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74)
제 174화
174화
제론은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며 사색에 잠겼다.
천천히 노을이 사라지고 밤이 찾아온다.
싸움의 여파로 숲에서 도망쳤던 풀벌레와 짐승, 새들이 돌아왔다.
귀를 간지럽히는 아름답고 영롱한 노래가 들려온다.
“제론 님? 엇!”
제론의 사색을 깨트린 것은 에르딘이었다. 곧 실수를 알아차리고 물러나려고 하자 제론이 괜찮다고 손을 흔들었다.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온 에르딘이 옆에 앉으며 말했다.
“어떻게 설득할지 생각하고 계셨어요?”
“어. 그런데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네. 어떻게 해야 할지 살짝 머리 아플 정도야.”
제론이 피로감을 느끼며 손바닥으로 눈 부위를 덮었다.
내공과 육체의 피로는 전부 회복했지만 정신적인 피로가 남아 있었다.
‘요즘 정신력 소모가 너무 많았나.’
초인도 사람이다.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난 힘과 체력, 정신력을 갖고 있고, 회복은 빠를지언정 그 한계가 무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제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그는 평소에 정신적인 피로가 잘 쌓이지 않지만 한 번 쌓이게 되면 좀처럼 풀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무림에서 오랜 시간 쫓기며 참고, 또 참으면서 생긴 버릇 때문이었다.
그 피로를 풀기 위한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속 시원하게 마음껏 때려 부수면 된다. 하지만 신경 쓸 것이 많았던 최근에는 그런 기회가 드물었다.
‘다른 방법을 찾긴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에르딘을 바라봤다.
녀석이 흠칫 놀라며 물러난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사실을 느낀 것이다.
‘예전보다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잘 피해 다닌단 말이지.’
사실 에르딘을 괴롭히며 피로를 푸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애꿎은 희생자를 만드는 심정이랄까.
그래서 최대한 자제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피로가 잔뜩 쌓였을 때는 괜히 심술이 불쑥불쑥 솟구친다.
“안 괴롭힐 거니까 와서 앉아.”
“정말로요?”
“어. 정말로.”
“진짜로요?”
“순순히 와서 앉을래? 맞고 앉을래?”
에르딘이 활짝 핀 꽃처럼 웃더니 옆으로 와서 엉덩이를 땅바닥에 붙였다.
역시나 협박을 해야 순순히 행동하는 녀석이었다.
“무슨 좋은 방법 없을까?”
“음.”
제론이 묻자 에르딘은 고심했다.
메이엔의 부탁은 장로님을 만나 마녀 일족이 숲을 떠날 수 있도록 설득하라는 것이었다. 쉽게 설득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게 가능했다면 이미 마녀 일족은 숲을 떠나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냈을 테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했으니까…… 힘으로 해결하는 건 어때요?”
“나도 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야. 하지만 힘으로 해결하는 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도 통하지 않으면 그때 써야 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해.”
“의외로 상식적이시네요.”
“무슨 의미냐?”
“그냥 일단 제압하고 시작할 줄 알았거든요.”
“내가 그렇게 몰상식하지는 않아.”
제론이 그렇게 말하자 에르딘의 눈빛이 묘하게 변한다.
몰상식한 사람을 쳐다보는 시선이랄까.
“농담이에요.”
“진짜?”
“…….”
제론은 대답도 없이 슬쩍 시선만 돌리는 녀석에게 피식 웃어주고선 위를 올려다봤다.
캄캄한 밤하늘에 반짝거리는 별들이 박혀 있었다.
무척이나 아름답게 빛난다.
현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무림에서는 많이 봤지만 지금과는 감회가 달랐다.
‘진짜 치열하게 살긴 했나 보네.’
가볍게 숨을 내쉰 제론이 벌떡 일어나 집으로 향한다.
메이엔이 장로를 설득하기 전까지 머물라며 내어준 곳이다.
“같이 가요!”
에르딘이 제론을 뒤따라가며 외쳤다.
“왔어?”
집으로 들어가자 쟌느가 목욕을 막 마치고 나왔다. 수건을 목에 두른 채 의자에 앉는데 복장이 무척이나 편해 보였다. 소위 말해 스포츠 브라탑과 돌핀 팬츠처럼 가릴 곳만 가린 옷이었다.
에르딘이 얼굴을 붉히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쟌느가 풉! 하고 웃었다.
“사제님도 계신데 옷 좀 제대로 입어라.”
“하지만 이게 편한걸?”
“저는 괜찮습니다.”
사제는 쟌느가 있는 곳으로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그의 귓불이 붉었다. 제론이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대장.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대장?”
“네가 일행의 대장이니까.”
거창한 칭호이기는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론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어떻게 할지는…… 아직도 고민 중이야. 장로라는 마녀를 설득할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거든.”
“흐응?”
“왜?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쟌느가 어깨를 으쓱하고 대답했다.
“그냥 가서 물어보면 되는 거 아냐?”
“뭐?”
“장로라는 마녀한테 가서 숲을 왜 떠나지 않는 건지 물어보고 그 이후에 방법을 생각하면 되잖아. 그 전에 벌써부터 알지도 못하는 이유로 끙끙거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제론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그 반응에 쟌느가 히죽 웃으며 가깝게 다가가 어깨 위로 손을 올리며 말했다.
“하여간 은근히 허술하다니까. 그래서 매력이 있는 거지만 말이야.”
* * *
이튿날 아침 제론은 메이엔을 찾아갔다.
가서 마녀 일족의 장로를 만나겠다고 말했다.
“장로님을 설득할 방법이 떠오르신 건가요?”
“아니요.”
“그럼 왜……?”
“숲을 왜 떠나지 않으려는 건지 이유를 물어보려고요.”
메이엔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말하길 마녀 일족의 장로는 숲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도 가장 음습한 동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오랜 시간 동굴 밖으로 나온 적이 없고 다른 마녀들과는 안과 밖에서 대화만 주고받는다고 한다.
“이쪽으로.”
메이엔이 손을 크게 젓자 숲이 움직였다. 나무가 움직이며 길을 만들었다. 그녀가 앞장섰다. 제론이 뒤를 따라서 움직였다.
침묵이 깊게 내려앉았다.
“저 안에 계세요.”
동굴 앞에 도착하자 손가락으로 안쪽을 가리키며 말한다.
메이엔이 안내가 끝났다며 고개를 작게 숙이고 돌아섰다.
혼자 남게 된 제론은 메이엔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동굴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로 마녀 일족의 장로가 저 안에 있기는 하는 건가?’
제론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동굴 안쪽에 사람이 있다면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생기-선천지기가 느껴져야 하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어오세요.
잠시 고민하는 사이 머릿속으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론이 가늘게 눈을 떴다가 동굴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고약하고 시큼한 냄새가 났다. 그것의 정체가 시체가 썩는 냄새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오감이 곤두섰다.
“계신가요?”
-더 들어와 주세요.
노인의 목소리가 다시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체 썩는 냄새는 진짜였다.
만약 마녀 일족의 장로가 죽은 것이라면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그 정체가 금방 밝혀졌다.
동굴 안쪽에는 마녀 일족의 옷을 입고 있는 시체 한 구가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목소리는 시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론이 다가가자 시체가 천천히 일어섰다.
-많이 놀라셨죠?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가요?”
-죽음을 잠시 붙들고 있었답니다. 세상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지만 마녀 일족의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시체가 재생을 하기 시작한다. 썩어가던 살점이 살아 있을 적의 것으로 변하고 윤기가 흐르는 백발이 자라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푸근한 인상의 노인이 되었다. 그러나 진짜로 되살아난 것은 아니었다. 코끝을 맴도는 시취가 여전했다.
마녀 일족의 장로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그렇게 보이도록’ 만든 것이었다.
-미안하지만 대접할 만한 것이 없네요.
“괜찮아요.”
이런 시취 속에서 무언가를 먹고 싶지도 않다. 장로는 그런 제론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미안한 표정으로 웃더니 의자에 앉았다.
제론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메이엔 선배의 부탁을 받고 왔어요.”
-알고 있어요. 그러니 말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제론은 장로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운명의 흐름 속에서 서 있는 존재여. 새로운 미래를 이끌어 가는 존재여.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알고 있나요?
“제 운명 따위에는 관심 없어요. 그보다 제가 이곳으로 온 이유에 대한 대답을 해주시죠.”
장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주 먼 옛날…… 마녀 일족은 아스트랄Astral로 갔어야 했답니다. 하지만 선조께서는 미들 어스Middle Earth에 남는 것을 선택하셨고, 그 순간 멸종이라는 일족의 운명이 정해졌죠.
“미들 어스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고 왜 그런 운명이 정해진 거죠?”
-신화시대의 종막 이후로 하나였던 세상이 아스트랄-신계-과 미들 어스-중간계-로 나누어지며, 아스트랄에 속한 존재는 미들 어스에서 살아가지 못하도록 맹약이 맺어졌기 때문이죠.
제론이 대륙을 여행하기 전이었다면 알지 못할 말들이었다. 하지만 던전에서 얻은 연구일지를 통해 알게 된 신화시대의 단편적인 지식만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했다.
장로의 말을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마녀 일족은 본래 아스트랄에 속한 존재다. 신화시대가 종막을 고하며 신화적인 존재들과 함께 아스트랄로 떠났어야 했다.
하지만 마녀 일족은 미들 어스에 남는 것을 선택했고, 맹약에 의해 세상의 간섭력干涉力-또 다른 말로는 인과율因果律-이 영향을 끼쳐 서서히 멸종이라는 운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것이다.
-당신의 곁에 있다면 그 맹약은 올바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돼요.
“왜죠?”
-당신의 운명은 오롯이 미들 어스에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무슨 말인지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나요?”
-미안하지만 저도 거기까지는 보지 못한답니다.
제론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짐작이 되는 건 있었다. 자신은 현대에서 살아가다가 무림으로 이동했고 우화등선을 하던 도중 실패를 해서 이 세상에서 환생했다.
-그럼 이제 대답할게요. 제가 왜 마녀 일족을 다른 곳으로 이주하지 못하도록 막았는지 말이에요.
* * *
메이란은 조류의 사역마를 소환했다. 등에 올라타니 사역마가 높이 날아올랐다. 그녀가 가려는 곳은 영원의 숲이었다.
아론 다이트와 제로니아 페리안이 동일인물인지 확인하려는 목적이었다.
“…….”
메이란은 눈을 감았다. 마녀 일족은 멸종을 피하지 못한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마녀는 장로와 자신, 단 2명뿐이다.
숲을 뛰쳐나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모두가 죽게 될 것이라면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었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니까.”
* * *
제론은 동굴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메이엔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나요?”
“마녀 일족은 무슨 일이 있어도 숲을 떠날 수 없다고 하셨어요.”
“역시 그렇…….”
“하지만 선배는 떠나도 된다고 하셨어요.”
메이엔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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