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76)
제 176화
176화
일촉즉발의 상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작게 한숨을 내쉰 메이란이 사역마를 거둬들였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메이엔을 응시한 메이란은, 타고 있던 사역마를 움직여 천천히 물러났다.
메이란이 멀어져가자 메이엔도 사역마를 거둬들였다.
언니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잠시 멍하니 쳐다보던 메이엔이 지그시 입술을 깨문다.
살갗이 찢어져 핏줄기가 흘러내린 뒤에서야 흠칫 놀란 그녀가 소매로 입술을 슥 닦아내고선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하게 말했다.
“가죠.”
메이엔이 앞장선다. 그녀의 등 뒤로 무척이나 우울한 아우라가 풍긴다. 제론이 그녀를 뒤따랐고, 나머지 일행도 슬쩍 눈치를 살피다가 따라갔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숲과 멀어졌다. 에르딘이 제론의 옆으로 와서 묻는다.
“그나저나 아까 그 사람이 제론 님을 알아본 것 같던데요?”
“괜찮을 거야.”
시선이 마주친 순간 메이란이 자신을 알아봤다는 것쯤은 바로 알아차렸다. 하지만 놈들은 움직이지 못한다. 오러 마스터가 된 유한의 존재 때문이 아니다.
아이언하트 공작에게 얻은 정보로 그 사실을 알았다.
제론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을 거야. 길어봐야 1년에서 2년 사이 페리안 자작령을 노릴 테지. 그사이에 북대륙의 일을 끝내고 돌아가야 해.”
“으음.”
에르딘은 냉철한 제론을 보며 신음을 흘렸다. 아마도 자신이라면 저런 판단을 내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심각할 필요는 없지. 그보다 조금 빠르게 움직이는 게 좋겠어.”
제론이 앞으로 가서 일행에게 그 말을 전달하자 메이엔이 말했다.
“제 사역마를 타고 가죠.”
“탈 것이 있어요?”
“네. 잠시만요.”
메이엔은 말을 닮은 사역마 5마리를 꺼냈다. 먼저 사제를 태우고 달리게 했다. 사제는 사역마를 말처럼 생각하고 탔지만 곧 공포로 사색이 질린 채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
평소 조용한 사제와 많이 다른 모습이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메이엔이 소환한 사역마-말은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으니까.
사제의 엉덩이가 하늘로 붕- 뜨며 내려앉기를 몇 차례 반복한다. 떨어질 때는 얼마나 묵직한지 퍽- 퍽- 소리가 들릴 정도다.
“고삐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세요. 메이엔 선배가 사역마를 고분고분하게 만들면 되는 문제니까 사제님은 잘 타고만 있으면 돼요.”
“그, 그게 말처럼 쉽지 않…… 켁!”
사제가 공중으로 붕 떴다가 떨어진다. 혀를 깨물며 비명을 내지른다.
메이엔이 그 모습을 보고 손을 젓자 말이 투레질을 하며 멈춰 선다. 하마터면 그대로 앞으로 날아갈 뻔한 사제였다.
사제가 승마에 적응한 것은 며칠이 지난 뒤였다. 몇 차례의 낙마로 온몸이 상처투성이로 변했지만 신성 마법으로 자신을 치료했다.
“도시까지는 얼마나 남았어?”
“아마 이틀 정도 걸릴 거야.”
제론은 쟌느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로 향하는 이유는 집으로 편지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놈들이 당장 페리안 자작령을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모른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소식을 미리 전하려는 것이다.
이틀 뒤 제론 일행이 도시에 도착했다.
여관에 방을 잡은 뒤 제론이 말했다.
“다들 볼일 보고 와. 혹시나 말하지만 사고는 치지 말고.”
“제론 님이 제일 불안한 거 아시죠?”
“맞을래?”
“그럼 먼저 가볼게요!”
깐죽대던 에르딘이 제론의 주먹을 피해 후다닥 도망쳤다.
나머지 일행도 한 명씩 각자 볼일을 보러 나갔다.
사제의 안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할 때 메이엔이 자신은 따로 볼 일이 없다고 하며 그와 함께 움직이겠다고 말했다.
“고마워요.”
“저도 일행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쟌느는.
“나는 경매장을 다녀올까 해.”
“경매장?”
“응. 불법 경매장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런 말을 남겨놓고 사라졌다.
제론은 집에 편지를 보낸 뒤 향신료 상점으로 향했다.
향신료가 거의 다 떨어졌다.
앞으로는 도시를 잘 들르지 않을 예정이라 미리 충분히 양을 채워놔야 했다.
딸랑.
“어서 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상점 주인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반긴다.
“소금과 후추 있나요?”
“물론입니다. 얼마나 드릴까요?”
“후추는 500그램, 소금은 1킬로그램 주세요.”
꽤나 많은 양이었다.
혹시 물건을 들고 도망치지 않을까 걱정한 상점 주인이 제론의 복장을 쑥 훑어봤다. 옷의 재질이 제법 고급스럽다. 평범한 여행자가 입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얼굴에서 부티도 나고.’
아무튼 물건을 받고 도망칠 것 같지 않았다.
“50골드입니다.”
“50골드요?”
후추와 소금은 본래 고가의 향신료와 조미료다. 후추가 소금보다 훨씬 더 비싸기는 하지만 평소였다면 30골드에서 40골드 사이로 거래가 가능한 양이다.
“네. 후추가 좀 많이 비싸졌습니다.”
“얼마나 비싸졌는데요?”
“후추가 현 시세로 40골드입니다.”
40골드면 거의 2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대륙마다 물가 차이가 있다지만 예상보다 많이 비쌌다.
“아…… 그게 이유가 있습니다.”
제론의 표정을 알아본 상점 주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최근 역병이 돌고 있다는 소문 들으셨습니까?”
“제가 이쪽 지방은 이번이 처음이라서 못 들어봤어요.”
“그러셨군요. 아무튼, 최근 들어 몇몇 마을에 역병이 돌았는데 하필이면 후추 생산지가 포함됐지 뭡니까. 그래서 올해 후추 생산량이 절반가량 줄어들고 가격이 거의 두 배까지 올라버렸습니다. 혹시 믿기 힘드시면 다른 곳에 가서 물어보셔도 됩니다.”
“믿어요. 거짓말을 하실 분으로 보이지 않는 걸요?”
“하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비스로 소금을 조금 더 드리겠습니다. 아 참! 혹시나 게드린 백작령을 지나가실 예정이시라면 멀리 돌아서 가십시오. 그곳을 중심으로 역병이 퍼지고 있으니까요.”
서비스를 많이 못 줘서 미안하다는 상점 주인에게 다시 한번 괜찮다고 말한 제론은 50골드를 지불하고 후추와 소금을 받아서 돌아왔다.
여관으로 돌아오니 메이엔과 사제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일찍 돌아오셨네요?”
“아…… 안 좋은 소문이 들려와서 얼른 일을 마무리 짓고 돌아왔습니다.”
“혹시 안 좋은 소문이 역병을 말하는 건가요?”
“신의 사도께서도 그 소문을 들으셨군요!”
“신의 사도라는 말은 빼주세요. 많이 부담스럽고 부끄러우니까요.”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날이 갈수록 극한으로 뻔뻔해지는 사제였다. 어처구니가 없어진 제론이 잠시 그를 쳐다보다가 메이엔에게 질문했다.
“메이엔 선배, 혹시 역병에 대해 잘 아세요?”
메이엔이 고개를 저었다.
“잘 몰라요. 악마술사나 흑마법사라면 알지도 모르지만요.”
“놈들의 짓일지도 모른다는 말이군요.”
“맞아요.”
“우리가 아이오닉 교국으로 가지 못하게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지만요.”
“야만족의 침략을 막느라 바쁜 상태라면 이야기가 틀려.”
쟌느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제론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야만족의 침략은 북대륙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어?”
“흔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야. 게다가 다른 대륙에는 2년 전부터 야만족의 침략이 시작되었다고 알려졌지만, 비공식적인 기록으로는 수백 년 전부터 야만족의 침략이 있었어.”
“그 말은 침략의 규모가 2년 전에 갑자기 커졌다는 건가?”
“맞아. 그런 상태에서 역병이 돌기 시작했으니 확산되기 전에 막아야 하는데, 야만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보내야 하는 병력을 그쪽으로 빼내게 되면 야만의 땅과 대륙의 경계를 지키는 병력이 줄어드는 거지.”
“그 말을 듣고 보니 우리의 발목을 잡으려고 부린 수작은 아닌 것 같네.”
“발목을 잡아서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이라면 역병을 퍼트리는 것보다 잠도 못 자게 계속 기습하면서 괴롭히는 게 더 효과적이지.”
나름 논리정연(?)한 쟌느의 말에 제론이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그럼 에르딘이 돌아오면 확실하게 경로를 정하자.”
한 시간 뒤 에르딘이 돌아왔다.
녀석은 다른 일행과 마찬가지로 역병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지 그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런데 다른 점이 한 가지가 있었다.
“역병이 엄청난 속도로 퍼지고 있대요!”
* * *
눈으로 뒤덮인 산을 오르는 남자가 있었다.
거친 눈보라가 몰아치는데도 불구하고 반쯤 헐벗은 복장과 사람의 치아로 보이는 것을 목걸이로 엮어 걸고 다니는 특이한 남자였다.
남자의 뒤에서 비슷한 복장을 입은 무리가 천천히 나타났다.
그들 역시 사람의 치아로 보이는 목걸이를 차고 있었다.
“시작한다.”
남자가 그렇게 지시하고 목걸이를 잡은 채 기괴한 언어를 내뱉었다.
남자를 뒤따라온 무리 역시 기괴한 언어를 뱉어냈다.
목걸이로 엮어진 치아에서 검은색 연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보라가 더욱 거세지며 연기처럼 검게 변했다.
잠시 후 설산 아래에서 경악 어린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큭큭!”
남자는 조용히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 * *
역병의 발병지는 게드린 백작령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다.
이름조차 없는 그 마을은 농사를 주업으로 삼으며 간간이 근처를 지나치는 상단과 물자를 교류하여 부족한 물품을 구입하고, 그 외에는 대부분의 의식주를 자급자족하던 곳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성정은 대체적으로 온화했다. 욕심도 많지 않았고 그로 인한 다툼도 없었다.
그야말로 유유자적한 여생을 보내기에는 최적인 마을이었다.
그런 마을에 재앙이 떨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였다.
마을 주민들 중 한 명인 남자가 어느 날 복통을 호소했다.
무엇을 잘못 먹었다고 생각한 남자는 일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는데, 이튿날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남자의 몸은 동충하초라는 버섯이 기생한 곤충이나 동물처럼 기괴한 검은색 촉수로 뒤덮여 있었다.
그 모습을 처음 발견한 다른 마을 주민이 깜짝 놀라 가까이 다가가자 피부가 중독된 것처럼 보라색으로 변하더니 피를 토하고 죽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마을 전체가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그 후로는 끔찍한 죽음의 연속이었다.
마을 근처를 지나가던 상단이 전멸했다.
치안을 담당하던 순찰대가 전멸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게드린 백작은 이 사태를 역병이라고 판단하고 죽음의 땅으로 변한 마을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통제했지만, 며칠 뒤 역병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스스로 영역을 넓히자 사태는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다른 마을과 도시까지 확산되기까지 며칠도 채 걸리지 않았다.
게드린 백작령은 사실상 초토화되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라는 이야기예요!”
제론은 에르딘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에 빠졌다.
역병이 살아 있는 것처럼 스스로 영역을 넓힌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이 세상처럼 마법이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온갖 술법과 사술이 난무하던 무림에서도 이런 경우는 겪어본 적 없었다.
‘정말로 역병이 맞을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