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68)
제 168화
168화
“됐다. 정체가 뭐 중요하다고.”
“그렇지. 적어도 검은색 쫄쫄이는 안 입고 다니니까.”
“진짜 죽인다?”
여자가 스산하게 말했지만 살기가 전혀 섞여 있지 않았다.
제론은 여자가 옷을 갈아입자 방을 나갔다. 기척을 죽이고 몰래 접근한 에르딘이 문에 귀를 대고 있다가 문이 열리자 엉덩방아를 찧었다.
“헤헤.”
“헤헤는 무슨 헤헤야.”
“좋은 시간 보내셨어요?”
“좋은 시간을 보내긴 했지.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었거든.”
“아…… 용케 살아계시네요.”
에르딘이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자 제론이 주먹을 올렸다. 그러자 후다닥 일어나서 도망친다. 금방 붙잡혀서 꿀밤을 잔뜩 먹었지만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아까 그 여자분은 진짜 누구예요?”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다니까?”
“진짜였어요?”
“어. 진짜로. 어젯밤에 갑자기 천장에서 뚝 떨어지더니 갑자기 죽이려고 덤볐어.”
도발을 했다는 내용은 제외했다. 진심으로 도발을 한 게 아니었으니까.
에르딘이 떨떠름해하며 방의 문을 쳐다본다. 그냥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왜 살려두셨어요?”
“내가 아무나 다 죽이는 줄 아냐?”
“덤비면 다 죽였잖아요.”
“어…… 그건 사실이라서 반박을 못 하겠다.”
제론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런 제론에게 에르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천장에서 떨어진 뒤에 도발하신 건 아니죠?”
“내가 맨날 사람을 약 올리는 줄 아냐?”
“맞잖아요. 괜히 재수없…….”
에르딘은 말하던 도중 꿀밤을 맞고 데굴데굴 굴렀다.
그사이 옷을 갈아입은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에르딘을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보고 제론에게 다가가 팔짱을 꼈다.
“어디서 팔짱을 껴?”
“부끄러워하기는.”
“환장하겠네. 야, 검은색 쫄쫄이.”
“내 이름은 쟌느야. 검은색 쫄쫄이라고 하지 말고 쟌느라고 불러줘.”
“그래. 쟌느야.”
제론은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깔끔하게 포기했다. 쟌느와 대화가 제대로 통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격언이 이렇게 또 1승을 거뒀다.
“밥 먹자. 맛있는 거 사줘.”
“내가 돈이 어디 있다고? 아니. 정확하게 말할게. 너한테 사줄 돈은 없어.”
“그럼 내가 사줄게.”
“……?”
제론이 멍하니 쟌느를 쳐다봤다. 쟌느가 제론을 질질 끌고 갔다. 그렇게 버려진 에르딘은 뒤늦게 제론이 식당으로 내려간 사실을 깨닫고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쟌느의 옆에 앉아서 죽을상을 하고 있자 측은하게 애도를 표했다.
“좋은 아침입니…….”
아침기도를 올리고 늦게 내려온 사제가 쟌느를 발견하고 잠시 당황했지만 워낙 자연스럽게 섞여 앉아 있자 원래 알고 있던 사이라고 생각하며 맞은편에 앉았다.
“내 이름은 쟌느야. 나이는 24세.”
식사가 끝나갈 때쯤 쟌느가 자기소개를 했다. 놀랍게도 북대륙에 있는 젤타 왕국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지금은 모험가로서 대륙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으며 그전까지는 15개의 던전을 공략했다고 말했다.
에르딘과 사제는 쟌느에 대해 잘 몰라서 고개만 끄덕였지만 제론은 그녀의 진짜 정체를 눈치채서 저 말이 진짜인지 의심했다.
쟌느가 제론의 의심을 알아차리고 귓속말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내가 말한 건 다 진짜야.”
“그럼 콘드래는 뭐냐?”
“내가 부업할 때 쓰는 가명.”
“그럼 검은색 쫄쫄이를 입고 다녀서 검은 고양이라고 불린 거고?”
“아니. 내가 몸놀림이 워낙 재빨라서 그런 별명이 붙은 거야.”
제론은 어젯밤의 사건을 떠올렸다. 확실히 몸놀림이 제법 빠른 편이긴 했다. 멀쩡한 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정상일 때는 더 빠를 것이다.
“몸은 좀 어때?”
쟌느가 눈을 깜빡거리며 쳐다본다.
쌍꺼풀이 길었다.
“어머. 걱정해주는 거야?”
“……됐다. 말을 말자.”
“꽤 좋아졌어. 몸속은 아직 그대로지만 말이야. 솔직히 밥 먹기 조금 힘들어. 목으로 넘길 때마다 토할 거 같아.”
“그럼 수프를 먹지 그랬어?”
“세심한 남자네. 그런 남자 참 좋더라.”
제론이 인상을 팍 구기며 입을 다물자 에르딘이 작게 킥킥 웃었다.
“아무래도 제론 님이 천적을 만나신 거 같은데요?”
“모든 것은 신의 뜻입니다.”
“…….”
에르딘은 사제에게 말을 걸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그래서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뭐가?”
“어디로 갈 거냐고 묻는 거야.”
제론은 멍하니 쟌느를 쳐다봤다. 대화의 흐름이 이상했다.
“같이 가려고?”
“같이 가자고 한 거 아니었어?”
“내가 언제?”
“어젯밤에.”
쟌느가 배시시 웃었다.
긴 쌍꺼풀이 반달로 휜 눈매를 따라 움직인다.
제론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에르딘과 사제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이 여자는 자신의 힘으로 통제가 불가능했다.
두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제론은 두 사람의 도움을 포기하고 쟌느에게 말했다.
“네 마음대로 해. 하지만 우리와 함께 가고 싶다면 한 가지 약속을 좀 해야겠어.”
“뭔데?”
“부업은 당분간 포기해.”
“알겠어. 난 또 매일 밤마다 시중을 들라고 할 줄 알았네.”
어째서인지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쟌느였다.
그렇게 쟌느가 새로운 일행으로 들어왔다. 식사를 마치고 마을을 벗어났다. 쟌느는 제론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더우니까 좀 떨어지지?”
“부끄러워하긴.”
“하아. 말을 말자.”
“사실은 좋았으면서 괜히 틱틱거렸던 거야?”
쟌느는 제론이 뭐라고 하던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대화를 듣고 있다 보니 그냥 자기 마음대로 오해하고 곡해해서 생각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냥 저분도 이상한 사람 같아요.”
“제가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닌지라…….”
사제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하자 에르딘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론과 쟌느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언뜻 보기에는 팔짱을 낀 모습이 무척이나 다정해 보였다. 하지만 어젯밤에 죽이려고 덤벼들었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기분이 이상했다.
‘왜 우리랑 함께 움직이는 거지?’
사실 에르딘은 쟌느를 믿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았다.
언제 봤다고 그녀를 신뢰한단 말인가?
제론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지만 여러 가지 의미로 정체가 의심스러웠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무엇을 하는지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냥 따라왔다.
‘혹시 몰라서 뒷조사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긴 했지만.’
좋은 사람들-용병들에게 조사를 부탁했다.
쟌느가 밝힌 정체가 사실이라면 금방 파악될 것이다.
‘진짜여도 문제라는 거지.’
언뜻 들려온 검은색 쫄쫄이도 신경 쓰였다. 하지만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제론과 관계된 일 중에 정상적인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중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면 된다. 제론과 어울리며 깨달은 사실이었다.
* * *
며칠 뒤 용병들이 쟌느에 대해 조사해왔다.
“진짜였네.”
거짓말이 한 숟가락도 섞여 있지 않았다.
정말로 젤타 왕국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나이도 24세가 맞았다. 15개의 던전을 공략한 유명인이기도 했다. 그런데 행적 중에서 이상한 것이 발견되었다.
던전을 공략하면 꼭 몇 달 동안 잠적했다. 그게 왜 이상하냐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던전 부근에서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간 기록도 없다. 집 근처에서 발견되지도 않았다.
잠적을 한 그사이에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저희야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니까요.”
“그래도 의뢰랑 별개의 일이잖아요.”
에르딘은 주머니에서 금화를 한 움큼 꺼내서 용병들에게 건넸다. 용병들이 화색을 띠었다. 세보지 않아도 언뜻 금화의 양이 짐작되었다.
‘20골드 이상이다!’
고작 유명인 한 명의 뒷조사를 한 것치고 지나치게 많은 수고비였다. 하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돈은 항상 옳았으니까.
“또 맡기실 일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알겠어요.”
에르딘은 용병들과 헤어지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제론과 쟌느가 가볍게 술 한 잔을 하고 있었다. 사제는 옆에서 안주를 집어 먹고 있었다.
“저 빼놓고 먹고 있었어요?”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제론의 기운이 쭉쭉 빨려 나간 목소리에 에르딘은 대충이나마 상황을 파악했다.
‘묘하게 어울리네.’
제론을 이만큼 궁지로 몰아넣은 사람은 처음이다.
자기주관이 뚜렷하다고 해야 할지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헷갈리긴 했지만 생소하면서도 나름 유쾌한 광경이었다.
“그래서 아버님은 언제 뵈러 갈까?”
“미친 소리 하지 말랬지?”
이번에는 정말로 농담이었는지 쟌느가 배시시 웃고 만다. 그래도 저런 거친 말을 듣고도 기 한 번 죽지 않는 쟌느가 대단하다고 생각한 에르딘이었다.
‘묘하게 어울린다니까.’
에르딘은 쟌느를 여전히 신뢰하지 않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지극정성으로 잘 대하기로 결심했다.
* * *
카멜롯 왕국의 경계는 점점 더 심해져 갔다.
검은 고양이 ‘콘드래’가 왕실의 보물을 훔쳐 갔지만 녀석을 체포하기는커녕 꼬리조차 잡지 못했다.
그로 인해 신원이 불확실한 사람들은 전부 끌려가서 조사를 받았고, 제론 일행은 모두 신분이 확실해서 여유롭게 카멜롯 왕국의 국경을 넘어갔다.
카멜롯 왕국으로서는 억울해서 통탄을 할 일이었다.
“산을 타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어, 어…… 모든 것은 신의 뜻…….”
“사제님, 이거 한 번 써보실래요?”
쟌느가 아티팩트 팔찌를 꺼내 사제의 팔목에 걸어줬다.
사제는 쟌느의 접촉에 당황했지만 팔찌를 착용하자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껴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이 반지도 껴보세요.”
“가, 감사합니다.”
“잠시 빌려드리는 거니까 꼭 돌려주셔야 해요?”
“물론입니다.”
손가락에 반지를 끼자 콘X로스트를 먹은 것처럼 몸에서 호랑이 기운이 솟아났다.
“아티팩트가 몇 개나 있는 거야?”
“정확하게 54개 있어.”
“……?”
“15개의 던전을 공략했다고 했잖아. 한 던전에서 5개씩만 나와도 75개야. 필요 없는 건 팔고 내가 쓸 것만 남겨뒀어.”
“몇 개만 주라.”
“혼수라고 생각하면 돼?”
“…….”
제론은 괜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산을 쭉쭉 타고 넘었다.
쟌느가 사제에게 빌려준 아티팩트에는 몸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마법과 체력회복을 촉진시켜 주는 마법이 인챈트 되어 있었다.
물론 후폭풍이 심해서 잠들 때 사제가 끙끙 앓는 소리를 멈추지 못했지만, 신성 마법을 자기 자신에게 걸어서 몸 상태를 회복하는 기가 막힌 행동을 실행했다.
“그런데 처음에 만났을 때 던진 단검은 뭐야?”
“블링크 대거? 단검을 던지면 최소 1m에서 최대 5m까지 블링크해서 나타나. 그래서 처음에 공격을 당하면 많이 당황하곤 해.”
“신기하네. 그런데 왜 아티팩트의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 거야?”
“마나가 외부로 흘러나가는 것을 차단해주는 아티팩트를 착용하고 있어서 그래.”
제론과 쟌느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북대륙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왕국인 아르센 왕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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