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78)
제 178화
178화
“코란, 밖에 있으신가?”
“무슨 일이십니까?”
코란이라 불린 남자가 간이천막 밖에서 머리만 쑥 집어넣으며 묻는다.
“날씨가 추우니 따뜻하게 데운 양젖을 좀 가져와 주시게.”
“……넉넉하게 다섯 주머니를 가져오겠습니다.”
코란은 제론과 유랑민 대표자의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그렇게 해주면 고맙겠군.”
코란이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지자 유랑민 대표자가 제론에게 묻는다.
“혹시 더 궁금하신 거나 필요하신 건 없습니까?”
10골드라는 거금을 받아서 그런지 그는 살짝 들떠 있었다. 특별히 필요한 것이나 궁금한 게 없었던 제론은 괜찮다고 대답한 뒤 양젖이 담긴 주머니를 받고 돌아왔다.
돌아오자 에르딘이 묻는다.
“저 사람들이 뭐래요?”
“역병이 퍼진 게드린 백작령의 지역에 밤마다 짙은 안개가 끼고, 그 안개 속에서 정체불명의 무리가 돌아다닌다고 하더라. 그리고…… 왕국군이 게드린 백작령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고 하니까 조심해야 할 것 같아.”
“뭐…… 왕국군과 마찰을 일으켜서 좋을 것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짙은 안개가 끼고 정체불명의 무리가 돌아다닌다라…… 진짜일까요?”
제론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에르딘에게 어깨를 으쓱했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확인해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 사실 자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다만 정체불명의 무리에 대한 정체가 궁금했다.
“역병이 도는 지역을 제집처럼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있다는 건 사실상 그 녀석들이 역병을 퍼트린 주모자라는 뜻이나 다름없지.”
쿰베 왕국에서 파견한 조사대였다면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소식을 널리 퍼트렸을 것이다. 하지만 쿰베 왕국의 왕실에서는 조사대를 파견하기보다는 역병의 확산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관리통제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놈들의 위치만 알 수 있다면 금방 끝내는 것도 가능하겠네요.”
“맞아. 하지만 백작령이라고 하니까 쉽지는 않을 거야.”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었다. 고작 5명에 불과한 일행으로 이번 사건을 쉽게 해결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수에 가까웠다.
“첫 발병지인 마을부터 찾아보는 건 어때요?”
“그렇게 해야지.”
“그럼 이동 준비를 할게요.”
메이엔이 사역마-말을 소환했다.
제론과 그의 일행은 말을 타고 새벽이슬이 맺히기 전까지 이동했다.
* * *
게드린 백작령에서 역병이 퍼지기 시작한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죽음의 땅으로 변한 그곳은 매일 밤 보라색 안개로 뒤덮였다.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던 쿰베 왕국군은 두려움에 떨었다.
“어후. 저러다가 갑자기 우리를 확 덮치는 건 아니겠지?”
“행여나 그딴 말 지껄이지 마.”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한 병사가 중얼거리자 다른 병사들이 그를 사납게 물어뜯었다.
단순히 불길한 말을 해서가 아니었다.
얼마 전 역병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한 용병들이 게드린 백작령으로 접근했고, 그들을 막으려고 간 병사들과 함께 저 안개에 뒤덮여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는 꼴을 눈앞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보라색 안개는 늪지대처럼 끈적끈적하고 음습하게 그들을 집어삼켰다. 뱀이 먹잇감을 삼키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째로 천천히 말이다.
이윽고 피부가 안개의 색처럼 보랏빛으로 물들고 검은색 촉수로 뒤덮였다.
시신조차 차마 수습하지 못하고 돌아가야만 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다시 오니 그들의 시체가 사라져 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윽고 그날 밤 왕실에 소속된 마법사가 도착했다.
마법사들은 역병의 정체는커녕 안개가 무엇인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병사들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 아침이 찾아왔다.
병사들은 근무교대를 했다.
“마탑에선 언제 오려나?”
“협조 요청을 수락했다고 하니까 조만간 오겠지.”
반쯤 두려움에 잠긴 채 해가 저물면 보라색 안개로 뒤덮이는 그곳을 바라봤다. 이윽고 새로운 밤이 찾아왔다.
병사들은 낮보다 밤을 더욱 경계했다. 안개 속을 돌아다니는 정체불명의 무리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소문을 퍼트린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애당초 다른 도시나 마을로 가지 못했다.
병사들이 최대한 게드린 백작령으로 다가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지만 백작령 전체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백작령이 너무 넓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연찮게 근처를 지나가거나, 역병이라는 소문을 듣고 호기심이 생겨서 멀리서나마 지켜보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소문이 퍼진 것이었다.
밤이 찾아오자 보랏빛 안개가 뒤덮였다.
그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발소리를 내며 돌아다녔다.
저벅. 저벅.
“꿀꺽!”
병사들은 긴장해서 침을 삼켰다. 저 검은 그림자가 안개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마음을 놓지 못했다. 행여나 갑자기 튀어나와서 공격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걸어 다니는 역병이 덤비는 꼴이니 자신들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스윽.
검은 그림자가 이쪽을 쳐다본다.
병사들은 머리끝이 쭈뼛거리며 서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차가운 한기가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검은 그림자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선이 마주쳤다는 것을 알았다.
‘시X!’
욕지거리가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속 시원하게 토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혹여나 목소리를 듣고 덤벼들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길 기다린다. 제발 얼른 해가 떠오르기를 바란다. 저 소름 끼치는 놈들과 오랜 시간 시선을 마주치고 있을 자신이 없다.
“……간다.”
“……!”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함께 불침번을 서는 후임 병사였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녀석의 말처럼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후우.”
검은 그림자가 안개 속에서 보이지 않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임 병사도 반쯤 넋을 놓은 채 눈 주변을 주물렀다.
“시X!”
“이러다가 미치는 거 아닙니까?”
“내 말이! 저런 놈들과 매일 밤마다……!”
선임 병사가 격앙된 목소리로 투덜거리다가 안개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또다시 나타나자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검은 그림자가 평소와 다르게 행동한다.
평소에는 안개 속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병사들을 빤히 쳐다보고 사라진다. 그 외에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얼굴에서 기이한 변화가 생겼다.
검은 그림자가 표정을 짓는 것처럼 얼굴을 꿈틀거렸다.
그것은 미소였다.
호쾌하게 짓는 미소가 아니었다.
사랑스러운 연인을 바라보며 짓는 미소도 아니었다.
맛있는 음식을 발견한 탐스러운 미소였다.
얇고 긴 무언가가 입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길게 뻗어 나왔다.
입으로 추정되는 곳을 쭉 핥는다.
‘시X! 입맛을 다시고 있어!’
선임 병사는 도망치고 싶어 하는 다리를 겨우 붙잡았다.
후임 병사는 이미 주저앉아서 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가 히죽 웃는 것처럼 입으로 추정되는 곳을 움직인 그 순간 다음 근무자가 나타났다.
“이봐. 교대…… 뭐야? 무슨 일이야?”
“……!”
두 병사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다음 근무자들이 서둘러 달려갔다. 안개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신 차려!”
“사, 살았다……!”
선임 병사가 울먹이듯 중얼거렸다.
* * *
제론과 그의 일행은 며칠 뒤 역병으로 오염된 죽음의 땅이 게드린 백작령을 벗어나 그 주변까지 미쳤다는 소문을 접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면 돼?”
“사흘. ……아니, 역병이 퍼지는 속도를 생각하면 아무리 늦어도 이틀 뒤에는 도착할 거 같아.”
쟌느가 지도를 펼쳐 위치를 확인한 뒤 말했다.
이틀이면 짧은 거리다.
혼자서 이동한다면 몇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먼저 가보는 게 좋을까?’
제론은 곧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단순히 적이 쳐들어왔고,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래도 된다. 하지만 지금은 특수한 경우였다. 침착하게 움직여야 한다. 때마침 해도 저물고 있었다.
“야영을 준비하자.”
그렇게 천막을 치고 있을 때 멀리서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제론이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린 순간 쟌느가 말했다.
“괜찮아. 집에서 편지를 보낸 거야.”
“집에서 보낸 거라고?”
안력을 올리자 새의 발목에 작은 통이 달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전서구?’
정확하게 말하자면 작은 새는 맹금류로 보였다.
전서응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았다.
쟌느가 품속에서 작은 호각을 꺼내서 불었다.
삐이-.
전서응이 호각소리를 따라서 활강했다. 지상에 가까워지자 날개를 푸드득- 거리더니 쟌느의 주변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그녀가 팔을 뻗자 그 위에 앉았다. 전서응의 발목에 달린 통에서 편지를 꺼냈다. 그것을 쭉 읽던 그녀가 눈에 띌 정도로 흠칫 몸을 떨었다.
“……야만족이 경계를 넘었대.”
“북대륙의 각국이 병력을 차출해서 경계지역을 방어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그건 맞는데…… 야만족이 이상한 주술을 써서 병사들을 혼란에 빠트리며 빠른 속도로 방어진을 무너트리고 있다고 써져 있어.”
“……!”
제론이 눈을 크게 떴다.
역병의 창궐과 야만족의 공격.
타이밍이 절묘했다.
일전에 역병이 야만족의 침략을 방어할 병력을 줄이려는 목적이 아닐까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근거가 없는 단순한 추측에 불과했지만 지금 도착한 편지로 확신에 가까운 심증으로 굳어졌다.
“상황이 많이 심각한 것 같아.”
쟌느가 그렇게 말하고는 입술을 작게 깨물었다.
* * *
북대륙은 다른 대륙과 비교해서 국가적인 전쟁이 잘 벌어지지 않는다. 패권을 노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웃에 위치한 적국보다 더욱 위험한 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바로 야만의 땅에서 살아가는 야만족이었다.
야만족의 침략은 수백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때로는 작게, 때로는 크게.
시시때때로 북대륙과 야만의 땅의 경계지역인 설산을 넘어오려고 시도했다.
그들의 힘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에 북대륙 전체가 패권의 다툼을 두 번째로 미루고 야만족을 경계한 것이다.
“다른 대륙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대략 1백여 년 전에 수만 명의 야만족이 설산을 넘어온 적이 있었어.”
대륙에서는 보지 못한 기괴한 주술을 사용하는 야만족은 고작 며칠 만에 북대륙 최북단의 국가를 전복시키며 자신들의 힘을 과시했다.
단순히 힘을 과시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훌륭히 임무를 성공시킨 것이지만, 그들의 진짜 목적은 북대륙의 일부를 자신들의 영토로 삼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임무는 실패했다. 북대륙에 있는 모든 국가가 야만족의 힘을 경계하게 된 시발점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북대륙의 모든 국가는 힘을 합쳐서 야만족을 몰아냈어. 그리곤 북대륙 공식협정을 맺었지. 국가적인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더라도 야만족의 침략이 있다면 그 즉시 전쟁을 멈추기로 말이야.”
야만족의 힘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뜻이다.
“역병을 퍼트린 놈들이 야만족과 결탁했다고 보면 되겠군.”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까 충분히 가능성은 있어.”
잠시 말을 멈춘 쟌느가 제론을 보며 다시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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