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69)
제 169화
169화
아르센 왕국의 국경을 넘어간 첫날 밤.
제론은 에르딘과 사제가 잠들자 침낭 속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쟌느를 불러 맞은편에 앉힌 뒤 물었다.
“이제 솔직하게 말해봐.”
“뭘?”
“너 우리를 왜 따라오는 거야?”
쟌느가 물끄러미 제론을 쳐다봤다.
마주치는 시선.
긴 쌍꺼풀을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인다.
“흐응.”
콧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쟌느가 제론 일행과 함께 아르센 왕국으로 온 여정은 짧지 않았다. 큰 사건이나 역경, 고난을 헤쳐나간 건 아니라서 끈끈한 전우애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동료로서 인정받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에르딘과 사제는 그녀를 예전보다 편하게 대했다. 하지만 제론에게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섭섭한데?”
“섭섭해할 일은 아니지. 콘드래 씨.”
“그렇게 부르기야? 나 너희랑 함께 다니면서 부업에는 손도 안 댔는데?”
“내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면 콘드래라고 안 부를게.”
“흐응. 아쉬운 건 내 쪽이니까 그러지 뭐.”
“…….”
“특별한 이유는 없어. ……아니. 없지는 않으려나?”
쟌느는 잠시 제론을 빤히 쳐다보더니 말을 바꿨다. 남자로서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완전히 느끼지 못한다면 거짓말이지만 그것보다는 조금 더 순수한 의미로 제론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지금까지 싸워본 사람들 중에서 제일 강해.’
호승심이 아니었다.
바로 위에서 말했지만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솔직하게 대답하라고 해서 말하지만…… 너한테 관심이 있어.”
“어…… 혹시 그 관심이 어떤 녀석처럼 나를 절벽에서 밀어버리려는 건 아니지?”
“……?”
쟌느가 고개를 갸웃하자 제론은 헛기침을 하며 못 들은 걸로 해달라고 말했다. ‘어떤 녀석’의 정체는 바로 에르딘이었다.
녀석은 바짝 약이 오를 때마다 절벽에서 밀어버리겠다는 둥 등을 창으로 찔러버리겠다는 둥 말했다.
그 사실이 머릿속에 떠오른 제론은 제 발을 절고 말았다.
“처음에는 죽이고 싶다는 관심이 맞긴 했는데…….”
“역시 맞잖아!”
“처음에는 그랬다는 거지. 처음에만. ……하여간 분위기가 맨날 이랬다가 저랬다가 막 왔다 갔다 하니까 어떤 남자인지 알기 힘들잖아. 그래서 재미있긴 하지만 말이야.”
“맨날 어떤 녀석이 죽인다. 절벽으로 밀어버린다. 이래서 말이야.”
제론은 쟌느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넘어갔다.
순수하게 ‘재미있는 사람’이라며 평가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타닥-!
쟌느의 눈이 가늘게 뜨여졌지만 타이밍 좋게 모닥불에서 불똥이 크게 튀었고, 제론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보다가 그녀의 가늘어진 눈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튼, 다른 목적은 없다는 거지?”
“어. 다른 목적 같은 거 없어. 마침 나도 쉴 때가 되었고…… 사실 도망치던 것도 지겨워서 몇 년 정도 쉴까 고민도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네가 부업을 포기하라고 하길래 그러려고.”
“부업 다시 해도 돼.”
제론이 담담하게 말하자 쟌느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너, 도둑질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우리한테 피해만 안 주면 상관없어.”
제론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쟌느의 시선이 살짝 이상한 생명체를 본 것처럼 변했다.
“카멜롯 왕국에서는 조심해야 했으니까 하지 말랬던 거고.”
“그런 이유로 하지 말라고 했던 거였어? 싫어서가 아니라?”
“어.”
“너 많이 이상한 거 알지?”
“네가 더 이상해. 검은색 쫄쫄이 입고 다니는 거 안 쪽팔려?”
쟌느는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왜일까 생각해봐도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아티팩트가 탐나서 도둑질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 아, 이유가 어찌 되었건 그걸로 도둑질이 합리화된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나도 합리화할 생각은 없어. 도둑질은 도둑질이니까.”
“어쨌건 정식으로 우리 일행이 된 걸 축하해.”
제론이 손을 내밀었다. 쟌느가 그 손을 잡았다.
“그럼 오늘 밤 뜨겁게 불태울까?”
“아니.”
쟌느가 제론의 손을 잡아당겼지만 끌려오지 않았다.
아쉬움의 혀를 찼다.
“하여간 X자 새끼도 아니고…….”
“보면 깜짝 놀랄걸?”
“아래에 괴물이라도 달려 있어? 내 게 커서 그런지 그것도 큰 게 좋더라.”
“…….”
제론은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입을 다물었다.
“쯧.”
쟌느가 아쉬워하며 한 번 더 혀를 찼다.
* * *
카멜롯 왕국을 지나 아르센 왕국의 국경을 넘을 때까지도 여행은 평화로웠다.
몬스터나 도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었다. 에르딘이라는 치트키를 써서 전부 해결했을 뿐이었다.
덕분에 녀석의 창술이 점점 완성에 가까워졌고 말이다.
“……라고 했잖아요!”
“아서라. 그 정도로는 나한테 스치지도 못한다.”
제론은 비웃어주고 검을 집어넣었다.
두 사람의 대련을 구경하던 쟌느가 끝난 것 같자 묻는다.
“그 발기술은 뭐야? 엄청 신기해 보여.”
“이거 집안의 비전기술이야.”
“아, 맞다. 귀족 집안이라고 했지?”
쟌느의 눈이 먹잇감을 발견한 사자처럼 변한다.
“키킥.”
제론은 얼른 자리를 떠났다. 뒤에 남겨진 에르딘의 웃음소리가 심히 거슬렸지만 쟌느한테서 도망치는 게 우선이었다. 자고로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늦지 않는다고 하였다.
신께 기도를 드리고 있는 사제한테 다가갔다.
잠시 후 눈을 뜬 사제가 말했다.
“좋으신 분 같습니다.”
“제가 좀 좋은 사람이긴 해요.”
“네? 저는 쟌느 자매님을 말한 겁니다만…….”
제론은 머쓱해져서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곧 밤이 깊어졌다.
사제가 불침번 초번을 섰다.
평소와 달리 불침번을 서는 이유는 중앙대륙과 북대륙의 경계지역은 일개 국가나 어느 세력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무법지대였기 때문이다.
경계지역의 치안은 나빴다.
정말로 운이 없는 경우 몬스터의 대이동에 휘말려 그 자리에서 짓밟혀 죽기도 하고, 도적 떼의 습격을 받아 가진 것을 갈취당하고 시체로 발견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경계지역이 이렇게 변한 이유는 간단했다.
중앙대륙과 북대륙을 가르는 경계이자 동시에 다섯 왕국의 영토가 절묘하게 맞닿아 있어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선 대국적 전쟁을 벌여야 했다.
하지만 전쟁을 감수하면서까지 차지해야 할 만한 가치를 지니지 않았기에 암묵적으로 합의를 했고, 그렇게 중립지대이자 무법지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제론이 은신의 진법을 설치했다지만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불침번을 돌아가며 서기로 한 것이었다.
“에르딘 형제님.”
사제가 초번 시간이 지나자 에르딘을 깨웠다.
에르딘이 눈을 번쩍 뜨자 깜짝 놀란 사제가 뒤로 자빠지는 작은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일도 없이 평화로운 아침이 밝았다.
“그래도 방심하지 마.”
“그래야죠.”
몰래(?) 따라오고 있는 용병들이 다른 의뢰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소식을 알려왔다.
그런데 때마침 경계지역에 있으니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몬스터나 도적에게 공격을 받은 것으로 쉬쉬 넘겨도 이상하지 않았다.
“다 슥- 해도 되는 거지?”
쟌느가 제론처럼 히죽 웃으며 손날로 목을 그으며 묻는다.
그녀도 사제의 사정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어. 싹 다 묻어버려도 되니까 누가 공격해온다면 마음껏 날뛰어도 돼.”
“간만에 몸 좀 풀겠네.”
“너무 날뛰다가 다치지 말고.”
“어머. 걱정해주는 거야? 역시 자상한 남자라니까.”
“저리 가!”
쟌느가 그윽한 눈길로 다가가자 제론이 기겁하며 도망쳤다.
에르딘이 훈훈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어울린다니까.”
“모든 것은 당신의 뜻대로.”
사제는 이미 익숙해졌는지 담담하게 신을 불렀다.
누군가 제론 일행을 보았다면 제정신인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말할 광경이었다.
용병들의 소식통은 정확했다.
경계지역에 들어선 지 세 번째 날 밤, 은신의 진법을 설치한 숙영지 옆으로 수십 명의 무장한 괴한들이 지나갔다.
그때 불침번을 서고 있던 사람은 에르딘이었다.
기척을 죽인 채 지나가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다음 불침번인 쟌느를 깨우며 말하자 그녀가 무척이나 좋아했다.
“다시 돌아오면 내가 다 처리할게.”
“괜찮으시겠어요?”
“나 이래 보여도 꽤 세.”
“그건 아는데…….”
에르딘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참았다. 제론도 불침번을 설 때는 자의로 판단해서 행동하라고 했다. 그녀가 일행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움직일 것 같지 않았다.
‘알아서 잘 하겠지.’
입맛을 다신 에르딘은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곤 불침번 말번인 쟌느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 일도 없었네.’
에르딘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바로 짐작해냈다.
평화로운 여행길이 계속되는 것 같지만 은신의 진법이 무적 치트키는 아니었다. 일행의 모습은 감춰줬지만 온도의 변화와 냄새까지는 막아주지 못했다.
여러 차례 제론 일행을 놓친 괴한들은 독이 바짝 올랐고, 아티팩트 혹은 무언가의 방법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다가 들키겠는데?”
제론은 불침번을 서다가 사방으로 흩어져서 보이지 않는 일행의 숙영지를 찾아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괴한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귀찮은 건 사양이지.”
시간을 확인하니 교대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다. 괴한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멀리 치웠다. 다음 불침번인 쟌느가 제론의 인수인계를 받고 매우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깨우지.”
“앞으로도 계속 올 거야. 걱정하지 마.”
“역시 세심한 남자.”
“난 잔다.”
제론 일행을 노리는 괴한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졌다.
경계지역에서 유명한 도적 떼를 고용해서 습격하기도 했다.
사제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사제님,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
“맞아요. 사제님이 무슨 잘못이 있어요? 그 대주교 새X가 문제지. 그냥 확 거기를 잘라버려야 하는데.”
“그건 좀…… 차라리 멱을 따버리시죠.”
쟌느의 과격한 언어 구사에 에르딘이 살짝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남자라면 누구라도 겁먹지 않을 수가 없는 말이었다.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제론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여기서 내가 제일 정상이군.”
“뭐래요?”
“누가 제일 정상이라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마리의 맹견이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 * *
경계지역을 통과하고 북대륙에 도착하자 쟌느가 앞장섰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안내할게.”
아이오닉 교국까지는 멀지 않았다. 가까운 도시에 들러 말 4필을 사서 타고 갔다. 흔적이 남겠지만 일부러 그런 것이었다.
“깨작깨작 주변을 맴도는 것보다 이게 낫지.”
“역시 화끈해.”
제론의 말에 쟌느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사제도 될 대로 되라는 식인지 신을 찾을 뿐이었다.
“무모한 게 아닐까요?”
에르딘이 작은 목소리로 딴죽을 걸었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다.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다들 미쳤어. 내가 제일 정상이야. 아무리 봐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