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70)
제 170화
170화
제론은 사실 정체불명의 괴한들이나 도적 떼의 공격을 마지막으로 경계지역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몇 차례의 실패를 교훈 삼아 대주교가 일행을 조금이나마 궁지로 몰아넣을 어떤 계책을 세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대주교는 엄청난 의뢰비를 쏟아 한 왕국의 귀족을 포섭해서 제론 일행을 죽일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것을 저지한 사람이 놀랍게도 흑마법사의 조직 ‘악몽의 집행자’ 중에서 메이란이었다.
“서대륙의 일을 뒷수습하기 바빠.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 없어.”
“아론 다이트라는 용병이 그렇게까지 신경 쓸 만큼 위험하다는 건가?”
듣기 좋은 로우 톤의 목소리가 묻자 메이란은 머릿속으로 제론을 떠올렸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깊게 파고들어 피가 흘러내리자 그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네가 준비를 제대로 하고 싸운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메이란은 잠시 머릿속으로 상상해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랑은 상성이 안 맞아서 제대로 판단이 안 돼.”
“흐음. 그 정도라면 그자의 강함이 확실하다는 거군.”
“하……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어. 단순히 강하다는 게 끝이 아니야!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어!”
말이 길어질수록 메이란의 목소리가 커졌다.
듣기 좋은 로우 톤의 목소리는 그런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건 차차 알아보면 돼. 흥분을 가라앉혀. 시작을 앞둔 계획이 많아. 흥분해서 계획이 틀어지면 안 돼.”
“후우. 확실한 것만 말해서…… 내가 공간 왜곡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내 몸이 반으로 쪼개져서 여기에 도착했을 거라는 거야.”
메이란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그때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다. 짙은 죽음의 향기가 뇌에 각인된 것이다. 그래서 메이란은 스스로에게 큰 분노를 느꼈다.
‘젠장.’
메이란은 손끝의 떨림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를 슬쩍 바라본 허스키한 목소리가 새로운 주제를 언급했다.
“성녀의 건은 어떻게 됐지?”
* * *
북대륙 종단은 평화로웠다.
너무나도 평화로워서 그 에르딘조차 지루해 죽어갈 정도였다.
“제론 님. 어떻게 된 거예요?”
“나도 이건 좀…… 예상외야.”
제론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인기척이라고는 일행을 제외하고 느껴지지 않았다. 보이는 것도 없었다.
가끔 주변에서 몬스터가 알짱거리긴 했지만 쟌느와 에르딘 중에서 먼저 기척을 감지한 사람이 가서 해결하고 돌아왔다.
자연스럽게 무슨 일이 벌어지기를 바라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도 이럴 때 푹 쉬자고.”
“하긴요. 이럴 때 쉬지 언제 또 쉬겠어요?”
에르딘이 심드렁하게 말하며 말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녀석의 표정은 반쯤 넋이 나가있 었다.
쟌느도 마찬가지였다.
‘어지간히 지루하긴 하나 보구나.’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그간의 여행이 말도 안 될 정도로 고됐다. 하지만 쟌느는 던전 탐험가이자 도둑이었고, 에르딘은 자신을 따라다니며 일정이 빡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스릴에 중독되어서 평화로운 일상이 적응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유일하게 정상이었던 사제도 최근에는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북대륙으로 넘어오며 아이오닉 교국과 점점 가까워질수록 마음의 짐을 점점 무겁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사제와 함께 북대륙까지 동행하게 된 이유는 그를 구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다.
그 책임을 에르딘과 공유하게 된 것이 미안해서 말을 꺼낸 적이 있었는데, 오히려 잘했다며 자신 역시 그런 일을 발견하거나 알게 되었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거라며 말했다.
그러면서 바후르의 일과 퉁쳐서 없던 것으로 딜을 넣기에 ‘그건 좀…….’으로 마무리 지었다.
쟌느는 그것과 상관없이 일행으로 합류했으니 말도 꺼내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말을 꺼내면 조금 위험해질 거 같아서 안 한 게 맞지만 말이야.’
제론이 그런 생각을 하며 쟌느에게 고개를 돌리자 시선이 마주쳤다. 긴 쌍꺼풀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자 조심스럽게 눈동자를 돌렸다. 역시 위험한 여자다.
“아이오닉 교국으로 가기 전에 잠시 들를 곳이 있어.”
본래 계획은 아이오닉 교국으로 직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쟌느에게 북대륙에 대한 설명을 듣던 도중 아이오닉 교국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숲의 이름이 들린 순간 마음이 바뀌었다.
“어디요?”
“몽환의 숲.”
“거기 조금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에르딘이 살짝 걱정하는 표정으로 물어봤다.
“딱히 위험한 건 아니고…… 그 숲에 들어갔던 몇몇 사람들이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다고 들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게 그거잖아요!”
“귀 아프게 왜 소리를 쳐!”
에르딘이 목소리를 높이자 제론도 버럭 외쳤다.
다 큰 남자들이 유치하게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제와 쟌느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아무튼 간에 위험한 건 맞잖아요?”
“너 정도 실력이면 위험하겠지.”
“와! 진짜 언젠간 꼭 절벽에서 밀어버릴 거야.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비웃을 거야.”
에르딘은 진심으로 살기를 담아 말했다.
제론이 그런 에르딘을 비웃었다.
“야, 근데 내가 명심결 알려줬잖아. 그거 있으면 괜찮을 건데 왜 겁먹어?”
“혹시 모르잖아요.”
“하여간 겁쟁이. 근성은 어디 안 가는구나.”
“겁쟁이가 아니라 조심성이 많고 신중한 거죠.”
“뉘예. 뉘예. 조심성이 많고 신중한 겁쟁이 에르딘 씨.”
“자고 있을 때 조심해요. 명치에 확 창을 찔러버릴 테니까. 알겠죠?”
제론과 에르딘이 끝까지 투닥거렸다.
* * *
그로부터 나흘 뒤 도시로 들어간 제론 일행은 야만족의 대대적인 침공 소식에 북대륙이 시끌벅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야만족의 침략이 시작된 게 2년 전이었나?”
“응. 지금은 크게 말이 돌지만 금방 가라앉을 거야. 북대륙에서는 제법 흔하게 있는 일이거든.”
쟌느의 말을 듣고 제론은 북한의 도발을 떠올렸다. 인명피해가 엄청나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있지만 그만큼 야만족의 침공이 잦다는 것이리라.
“야만의 땅은 어떤 곳이야? 대충 듣기는 했지만 자세히는 몰라.”
“대충 들은 게 아마 전부일 거야. 사실 대륙에 알려진 사실도 아주 오래전에 야만의 땅을 다녀온 학자의 일지에 기록된 내용이 전부라서 정확하지가 않아.”
“그럼 지금은 그때와 다를 수도 있다는 건가?”
“그렇지. 정확한 건 야만의 땅에서 살고 있는 야만족이 아니면 아무도 몰라. 야만의 땅을 탐험하는 건 공식적으로 허가도 나지 않고.”
“왜?”
“아무래도 여러 가지 위험 때문이 아닐까? 가서 죽어도 문제고…… 붙잡혀서 대륙의 정세나 설산에서 경계가 취약한 곳을 들키게 되면 큰일 날 테니까. 그래서 가끔씩 몰래 설산을 넘어가려는 모험가들이 붙잡히면 그 자리에서 바로 목을 쳐서 죽인다고 해.”
“보안 때문이라는 거군.”
“그리고…… 이건 나도 소문으로 듣기만 한 거라서 확실하지는 않는데, 야만족이 특이한 주술을 사용한다는 말이 있어.”
“특이한 주술?”
“짐승의 혼이나 고대의 존재를 몸에 강림시켜서 싸운다고 하더라고.”
“오? 그건 좀 신기하네.”
제론은 호기심이 동했다. 약간 무당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는 몰래 넘어가는 것도 힘들 것 같아서 금방 관심을 껐다.
‘나중에 잠잠해지면 그때 다시 생각해봐야지.’
북대륙에서 이런저런 일을 다 하고 나면 1년은 흘러가 있을 것이다.
제론 일행은 도시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밤새 쟌느가 제론의 방을 침입하려다가 실패한 일을 제외하면 지극히 평화로웠다. 이튿날 도시를 떠났고 용병들과의 계약도 끝났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어디 다치지 마시고요.”
에르딘이 용병들을 한 명씩 안아줬다. 사제가 옆에서 신의 축복을 내렸다.
물주인 제론은 용병들이 입을 쩌억- 벌릴 만큼 많은 금화를 지급했다.
“어억!”
“대, 대장! 지금 이거 실화지?”
“오…… 오백 골드!”
돌아가면서 맛있는 것도 사 먹으라고 10골드를 더 얹어줬다.
용병들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일이 생기면 언제든 저희 ‘제트’ 용병단를 찾아주십시오!”
“불러만 주신다면 단숨에 달려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쟌느는 멀뚱히 지켜만 봤다.
용병들이 돌아가고 다시 부지런히 움직인 결과 ‘몽환의 숲’에 도착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숲이었다. 하지만 제론에게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되었다.
마법이 아니었다.
“너랑 사제님은 못 들어가시겠는데?”
제론이 잠시 가늠해보고는 말했다.
에르딘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지 멍하니 서 있었다.
“나랑 쟌느랑 둘이서…… 아니다. 혼자 다녀올게. 쟌느도 에르딘과 같이 있어.”
“에이. 좋다 말았네.”
쟌느가 입술을 핥으며 아쉬워하자 제론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역시나 위험한 여자다.
일행에게는 3시간이 지나도 자신이 나오지 않으면 마을로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비상식량의 양을 체크하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몽환의 숲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제론 일행이 누군가를 쳐다봤다.
“어?”
“……고양이 수인?”
제론과 에르딘이 무기를 뽑았다.
고양이 수인에 대한 기억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침묵의 안개 숲’에서 갑자기 기습을 해온 녀석이다. 털의 색깔이 검은색이 아니라 흰색과 노란색으로 얼룩덜룩하다는 차이가 있었지만 전례가 있다 보니 조심해야 했다.
쟌느도 눈치껏 손에 단검을 끼워 넣고 날릴 준비를 마쳤다.
사제가 조심히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고양이 수인이 말했다.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다옹.”
“……?”
“나를 따라오라옹.”
“…….”
제론 일행은 당황해서 서로를 쳐다봤다. 고양이 수인의 따라오라고 한 말이나 ‘주인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본 고양이 수인은 말끝에 ‘옹’이 안 붙었는데?”
“게다가 옷도 안 입었어요.”
“목소리가 걸걸하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제론 일행이 가만히 서서 대화만 나누자 고양이 수인은 다시 재촉했다.
“얼른 나를 따라오라옹!”
“설마 함정은 아니죠?”
에르딘이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고양이 수인은 팔의 털을 그루밍하고 대답했다.
“그런 게 통하지 않을 괴물이 있다옹!”
“제론 님을 말하는 거 같은데요?”
“시간이 없다옹! 빨리옹!”
“일단 따라가자. 그런데 언제 봤다고 반말이세요? 기분 나쁘게.”
“미안하다옹.”
제론 일행은 순순히 사과하는 고양이 수인을 따라갔다.
* * *
제론 일행이 사라진 뒤 땅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검은 그림자는 몽환의 숲을 한참 주시하더니 다시 땅속으로 들어갔다.
* * *
“어서 와. 오랜만이지? 다른 분들도 어서 오세요.”
뾰족한 마녀 모자를 쓴 여자가 의자에 앉아 제론 일행을 맞이했다.
제론은 여자를 잠시 쳐다보더니 말했다.
“메이엔 선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