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67)
제 167화
167화
제론과 검은색 쫄쫄이의 시선이 마주쳤다.
“…….”
“…….”
무거운 침묵이 내리깔렸다. 두 사람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시선조차 떨어트리지 않은 채 처음 그대로 자세를 유지했다.
각자 이유가 달랐다.
우선 제론은 검은색 쫄쫄이가 천장에서 떨어지기 전까지 기척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내 이목을 속인 거지?’
제론의 평소 감각은 10m 밖에서 바늘이 떨어지는 기척과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기민하다.
하지만 이조차도 많이 죽여 놓은 상태였다. 마음을 먹고 감각권을 늘린다면 300m 반경까지도 확장이 가능하다.
물론 과도한 정보량을 받아들이며 뇌가 지끈거리며 아파 오기 때문에 잘 걸러야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평소 감각을 10m로 한정 짓는 것은 쓸데없는 정신적인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서였는데, 그것은 잠을 잘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먼 곳에서 엄청난 힘으로 공격을 가하려는 시도를 하는 경우는 예외였다.
감각권이 10m라는 것은 그 안에 모든 감각을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갑자기 거대한 힘이 나타난다면 바로 알아차리는 게 당연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감각권을 줄이는 대신 모든 감각을 집중하고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간단한 함정으로 기문진을 설치했다. 그런데 기문진이 발동하기 전까지도 제론은 검은색 쫄쫄이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티팩트인가?’
입는 것조차 쪽팔릴 것 같은 검은색 쫄쫄이가 사실 대륙에서도 보기 드문 엄청난 아티팩트라면 가능했다.
예를 들어 존재를 감춰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조금씩 시선을 움직여 검은색 쫄쫄이를 훑어 내렸다.
‘여자?’
어디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엄청나게 컸다. 지금까지 본 모든 여자 중에서 단연 1등이었다.
하지만 동성애자라는 오해를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이성에게 큰 관심이 없던 제론은 0.5초만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검은색 쫄쫄이는 아티팩트가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럼 뭐지?’
제론이 어떻게 할까 머리를 데굴데굴 굴리고 있을 무렵, 검은색 쫄쫄이가 가만히 제론을 탐색하는 이유는 천장으로 이동하던 도중 갑자기 무언가가 발목을 잡고 끌어내렸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어.’
끈이나 밧줄 혹은 보이지 않는 물체가 아니었다. 말로 설명하지 못할 기묘한 성질의 무언가-제론이 설치해놓은 기문진이다-가 발목을 잡은 순간 엄청난 힘으로 자신을 끌어당겼다.
그 결과 천장에 구멍이 뚫리며 밑으로 떨어졌다.
잠에서 깬 제론과 시선이 마주쳤다.
본능적으로 그가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법사일지도 몰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흐트러진 옷자락 사이로 단련된 육체가 보였지만 방금 전의 일로 그런 결론으로 도달했다.
문제는 자신의 마법 무효화 아티팩트가 왜 발동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두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마법 무효화 아티팩트가 재충전에 들어갔거나 마법 트랩이 고위 마법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전자면 그냥 운이 없었다고 넘어가도 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큰일이다.
계속되는 추격으로 인해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곧 한계였다. 천운이 뒤따라 추격자들을 뿌리치고 여관에 몰래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허망하게 들켜버렸다.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은 다시 시선이 마주쳤고, 벽과 벽 끝으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서로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해 공격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도망칠까? 제거할까?’
검은색 쫄쫄이는 고심했다.
바로 그때 제론이 옷을 단단하게 고정시키며 묻는다.
“너 그런 옷 입고 다니면 안 쪽팔리냐?”
“닥쳐!”
검은색 쫄쫄이가 발끈해서 외쳤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도망친다는 경우의 수가 사라졌다.
바로 단검을 뽑아서 던지며 손잡이에 박힌 마정석에 각인된 마법을 발동시켰다.
단검이 날아가다가 등불이 점멸한 것처럼 사라졌다가 제론의 코앞에서 다시 나타났다.
“……!”
제론은 다급하게 목을 꺾으며 손으로 단검을 낚아챘다.
동시에 검은색 쫄쫄이가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무릎으로 복부를 가격했다. 제론의 손바닥이 무릎을 막았다. 팔을 휘둘러 팔꿈치로 턱을 때렸다. 그것 역시 피한다.
“……!”
검은색 쫄쫄이는 내심 제론을 마법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마법사가 몸을 단련하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에 금방 진정하고 두 팔과 두 다리를 이용해서 노도怒濤처럼 공격했다.
기상천외한 능력을 가진 아티팩트를 사용해서 제론의 눈을 어지럽혔다.
그러나 검은색 쫄쫄이의 인내심은 금세 바닥이 났다.
30분 동안 제론을 공격했는데 전부 다 막혔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털끝조차 스치지 못했다. 당황하게 만든 것도 처음에 단검을 던졌을 때밖에 없었다.
검은색 쫄쫄이가 악에 받쳐 짜증을 냈다.
“아씨! 왜 한 대도 안 맞냐고!”
“어…… 네가 약해서?”
“이 새X! 죽여 버린다!”
“네가? 나를?”
제론은 고개를 갸웃하며 검지로 검은색 쫄쫄이와 자신을 번갈아 가리켰다.
담담한 말투에는 놀리는 기색이 전혀 섞여 있지 않았다. 그래서 검은색 쫄쫄이는 바짝 약이 올랐다.
“좀 신기한 게 많긴 한데 나한테 안 통해.”
“고작 마법사 따위한테……!”
“누가 마법사야? 내가?”
제론은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무슨 이유로 그런 오해를 했는지 몰라도 아주 큰 착각이었다. 하지만 검은색 쫄쫄이는 너무 억울하고 분한 모양이었는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씨익! 씨익!”
제론은 달아올랐던 흥이 식는 것을 느끼며 녀석이 다시 덤벼들려는 순간 말했다.
“그냥 보내 줄 테니까 가라.”
“뭐?”
“내일 아침 일찍 떠나야 하거든. 그러니까 가라고.”
“…….”
검은색 쫄쫄이는 눈물을 매단 채 눈을 끔뻑거렸다.
제론의 말을 잠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순……순히 보내준다고?”
“어.”
“왜?”
“……?”
“아니! 아니! 그냥 나를 왜 순순히 보내 주는 건가 싶어서…….”
마지막에는 소심한 사람처럼 웅얼거리는 검은색 쫄쫄이였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보내 주지 않을 테니 저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게다가 녀석의 정체도 대충 짐작이 갔다.
‘살짝 의외긴 하지만 말이야.’
제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법 재밌었거든.”
“그건 무슨 뜻이야?”
검은색 쫄쫄이가 순둥이처럼 목소리를 내뱉으며 자세를 풀었다.
싸울 의지가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내 상대는 안 되지만 체술도 제법이었고 신기한 아티팩트도 잔뜩 있어서 재밌었어. 그런 경험을 해주게 한 대가라고 하자.”
“이상하네. 너.”
“이상한 건 너지. 그 검은색 쫄쫄이는 안 쪽팔리냐?”
“너! 죽인다?!”
“해볼 거면 해봐.”
제론이 피식 웃으면서 손가락을 까닥이자 검은색 쫄쫄이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몸 컨디션이 최고라도 어떻게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 난 잔다.”
제론은 다시 침대로 가서 누웠다. 눈을 감고 있자 검은색 쫄쫄이가 왔다 갔다 하며 고민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다시 공격할 것 같지 않아서 가만히 있으니까 녀석이 구석으로 가서 쭈그려 앉는다.
“야.”
“……왜?”
“상처는 치료해야지. 피 냄새가 진동을 하잖아.”
“포션 다 써서 없어. 그냥 내버려 둬도 금방 낫고.”
제론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벌떡 일어나자 검은색 쫄쫄이도 긴장하며 일어선다.
걸어놓은 로브로 가서 안주머니에서 포션 한 병을 꺼냈다. 던져주자 떨떠름한 표정으로 받는다.
“…….”
검은색 쫄쫄이가 뭐라고 웅얼거린다. 입 모양을 보니까 고맙다고 한 것 같았다. 곧 다시 눈을 감자 녀석이 검은색 쫄쫄이를 벗는 소리가 들렸다.
“눈 뜨지 마.”
“볼 것도 없는 몸뚱이를 내가 왜 봐?”
“……!”
어금니를 꽉 무는 소리가 살벌하게 들려왔다.
이윽고 제론은 잠들었다.
“저거 고X인가?”
왠지 잘못 들은 것 같은 마지막 말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 * *
이튿날 아침 눈을 뜬 제론은 구석에서 애벌레처럼 몸을 말고 있는 속옷 차림의 여자를 발견했다.
여자의 머리맡에는 검은색 쫄쫄이가 대충 벗어져 있었다. 포션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다시 저걸 입기 전에 잠든 모양이었다.
“참 불편하게 자네.”
보내 준다고 했는데 가지 않고 있는 것도 이상했다.
“야. 야.”
가까이 가서 툭툭 건드리니까 여자가 눈을 흐리멍덩하게 뜨며 제론을 바라본다.
한참 동안 제론을 바라보던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벽에 등을 붙이고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곧 자신이 속옷 차림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위와 아래를 가렸다.
“볼 것도 없구만 뭘 가려?”
“미친 새X야! 뭐가 볼 게 없어! 내가 얼마나 볼륨…… 으읍!”
“조용히 해.”
제론이 손바닥으로 여자의 입을 가렸다.
화가 잔뜩 났는지 여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소란피우면 내가 아니라 네가 곤란해. 알지?”
“…….”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흥분을 가라앉히지는 못한 것 같아 보였지만 방금 전처럼 막 소리를 지르고 그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입에서 손바닥을 떼자 바로 중요한 급소를 향해 발이 날아온다.
“거긴 내가 곤란해.”
발을 막고 여자의 어깨를 밀쳤다.
쿵-!
여자가 벽에 등을 찧었다. 제법 충격이 컸는지 인상을 찡그린다.
“귀엽다고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내가 귀여워?”
여자가 뺨에 홍조를 띠며 묻는다.
“아니. 미친. 내 주위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정신상태가 이상하지? 지금 상황파악이 안 돼? 네가 귀엽게 생겼다고 칭찬한 게 아니잖아!”
“부끄러워?”
“혹시 정신병자세요? 하루에 수십 번씩 정신이 오락가락하세요?”
“섹시한 거보다 귀여운 걸 좋아하는구나. 약간 거칠 게 하는 걸 좋아하고. 괜찮아. 취향은 존중하니까. 맞춰줄 수 있어.”
“와. 세상에. 맙소사.”
제론이 패닉에 휩싸여 정신이 혼미해진 바로 그때 에르딘이 문을 노크했다.
“제론 님. 들어갈게요.”
“아니. 이따가 들어오…….”
“……는 죄송합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에르딘이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왔다. 속옷 차림의 여자와 그런 여자에게 몸을 반쯤 기대고 있는 제론을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빠르게 사과하고 다시 문을 닫고 나갔다.
“야! 야! 다시 들어와! 뭔가 큰 오해를 한 모양인데! 그런 거 아니야!”
“괜찮아요. 제론 님도 남자셨군요.”
“야, 인마! 야, 이 자식아!”
“나중에 정식으로 소개시켜 주세요!”
에르딘이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고 후다닥 멀어졌다.
제론은 새하얗게 타버린 모습으로 비틀비틀 침대로 갔다.
여자는 얼굴의 홍조를 지우고 검은색 쫄쫄이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작은 주머니에서 커다란 옷이 나왔다.
멍하니 누워 있던 제론이 묻는다.
“아공간 주머니?”
“응. 왜? 탐나?”
“나도 있는데.”
“……?”
제론과 여자가 살짝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아공간 주머니가 흔한 아티팩트인가?”
“그럴 리가! 너 정체가 뭐야?”
“일단 쪽팔리게 검은색 쫄쫄이는 입지 않는 사람이야.”
여자가 눈에 살기를 띠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