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71)
제 171화
171화
“응. 맞아.”
제론이 여자를 훑어봤다. 나이가 들며 젖살이 빠지고 성숙해진 모습이다. 아카데미 학생 시절의 얼굴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그녀가 메이엔이라는 사실을 믿게끔 만들어주는 정도에 불과했다.
내공을 주변으로 흘려보내 마법이나 다른 종류의 기운이 있는지 확인했다. 몽환의 숲에서 느껴지는 기운 말고는 없다.
다른 누군가가 메이엔의 모습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제 점괘 기억해요?”
“응. 기억할 수밖에 없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확실히 메이엔 선배가 맞네요.”
메이엔이 활짝 웃는다. 그 미소도 얼마 가지 않아 바뀌었다.
의아한 듯 제론이 한 말 때문이었다.
“그런데 선배가 저한테 말을 놓았었나요?”
“아?”
“저희가 그 정도로 친분이 깊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등 뒤에서 에르딘이 ‘와! 진짜 못 됐다.’라고 중얼거리고, 쟌느가 ‘어머! 박력 있어.’라며 좋아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못 들은 척 콧잔등을 씰룩였다.
“그, 그게…….”
메이엔은 당황했는지 입을 벌린 채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쩔 줄 몰라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린다. 곧 일어나 허리를 숙이며 사과한다.
“미안해요! 오랜만에 숲의 주민이 아닌 바깥사람을 만나서 그런지 그만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어요. 정말로 미안해요.”
“아아. 괜찮아요.”
제론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빈 의자로 가서 앉는다.
다리를 꼬는 여유로운 모습이 흡사 그를 손님이 아니라 주인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메이엔에게 손짓으로 앉으라고 권하자 그녀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다. 제론 일행도 자연스럽게 각자 포지션대로 앉거나 섰다.
“우리가 온 건 어떻게 알았어요?”
“그 배지로 알았어요.”
“배지? 아, 예전에 준 그거.”
“맞아요. 통행증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메이엔은 고양이 수인에게 다과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알겠다옹.”
“고마워요. 치즈.”
고양이 수인-치즈가 꼬리를 천천히 크게 흔든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잠시 뚱한 표정을 지은 제론이 네로에게 말한다.
“넌 왜 그러냐?”
[……?]네로가 표정으로 갑자기 웬 지랄이냐고 묻는다. 곧 관심이 사라져서 입을 크게 벌려 하품을 하곤 다시 잠만 잔다.
“어둠의 정령께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으시네요.”
“네로가 보여요?”
네로는 자신이 보인다는 말에 꼬리를 살짝 움직였다.
메이엔이 움직이는 꼬리를 보며 말한다.
“네. 제 눈이 조금 특이하거든요. 가끔씩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 보이기도 하지만요.”
“귀신 같은 거?”
“글쎄요?”
“으.”
에르딘이 몸을 부르르 떨자 메이엔이 녀석한테로 시선을 돌린다. 곧 눈동자를 조금 더 뒤로 옮긴다. 허공을 바라보며 그녀가 고개를 살짝 젓는다. 곤란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러지 마세요. 안 그래도 돼요.”
“제, 제 뒤에 뭐가 있나요?”
에르딘은 말을 더듬거리며 물었다. 메이엔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는다.
멈칫멈칫 에르딘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빼곡히 심어진 나무만 보였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호, 혹시 귀신이……?”
“후후.”
메이엔이 웃으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에르딘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안색까지 창백해지려고 하자 그녀가 말한다.
“장난이에요. 저 귀신은 못 봐요. 제가 볼 수 있는 건 정령이나 영력을 지닌 존재에 한정되어있어요.”
“진……짜죠?”
“정말이에요.”
짧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치즈가 찻주전자와 잔, 그리고 과자를 잔뜩 들고 돌아왔다.
메이엔이 손을 크게 젓자 탁자가 뿅! 하고 나타났다.
쟌느가 신기해하며 물었다.
“지금 그건 어떻게 한 거예요?”
“저장된 입력값을 불러온 거예요.”
“……?”
“이곳에 오랜 시간 존재해왔던 탁자의 기록을 읽고…….”
“……?”
메이엔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삼켰다. 다들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냥 마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하자 모두가 ‘아!’라고 탄성을 지른다.
“마법이란 참 신기하네요.”
“마법사 영입을 고려해보는 게 어때?”
“체력이 약해서 안 돼.”
차례대로 에르딘, 쟌느, 제론이었다.
메이엔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법이 아니라고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이해시킬 자신이 없어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어차피 숲이 아니면 사용하지 못하기도 하고.’
벌써부터 삶의 진리를 깨달아버린 그녀였다.
과자를 집어 든 그녀가 제론에게 말했다.
“사실 지금보다는 일찍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요?”
“메이란…… 그러니까 제 언니를 만났으니까요.”
“역시 선배의 가족이 맞았군요.”
분위기는 달랐지만 얼굴과 목소리가 닮았다. 그래서 심증만 갖고 있었는데 확신으로 굳혀졌다. 메이엔은 잠깐 고민하는 기색을 비추더니 말했다.
“정확한 상황설명을 위해 먼저 얘기하자면…… 저는 마녀예요. 영원의 숲…… 그러니까 외부에서는 몽환의 숲이라고 부르는 이곳을 지배하는 일족의 정통 후계자이죠.”
“……!”
제론을 제외한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마녀는 베일에 싸인 신비한 존재였다.
혹자는 악마술사와 동일하게 악마와 계약하고 그 힘을 사용하는 존재라고 주장하지만, 명백하게 말해 계약하는 존재와 사용하는 힘의 종류가 달랐다.
“궁금한 게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의문은 나중에 푸는 걸로 하고 먼저 제 이야기를 할게요.”
“…….”
메이엔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본래대로라면 제가 아닌 언니가 후계자가 됐어야 했어요. 모든 면에서 언니가 나았거든요. 계약을 한 정령도, 힘을 다루는 능력도…… 하지만 언니는 마음속으로 거대한 어둠을 품고 있었어요.”
“어떤 어둠을 품고 있었던 거죠?”
“이런 힘을 갖고도 왜 숲에서만 살아가야 하냐는 것이었어요. 단순히 자유를 갈망하고 원했던 것이라면 괜찮았어요. 모든 일족이 그것을 원하고 바랐으니까요. 일족의 숙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언니는 그 이상을 추구했어요.”
메이엔은 잠시 차로 목을 축였다.
마녀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사랑을 나누고 배 속에서 품어서 낳지 않는다.
그런 방법으로 아이를 낳는 것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마녀로서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마녀의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
마녀는 일정한 때에 이르면 손목에 상처가 생기며 피가 흘러나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적게는 1명. 많게는 2명.
여기까지 들으면 마녀가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일정한 숫자를 채우면 더는 태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마녀는 씨가 귀한 존재였다.
일족에게 언니는 애증의 대상으로 변했다. 애는 씨가 귀한 존재였기 때문이며 증은 그녀가 숲을 뛰쳐나가며 많은 일족을 해쳤기 때문이었다.
“언니는 다스리기를 원했어요.”
“지배?”
“누군가의 위에 서 있기를 바랐어요. 일족을 다스리는 하이 위치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대륙을 다스리는 왕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가 되고 싶어 했어요. 또한 마녀의 힘을 마음껏 휘두르길 원했어요. 숲을 벗어난 언니는 자유를 얻었고, 마녀의 힘으로 수많은 존재를 사역하고 발아래에 두었어요.”
대륙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였다. 진실을 알고 있는 자들이 이러한 사실이 대륙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감춘 것이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알고 있는 존재는 많지 않았다.
“언니의 힘이 대단하다고 해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어요. 또한 신화시대가 종막을 고하고 그 명맥을 이어가는 여러 세력과 후예가 남아 있었죠. 그들과 싸운 언니는 커다란 위협을 느꼈어요.”
혼자의 힘에는 한계가 있었다.
메이란은 그들과 끝까지 싸우는 선택지를 버리고 일원이 되기로 결정했다.
마녀 일족은 그런 메이란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 ‘악몽의 집행자’가 가진 힘은 마녀 일족을 전부 합쳐도 비등할 정도로 강했고, 메이란이 비술의 약점을 모두 알려 패배하고 말았다.
마녀의 숫자가 크게 감소했다. 새로운 마녀가 태어나려는 조짐조차 생겨나지 않으니 멸종의 위기가 코앞으로 닥쳐왔다고 봐도 무방했다.
“일족은 변화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언니를 막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의 일족으로 살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 파격적인 변화를 가졌죠.”
일족은 숲을 벗어나 일족이 아닌 사람들과 어울렸다.
세상을 알아갔다.
메이엔은 그때 당시 어렸기에 아카데미의 학생으로 입학했다.
“아마 운명이 저를 그곳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해요.”
그곳에서 제론의 운명을 점쳤다.
과거는 어린아이라고 믿지 못할 정도로 혼란했으며 미래는 보이지도 않았다.
2장의 조커 카드와 암흑카드. 해석이 불가능한 카드의 조합이었다. 그래서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다.
방학을 이용해 숲으로 돌아와 장로님께 여쭈었다.
그러자 장로님이 대답하길.
“미래를 이끌어 가는 자. 운명의 흐름 가운데 서 있는 자.”
메이엔이 하얗게 변한 눈동자로 제론을 보며 말했다.
“후배님께 일족의 운명을 맡겨보려고 해요.”
* * *
시간을 돌려 제론 일행이 몽환의 숲으로 막 들어갔을 무렵, 검은 그림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나.
다음에는 둘.
그다음에는 넷.
모여드는 검은 그림자들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그 숫자는 도합 일백에 달했다.
* * *
“일족의 운명을 저한테 맡긴다고요?”
“네.”
메이엔은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누구 마음대로요?”
“……네?”
“제가 선배가 맡아달라고 하면 맡아줘야 하나요?”
“그, 그건…… 아니죠.”
제론은 뚱한 표정으로 메이엔을 쳐다봤다. 그녀는 예상하지 못한 답변 때문인지 당황한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에르딘이 못됐다며 혀를 찼겠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는지 ‘이건 좀…….’이라고 중얼거리며 눈썹을 가운데로 좁혔다.
“이봐요. 당신이 뭔데 제론한테 일족의 운명을 맡기니 마니 해요?”
쟌느가 쏘아붙이듯 묻자 메이엔이 동공에 지진을 일으켰다.
사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땅찮은지 헛기침을 했다.
“저, 저는…….”
메이엔은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 염치가 없긴 했다.
제론과 그녀가 특별한 관계도 아니었고, 일족과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저런 반응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그러니까…… 선배의 말은 이러나저러나 얽히게 된다는 거 맞죠?”
“맞아요!”
메이엔이 안색을 환하게 물들인 채 거칠게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확실히 선배의 언니와 만나서 싸우긴 했죠. 앞으로도 또 그렇게 될 거고요.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럼요. 그럼요.”
“맞아. 맞아.”
제론이 말하자 에르딘과 쟌느가 추임새를 넣었다.
사제도 헛기침을 연달아 했다.
일행으로 함께 움직이고는 있지만 역시나 도움을 받고 있는 처지라서 적극적으로 의견피력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메이엔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때 제론이 말했다.
“그래서 뭘 주실 건데요?”
“맞아. 맞……?”
쟌느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갸웃한다. 그리곤 ‘거절하는 거 아니었어?’라는 표정을 짓는다. 에르딘도 비슷한 시선으로 제론을 바라봤다.
메이엔의 당황스러운 눈빛과 시선을 마주친 제론이 다리를 바꿔 꼬며 히죽 웃었다.
“선 제시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