애교 수준이니 봐줄 만했다.
* * *
배의 하부에 구멍이 뚫리며 운행이 불가능해지자 쾌속선은 가까운 항구로 입항했다.
쾌속선의 선장이 놀고 있는 배를 찾아 승객들과 상단의 일정이 늦춰지지 않게 새로운 배편을 마련했다. 제론 일행과 추격자들도 그 배에 승선했다.
배가 출항하자 쾌속선의 선장이 추격자들에게 사례라며 소정의 포상금과 식사를 대접했다.
제론은 특별히 힘쓴 것이 없었지만 같이 힘-에르딘의 활약도 포함시켰다-을 합쳤다는 것으로 알아듣고 에르딘도 함께 합석시켰다.
“사례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민망한 수준이지만 부디 편안하게 즐겨주십시오.”
배 위에서 먹을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음식과 술이 차려졌다.
제론 일행은 태연하게 먹고 마셨지만 추격자들은 계속 눈치를 살피는 꼴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주변에 사람이 적어지자 제론이 말했다.
“왜 그랬어?”
“저, 저희가 당신을 쫓아가고 있었단 말입니까?”
에르딘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모르는 척 딴청을 피워도 모자랄 판에 말까지 더듬으며 말하지도 않은 내용을 내뱉는다. 한 편의 희극을 보는 것 같았다.
추격자들의 대장은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이를 딱딱딱 부딪쳤다.
“아아. 진정해. 어떻게 하려고 했으면 공작성에 도착하기 전에 제거했겠지.”
“……!”
“대주교의 의뢰를 받아서 우리를 몰래 쫓아오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어. 내가 궁금한 건 왜 수적들이랑 싸웠냐는 거랑 의뢰의 내용이 뭐냐는 거야. 말하기 곤란하면 말하지 않아도 돼.”
추격자들은 서로 눈치를 살펴봤다.
수적들이랑 왜 싸웠냐는 질문은 대답하기 곤란했다.
밤새 오들오들 떨며 자고 딱딱한 빵을 겨우 씹어 삼키며 따라왔는데,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려는 순간 엎어버려서 화가 나 싸웠다고 대답하기에는 너무 처지가 궁색했다.
“의뢰의 내용은…….”
“아 참. 말하기 곤란하면 말하지 않아도 되긴 한데 나는 조금 곤란해질지도 몰라.”
추격자들의 대장은 속으로 제론을 욕했다.
‘시X! 곤란하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며!’
대놓고 협박하면서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제론의 서늘한 눈빛이 무서웠다.
“저, 저희가 받은 의뢰는 부패한 사제의 행적을 쫓아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입니까!”
사제가 식탁을 쾅! 치며 일어섰다.
추격자들은 손목을 비틀면 뚝 부러질 것처럼 연약해 보이는 사제의 모습에서 잠시 어이가 가출했지만 제론의 눈치에 성질을 죽였다.
자고로 용병계는 힘센 놈이 짱인 곳이다.
“우리는 의뢰를 받아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지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합니다.”
“돈도 많이 주고?”
“……그렇죠.”
“뭐, 너희도 눈치가 있어서 알겠지만 나는 귀족이야.”
“…….”
추격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론 일행이 공작성으로 들어갈 때부터 눈치챈 사실이었다.
“이 사제님은 부패한 사제도 아니고.”
“그건…….”
“내가 부패한 사제를 도와서 뭐 하게?”
“…….”
“막말로 얻어먹을 게 있다고 쳐도, 도망치는 부패한 사제한테 뭐가 있겠어?”
“……없겠죠.”
“이 꼬질꼬질한 사제복을 봐. 부패한 사제였으면 옷이 이런 상태겠어?”
“그런 상태가 아니었겠죠.”
“그럼 너희한테 의뢰를 넣은 대주교는 어땠어?”
“얼굴에서 기름기가 번들번들했습니다.”
“그럼 누가 부패한 사제겠어?”
“대주교요.”
추격자들은 제론의 말이 아니었어도 어느 정도 진실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다만 돈을 많이 주기 때문에 의뢰를 받아서 쫓고 있던 것일 뿐이었다.
“좋아. 그럼 말하기 쉽겠어. 내가 너희한테 제안을 할게.”
“……?”
“얼마면 돼?”
제론은 거만하게 자세를 취하며 물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