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79)
제 179화
179화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가능성을 더 염려하고 있어.”
“‘악몽의 집행자’라는 유치한 이름을 붙인 놈들?”
“맞아.”
쟌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짧게 결론만 말하자면 이거야. 야만족과 결탁한 국가나 귀족, 혹은 세력이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들의 뒤에는 ‘악몽의 집행자’가 배후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거지.”
“충분히 일리가…… 있어!”
제론을 시작으로 일행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의 확인 여부를 떠나서 그간 ‘악몽의 집행자’가 저지른 일을 몇 차례 겪은 탓인지 모두가 납득하고 만 것이다.
‘이런 짓을 벌일 자들은 그놈들밖에 없지.’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어쩌면 언니의 짓일지도 몰라.’
차례대로 에르딘, 사제, 메이엔의 머릿속이었다.
“어, 어어…….”
일행의 적극적인 동의에 당황한 쟌느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곧 ‘은근히 단순해서 좋다니까.’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피식 웃고 말았다.
제론 일행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지만 알 수 있었다.
모두 다 좋은 사람들이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짝-!
“자, 집중.”
제론이 손뼉을 쳤다. 일행이 그를 쳐다봤다.
“어떤 상황인지는 다들 이해했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이제부터는 중요한 포인트만 짚을게. 첫 번째. ‘진짜’ 역병이 아닐 확률이 높아졌다는 거야.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냐? 만약 광범위한 저주일 경우라면 저주의 매개체가 있을 거야. 그것을 찾아야 부숴야 해. 마녀의 비술이라면 메이엔 선배가 어떻게든 해결해 줄 거고. 그렇죠?”
“맞아요.”
메이엔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숲을 떠나고 몇 주가 지난 지금 그녀의 표정은 많이 밝아졌다.
예전처럼 가끔씩 어두운 낯빛이 겉으로 드러날 때가 있었지만 마녀 일족의 운명을 바꿔보겠다는 확실한 목표의식이 있기 때문인지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큰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제론은 메이엔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생각했다.
“두 번째는 ‘진짜’ 역병이 아니라면 적이 존재한다는 거야. 이 부분은…… 사실 특별한 방법이 없어. 그냥 보이는 대로 족족 박살 내버리면 돼.”
“시원시원하니 좋네.”
쟌느가 히죽 웃었다.
제론이 웃을 때와 닮은 미소였다.
저도 모르게 흠칫 떤 에르딘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강한 녀석들을 만나면 되도록 피할게요.”
“그래. 쟌느랑 힘을 합치도록 해.”
일행 중에서 강한 순서를 꼽자면 제론 다음이 메이엔이다.
그다음으로 쟌느와 에르딘이 막상막하였다.
아티팩트로 무장을 한다면 쟌느가 에르딘을 추월하지만 순수하게 맨몸으로 싸운다면 에르딘이 아슬아슬하게 우위를 점해서 그렇게 정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제의 전투력은 한없이 제로에 육박했다.
그런 사제를 메이엔이 사역마로 보호하며 싸우기로 했다.
그래서 에르딘과 쟌느는 전투가 벌어진다면 개별적으로 싸우다가도 혼자서 상대하지 못할 강한 적이 나타나면 힘을 합치면 된다.
“마지막 세 번째는 정보야. 적의 목적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해. 적의 전력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고.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백 번을 싸워도 백 번을 이긴다는 말처럼 말이야.”
제론은 일행과 차례대로 시선을 마주치며 말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의 안전이야. 그러니까 무리하지 마. 억지로 정보를 캐내려고 하지 마. 위험에 빠진다면 맞서 싸우지 않아도 돼. 도망쳐. 반드시 살아남아. 그 뒤는 신경 쓰지 마.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 테니까.”
“…….”
“…….”
일행들이 묘한 눈빛으로 제론을 쳐다본다.
“왜 그렇게 쳐다봐?”
“그게…….”
제론이 퉁명스럽게 묻자 일행들은 순서대로 질문세례를 쏟아냈다.
“혹시 어디 아프세요?”
“아침에 뭘 잘못 먹었나?”
“제가 신성 마법을 걸어드릴까요?”
“……마녀의 비술로 만든 치료약이 있는데 드릴까요?”
마지막으로 질문한 메이엔의 목소리에서 분위기에 휩쓸려 억지로 머리를 쥐어짠 티가 났다.
골치가 아파 오는 것을 느낀 제론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일행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제론의 시선을 피했다.
“다 필요 없으니까 나가. 사제님이랑 메이엔 선배도 나가요.”
“밖이 추운데요?”
“……사제님은 남아 계세요.”
사제가 푸근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일행들은 이유 모를 배신감 속에서 사제를 지그시 바라봤지만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고, 곧 구석에 간이침대를 설치해서 편안하게 드러누웠다.
에르딘이 당황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뭐 하고 계세요?”
“제가 워낙 연약해서…… 잠시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제는 일행에게 완전히 적응해버렸는지 뻔뻔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사제님……?”
“예, 에르딘 형제님.”
“어…… 그게…… 이제 와서 여쭙기는 조금 그런데…….”
에르딘이 머뭇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사제가 여전히 드러누운 채 싱긋 웃고선 말했다.
“제 이름은 로건. 로건 페르다인입니다.”
“뭐야. 에르딘, 너 사제님 이름 몰랐어?”
“제론 님은 뭐 아셨어요?”
“당연히 알고 있지. 처음에 만났을 때 말씀해주셨는걸?”
“그 처음이 설마 제가 없을 때의 처음은 아니겠죠?”
“어…… 그때가 맞는 거 같은데?”
제론은 ‘그때가 맞나?’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르딘이 혀를 쯧쯧 찼다. 그리곤 사제-로건을 바라봤다. 바로 그때였다. 쟌느가 미간을 가운데로 좁히며 묻는다.
“사제님 성이 페르다인이라고요?”
“예.”
“제가 아는 페르다인이 맞는다면…… 전대 교황의……?”
“맞습니다. 전대 교황이신 가렌 페르다인께서 제 할아버지가 되십니다.”
로건이 쓴웃음을 지으며 수긍했다.
* * *
“쿰베 왕국의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정기모임이 있는 날 모든 회의가 끝난 뒤 허스키한 목소리가 묻는다.
아타시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게 있어.”
“이상한 것?”
“전대 교황을 기억해?”
“전대 교황이라면 가렌 페르다인이로군.”
아이오닉 교국의 84대 교황인 가렌 페르다인은 역대 교황들과 비교해서 뛰어난 능력이나 특출한 면모는 없었지만 전 대륙의 모든 국가에 ‘태양의 교단’의 신전을 세운 업적을 세우면서 유명해졌다.
그의 뒤를 이어 85대 교황이 된 마이언 하워드는 가렌 페르다인의 의지를 본받아 전 대륙에 교리를 전파하려고 했지만, 때마침 야만족의 침공으로 인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오른 왕국에서 조직의 자금줄로 사용하던 대주교의 밑에 있던 중급 사제가 가렌 페르다인의 손자 로건 페르다인이야.”
“그걸 왜 이제야 보고하는 거지?”
“가렌 페르다인이 손자의 존재를 숨기고 있었어. 그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아냈고 말이야.”
대주교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전대 교황 가렌 페르다인이 서류를 조작해 로건 페르다인의 존재를 감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것을 처음 알았을 때 아타시아는 머릿속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다행인 사실은 가렌 페르다인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로건 페르다인의 능력이 고작 중급 사제밖에 안 된다는 건 사실이야. 악신 페르트의 권능을 막을 힘은 없어.”
“조각에 불과한 권능이지만 말이지.”
“…….”
아타시아는 입술을 작게 깨물었다.
신화시대가 종막을 고하며 차원은 아스트랄과 미들 어스로 나누어졌다. 아스트랄의 존재는 미들 어스로 간섭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맹약이 맺어졌다. 그로 인해 악신 페르트의 권능이 담긴 유물도 자연스럽게 쇠약해져 갔다.
물론 쇠약해진 권능으로도 대륙에 커다란 혼란을 야기하기에는 충분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페르트의 쇠약해진 권능을 막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교국의 봉인지에서 악신의 유물을 빼낸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가렌 페르다인의 아들이 4명의 추기경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어야지.”
“…….”
허스키한 목소리가 아타시아를 질책했다.
지나간 일이라서 넘어가려고 했지만 또 다른 사건이 복합적으로 얽혀버렸다.
한 번의 실수는 인정해도 두 번까지는 안 된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수렴해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데,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일을 진행시켰으니 그녀-아타시아가 교국의 전前 2성녀이자 현 추기경이 아니었다면 이 순간 멀쩡히 서 있지 못했을 것이다.
“마이언 하워드나 가렌 페르다인의 아들이 네가 한 짓을 알아차린다면 교국을 무너트리려는 계획이 전부 망가진다. 그 책임을 질 수 있나?”
“물론이야.”
아타시아가 이를 꽉 물고 대답했다.
허스키한 목소리는 노란빛의 눈동자로 아타시아를 응시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교국을 무너트릴 거야. 걱정하지 마.”
“그 대답 믿고 있겠다.”
아타시아는 본능적으로 허스키한 목소리가 마지막 기회를 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 * *
“저는 어렸을 적부터 평범했습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엄청난 신성력을 갖고 태어난 것도 아니었고, 남들보다 머리가 비상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교단의 교리를 외우는 것조차 몇 년이 걸렸을 정도였으니 오히려 둔재에 가까웠습니다. 대단하셨던 할아버지나 아버지와는 달랐지요.”
로건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 저를 위해 아버지께서는 할아버지께 말하여 제 존재를 숨겨달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누군가와 비교당하며 상처 입을 저를 걱정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제외하면 아버지와 현 교황이신 마이언 하워드 백부, 그리고 성녀님밖에 없습니다.”
“으음.”
일행들은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에 쉽사리 말문을 열지 못했다.
물론 배경 같은 것을 신경 쓰지 않는 제론은 달랐지만 말이다.
“그런 사실보다 중요한 건 사제님이 제 일행이라는 겁니다.”
“……?”
“……?”
쟌느와 에르딘이 표정으로 ‘이거 뭐 하는 새X지?’라고 말하며 제론을 바라봤다. 마녀인 메이엔조차 당황한 것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로건은 제론의 말에 무척이나 감동 받았는지 환하게 웃으며 양손을 꼬옥 모았다.
“신의 사ㄷ…….”
“됐고. 혹시 아이오닉 교국과 연락을 취할 수 있겠어요?”
제론은 로건의 말허리를 자르며 물었다.
“……?”
“……?”
일행들이 제론을 미친놈 보듯이 쳐다봤다.
‘사제님이 일행이라는 게 중요하다며?’
‘사제님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3명밖에 안 된다잖아!’
‘후배님이 이런 사람이었어?’
제론 일행이 머릿속으로 각자 생각했다.
그러나 곧 제론이 뒤를 이어 한 말에서 질문의 의도를 파악했다.
“사제님께서 인맥을 이용하면 역병의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입니다.”
사제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제론이 곧장 쟌느에게 전서응을 빌려달라고 말했다.
“설마 아이오닉 교국으로 편지를 보내려고?”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할 게 아니라면 그게 제일 빠르잖아.”
가장 가까운 텔레포트 게이트를 사용하려면 적어도 한 달은 말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제론이 혼자서 움직이면 더욱 적은 시간 안에 아이오닉 교국과 쿰베 왕국의 왕복이 가능하겠지만 사제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사제를 데리고 갔다간 심장마비로 죽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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