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180)
제 180화
180화
아타시아가 자리를 떠난 뒤 메이란이 말했다.
“무슨 속셈이야?”
“아무런 속셈도 없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하지만 메이란의 눈빛에서 의심이 지워지지 않았다.
거대한 혼란을 야기함으로써 설산의 경계를 무너트렸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자신-메이란 역시 납득할 수 있는 이유였다.
그러나 교국의 봉인지에서 악신의 유물을 빼돌린 건 무리수였다. 절대로 하면 안 되는 행동이었다. 그때 아타시아를 멈췄어야 했다. 흑마법사를 전부 제거하고 역병을 끝내야 했다.
‘그렇게 말하려고 했었지.’
입술을 떼려는 순간 허스키한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가만히 있어라.
부탁이 아니었다.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그 이후로 메이란은 허스키한 목소리의 의중을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로건 페르다인의 존재를 알고 있던 건 아닐까?’
‘아타시아를 버리려는 게 아닐까?’
‘조직을 개편하려는 건 아닐까?’
라는 식으로 말이다.
메이란은 뱃속에서 검은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타시아를…… 제거하려는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게 보였으니까. 느껴졌으니까.”
허스키한 목소리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하지만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생각하라는 듯 메이란에게서 시선을 돌려 끔찍한 목소리에게 말했다.
“남대륙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50프로 정도 진행되었다. 특별한 변수만 나타나지 않는다면 문제는 없을 거다.”
“좋군. 새로운 지시를 내리겠다.”
“…….”
“우드 엘프와 케이브 엘프를 굴복시켜라.”
“그렇게 하지.”
끔찍한 목소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그가 사라졌다.
메이란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허스키한 목소리를 바라봤다.
“골단.”
“응. 말해.”
로우 톤의 목소리-골단이 담담하게 반응했다. 아타시아의 독단 이후로 육망성의 원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보았지만 특별한 반응과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메이란이 생각했다.
‘저 녀석은 나보다 더 먼저 알아차렸구나.’
원탁에서 흐르는 기묘한 분위기.
허스키한 목소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티아맛Tiamat을 내어주겠다. 동대륙의 대검호를 죽여라.”
“고작 시무르 칸 하나를 죽이겠다고 티아맛을?”
“변수가 생기더라도 실패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 거라면…… 알겠어.”
변수로 인해 서대륙의 계획이 통째로 망가졌다. 북대륙 역시 그럴 위기에 처했으니 골단은 의문을 접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럼 이만 일어날게.”
골단이 사라지자 메이란은 다시 한번 허스키한 목소리한테 물었다.
“아타시아를 제거하려는 거야?”
“굳이 확답을 받아야 아는 건가?”
“당연하지. 그래야 나도 조심할 수 있으니까.”
“…….”
허스키한 목소리가 묘한 눈빛으로 메이란을 응시하며 말했다.
“조직의 제1 원칙이 뭐지?”
“조직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제거한다.”
메이란이 바로 대답했다.
“그렇다. 조직의 제1 원칙은 조직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타시아는 제1 원칙을 어겼다. 간부라고 해서 제1 원칙의 예외가 될 수는 없지. 그러기에 그녀를 제거하려는 것이다.”
“흐응. 충분히 납득이 되는 말이긴 한데…… 그녀가 지금까지 세운 공을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건 어떨까?”
허스키한 목소리가 메이란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교활하게 반짝이는 그 눈빛을 지우고 말하는 게 설득력이 있겠군.”
“들켰나?”
메이란이 배시시 웃었다.
데카론과는 앙숙처럼 자주 싸우던 그녀였지만 정작 진짜로 혐오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아타시아였다.
항상 고결한 척, 깨끗한 척하는 그녀가 역겨웠다.
‘누구보다도 가장 더럽고 추잡한 주제에 말이지.’
내색하지는 않았다.
조직의 간부끼리 갈등을 빚어내는 것은 옳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아타시아를 제거하기로 했다는 말에 상황이 변했다.
“내가 조금 도와줄까?”
“어떻게 도와준다는 말이지?”
허스키한 목소리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메이란을 바라봤다.
“그건 앞으로 지켜보면 알 수 있어.”
* * *
“쟌느.”
“어?”
“걔를 날려 보내면 아이오닉 교국까지 왕복하는 시간이 얼마 정도 돼?”
쟌느가 잠시 고민하고 대답했다.
“으음. 거리를 생각하면 넉넉하게 10일 정도 될 거야.”
“생각보다 별로 안 걸리네.”
“그런데 아이오닉 교국에서 쿰베 왕국까지 말을 타고 온다고 생각하면 최소 몇 달은 걸릴 거야. 그동안 가짜 역병이 엄청나게 확산될 거고. 그걸 생각하면…….”
제론이 씨익 웃자 쟌느가 말끝을 흐렸다.
곧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설마 쿰베 왕국에 있는 신전의 힘을 빌리려는 거야?”
“정확해. 역시 눈치가 빨라서 좋아.”
“내가 좋다고?”
제론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미친 소리는 좀 상황을 봐가면서 하는 게 어떨까?”
“내가 미치도록 좋다고?”
이내 헛소리를 연달아 지껄이는 쟌느를 무시하고 로건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제님, 사제님의 아버님 혹은 교황님, 마지막으로 성녀님께서 아실 만한 어렸을 적 이야기가 있다면 편지에 함께 써서 보내십시오. 만약 도와줄 의사가 있다면 신전에 지시를 내릴 수 있는 명령권도 함께 보내 달라고 하시고요.”
“명령권은……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제는 힘들 거라고 말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명령권은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으로 신의 말씀을 따르는 ‘진짜’ 사제-성직자라면 명령권의 존재를 떠나 고통받는 이들을 지켜보지 못해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제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역병이 퍼지기 시작한 지 2주가 넘은 지금, 쿰베 왕국뿐만이 아니라 북대륙 전역에서 신의 뜻을 따르는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신전 기부금으로 식량과 옷을 사고, 용병들을 고용해서 상단을 통해 옮겼다.
아직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곧 많은 이들이 알게 될 것이다.
한편 아이오닉 교국에서는.
* * *
교황은 기도를 마치고 기도실에서 나갔다.
문 앞에는 그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두 사람이 있었다.
교황이 두 사람을 천천히 번갈아 바라봤다.
“베드릭 추기경. 페르다인 추기경.”
아이오닉 교국의 4대 추기경 중 2명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그들이 온 이유를 안다.
교황은 베드릭 추기경에게 물었다.
“베드릭 추기경, 쿰베 왕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텔레포트 게이트 사용을 허가받았습니다.”
“지금 바로 구호단과 더 썬The Sun 성기사단, 그리고 신병神兵-교국에서는 왕국군을 신병이라고 지칭한다-을 파병하세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구호단과 피난민의 안전을 최우선 순위로 삼아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교황은 베드릭 추기경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자 페르다인 추기경에게 묻는다.
“페르다인 추기경. 데이라잇 추기경-아타시아-의 배덕 행위에 대한 증거는 찾으셨습니까?”
“예. 데이라잇 추기경이 봉인지에 출입하기 전 하급 사제 한 명과 접촉하는 모습을 본 목격자를 찾았고, 그를 토대로 증언을 확보했습니다.”
데이라잇 추기경이 접촉한 하급 사제는 정신조작계열의 주문에 당해 정신이 멀쩡하지 못했다.
성물로 치료를 한 끝에 겨우 제정신을 찾을 수 있었다.
하급 사제의 증언에 따르자면 데이라잇 추기경은 살해 협박을 위시한 회유가 통하지 않자 함께 온 성기사 단원으로 자신을 제압했다고 했다.
그 뒤로는 기억을 잃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정신조작계열의 주문 때문이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녀가 봉인지에서 빼돌린 물건의 정체였다.
“악신 페르트의 유물을 비롯해 총 3가지의 금지 물품을 가져갔습니다.”
페르다인 추기경이 리스트를 건넸다.
“신이시여……!”
교황은 리스트를 확인하고 눈을 질끈 감으며 신을 찾았다.
악신 페르트의 반지와 악신 커프스의 목걸이, 마지막으로 악신 네크롬의 지팡이였다.
쿰베 왕국에 역병을 퍼트린 것은 악신 페르트의 반지였다.
나머지 2개의 악신의 유물로는 무엇을 할지 모르겠지만, 대륙을 혼란에 휩싸이게 만들기 충분한 악신의 유물을 1개도 아니고 무려 3개나 빼돌렸다.
데이라잇 추기경의 죄는 무겁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컸다.
“데이라잇 추기경…… 아니, 배덕자의 현재 위치는 어디입니까?”
“교황청에서 그녀의 행적이 불투명합니다. 현재 이단 심문관이 그녀를 쫓고 있으나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움직임을 예측하고 움직였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교국 내에 ‘그들’의 귀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또 다른 배덕자들에 대해서는 쿰베 왕국의 일을 마무리 짓고 해결을 하도록 합시다. 누구인지 예상되는 자들이 있기도 하고……. 그녀와 함께 봉인지로 갔던 성기사 단원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택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사인은 악신 커스프의 유물로 건 저주였습니다.”
교황은 안타까움의 신음을 흘리고 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잡으세요. 생포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신벌을 내리세요.”
“……!”
페르다인 추기경이 깜짝 놀라 교황을 쳐다봤다.
신벌을 내리라는 말은 곧 죽이라는 뜻이다.
평소였다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극단적인 명령이었다. 하지만 데이라잇 추기경…… 아니, 이제는 배덕자가 된 그녀의 죄는 씻지 못할 정도로 컸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페르다인 추기경은 교황의 지시가 옳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두 사람은 여러 가지 생각을 머릿속에 담은 채 신을 찾았다.
* * *
게드린 백작령에 가까워지자 피난민의 행렬이 보였다.
피난민의 정체는 게드린 백작령의 영지민이었다.
역병이 퍼지기 시작하자 그들은 살기 위해 평생을 일궈온 삶의 터전을 버리고 도망친 것이다.
그들은 인근 영지에 몸을 의탁하기를 원했지만, 역병의 시발지인 게드린 백작령에서 왔다는 이유로 입성을 거부당했다.
그렇게 피난민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랑민 신세가 되었다.
“이건…… 좀 큰일인데.”
언덕 위에서 피난민의 행렬을 바라보던 에르딘이 중얼거렸다. 입성을 거부한 이유는 이해가 된다. 피난민 중에서 역병에 걸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물론 소문의 진위로 판단하자면 역병에 걸린 사람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죽는다. 그러니까…… 다른 영지의 성문 근처까지는 가지도 못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역병의 시발지에서 왔다는 사실이 불길함의 상징이 되어버려서 피난민을 받아주는 영지가 한 군데도 없었다.
제론을 비롯한 다른 일행들 역시 에르딘과 같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이 변한 것을 알게 되었다.
“제론 님!”
“왜?”
“저쪽 좀 보세요!”
피난민의 행렬을 지나치고 며칠 뒤, 구호 물품을 실은 마차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게드린 백작령으로 향하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오