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77)
제 177화
177화
육망성이 그려진 원형 탁자 앞으로 한 명씩 앉았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영원의 숲으로 향한 메이란을 제외한 모두가 모였다. 평소와 달리 분위기가 엄숙하고 무거웠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먼저 묻는다.
“쿰베 왕국의 게드린 백작령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은 어떻게 된 일이지?”
“데카론이 죽으면서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흑마법사가 많아졌어. 이번 일은 그 녀석들의 짓이야.”
로우 톤의 목소리가 허스키한 목소리의 눈치를 살펴보며 대답했다.
“내가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묻는 거라고 생각하나?”
“뭐?”
허스키한 목소리의 냉담한 반응.
로우 톤의 목소리가 당황한 순간 허스키한 목소리가 누군가를 바라본다.
그곳에는 가녀린 목소리가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일부러 놔둔 거야.”
“……!”
모두가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가녀린 목소리를 쳐다본다.
허스키한 목소리는 그녀에게 죽은 데카론을 대신해서 흑마법사를 통제하라고 지시했다. 그것을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지시를 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이 앉아 있는 원탁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조직의 중심에 있었다. 그가 없다면 조직은 존재하지 못했을 정도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죽은 데카론을 포함해 다섯 명이 덤벼도 그의 털끝조차 상하게 만들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네 명은 허스키한 목소리의 지시가 불합리하지 않은 이상 순순히 따르는 것이었다.
평소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 남자가 입을 연다. 날카로운 손톱으로 철판을 긁는 것처럼 듣기 거북하고 끔찍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생각으로 한 짓거리냐? 데카론을 대신해서 흑마법사를 관리하라고 지시가 내려졌는데 일부러 놔뒀다고? 내 귀가 막히지 않았다면 그렇게 들리는데.”
“응. 일부러 난장판 치도록 놔뒀어. 뿐만 아니라 교국의 봉인지에서 악신 페르트의 유물을 빼내서 쥐여 주기까지 했지.”
악신 페르트는 질병의 권능을 갖고 있는 신이었다. 그의 힘이 담긴 유물은 신화시대가 종막을 고한 현시대에 이르러서도 역병을 퍼트리는 권능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드디어 미친 거냐?”
“아쉬워할지도 모르겠지만 미친 건 아니야.”
가녀린 목소리가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허스키한 목소리는 그런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지시하지 않은 독단적인 행동을 한 이유를 말하라.”
“혼란이 필요했어. 단순히 그뿐이야.”
“납득할 수 없는 이유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느릿하게 말하며 가녀린 목소리에게 손을 뻗었다.
“……!”
가녀린 목소리가 눈을 부릅뜨며 두 손으로 목을 붙잡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자신의 목을 움켜잡고 있었다. 천천히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하라.”
“큭, 크헥!”
“아타시아. 내가 자주 하던 말을 기억하는가?”
“주…… 케흑! 주제를! 넘어서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했……어!”
가녀린 목소리-아타시아가 힘겹게 소리쳤다. 목을 움켜잡고 있는 힘이 느슨해졌다. 새하얗게 질린 그녀의 낯빛이 아주 천천히 본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내 말을 기억하고 있다면 나를 납득시켜라.”
“그…… 전에 이것……부……터……!”
“좋다.”
허스키한 목소리는 뻗었던 손을 거뒀다.
아타시아가 땅으로 떨어졌다.
거칠어진 숨을 고른 뒤 그녀가 말했다.
“북대륙과 야만의 땅 사이의 경계를 무너트리기 위해서였어.”
* * *
제론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조용히 묻었다. 역병이 맞으면 어떻고 틀리면 또 어떻단 말인가. 분명한 건 역병이라고 추정되는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역병이라고 가정하고.”
제론이 말한다.
일행은 제론의 말에서 지금 퍼지고 있는 것이 역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낌새를 느꼈다. 하지만 되묻지 않았다. 그것이 역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선택할 방법은 몇 가지 없어. 첫 번째로 도시를 빠져나가 역병이 퍼지는 지역을 최대한 벗어나 돌아가는 거야.”
도시의 성문이 통제될지도 모른다.
외부인과의 교류를 끊고 역병이 도시까지 닿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그 전에 이동해서 아이오닉 교국까지 안전하게 도착한다.
가장 간단한 최선책이다.
“문제는 앞으로 도시나 마을에는 들어가지 못한다는 거야.”
야영에는 한계가 있다.
자급자족이라는 말도 기반이 있어야 가능하다.
제론의 경우에는 잔병치레를 겪지 않고 웬만한 상처도 금방 회복해서, 산속에서 몇 년을 틀어박혀 살아도 도시의 문물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불편함을 제외하고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일행은 아니었다.
다치면 소독을 해야 하고 독에 중독되면 약을 먹어야 한다.
사제의 신성 마법이 있지만 모든 상화에 유효한 것이 아니다.
“두 번째는 중앙대륙으로 돌아가는 거야.”
최선책 다음은 차선책이었다. 북대륙에 퍼진 역병이 잠잠해질 때까지 중앙대륙으로 돌아가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단점이 있지만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이 역시 도시의 성문이 통제되기 전에 나가야 해. 되도록 야영을 위주로 생활해야 하고. 그래서 두 번째보다는 첫 번째 방법이 더 낫다고 생각해.”
“혹시 세 번째 방법도 있어?”
쟌느가 묻는다.
제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있어. 하지만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아.”
“뭔데요?”
에르딘이 묻자 잠시 고민한 제론이 대답했다.
“우리가 역병을 없애는 거야.”
“…….”
일행은 잠시 침묵했다.
역병일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른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게 없다.
그런데 그것을 없애자고?
“만약 역병이라면 프리스트의 힘이 얼마나 통합니까? 그리고 역병을 잠재우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까?”
“역병의 종류마다 다르겠지만 소문으로 들은 정도라면 심각한 수준입니다. 저 같은 중급 사제라면…… 완벽한 치유는 불가능합니다.”
“만약 아이오닉 교국에서 빠른 대처에 나선다면요?”
“역병이 퍼지는 속도를 보건대…….”
사제가 머릿속으로 들은 정보와 지식을 조합해 결론에 도달했다.
“적어도 1년은 넘게 걸릴 겁니다.”
“메이엔 선배.”
“네.”
“만약 역병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질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역병이 아니라 저주 혹은 마녀 일족의 비술이라던가 말이죠.”
메이란의 짓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메이엔이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
“마녀 일족의 비술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주라면 불가능해요. 저주를 퍼트린 흑마법사나 악마술사를 찾아야 해요. 아마…… 걸리는 시간이 마녀 일족의 비술이라면 최소 한 달, 저주라면 흑마법사와 악마술사를 얼마나 빨리 찾냐에 달렸어요.”
“두 분 다 대답해줘서 고마워요. 다들 들었다시피 대충 이 정도의 시간이 걸려. 그래서 추천하지 않는 것이기도 해.”
제론이 일행을 차례대로 바라보며 말했다. 단순히 여행이었다면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한 명이라도 반대하거나 다른 의견을 내면 그 방법을 제외시킬 생각이다.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각자 골라. 익명은 보장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저희 5명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익명을 보장하게요?”
“어, 음.”
에르딘의 말에 제론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공개투표로 진행하기로 했다.
“첫 번째 선택이 좋은 사람 손을 올려봐.”
아무도 들지 않았다.
“그럼 두 번째 선택……도 역시 없네.”
자연스럽게 세 번째 선택인 역병을 없애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만약 저주나 마녀의 비술이 아니라 진짜 역병이라면 결정은 번복될 거야.”
제론이 확실하게 말하고 일어섰다.
* * *
역병의 소문이 퍼지며 도시는 혼란에 휩싸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질 것이다. 그 전에 도시를 빠져나가야 했다.
우선 필요한 물품을 빠르게 사들였다. 평소라면 다음 도시나 마을에 들러서 보충할 정도의 양만 샀겠지만 지금은 3배 이상을 추가로 구입했다.
실시간으로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필요한 물품을 확보하는 것이었으니까.
아공간 주머니를 생각하면 10배 이상의 물량을 확보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도시에서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적당량만 산 것이다.
밤이 되자 성벽으로 향했다. 벌써부터 경비병의 숫자가 2배로 많아졌다.
메이엔이 사제에게 마녀의 비술을 걸어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만들었다.
제론은 사제를 업고 성벽을 넘었다.
다른 일행도 곧 뒤따랐다.
성벽을 넘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도시로 들어오기 위해 성문에서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역병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이었다.
“벌써 통제를 하기 시작했네요.”
에르딘이 그렇게 말하곤 입술을 작게 깨물었다.
안타까웠지만 도와줄 수는 없었다. 역병이 저주나 마녀의 비술이라면, 그것을 최대한 빠르게 제거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게드린 백작령이 어느 방향이지?”
“북쪽이라고 했으니까…… 저쪽으로 가면 돼.”
쟌느가 손가락으로 성문의 반대편을 가리켰다.
제론 일행은 망설이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새벽이 깊어지자 야영지를 구축했다.
다들 각자만의 고민이 깊은 모양인지 끼니를 걸렀다.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일어났다. 간단한 운기조식을 하고 떠날 준비를 마쳤다. 식사는 말 위에서 빵조각과 육포로 해결했다.
“오늘 밤에는 사냥을 할 거야.”
“이왕이면 멧돼지를 잡아 와줘. 큼지막한 다리를 통으로 구워 먹고 싶어.”
쟌느가 히히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며칠 뒤 게드린 백작령으로 가던 도중 유랑민과 조우했다. 그들은 제론 일행을 발견하고 경계했지만 해칠 의도가 없다고 표시하자 경계를 살짝 낮췄다.
“혹시 역병에 대한 소문을 들으신 것이 있으십니까?”
“저희도 자세히 들은 건 아니지만…….”
유랑민의 대표자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게드린 백작령이 죽음의 땅으로 변한 뒤로 매일 밤마다 짙은 안개가 끼고, 정체불명의 무리가 안개 속을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사실 전부 죽었는데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을 리는 없겠지만요.”
무엇보다도 게드린 백작령으로 가까이 접근하는 사람이 없었다.
단순히 터무니없는 헛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제론 일행은 역병이 저주 혹은 마녀의 비술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던 터라, 마냥 헛소문이라고 생각하며 웃어넘기지 못했다.
“혹시나 게드린 백작령으로 가실 생각이면 절대로 조심하십시오. 요즘 난리도 그냥 난리가 아닙니다. 백작령의 경계에서 왕국군이 순찰을 돌며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괜히 근처를 지나가다가 횡액을 당할 수도 있고요.”
“말씀 감사합니다. 사례를 바라고 걱정해주신 것은 아니겠지만 감사의 마음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받아주십시오.”
“뭐 이런 걸 다…… 크흠.”
제론이 10골드를 꺼내서 건네자 유랑민 대표자가 헛기침을 하며 챙겨 자신의 품속으로 쑤셔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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