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66)
제 166화
166화
흔한 클리셰였지만 가능성이 높았다.
‘킹능성은 항상 열려 있는 법.’
판타지 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가는 곳마다 악당의 조직이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었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휘말려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다. 그래서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은 사실 코X이었다는 학계의 정설도 있었다.
‘불길하다.’
아이오닉 교국을 그냥 가지 말까 고민도 되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사제가 동행하고 있었다. 혹시 이것도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혹시 알고 보니 사제님이 악당 조직의 일원이었다거나…….’
봇물이 터진 것처럼 밀려오는 의심에 사제를 쳐다봤지만 그는 순수 터지는 표정으로 양념 꼬치구이를 먹고 있었다. 입가에 양념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저 모습을 보자 의심이 사라졌다.
대신 제론은 자신의 전생이 사실 유민현이 아니라 코X이 아니었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메이엔 선배도 만나러 가야 하는데 큰일이다.’
이 정도면 메이엔 선배를 만나러 갔다가 그때 그 여자-메이란-와 마주칠 것 같았다. 그때 짧게 대화를 한 결과 메이엔 선배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냥 즐겁게 여행이나 하고 싶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분명 어떤 새X가 모종의 수작을 부린 게 틀림없었다.
제론은 허공을 빤히 쳐다보며 입 모양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예? 뭐라고 하신 겁니까?”
“사제님한테 한 말 아니에요.”
“……?”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식피식 웃고 있을 어떤…… 으음, 아무튼 그 사람한테 욕하고 있는 거예요.”
사제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양념 꼬치구이에 집중했다.
제론은 한숨을 내쉬고 침대에 누웠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던 사건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 * *
사흘 뒤 수도를 떠났다. 용병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북쪽으로 이동했다. 말을 타고 천천히 움직였다. 용병들이 제대로 보고만 한다면 당분간 귀찮은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5개의 영지를 거쳐 레바테인 공작령에 도착했다.
수도를 떠난 지 3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도시에 들러 향신료와 생필품을 구입했다. 여관방을 잡고 식사를 하던 도중 상인들의 대화가 제론의 귀를 붙잡았다.
“서대륙은 난리도 아니더군.”
“혹시 폴른 제국을 말하는 겐가?”
“맞아. 듣기로는 황족 중에서 몇 명이 반역을 꾀하다가 들통이 나서 전부 처형을 당했다나.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다네.”
“그게 뭔가? 궁금하니까 빨리 좀 말해보시게.”
“폴른 제국의 삼대 공작 중 한 명인 마이언 공작도 반역을 꾀했다고 하더군.”
“마이언 공작이 뭐가 아쉬워서 반역을 꾀해?”
“나도 그게 어처구니가 없고 이해가 안 됐어. 마이언 공작의 동생이 누군가? 현 황제의 아내인 황비이잖은가. 게다가 황태자를 낳아서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무소불위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거머쥘 텐데…….”
그런 내용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 상인들뿐만이 아니었다. 서대륙에서 온 사람들이나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용병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에르딘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아무래도 그거 맞죠?”
“응. 맞을 거야.”
퓨리온 공작이 ‘악몽의 집행자’와 관련된 조직 및 관계자들을 모조리 쳐내고 있는 것이다. 서대륙에서 중앙대륙으로 넘어온 지 반년이 되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폴른 제국 내부가 곪을 정도로 썩어 있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얼른 도려내지 않으면 전체가 썩어버릴 테니까 말이다. 그때가 되면 늦는다.
“그런데 폴른 제국만 그런 상황이 아닐 거라는 거지.”
놈들의 손이 대륙 전체로 뻗어졌다. 놀랍게도 칼튼 제국의 황태자 계승권 전쟁도 놈들과 연관되어 있었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모두가 4황자를 의심하고 있었는데, 진실은 1황자가 ‘악몽의 집행자’의 중간층에 해당하는 간부였다는 것이다.
4황자의 세력이 갑자기 커진 것도 황제가 1황자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은밀하게 힘을 보탠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뭔가 이상해.’
1황자의 세력은 나머지 황자와 황녀의 세력을 규합시키더라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거대했다. 황제가 도와줬다고 하지만 그 흐름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거셌다.
‘혹시 또 다른 조직이 개입한 건가?’
악의 조직이 있다면 정의의 조직도 있기 마련이다. 아이언하트 공작에게는 들은 바가 전혀 없었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해볼 만한 의심이었다.
“제론 님. 음식 식어요.”
“그래.”
제론은 마저 음식을 먹으며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 * *
시간이 흘러 레바테인 공작령을 지나 국경에 도착했다.
북대륙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서는 대륙을 가로지르는 산맥을 넘어야 했다.
말을 타고 산맥을 오르면 걷는 것보다 몇 배로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국경초소를 통과하자 바로 풀어줬다.
“그런데…… 사제님, 괜찮으시겠어요?”
“그것이 신의 뜻이라면 마땅히 따라야지요.”
사제의 의지는 굳건했으나 에르딘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제가 연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에르딘의 걱정은 당연했다. 조금만 걸어도 잔바람이 부는 날의 사시나무처럼 사제의 팔과 다리가 떨렸다. 배를 타고 움직일 때도 위태로워 보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제론이 처음부터 말을 타고 움직인 것이 그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니까 넘어갔다. 마음속으로는 걱정을 이만저만 하는 게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윽고 산맥을 오르기 시작한 지 30분도 채 흐르지 않아 그 걱정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사제가 숨이 뒤로 넘어가기 직전처럼 헐떡였다.
“헉! 헉!”
“…….”
에르딘이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 50m 뒤에서 따라오는 사제가 보였다. 가만히 서 있어도 못 따라올 것 같았다. 자연스레 앞에서 걷던 제론도 멈춰 섰다.
“제론 님.”
“왜?”
“사제님 괜찮으실까요?”
“자기가 괜찮다잖아.”
심드렁하게 대답한 제론이었지만 행동은 잠시 쉬어갈 것처럼 주변을 물색하고 있었다. 기감을 넓게 퍼트려본 결과 몬스터는 없었지만 산중이라서 언제 어디서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은신의 진법까지 설치하며 사제가 편히 쉴 수 있게 장소를 마련했다.
사제가 벌러덩 드러누운 채 흐리멍덩해진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
“사제님 죽으셨는데요?”
아직 살아 있는 사제를 죽은 사람으로 취급한 에르딘이었다.
* * *
산봉우리 하나를 넘는 데 소요된 시간은 10일이 넘었다. 여기서 포인트는 ‘산봉우리 하나’였다. 아직 넘을 산봉우리가 더 있다는 뜻이었다.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
여행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 아니었다. 산봉우리를 넘고 새로운 산봉우리의 자태를 맞이한 사제가 숨이 반쯤 넘어가며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다행인 건 해가 막 저물기 시작한 무렵이었다는 점이다.
에르딘이 쓰러진 사제를 들쳐 업고 평평한 땅으로 옮겼다.
조용히 뒤따라오던 용병들이 슬그머니 다가와 숙영지를 만드는 것을 도왔다. 국경을 넘어 산봉우리에 오르기 전까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움직였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저희야 받은 돈이 있으니까요.”
에르딘은 용병들의 정체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대주교에게 일행인 사제가 오히려 부패를 저지른 사제라고 은밀하게 추적하라고 의뢰를 받은 용병이라고 했다.
하지만 제론이 얼마나 많은 금화를 줬는지까지는 몰랐다. 그래서 용병들의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해했다.
‘좋은 사람들이네.’
본의 아니게 좋은 인상을 남긴 용병들이었다.
에르딘과 용병들이 숙영지를 마련하는 사이 제론이 사냥을 해왔다. 멧돼지 성체 2마리였다. 한 마리는 용병들한테 먹으라고 던져줬다.
용병들이 양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이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기에 혹시나 사냥을 나섰다가 몬스터와 마주치지 않을까 무서워서 마른 빵만 씹어 먹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고기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땅을 촉촉하게 적시는 한줄기의 비였다.
고기로 배를 채우자 단잠이 쏟아졌다.
은신의 진법 안에서 모두가 안전하게 잠에 빠져들었다.
이튿날 다시 산봉우리를 넘기 시작했다. 몬스터를 마주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제법 많은 종의 몬스터와 싸웠던 제론과 에르딘조차 처음 보는 녀석들과 마주쳤다. 하지만 오우거보다 센 놈들은 없었다.
에르딘의 선에서 전부 정리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용병들은 제론만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에르딘도 자신들이 전부 달려들어도 이기지 못할 만큼 세서 기함을 토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산맥을 완전히 넘었다.
에르딘과 사제, 용병들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친해졌다. 사제의 경우에는 에르딘이나 용병들이 다치면 치료해줬고, 그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친분이 맺어졌다.
“그럼 이만 계속 몰래 뒤따라가겠습니다.”
“조심히 몰래 뒤따라오세요.”
“형제님들께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훈훈한 광경까지 연출하며 그들은 다시 본래의 본분으로 돌아갔다.
산맥을 넘자 중앙대륙의 북부에 위치한 카멜롯 왕국의 국경초소가 나타났다. 그런데 분위기가 무척이나 나빴다. 국경초소를 지키는 병사들의 표정이 긴장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양손을 번쩍 들고 다가가자 병사들이 살짝 안도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한 명씩 차례대로 앞으로 나오십시오.”
“사제님부터 가시죠.”
“알겠습니다.”
사제가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병사들한테 다가갔다.
병사들도 반사적으로 창을 들었지만 사제의 옷을 위아래로 쭉 훑어보더니 정체를 눈치채고는 경계를 한 단계 내렸다.
“태양의 교단 사제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형제님들께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사제는 성호를 그으며 병사들에게 축복을 내렸다.
병사들이 창을 얼른 집어넣고 양손을 모았다.
“사제님을 봐서는 통과시키고 싶지만 요즘 카멜롯 왕국의 상황이 좋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병사들은 제론과 에르딘을 차례대로 다가오게 해서 신분증과 소지품을 샅샅이 수색했다. 아공간 주머니는 손재주로 위치를 계속 바꿔서 발견하지 못했지만 존재를 알아차렸다면 꽤나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것 같았다.
사제가 조심히 병사들한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기에……?”
“혹시 ‘검은 고양이’ 콘드래라는 도둑놈을 아십니까?”
“2년 전, 적색 마탑에 침투해 아티팩트를 훔쳐서 달아났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 일 때문에 한동안 난리였죠. 그런데 그 녀석이 한 달 전에 갑자기 카멜롯 왕궁에 침투해 왕실의 보물을 훔쳐 갔지 뭡니까?”
“아…… 그래서 경계가 강화되었군요.”
“덕분에 저희도 죽을 맛입니다.”
병사들은 한숨을 푹 내쉬고 제론 일행을 통과시켰다.
국경초소와 멀어지자 제론이 말했다.
“서대륙으로 갔다고 하지 않았나?”
“우리처럼 서대륙에 갔다가 다시 넘어왔을지도 모르죠.”
“흠. 뭐 하는 녀석인지 몰라도 얼굴이나 한 번 보면 좋겠다.”
제론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에르딘도 장난처럼 그랬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며칠 뒤.
여관에서 잠을 자던 도중 갑자기 천장에서 검은색 쫄쫄이 타이즈를 입은 녀석이 뚝 떨어졌다.
“…….”
“…….”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