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75)
제 175화
175화
“저……만요?”
조용하게 되묻는 메이엔의 목소리가 잔바람이 부는 날의 사시나무 잎사귀처럼 가녀리게 흔들렸다. 제론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똑바로 들었지만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제론이 확인사살을 하듯 대답했다.
“네. 선배만요.”
“나 혼자? 나 혼자 살아남아서 무엇을 하라고?”
메이엔은 허탈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흐릿하게 풀린 그녀의 눈동자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곧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어디론가 간다. 예상컨대 장로를 찾아간 것이리라.
‘가도 별 소용없을 텐데.’
제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손을 슥 내밀자 에르딘이 무엇을 달라고 한 것인지 척척 알아차리고 컵에 물을 따라서 준다. 컵을 받아서 벌컥벌컥 들이켜자 갈증이 해소되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맞아. 우리도 궁금하니까 말해줘.”
제론은 에르딘과 쟌느의 재촉에 팔짱을 꼈다. 말하지 않을 생각은 없다. 단지 어떻게 설명을 해야 두 사람이 이해할지 고민이 든다.
던전들을 공략하러 다닌 쟌느는 은근히 잡지식이 많아 알아들을 것 같지만 에르딘이 문제였다.
“쉽게 설명하면…… 마녀 일족의 운명은 이 숲에 묶여 있대.”
“그러니까 노예처럼 말이죠?”
에르딘이 바로 받아친다.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라서 제론은 살짝 당황했다.
“아…… 표현이 나빴네요.”
제론의 반응을 오해한 에르딘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노예제도는 이종족의 해방과 함께 사라졌다.
무려 수백 년 전의 일이자 대륙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였다.
물론 비공식적으로는 다른 방식으로나마 여전히 잔재가 남아 있지만 예전처럼 노동 착취나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일은 없었다.
아닌 척 그런 행동을 하는 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제론은 괜찮다며 손을 젓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표현이 좋다고 말하지 못하겠지만 적절한 비유는 맞아.”
장로의 말을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함축하자면 이러했다.
마녀 일족은 신화시대에 아스트랄 계界로 갔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음으로써 ‘영원의 숲(몽환의 숲)’에 영원히 종속되었다고 한다.
“외부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건 아니야.”
하지만 오랜 시간 외유가 불가능했다. 숲을 빠져나간 시간이 길면 길수록 마녀는 점점 쇠약해져 가고 빠르게 나이를 먹게 된다.
평범한 사람처럼 늙는다는 말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1년이 10년으로 변한다.
50년을 살 수 있는 사람이 5년밖에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자손을 낳는 생식능력이 사라졌어.”
“네?”
“뭐라고?”
에르딘과 쟌느가 멍하니 반문한다. 그만큼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그래서 메이엔 선배가 그렇게 말했던 것이로군요.”
새로운 마녀가 태어나지 않는다.
사실상 마녀라는 종족의 끝을 고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장로는 마녀의 운명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이 두 명 있다고 하더군.”
그게 바로 메이엔과 메이란이었다. 에르딘과 쟌느가 작게 탄성을 흘렸다. 하지만 곧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왜 두 명만 마녀의 운명에서 벗어난 거야?”
“맞아요. 저도 그게 궁금해요.”
“그건 나도 잘 몰라.”
거짓말이다.
제론은 두 명이 마녀의 운명에 얽매이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메이란은 숲을 뛰쳐나갔지만 여전히 마녀 일족의 장將이었다. 유일무이하게 운명을 거스른 존재. 그로 인해 숲을 나가더라도 처음에 말한 쇠약해지거나 빠른 노화를 겪는 일이 없었다.
반면 메이엔이 운명에 얽매이지 않는 이유는 놀랍게도 제론 자신 때문이라고 한다.
-운명의 흐름 속에서 서 있는 존재여. 새로운 미래를 이끌어 가는 존재여.
장로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입술을 작게 비틀었다.
아무렴 상관없다.
운명 따위 믿지 않으니까.
* * *
이튿날 제론을 찾아온 메이엔은 몰골이 꽤나 초췌해진 상태였다.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네.’
피골이 상접하고 또렷했던 눈동자가 흐릿하다.
어깨는 힘이 빠져 축 늘어졌다.
조금 보기 안쓰러웠다. 하지만 어설픈 위로 따위는 하지 않았다.
똑같은 입장이 아니라면 절대로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위로받는 타인도 그 위로를 가식으로 받아들인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제론은 다른 일행에게도 가만히 있으라고 미리 언질을 해둔 상태였다.
몇 시간의 침묵 끝에 메이엔이 묻는다.
“여러분과 함께 가도 될까요?”
“저는…… 아무런 상관없어요. 쟌느 씨는 어때요?”
에르딘이 쟌느를 바라봤다.
“나도 뭐. 사제님은?”
쟌느가 사제를 바라봤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사제는 두 손을 모으며 대답했다.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의 시선이 제론에게 모였다.
사실 모두가 알고 있다.
자신들이 뭐라고 하던 결정권은 파티의 리더인 제론에게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제론은 잠깐 몸을 움찔 떨곤 고민했다.
‘메이엔 선배를 파티로 받는다고?’
며칠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일족의 운명을 맡긴다, 어쩐다, 그러긴 했지만 파티로 함께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최악의 상황으로 떠올린 것도 마녀 일족이 새롭게 자리 잡아야 하는 터전을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그럴 때는 페리안 자작령을 추천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 번도 고민조차 해본 적 없는 상황이라서 살짝 애매했다.
파티 포지션을 천천히 짚어봤다.
우선 서브 딜러이자 탱커인 에르딘이 있었다. 다음으로는 은신과 잠입, 암살의 도적 쟌느가, 후방에서는 힐러-실제로 신성 마법을 써주는 건 아니다-를 하는 사제님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메인 딜러이면서 탱커이자 암살, 잠입, 은신의 올 라운더인 나.’
유일하게 마법사만 파티에 없다. 마녀가 마법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같다고 여길 경우 얼추 포지션이 맞다.
‘문제는 메이엔 선배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하냐는 거지.’
그림자 사역마와 싸울 때 보여준 능력은 숲에서만 사용이 가능했고, 직접적인 전투보다는 보조 쪽에 가까웠다.
제론 일행에게 필요한 것은 보조가 아니다. 제론이 단독으로 움직일 때 다른 일행과 함께 부족한 화력을 채워서 싸울 전투 인원이다.
그런 제론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메이엔이 말한다.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거예요.”
“확실해요?”
“언니와 만났다면 아마 이 힘을 보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메이엔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앞에 투명한 단층을 만들었다.
제론은 그 힘을 겪어본 적이 있어서 알아차렸지만 다른 일행은 아니었다.
“지금 뭘 한 거예요?”
“나도 몰라.”
에르딘과 쟌느가 작게 속닥거린다. 요즘 따라 부쩍이나 친해진 두 사람이다.
“흐음. 그 힘의 정체가 뭐죠? 처음에는 공간을 왜곡시킨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군요.”
“맞아요. 공간 왜곡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간의 법칙을 비튼 거예요.”
“법칙을 비튼 거라고요? 어떻게요?”
“저를 공격해보세요.”
제론은 검에 내공을 담지 않고 메이엔에게 휘둘렀다.
검이 그녀에게 닿지 못한 채 옆으로 비껴간다.
힘으로 강제해서 비껴간다는 감각은 없었다. 메이란과 싸울 때같이 처음부터 그곳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처럼 움직인다.
메이엔의 볼에 땀방울이 맺힌다.
제론이 검을 거둬들였다.
“중력에 대해 아시나요?”
“네. 알고 있어요.”
과학자들처럼 전문적으로 아는 건 아니지만 대충이나마 알고 있다. 뉴턴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던지 말이다.
“만약 중력이 아래가 아닌 위로 작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날아가겠죠.”
“맞아요. 법칙을 흔든다는 건 그런 것이에요. 당연히 중력의 작용에 의해 땅으로 떨어질 과일이 날아가는 것처럼 말이죠.”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네요.”
메이란과 싸우며 감각적으로 느낀 게 맞았다.
법칙을 비튼다.
정상이 비정상으로, 비정상이 정상으로 역전한다.
비틀 수 있는 한계가 있겠지만 자신의 공격을 몇 차례나 막아낸 메이란을 보면 엄청난 능력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제론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한 번이 부족하다면 두 번 공격하면 되니까.’
제론이 알고 싶었던 것은 메이란이 사용한 힘의 정확한 정체였다. 파훼법 따위가 아니었다. 그러나 메이엔이 발목을 잡지 않을 거라고 자신한 이유는 충분히 합리적이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제론이 손을 뻗자 메이엔은 흐릿하게 웃으며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메이엔은 숲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장로를 찾아갔다.
메이란이 숲을 떠난 뒤 후계자가 된 그녀는 아직 전수받지 못한 비술이 많았다.
그것을 전수받을 시간이 필요했다.
며칠 뒤 다시 나타난 그녀는 비술을 전수한 장로가 붙잡고 있던 죽음을 놓았다는 부고를 전하며, 제론에게 옛 신의 신물이라며 작은 조각상을 건넸다.
“이게 신물이라고요?”
조각상은 마야 문명의 것처럼 꽤나 해괴한 모습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칼을 들고 갑옷을 입고 있는 남자처럼 보였다.
“네. 전쟁의 신이라고 추정하고 있어요.”
“전쟁의 신? 마음에 드네요.”
제론은 아공간 주머니에 조각상을 넣고 숲을 빠져나갔다.
아이오닉 교국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멀리서 거대한 새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날아오는 걸 발견했다.
제론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만큼 멀었다. 하지만 거대한 새처럼 보이는 것의 정체를 알아차린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메이엔이었다.
“……언니?”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 * *
메이란은 공중에서 사역마를 멈춰 세웠다.
아슬아슬하게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한 높이였다.
이 정도면 괜찮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제론을 빤히 쳐다봤다.
머리카락 색깔은 달랐지만 서대륙에서 만난 아론 다이트가 맞았다.
확인을 마친 그녀가 메이엔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숲을 나가려고?”
“응. 누구와는 다르게 일족의 운명을 바꿔볼 생각이야.”
메이엔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제론이 메이엔을 힐끔 쳐다봤다. 일족의 운명을 바꿔보겠다는 건 그녀의 본심이었다.
‘확실한 방향이 정해진 건 좋은 일이지.’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목적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메이란은 눈꼬리를 씰룩거렸다.
피골이 상접한 동생의 얼굴을 비웃으며 말했다.
“네까짓 게 운명을 바꿔보겠다고?”
“적어도 노력은 해봐야지. 노력도 안 해본 누구랑 다르게 말이야.”
“푸훕. 그래. 그렇다면 긴말은 필요 없지. 오늘 여기서 처리해줄게.”
메이란이 손을 들었다. 그녀의 로브 속에서 수많은 사역마들이 빠져나왔다. 세어보지 않아도 족히 일백에 달할 정도로 많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제론의 일행은 긴장했지만 제론이 가만히 있으라고 손을 뻗자 뒤로 물러났다.
메이엔은 메이란의 사역마를 쭉 훑어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고작 그 정도로?”
“……뭐?”
메이엔이 빗자루로 땅을 때렸다. 그러자 땅이 갈라지며 온갖 기괴한 형태의 사역마들이 기어 올라왔다. 또한 그녀의 사역마의 숫자는 메이란의 것에 비해 모자라지 않을 만큼 많았다.
메이란은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언제 이만큼 강해진 거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